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인간본성론: 맹자(1)
☞ 공자를 이어 맹자는 인(仁)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요?
맹자의 인(仁)에 대한 언급들[편집 | 원본 편집]
1. 孟子曰(맹자왈) 人皆有不忍人之心(인개유불인인지심)하니라. 先王(선왕)이 有不忍人之心(유불인인지심)하사 斯有不忍人之政矣(사유불인인지정의)시니 以不忍人之心(이불인인지심)으로 行不忍人之政(행불인인지정)이면 治天下(치천하)는 可運之掌上(가운지장상)이니라.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소인위인개유불인인지심자)는 今人(금인)이 乍見孺子將入於井(사견유자장입어정)하고 皆有惻隱之心(개유측은지심)하나니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비소이납교어유자지부모야)며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비소이요예어향당붕우야)며 非惡其聲而然也(비오기성이연야)니라. 由是觀之(유시관지)컨댄 無惻隱之心(무측은지심)이면 非人也(비인야)며 無羞惡之心(무수오지심)이면 非人也(비인야)며 無辭讓之心(무사양지심)이면 非人也(비인야)며 無是非之心(무시비지심)이면 非人也(비인야)니라. 惻隱之心(측은지심)은 仁之端也(인지단야)요 羞惡之心(수오지심)은 義之端也(의지단야)요 辭讓之心(사양지심)은 禮之端也(예지단야)요 是非之心(시비지심)은 知之端也(지지단야)니라.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선왕(先王)이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정사[인정(仁政)]를 시행하셨으니,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정사를 행한다면, 천하를 다스림은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지금에 사람들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장차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惻隱)해하는 마음을 가지니, 이것은 어린아이의 부모(父母)와 교분을 맺으려고 해서도 아니며, 향당(鄕黨)과 붕우(朋友)들에게 명예를 구해서도 아니며, <잔인하다는> 명성을 싫어해서 그러한 것도 아니다. 이것을 근거로 본다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단서이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義)의 단서이고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禮)의 단서이고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의 단서이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 上)」)
2. 蓋上世(개상세)에 嘗有不葬其親者(상유부장기친자)러니 其親死(기친사)어늘 則擧而委之於壑(즉거이위지어학)하고 他日過之(타일과지)할새 狐狸食之(호리식지)하며 蠅蚋姑嘬之(승예고최지)어늘 其顙有泚(기상유자)하여 睨而不視(예이불시)하니 夫泚也(부자야)는 非爲人泚(비위인자)라 中心(중심)이 達於面目(달어면목)이니 蓋歸(개귀)하여 反虆梩而掩之(반류리이엄지)하니 掩之誠是也(엄지성시야)면 則孝子仁人之掩其親(즉효자인인지엄기친)이 亦必有道矣(역필유도의)리라. 상고(上古)시대에 일찍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례하지 않은 자가 있었는데, 그 부모님이 죽자, 들어다가 구렁에 버렸었다. 후일에 그 곳을 지날 적에 여우와 삵쾡이가 파먹으며 파리와 등에가 모여서 빨아먹음에 그 사람의 이마에 땀이 흥건히 젖어서 흘겨보고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였으니, 땀이 흥건히 젖은 것은 남들이 보기 때문에 땀에 젖은 것이 아니라, 중심(中心: 마음)이 얼굴과 눈에 도달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삼태기와 들것에 흙을 담아 뒤집어 쏟아서 시신을 가렸으니, 시신을 가리는 것이 진실로 옳다면, 효자(孝子)와 인자한 사람[인인(仁人)]이 자신의 부모님을 가리는 데는 또한 반드시 도리이기 때문이어서 일 것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 上)」)
3. 孟子曰(맹자왈) 仁(인)은 人心也(인심야)요 義(의)는 人路也(인로야)니라. 맹자가 말했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 上)」)
4. 孔子曰(공자왈) 里仁(이인)이 爲美(위미)하니 擇不處仁(택불처인)이면 焉得智(언득지)리오하시니 夫仁(부인)은 天之尊爵也(천지존작야)며 人之安宅也(인지안택야)어늘 莫之禦而不仁(막지어이불인)하니 是(시)는 不智也(부지야)니라. 공자가 ‘마을이 어진 것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어진 데 거처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지혜로움을 얻겠는가?’라고 했으니, 인(仁)은 하늘의 높은 벼슬이며, 사람의 편안한 집이다. 그러나 이것을 막는 이가 없는 데도 인하지 못하니,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 上)」)
5. 孟子曰(맹자왈) 君子所以異於人者(군자소이이어인자)는 以其存心也(이기존심야)니 君子(군자)는 以仁存心(이인존심)하며 以禮存心(이례존심)이니라 仁者(인자)는 愛人(애인)하고 有禮者(유례자)는 敬人(경인)하나니 愛人者(애인자)는 人恒愛之(인항애지)하고 敬人者(경인자)는 人恒敬之(인항경지)니라. 맹자가 말했다. “군자가 일반인과 다른 것은 그 마음을 두고 있는 것 때문이니, 군자는 인(仁)을 마음에 두며, 예(禮)를 마음에 둔다. 인한 사람은 남을 사랑하고, 예가 있는 사람은 남을 공경한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이 항상 사랑해 주고,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이 항상 공경해 준다. (『맹자』 「이루 하(離婁 下)」)
6. 仁人之於弟也(인인지어제야)에 不藏怒焉(부장노언)하며 不宿怨焉(불숙원언)이요 親愛之而已矣(친애지이이의)니 親之(친지)인댄 欲其貴也(욕기귀야)요 愛之(애지)인댄 欲其富也(욕기부야)라. 인한 사람은 동생에 대해서 노여움을 감추지 아니하며, 원망을 묵혀 두지 아니하고, 그를 친애(親愛)할 뿐이다. 그를 친히 한다면 그가 귀하게 되기를 바랄 것이요, 그를 사랑한다면 그가 부해지기를 바랄 것이다. (『맹자』 「만장 상(萬章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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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孟子曰(맹자왈) 居下位(거하위)하여 不以賢事不肖者(불이현사불초자)는 伯夷也(백이야)요 五就湯(오취탕)하며 五就桀者(오취걸자)는 伊尹也(이윤야)요 不惡汚君(불오오군)하며 不辭小官者(불사소관자)는 柳下惠也(유하혜야)니 三子者不同道(삼자자부동도)하나 其趨(기추)는 一也(일야)니 一者(일자)는 何也(하야)오? 曰(왈) 仁也(인야)라. 君子(군자)는 亦仁而已矣(역인이이의)니 何必同(하필동)이리오? 맹자가 말했다.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어짊으로써 어질지 못한 이를 섬기지 않은 자는 백이(伯夷)였고, 다섯 번 탕왕(湯王)을 찾아가며 다섯 번 걸왕(桀王)을 찾아간 자는 이윤(伊尹)이었고, 더러운 군주를 싫어하지 않으며, 작은 관직을 사양하지 않은 자는 유하혜(柳下惠)였으니, 이 세 분들은 길은 같지 않았으나, 그 나아감은 똑같았으니, 똑같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仁)이다. 군자는 또한 인(仁)할 뿐이니, 어찌 굳이 같을 것이 있겠는가?” (『맹자』 「고자 하(告子 下)」)
8. 殺一無罪(살일무죄) 非仁也(비인야)며 非其有而取之非義也(비기유이취지비의야)라. 居惡在(거오재)오? 仁是也(인시야)요. 路惡在(노오재)오? 義是也(의시야)니 居仁由義(거인유의)면 大人之事備矣(대인지사비의)니라. 한 사람의 죄가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인(仁)이 아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데 취하는 것은 의(義)가 아니다. 거처하는 곳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인(仁)이 이것이다. 길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의(義)가 이것이다. 인(仁)에 거처하고 의(義)를 따른다면 대인(大人)의 일이 구비된 것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 上)」)
9. 子曰(맹자왈) 仁也者(인야자)는 人也(인야) 맹자가 말했다. “인(仁)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맹자』 「진심 하(盡心 下)」)
10. 孟子曰(맹자왈) 人皆有所不忍(인개유소불인)하니 達之於其所忍(달지어기소인)이면 仁也(인야)요 人皆有所不爲(인개유소불위)하니 達之於其所爲(달지어기소위)면 義也(의야)니라.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차마 하는 것에까지 확충시킨다면 그것이 인(仁)이다. 사람들은 모두 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하는 데에까지 확충시킨다면 그것이 의(義)이다.” (『맹자』 「진심 하(盡心 下)」)
11. 孟子曰(맹자왈) 仁則榮(인즉영)하고 不仁則辱(불인즉욕)하나니 今(금)에 惡辱而居不仁(오욕이거불인)이 是猶惡濕而居下也(시유오습이거하야)니라. 맹자가 말했다. “인(仁)하면 영화롭고, 인(仁)하지 못하면 치욕을 받을 것이니, 오늘날에 치욕받기를 싫어하면서도 불인(不仁)한 처신을 하는 사람들은 마치 습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낮은 곳에 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 上)」)
12. 王如施仁政於民(왕여시인정어민)하사 省刑罰(생형벌)하시며 薄稅斂(박세렴)하시면 深耕易(심경이)하고 壯者以暇日(장자이가일)로 修其孝悌忠信(수기효제충신)하여 入以事其父兄(입이사기부형)하며 出以事其長上(출이사기장상)하리니 可使制(가사제)하여 以撻秦楚之堅甲利兵矣(이달진초지견갑리병의)리이다. 彼奪其民時(피탈기민시)하여 使不得耕(사부득경)하여 以養其父母(이양기부모)하면 父母凍餓(부모동아)하며 兄弟妻子離散(형제처자리산)하리니 彼陷溺其民(피함닉기민)이어든 王往而征之(왕왕이정지)하시면 夫誰與王敵(부수여왕적)이리잇고. 故(고)로 曰(왈) 仁者無敵(인자무적)이라하니 王請勿疑(왕청물의)하소서 왕[양혜왕]께서 만일 인정(仁政)을 백성에게 베푸시어, 형벌을 살펴 신중히 하시며, 세금 거둠을 적게 하신다면, 백성들은 깊이 밭 갈고 잘 김매고, 장성한 자들은 여가를 이용하여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을 닦아서, 들어가서는 부모와 형제를 섬기며 나가서는 어른과 윗사람을 섬길 것이니, 이들로 하여금 몽둥이를 만들어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병기를 매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이 백성들의 농사철을 빼앗아 백성들로 하여금 밭 갈고 김매어 자기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하면, 부모가 얼고 굶주리며, 형제와 처자식이 떨어져 흩어질 것이니, 저들이 그 백성을 함정에 빠뜨리고 도탄에 빠뜨리거든 왕께서 가서 바로잡으신다면 누가 왕과 대적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자(仁者)는 대적할 사람이 없다.’ 한 것이니, “왕께서는 청컨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 上)」)
13. 君仁(군인)이면 莫不仁(막불인)이요 君義(군의)면 莫不義(막불의)요 君正(군정)이면 莫不正(막부정)이니 一正君而國定矣(일정군이국정의)니라. 군주가 인(仁)해지면 <모든 일이> 인(仁)하지 않음이 없고, 군주가 의(義)로워지면 <모든 일이> 의(義)롭지 않음이 없고, 군주가 바르게 되면 <모든 일이> 바르지 않음이 없으니, 한 번 군주의 마음을 바르게 되면 나라가 안정된다. (『맹자』 「이루 하(離婁 下)」)
14. 使畢戰(사필전)으로 問井地(문정지)하신대 孟子曰(맹자왈) 子之君(자지군)이 將行仁政(장행인정)하여 選擇而使子(선택이사자)하시니 子必勉之(자필면지)어다 夫仁政(부인정)은 必自經界始(필자경계시)니 經界不正(경계부정)이면 井地不均(정지불균)하며 穀祿不平(곡록불평)하리니 是故(시고)로 暴君汚吏(폭군오리)는 必慢其經界(필만기경계) 등문공(文公)이 필전(畢戰)으로 하여금 정전법(井田法) 를 묻게 하자, 맹자가 대답했다. “그대의 군주가 장차 인정(仁政)을 행하고자 하여 선택하여 자네를 시키셨으니, 자네는 반드시 이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인정(仁政)은 반드시 <토지(土地)의> 경계를 다스리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경계를 다스림이 바르지 못하면 정지(井地)가 균등하지 못하며, 곡록(穀祿)이 공평하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폭군(暴君)과 탐관오리들은 반드시 그 경계를 다스리는 일을 태만히 하기 마련이니 경계를 다스리는 것이 이미 바르게 되면 토지를 나누어주고 곡록(穀祿)을 제정해주는 일은 가만히 앉아서도 정해질 수 있는 것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 上)」)
☞ 맹자의 인에 관한 언급은 공자의 인과 어떻게 다른가요? 맹자가 한 걸음 더 진전시킨 인에 관한 이야기들은 어떤 것인가요? 맹자는 왜 이런 이야기들을 했을까요?
오늘의 토론 내용(2023.03.28)[편집 | 원본 편집]
- 공자는 맹자에 비해 인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제시, 맹자의 인은 공자에 비해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 맹자는 인을 선천적, 내면적, 당위적이라고 보았음
=> 왜?: 당시에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전쟁을 치르는 것이 본성이 아니라 전쟁을 막는 것이 본성이라고 주장해야 했음. 이때, 인을 본능적인 개념이여야 더 당위성이 확보된다고 할 수 있음
- 오히려 공자야말로 내적 동기에 의존한 인을 강조한 것 같음. 맹자의 인은 강제적인 건 아니겠지만, 공자가 말한 것처럼 무조건 내적동기에 의존한 인은 아닌거 같음. 물론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 같은 건 내적인 마음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차이점은 존재함(14번의 제도적인 부분에 대한 강조)
=> 왜?: 공자의 인격을 완성시키려는 것은 결국 맹자시대보다는 덜 전쟁을 했기에, 인격 자체를 완성시키려는 느낌이 있지만, 맹자는 전국 시대의 더 다툼이 많던 시대이기에 더 따뜻한 당위적인 인성에 대해 강조하지 않았을까?
=> 공자는 성인에 가깝고 맹자는 군자에 가깝게 이상적 인간형을 설정한 것 같음. 그럼에도 아무래도 맹자가 공자를 계승한 것이기 때문에 분명 공통점이 있을 수 밖에는 없음
- 맹자의 인의 범위가 보다 명확함.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을 강조함
- 공자의 인은 실천적인 사랑(효, 충), 맹자에 이르러 체계화가 됨, 공자는 추상적 개념, 맹자는 체계적으로 그것들을 자세히 개념화함
=> 왜?: 공자랑 맹자랑 살았던 시기의 차이일 수 있음. 공자의 경우 춘추시대 말기에 살았음. 그래서 공자는 사회의 질서를 위해 인을 주장했음. 외부적인 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맹자는 전국시대라서 힘에 대한 질서가 필요했을 거 같음. 그래서 인에 있어서도 외부적 강제의 성격이 아예없는 공자의 인과는 맹자가 다를 수밖에 없음. 그래서 구체적으로 군자의 역할이나 백성의 역할에 있어서 맹자가 구체적으로 쓴 것 같음
- 맹자는 특히 정치와 관련한 인에 대한 개념을 주장하며 인의 실천을 강조. 자비로운 통치를 강조
=> 왜?: 전쟁이 끝나도 잔인한 왕이 있으면 안정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 왕이 해야 할 역할은 인정을 베푸는 것
☞ 군주는 능력보다 인성이 중요하다? 군주는 인격이 곧 능력이다? 의문이 생김
=> 참고: 법가에서는 군주는 선행을 할 필요도 덕으로 다스릴 필요도 없으며 인격적으로 감화시킬 필요도 없다고 보았음. 군주는 법, 정치술, 권세/세력을 가지고 있으면 나라는 알아서 다스려진다고 보았음
- 치국(治國)과 관련한 인에 대한 언급에서 맹자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형식의 윗사람의 역할을 보다 강조한 것으로 보임. 이 과정에서 인은 특히 전쟁을 막기 위한 인이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임
- 맹자의 인은 인한 마음을 가져라 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인한 것이 곧 문제 해결과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함
=> 현실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 자발적으로 국가 통합 위해서는 인 필요
- 맹자의 인은 공자의 인에 비해 길이가 김. 논리적인 학문으로서의 체계를 갖추고 있음
- 맹자는 공자만큼 인을 다른 개념과 같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