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점에서 철학으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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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나라 계평자(季平子)의 가신 남괴(南蒯)가 계평자를 배반하려 했다. 남괘가 배반하려 할 때 점을 쳐서 ‘곤(坤)’之 ‘비(比)’를 얻었는데 괘사에 ‘황상원길(黃裳元吉)’이라 하였다. 이에 그는 몹시 큰 길조(吉兆)라 여기고, 그것을 자복혜백(子服惠伯)에게 보여주며 “대사를 일으키려는데 어떻습니까?”라 물었다. 혜백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만약 충신(忠信)의 일이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忠信之事則可, 不然必敗) | ||
+ | -『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昭公) 12년」 | ||
+ | * '''점의 올바른 사용법''' | ||
+ | “너에게 큰 의문이 있거든 먼저 너의 마음에 상의하고, 다음에 경사(卿士)에게 상의하고, 다음에 서민들과 상의하고, 그 다음에야 복점과 서점에 의뢰하도록 하라.” | ||
+ | -『서경(書經)』, 「홍범(洪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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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역』 형성에 관한 견해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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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역경』의 구성체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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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양면성이 담겨 있는 음과 양''' | * '''세상의 양면성이 담겨 있는 음과 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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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역』의 8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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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상(象)</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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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비자』에 보이는 상(象)에 관한 이야기'''</br> | ||
+ | 사람들이 산 코끼리를 보기 힘들게 되자 죽은 코끼리의 뼈를 구해, 그림을 그려 산 모습을 떠올려보곤 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뜻으로 생각하는 것을 모두 '상(象)'이라 말한다. | ||
+ | -『韓非子』, 「解老」: 人希見生象也, 而得死象之骨, 案其圖以想其生也, 故諸人之所以意想者皆謂之象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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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분류: 주역]] |
2023년 8월 29일 (화) 16:53 기준 최신판
'주역(周易)' 두 글자를 통해 살펴보는 주역이라는 책의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주(周)'의 의미[편집 | 원본 편집]
1. 주역의 '주'의 의미
○ 상하사방[우(宇)]과 고금왕래[(古今往來, 과거와 현재,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 주(宙)]의 모든 것을 두루[주(周)] 통괄하고 포괄한다는 의미
○ 주나라의 주(周)
☞ 왜 주나라일까?
2. 주나라 이전, 은나라의 점문화
☞ 주역의 주나라를 살펴보기 전에 은나라, 특히 은나라 점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중국 고대 3나라
- 『예기(禮記)』「표기(表記)」에서 말한 은나라의 특징
공자가 말했다.... 은나라 사람들은 신을 높이고 백성들을 거느려서 신을 섬기며, 귀신을 먼저하고 예법을 뒤에 하고 벌을 먼저 하고 상을 뒤에 했다. 子曰... "殷人尊神, 率民以事神, 先鬼而後禮, 先罰而後賞, 尊而不親. 其民之敝, 蕩而不靜, 勝而無恥."
- 은나라의 점문화
☞ 정병석, 『점에서 철학으로』, 동과서, 2014
☞ 김충열, 『중국철학사 1: 중국철학의 원류』, 예문서원, 2006
☞질문: 이게 무슨 흔적인 것 같나요?
- 골복(骨卜)
- 동물의 뼈나 등 껍데기 등을 추출하여 깨끗이 씻어 불에 구워 그것이 파열되게 만듦. 파열하여 나타난 변화와 흔적을 징조로 삼아 길흉을 판단함
- 1930년대 중국 산동성 제남(濟南) 부근에 있는 용산 성자애(城子崖)에서 발굴된 흑도문화(黑陶文化) 유적 중 16조각의 점친 뼈를 발견함. 소의 어깨뼈, 사슴 어깨뼈 등 있었으며 구멍을 뚫고 불에 구운 흔적이 남아 있었음
- 대체로 골복이 귀복보다는 시기적으로 앞서고, 귀복은 골복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임
- 귀복(龜卜)
- 귀복은 주로 은나라 때 사용되었음
- 거북의 배 부분의 껍데기, 때로는 등껍질을 사용했음. 귀갑에 구멍을 파고 다시 불에 구운 후 껍데기의 균열 흔적에 근거하여 해석하는 것임
- 복(卜)이라는 본래 뜻은 뼈 위에 나타난 균열된 무늬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징조로 삼아 길흉을 점쳤음
- 갑골문
- 은나라의 수도였던 은허에서 발견된 문자. 은나라 왕의 가계, 제사 의식, 점복, 천문 역법과 종법 체제 등이 기록되어 있어 은나라 역사를 이해하는 데 폭넓은 자료가 되고 있음
- 한자의 원형이 되는 문자
- 거북이 배껍질, 등껍질(甲)과 짐승의 견갑골(骨)에 새겨진 문자
- 특히 점친 내용을 기록한 점복의 경우, 그 내용을 분류해 보면 제사를 점친 것, 길흉을 점친 것, 제물에 대해 점친 것, 일상사에 대해 논한 것, 어업과 수렵을 점친 것, 군사 행동을 점친 것, 농사의 작황을 점친 것, 기후를 점친 것 등이 나타나는데 은대에는 거의 모든 행동에 대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점쳐 물어 보았음을 알 수 있음
<<갑골문 내용 예시>>
기사(己巳)일에 왕이 올해 상나라에 풍년이 들지 점을 쳐 물었다. 왕이 점괘를 풀어 길하다고 말했다. 동쪽 땅에도 풍년이 들고, 남쪽 땅에도 풍년이 들고, 서쪽 땅에도 풍년이 들고, 북쪽 땅에도 풍년이 들 것이다. 己巳, 王卜, 貞今歲商受年. 王占曰吉. 東土受年, 南土受年, 西土受年, 北土受年. -『갑골문합집(甲骨文合集)』 36975
=> 점의 구조: 사람의 의지 개입이 불가능함
3. 은나라에서 주나라
- 『예기(禮記)』「표기(表記)」에서 말한 주나라의 특징
주나라 사람들은 예를 높이며 은혜를 베푸는 것을 숭상하고 귀신을 섬기고 존경하되 멀리하고 사람을 가까이해서 여기에 진심을 기울였다. 周人尊禮尙施, 事鬼敬神而遠之, 近人而忠焉.
- 주나라, ‘인간’이 중시되기 시작함
- 천명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대두되면서 ‘덕(德)’이 중시되게 됨. 천명은 덕이 있는 자에게만 내린다는 생각을 통해 통치자의 도덕성을 중시하게 만들었음
- 또한 백성에 대한 가치가 긍정되고 정치적 위상이 격상되었음. “천(天)은 백성을 통해서 보고 백성을 통해서 듣는다”(『상서』)라는 말이 그러한 생각의 대표적인 표현임
- 주역점, 은나라 점의 전승과 변용
- 『주역』의 점단사(占斷辭)[=단점지사(斷占之辭): 점을 판단해 주는 말]와 은나라 갑골 복사(卜辭)와 유사점
☞ 고힐강(顧頡剛), 『고사변(古思辨)』 3, 上海古籍出版社, 1982, 155~156쪽
'역'의 의미[편집 | 원본 편집]
○ ‘역(易)’은 상형자로 도마뱀을 본뜬 것
○ 일(日)+월(月)
- 일(日)은 해를 뜻함. 월(月)은 달을 뜻함
- 해는 양(陽), 달은 음(陰)을 나타냄
○ 역의 3가지 의미
- 변역(變易): 변하고 바뀜
- 불역(不易): 바뀌지 않음
- 이간(易簡): 쉽고 간단함
=> 만물의 변화를 음양의 원리로 풀이한 책
점과 철학 사이, 주역의 두 부분[편집 | 원본 편집]
- 주역은 원래 점치는 책이었음. 어떤 사람이 시초(점치는 데 쓰는 풀)로 점을 쳐 어떤 효나 괘를 설명한 글(효사와 괘사)은 자기가 궁금해 하는 사실을 예시해 준다고 생각했음. 이 내용을 우리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사례에 적용했음
- 역전의 저자는 점치는 책으로서의 주역의 역경 부분에 들어 있는 보편적 삶의 원리, 자연운행의 원리를 공식화 했음
- 주나라의 두 시기
⇒ 주나라는 호경(鎬京: 지금의 서안)에 수도를 두었던 서주(B.C.1046~B.C.771)와 낙읍(洛邑, 지금의 낙양)에 수도를 옮겼던 동주로 나뉨. 동주시대는 춘추(春秋) 시기(B.C.770~403)와 전국(戰國) 시기(B.C.403~221)로 나뉨. 기원전 770년, 주 평왕(平王)이 동쪽으로 천도한 후 중앙정권의 권력은 크게 약화되어 더 이상 제후들을 통제할 힘이 없었음. 제후국들이 서로 겸병하여 큰 나라들이 속출했음
- 춘추시기, 점에서 철학으로으로의 전환
막오(莫敖)가 말하였다. “그러면 왜 왕에게 군대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는가?” 투렴이 대답하길 “전투에 이기는 것은 군의 화합에 달려있지 군사가 많은 것에 달려있지 않습니다.…”막오는 또 “그러면, 점을 쳐 봅시다.” 이에 대답하기를 “卜(점)이란 의혹을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의혹이 없는데 왜 점(占卜)을 치려하십니까? 이렇게 해서 운의 군대를 포소에서 대패시키고 마침내 화평의 서약을 맺고 돌아
왔다.
-『춘추좌전(春秋左傳)』, 「환공(桓公)11년」
노나라 계평자(季平子)의 가신 남괴(南蒯)가 계평자를 배반하려 했다. 남괘가 배반하려 할 때 점을 쳐서 ‘곤(坤)’之 ‘비(比)’를 얻었는데 괘사에 ‘황상원길(黃裳元吉)’이라 하였다. 이에 그는 몹시 큰 길조(吉兆)라 여기고, 그것을 자복혜백(子服惠伯)에게 보여주며 “대사를 일으키려는데 어떻습니까?”라 물었다. 혜백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만약 충신(忠信)의 일이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忠信之事則可, 不然必敗) -『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昭公) 12년」
- 점의 올바른 사용법
“너에게 큰 의문이 있거든 먼저 너의 마음에 상의하고, 다음에 경사(卿士)에게 상의하고, 다음에 서민들과 상의하고, 그 다음에야 복점과 서점에 의뢰하도록 하라.” -『서경(書經)』, 「홍범(洪範)」
『주역』 형성에 관한 견해들[편집 | 원본 편집]
- 『주역』의 구성체계
- 『역경』의 구성체계
- 세상의 양면성이 담겨 있는 음과 양
- 『주역』의 8괘
☞ 상(象)
『한비자』에 보이는 상(象)에 관한 이야기
사람들이 산 코끼리를 보기 힘들게 되자 죽은 코끼리의 뼈를 구해, 그림을 그려 산 모습을 떠올려보곤 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뜻으로 생각하는 것을 모두 '상(象)'이라 말한다. -『韓非子』, 「解老」: 人希見生象也, 而得死象之骨, 案其圖以想其生也, 故諸人之所以意想者皆謂之象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