노자 읽기
노자가 탄생한 시대배경[편집 | 원본 편집]
☞ 사진출처: 위키백과
-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두 코드: 유가사상 & 노장사상
☞ 출처: 최재목 역주, 『노자』, 을유문화사, 2012, 29쪽
- 노자라는 인물
○ 『사기(史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보이는 노자에 대한 언급
(1) 노담(老聃): 초(楚)나라 고현(苦縣) 사람. 성은 이(李)씨, 이름은 이(耳)이며, 자는 담(聃)이라고 함. 주(周)나라 장서실(藏書室: 도서를 보관하는 곳, 도서관)을 관리하는 사관. 공자가 주나라에 갔을 때 노자를 만나 예(禮)에 관해 물었음. 그 대답을 듣고 “용과 같은 사람”이라고 극찬함. 도덕(道德)을 수련했으며, 자신을 감추어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에 힘썼음. 주나라가 쇠미해지는 것을 보고 떠났는데, 관문 수비의 책임자인 윤희(尹喜)가 자신에게 저서를 남겨달라는 부탁에 상, 하편의 저서를 지어 도덕의 의미를 5,000여 자로 서술하고 떠났음
공자가 예에 대해 묻자 노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대가 말하는 성현들은 그 육신과 뼈가 모두 이미 썩어버리고 단지 그 말만 남아 있을 뿐이오. 하물며 군자도 그 때를 만나면 관직에 나아가지만, 때를 못 만나면 이리저리 날려다니는 다북쑥처럼 떠돌아다니는 유랑의 신세가 될 것이오. … 그대의 교만과 탐욕, 허세와 지나친 욕망을 버리도록 하시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요.”
-『사기(史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2) 노래자(老萊子): 초나라 사람. 15편의 저서를 지음. 공자와 같은 시대 사람. 160여 살 혹은 200여 살까지 살았다고 함. 도를 닦아 양생했기 때문에 장수했음
(3) 태사담(太史儋): 공자가 죽은 지 129년 후, 주나라 태사[사적(史籍)이나 역법(曆法)을 관장했던 관직]였던 담(儋)이 있었음. 어떤 사람은 담이 바로 노자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하니 세상에는 그 진위 여부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음
=> 진고응(陳鼓應), 유소감(劉笑敢)은 (1)을 사실이라고 보았고, (2)와 (3)을 “믿을 만한 것은 믿을 만한 대로 전하고, 의문 나는 것은 의문나는 대로 전한다.”라는 사마천의 역사관에 의해 부가된 것으로 보았음. 김충열은 곽점초간(郭店楚簡) 『노자』는 (1)의 이이(노담)가 썼고, 백서(帛書)와 현행본 『노자』는 (3)의 태사담이 도가사상을 근거로 초간 『노자』를 정리하여 썼다고 보았음
- 『노자』라는 책
☞ 최재목 역주, 『노자』, 을유문화사, 2012, 50~68쪽
○ 현행본 『노자』: 위(魏)나라 천재 사상가로 24세에 요절한 왕필(王弼, 226~249)이 ‘18세(243)’에 주석을 단 책으로 알려져 있음. 이는 왕필이 당시까지 내려오던 여러 텍스트를 자신의 일관된 틀 속에서 정비·재구성하여 탁월하게 주석한 것임. 도경(道經), 덕경(德經)의 상하 2권으로 이루어져 있게 때문에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불림
○ 마왕퇴(馬王堆) 백서(帛書) 『노자』: 1973년 중국 호남성 장사(長沙) 마왕퇴 한묘(漢墓)에서 비단에 글을 쓴 백서 『노자』가 발굴되었음. 시기적으로 기원적 168년경(한나라 초기)임. 갑본과 을본 2종의 『노자』가 나왔으며, 지금의 체제와 달리 도경과 덕경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음. 현행본과 80%이상 일치함
○ 곽점초묘죽간(郭店楚墓竹簡) 『노자』: 1993년 중국 호북성 곽점촌의 초나라 무덤에서 죽간으로 된 『노자』가 출토되었음. 백서본 『노자』보다 2세기 가까이 연대를 소급할 수 있는 것으로 기원전 300년(전국시대 중기)~260년(전국시대 말기)경임. 초간본 『노자』의 전체 분량은 통행본 『노자』의 5분의 2임. 백서본 『노자』가 초간본 『노자』를 어느 정도 근거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음
=> 풍우란은 노자와 『노자』를 동일시해서 보기보다는 『노자』가 후학들의 노력이 결집되어 완성된 것으로 보았음 (펑유란 지음, 정인재 옮김, 『간명한 중국철학사』, 형설출판사, 2017, 146쪽)
- <<노자>>의 도
☞ 펑유란 지음, 정인재 옮김, 『간명한 중국철학사』, 형설출판사, 2017
☞ 노자 지음, 김학주 옮김, 『노자』, 연암서가, 2011
- 진정한 도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무명(無名)]이기 때문에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
- 텅 비어 있음의 창조성: 노자가 말한 ‘텅 비어 있음’은 소극적인 관념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창조적인 관념임. 텅 비어 있음 속에서의 ‘움직임(動)’은 바로 만물을 생산하는 근원을 묘사한 것임. 여기서 텅 빈 ‘허(虛)’의 작용은 바로 ‘도’가 작용하는 모습임
- 도의 형이상학: 유가 사상은 오로지 현실적 문제, 즉 사회적 윤리, 도덕에 그 관심을 집중하였고, 세계의 근원, 죽음, 신과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음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아직 사람 섬기는 것도 잘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다시 “죽음에 대해 묻겠습니다.”고 묻자, “아직 삶도 잘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고 말했다.
- 반면 도가 사상가들은 이와 대조적으로 이 세계의 근원에 대하여 탐구했음. 중국철학에서 세계의 근원, 세계의 원리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규명하고자 시도했음
- 도는 시각, 청각, 촉각 등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임
- 낮은 곳에 처신하는 것
- <<노자>>의 덕
- ‘덕’이란 ‘도’의 작용이 드러나는 것이며, 사람이나 사물을 통해 발휘되는 ‘도’의 작용임
- 도의 무위함을 근거로 덕을 이해하고 있지만, 이 덕이 사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드러나는 덕은 사람의 수양이나 교양 정도에 따라 차별이 생김
⟹ 상덕이란 바로 도에 합치되는 완정하고 무위하고 무욕(無欲)한 덕으로서 그러한 덕을 지닌 사람을 덕 자체를 의식하는 일도 없고 덕 있는 행동을 하되, 그 행동은 아무런 목표도 없는 무의식적인 것임
- 유약, 겸손에 대한 숭상: 인간을 진정한 강자로 만드는 것은 유약, 부쟁(不爭)의 덕을 지니는 것임. 겸손은 단순히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는 처세술이 아니라 효과적인 통치를 위한 방법이기도 함
- 정치철학: - 이상 국가는 성인(聖人)이 최고 통치자 자리에 앉아 있는 국가라고 주장하는 점에서 도가와 유가의 견해는 일치함. 그러나 유가에서는 성인이 군주가 되면 그는 백성을 위해 되도록 많은 일을 하여 업적을 크게 남겨야 한다고 본 반면, 도가에서는 성군의 임무는 인위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