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제6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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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3c68ba">★ '''도의 전수과정을 부묵(副墨)의 아들(문자)←낙송(洛誦)의 손자(말)←첨명(瞻明)(직접 도를 본 사람)←섭허(聶許)(도를 바로 알아듣는 사람)←수역(需役)(도를 기르는 사람)←오구(於謳)(도를 즐기는 사람)←현명(玄冥)(깊고 어두워 알 수 없는 사람)←참료(參寥)(텅 비어 있는 도에 참여하는 사람)←의시(疑始)(시작을 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역순으로 묘사하고 있음'''</span></br> | <span style="color:#3c68ba">★ '''도의 전수과정을 부묵(副墨)의 아들(문자)←낙송(洛誦)의 손자(말)←첨명(瞻明)(직접 도를 본 사람)←섭허(聶許)(도를 바로 알아듣는 사람)←수역(需役)(도를 기르는 사람)←오구(於謳)(도를 즐기는 사람)←현명(玄冥)(깊고 어두워 알 수 없는 사람)←참료(參寥)(텅 비어 있는 도에 참여하는 사람)←의시(疑始)(시작을 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역순으로 묘사하고 있음'''</span></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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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종사> 속 좌망(坐忘)의 경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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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顔回曰(안회왈) 回(회)는 益矣(익의)로이다 | ||
+ | 仲尼曰(중니왈) 何謂也(하위야)오 | ||
+ | 曰(왈) 回(회)는 忘仁義矣(망인의의)로이다 | ||
+ | 曰(왈) 可矣(가의)나 猶未也(유미야)로다 | ||
+ | 他日(타일)에 復見(부현)하야 曰(왈) 回(회)는 益矣(익의)로이다 | ||
+ | 曰(왈) 何謂也(하위야)오 | ||
+ | 曰(왈) 回(회)는 忘禮樂矣(망예악의)로이다 | ||
+ | 曰(왈) 可矣(가의)나 猶未也(유미야)로다 | ||
+ | 他日(타일)에 復見(부현)하야 曰(왈) 回(회)는 益矣(익의)로이다 | ||
+ | 曰(왈) 何謂也(하위야)오 | ||
+ | 曰(왈) 回(회)는 坐忘矣(좌망의)로이다 | ||
+ | 仲尼(중니) 蹴然曰(축연왈) 何謂坐忘(하위좌망)고 | ||
+ | 顔回曰(안연왈) 墮枝體(휴지체)하며 黜聰明(출총명)하야 離形去知(이형거지)하야 同於大通(동어대통)할새 此謂坐忘(차위좌망)이니이다 | ||
+ | 仲尼曰(중니왈) 同則無好也(동즉무호야)요 化則無常也(화즉무상야)니 而(이)는 果其賢乎(과기현호)인저 | ||
+ | 丘也(구야)는 請從而後也(청종이후야)호리라</br> | ||
+ | '''안회(顔回)가 말했다. “저는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 ||
+ | '''중니(仲尼, 공자)가 말했다. “무슨 말이냐?”''' | ||
+ | '''안회가 말했다. “저는 인의(仁義)를 잊어버렸습니다.”''' | ||
+ | '''중니가 말했다. “좋기는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 | ||
+ | '''다른 날 다시 공자를 뵙고 말했다. “저는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 ||
+ | '''중니가 말했다. “무슨 말이냐?”''' | ||
+ | '''안회가 말했다. “저는 예악(禮樂)을 잊어버렸습니다.”''' | ||
+ | '''중니가 말했다. “좋긴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 | ||
+ | '''다른 날 다시 공자를 뵙고 말했다. “저는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 ||
+ | '''중니가 말했다. “무슨 말이냐?”''' | ||
+ | '''안회가 말했다. “저는 좌망(坐忘)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 ||
+ | '''중니가 깜짝 놀라 얼굴빛을 고치면서 말했다. “무엇을 좌망이라 하는가?”''' | ||
+ | '''안회가 말했다.''' | ||
+ | '''“사지백체(四肢百體: 팔, 다리, 온갖 신체)를 다 버리고, 귀와 눈의 감각작용을 물리치고 육체를 떠나고 지각작용을 없애서 대통(大通)의 세계와 같아졌을 때, 이것을 좌망(坐忘)이라 합니다.”''' | ||
+ | '''중니가 말했다.''' | ||
+ | '''“대통(大通)의 세계와 같아지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없게 되며, 큰 도의 변화와 함께하면 집착이 없게 되니, 너는 과연 현명하구나. 나는 청컨대 너의 뒤를 따르고자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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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통의 세계와 같아짐[同於大通(동어대통)]: 대도(大道, 위대한 도)와 일체가 된다는 뜻</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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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3일 (목) 22:54 판
<<장자>> 제6편 <대종사(大宗師)> 간략 소개
☞ 번역문 출처: 동양고전종합DB 안병주 역주
○ 대종사(大宗師)는 커다란 종사(宗師), 대종(大宗)인 스승, 크게 존숭할 스승 등으로 볼 수 있는데 모든 가르침의 으뜸이 되는 도(道)를 바로 대종사(大宗師)라고 할 수 있음
○ 중국 학자인 왕숙민(王叔岷)은 이 편은 신선사상이나 법가사상까지 뒤섞여 있어서 장자의 초기 작품이거나 장자를 배우는 무리들이 어지럽힌 점이 있는 것 같다고 보기도 했음
○ 이케다 토모히사[지전지구(池田知久)]는 '화(化: 변화)'의 사상이 많이 보이는 것을 이 편의 특징으로 꼽고 있음. 그는 “이 화(化)란 물(物)이 그 물(物)로서는 죽어서 다른 물(物)로 태어나는 전화(轉化)‧전생(轉生)이고 이것이 한없이 영겁으로 반복되는 일종의 윤회”라고 보기도 했음
<대종사>의 시작, 도를 체득한 진인(眞人)에 대한 묘사
知天之所爲(지천지소위)하며 知人之所爲者(지인지소위자) 至矣(지의)니라 知天之所爲者(지천지소위자)는 天而生也(천이생야)요 知人之所爲者(지인지소위자)는 以其知之所知(이기지지소지)로 以養其知之所不知(이양기지지소부지)하야 終其天年(종기천년)하야 而不中道夭者(이부중도요자) 是(시)는 知之盛也(지지성야)니라 ... 何謂眞人(하위진인)고 古之眞人(고지진인)은 不逆寡(불역과)하며 不雄成(불웅성)하며 不謨士(불모사)하더니 若然者(약연자)는 過而弗悔(과이불회)하며 當而不自得也(당이부자득야)하나니라 若然者(약연자)는 登高不慄(등고불율)하며 入水不濡(입수불유)하며 入火不熱(입화불열)하나니 是(시)는 知之能登假於道者也(지지능등가어도자야) 若此(약차)하니라 古之眞人(고지진인)은 其寢不夢(기침불몽)하며 其覺無憂(기각무우)하며 其食不甘(기식불감)하며 其息深深(기식심심)하니라
자연이 운행하는 이치를 알고 사람이 해야 할 바를 아는 사람은 지극한 존재이다. 자연이 운행하는 이치를 아는 사람은 자연의 도를 따라 살고, 사람이 해야 할 바를 아는 사람은 자기의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자기의 지식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길러서 천수(天壽)를 다 마쳐 중도에 요절하지 않으니 이런 사람은 앎이 성대한 사람이다. 무엇을 일러 진인(眞人)이라 하는가. 옛날의 진인은 적다고 해서 거절하지 않으며, 공(功)을 이루어도 뽐내지 아니하며, 인위적으로 일을 도모하지 않았다. 그 같은 사람은 실패하여도 후회하지 아니하며, 일이 합당하게 이루어져도 우쭐거리지 않는다. 그 같은 사람은 높은 데 올라가도 두려워 떨지 아니하고, 물 속에 들어가도 젖지 아니하며, 불 속에 들어가도 뜨겁지 아니하니, 이것은 앎이 도의 경지에 오름이 이와 같은 것이다. 옛날의 진인은 잠잘 때에는 꿈을 꾸지 않았고, 깨어 있을 때에는 근심이 없었으며, 먹을 때에는 달게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숨은 길고 길었다.
◈ 적다고 해서 거절하지 않으며[不逆寡(불역과)]: 역경이나 실패에 처해서도 그것을 거스르지 않고 주어진 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
◈ 인위적으로 일을 도모하지 않았다[不謨士(불모사)]: 모든 일을 자연에 맡긴다는 뜻
古之眞人(고지진인)은 不知說生(부지열생)하며 不知惡死(부지오사)하야 其出不訢(기출불흔)하며 其入不距(기입불거)하야 翛然而往(소연이왕)하며 翛然而來而已矣(소연이래이이의)니라 不忘其所始(불방기소시)하며 不求其所終(불구기소종)하야 受而喜之(애지희지)하며 忘而復之(망이복지)하더니 是之謂不以心捐道(시지위불이심연도)하며 不以人助天(불이인조천)이라 하나니 是之謂眞人(시지위진인)이니라 若然者(약연자)는 其心(기심)이 志(지)하며 其容(기용)이 寂(적)하며 其顙(기상)이 頯(규)하니 凄然似秋(처연사추)하고 煖然似春(훤연사춘)하야 喜怒通四時(희노통사시)하야 與物有宜(여물유의)하야 而莫知其極(이막지기극)이니라 ... 古之眞人(고지진인)은 其狀(기상)이 義而不朋(의이불명)하야 若不足而不承(약부족이불승)하며 與乎其觚而不堅也(여호기고이불견야)하며 張乎其虛而不華也(장호기허이불화야)니라 死生(사생)이 命也(명야)니 其有夜旦之常(기유야단지상)은 天也(천야)라 人之有所不得與(인지유소부득여)니 皆物之情也(개물지정야)니라
옛날의 진인(眞人)은 생(生)을 기뻐할 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몰라서, 태어남을 기뻐하지도 아니하며 죽음을 거부하지도 아니하여 홀가분하게 (세상을) 떠나며, 홀가분하게 (세상에) 태어날 따름이다. 자신의 생이 시작된 곳을 잊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나는 곳을 알려고 하지 않아서, 생명을 받아서는 그대로 기뻐하고, 생명을 잃게 되어서는 대자연으로 돌아간다. 이것을 일컬어 심지(心知: (인위적인) 마음과 앎)으로 도를 손상시키지 아니하고, 인위적인 행위로 무리하게 자연의 운행을 조장(助長)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런 사람을 일러 진인이라고 한다. 그 같은 사람은 마음이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며, 모습은 고요하며, 이마는 넓고 평평하니, 서늘함은 가을과 같고 따스함은 봄과 같아서, 희노(喜怒: 기쁨과 분노)의 감정이 사계절과 통하여 사물과 적절하게 어울려서 그 끝을 알지 못한다. ... 옛날의 진인(眞人)은, 그 모습이 높이 솟은 산처럼 당당하면서도 무너지지 아니하며, 부족한 것 같지만 남에게서 받지 않으며, 몸가짐이 법도에 꼭 맞아 태도가 단정하면서도 고집하지 않으며, 넓고 크게 마음을 비운 듯하면서도 꾸미지 않았다. 죽고 사는 것은 명이다. (죽고 사는 것에) 밤낮처럼 일정함이 있는 것은 자연인지라 사람이 관여할 수 없는 바가 있으니 이것이 사물의 참다운 모습이다.
◈ 이마는 넓고 평평하니[其顙頯(기상규)]: 넓고 평평하여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음. 진인(眞人)은 소박한 상태를 지키기 때문에 이마조차도 꾸밈(주름)이 없다는 뜻
<대종사> 속 도에 다가가는 법(수양법)
南伯子葵(남백자규) 問乎女偊曰(문호여우왈) 子之年(자지년)이 長矣(장의)로대 而色若孺子(이색약유자)는 何也(하야)오 曰(왈) 吾(오)는 聞道矣(문도의)로라 南伯子葵曰(남백자규왈) 道可得學邪(도가득학야)아 曰(왈) 惡(오)라 惡可(오가)리오 ... 吾猶守而告之(오유수이고지)하니 參日而後(삼일이후)에 能外天下(능외천하)코 已外天下矣(이외천하의)어늘 吾又守之(오우수지)호니 七日而後(칠일이후)에 能外物(능외물)코 已外物矣(이외물의)어늘 吾又守之(오우수지)호니 九日而後(구일이후)에 能外生(능외생)코 已外生矣而後(이외생의이후)에 能朝徹(능조철)하고 朝徹而後(조철이후)에 能見獨(능견독)코 見獨而後(건독이후)에 能無古今(능무고금)코 無古今而後(무고금이후)에 能入於不死不生(능입어불사불생)하니라
남백자규(南伯子葵)가 여우(女偶)에게 물었다. “당신의 나이는 상당히 많은데 안색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여우(女偶)가 말했다. “나는 道를 들었다.” 남백자규가 말했다. “도라는 것이 배워서 터득할 수 있는 것입니까?” 여우가 말했다. “아! 어찌 배울 수 있겠는가. ... “나는 그래도 차근차근히 지켜보면서 그에게 일러 주었는데, 3일이 지난 뒤에 천하를 잊어버렸고, 이미 천하를 잊어버리자 내가 또 그를 지켜보니 7일이 지난 뒤에 모든 사물(事物)을 잊어버렸고, 이미 모든 사물을 잊어버리자 내가 또 그를 지켜보니 9일이 지난 뒤에 자기의 삶을 잊어버렸고 이미 삶을 잊어버린 이후에 아침 햇살과 같은 경지에 도달하였고, 아침 햇살과 같은 경지에 도달한 이후에는 홀로 우뚝 선 도(道)를 볼 수 있었고, 홀로 우뚝 선 도를 본 뒤에는 시간의 흐름을 다 잊어버릴 수 있었고, 시간의 흐름을 잊은 이후에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경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 천하를 잊어버렸고[外天下(외천하)]: 천하를 도외시함. 천하의 어지러운 인간사를 잊어버렸다는 뜻
◈ 모든 사물을 잊어버렸고[外物(외물)]: 모든 사물(만물)을 도외시함. 외부의 모든 사물을 잊어버렸다는 뜻
◈ 삶을 잊어버렸고[外生(외생)]: 삶을 도외시함. 자기의 삶마저 잊어버렸다는 뜻. 외물(外物)에 비해 더 어려운 경지를 의미
◈ 아침 햇살[朝徹(조철)]: 아침 햇살과 같은 경지. 어둠을 꿰뚫는 아침 햇살과 같이 모든 것을 밝게 비춘다는 뜻으로 도를 깨우쳤음을 형용한 표현
◈ 홀로 우뚝 선 도(道)를 볼 수 있었고[見獨(견독)]: 홀로 우뚝 선 도를 봄. 장주는 도는 절대이기 때문에 그것과 서로 대립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음. 그 때문에 '홀로 독(獨)'이라고 한 것임. 도의 절대성 강조
◈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경지에 들어감[入於不死不生(입어불사불생)]: 도는 시공간을 초월한 것임. 생사도 초월함 것임. 즉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도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뜻
★ 남백자규와 여우의 대화에서 도는 한편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되면서도 외천하(外天下: 천하를 도외시함)→외물(外物: 모든 사물을 잊어버림)→외생(外生: 삶을 도외시함)→조철(朝徹: 도를 깨우침)→견독(見獨: 홀로 우뚝 선 도를 봄)→무고금(無古今: 시간의 흐름을 잊음)→입어불사불생(入於不死不生: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경지에 들어감)에 이르는 도의 단계별 수행과정을 말함으로써 수행을 통해 도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
<대종사> 속 도의 전수과정
曰(왈) 聞諸副墨之子(문저부묵지자)호라 副墨之子(부묵지자)는 聞諸洛誦之孫(문저낙송지손)하고 洛誦之孫(낙송지손)은 聞之瞻明(문지첨명)하고 瞻明(첨명)은 聞之聶許(문지섭허)코 聶許(섭허)는 聞之需役(문지수역)하고 需役(수역)은 聞之於謳(문지오구)하고 於謳(오구)는 聞之玄冥(문지현명)하고 玄冥(현명)은 聞之參寥(문지참료)하고 參寥(참료)는 聞之疑始(문지의시)하니라
여우(女偶)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부묵(副墨)의 아들에게서 들었다. 부묵의 아들은 그것을 낙송(洛誦)의 손자에게서 들었고, 낙송의 손자는 그것을 첨명(瞻明)에게서 들었고, 첨명은 그것을 섭허(聶許)에게서 들었고, 섭허는 그것을 수역(需役)에게서 들었고, 수역은 그것을 오구(於謳)에게서 들었고, 오구는 그것을 현명(玄冥)에게서 들었고, 현명은 그것을 참료(參寥)에게서 들었고, 참료는 그것을 의시(疑始)에게서 들었다.”
◈ 부묵(副墨): 문자를 쓰는 도구인 먹[墨]을 의인화한 표현. 부묵의 아들은 먹으로 쓰여진 문자를 지칭하며 도를 전달하는 보조수단을 상징
◈ 낙송(洛誦): 낙송(洛誦) 또한 인명이지만 여기서는 문자보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말을 의인화한 표현
◈ 첨명(瞻明): 눈으로 직접 도를 보고 분명히 안 사람이라는 뜻으로 앞의 부묵의 아들과 낙송의 손자가 도를 문자나 말 따위의 이차적인 도구를 통해 불완전하게 이해한 것이라면, 여기의 첨명은 도를 직접 보았다는 뜻으로 도에 더 가까이 다가갔음을 의미
◈ 섭허(聶許): 도를 들으면 바로 알아듣는 사람이라는 뜻
◈ 수역(需役): 기다렸다가 도를 기르는 사람이라는 뜻. 실천적인 시도를 하는 사람
◈ 오구(於謳): 도를 즐겨서 감탄하고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뜻. 밀로 부족해서 길게 노래하는 것으로 스스로 도를 얻은 것을 즐거워하는 것을 말함
◈ 현명(玄冥): 깊고 어두워서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 현(玄)과 명(冥)은 모두 깊고 어둡다는 뜻으로 도와 일체가 되어서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형용한 표현
◈ 참료(參寥): 텅 비어 있는 도에 참여하는 사람, 또는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
◈ 의시(疑始): 시작을 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 도는 스스로를 근본으로 삼기[자본자근(自本自根)] 때문에 그 시작을 추측할 수 없다는 뜻
★ 도의 전수과정을 부묵(副墨)의 아들(문자)←낙송(洛誦)의 손자(말)←첨명(瞻明)(직접 도를 본 사람)←섭허(聶許)(도를 바로 알아듣는 사람)←수역(需役)(도를 기르는 사람)←오구(於謳)(도를 즐기는 사람)←현명(玄冥)(깊고 어두워 알 수 없는 사람)←참료(參寥)(텅 비어 있는 도에 참여하는 사람)←의시(疑始)(시작을 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역순으로 묘사하고 있음
<대종사> 속 좌망(坐忘)의 경지
顔回曰(안회왈) 回(회)는 益矣(익의)로이다 仲尼曰(중니왈) 何謂也(하위야)오 曰(왈) 回(회)는 忘仁義矣(망인의의)로이다 曰(왈) 可矣(가의)나 猶未也(유미야)로다 他日(타일)에 復見(부현)하야 曰(왈) 回(회)는 益矣(익의)로이다 曰(왈) 何謂也(하위야)오 曰(왈) 回(회)는 忘禮樂矣(망예악의)로이다 曰(왈) 可矣(가의)나 猶未也(유미야)로다 他日(타일)에 復見(부현)하야 曰(왈) 回(회)는 益矣(익의)로이다 曰(왈) 何謂也(하위야)오 曰(왈) 回(회)는 坐忘矣(좌망의)로이다 仲尼(중니) 蹴然曰(축연왈) 何謂坐忘(하위좌망)고 顔回曰(안연왈) 墮枝體(휴지체)하며 黜聰明(출총명)하야 離形去知(이형거지)하야 同於大通(동어대통)할새 此謂坐忘(차위좌망)이니이다 仲尼曰(중니왈) 同則無好也(동즉무호야)요 化則無常也(화즉무상야)니 而(이)는 果其賢乎(과기현호)인저 丘也(구야)는 請從而後也(청종이후야)호리라
안회(顔回)가 말했다. “저는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중니(仲尼, 공자)가 말했다. “무슨 말이냐?” 안회가 말했다. “저는 인의(仁義)를 잊어버렸습니다.” 중니가 말했다. “좋기는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 다른 날 다시 공자를 뵙고 말했다. “저는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중니가 말했다. “무슨 말이냐?” 안회가 말했다. “저는 예악(禮樂)을 잊어버렸습니다.” 중니가 말했다. “좋긴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 다른 날 다시 공자를 뵙고 말했다. “저는 더 나아간 것 같습니다.” 중니가 말했다. “무슨 말이냐?” 안회가 말했다. “저는 좌망(坐忘)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중니가 깜짝 놀라 얼굴빛을 고치면서 말했다. “무엇을 좌망이라 하는가?” 안회가 말했다. “사지백체(四肢百體: 팔, 다리, 온갖 신체)를 다 버리고, 귀와 눈의 감각작용을 물리치고 육체를 떠나고 지각작용을 없애서 대통(大通)의 세계와 같아졌을 때, 이것을 좌망(坐忘)이라 합니다.” 중니가 말했다. “대통(大通)의 세계와 같아지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없게 되며, 큰 도의 변화와 함께하면 집착이 없게 되니, 너는 과연 현명하구나. 나는 청컨대 너의 뒤를 따르고자 한다.”
◈ 대통의 세계와 같아짐[同於大通(동어대통)]: 대도(大道, 위대한 도)와 일체가 된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