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단군신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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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95%84%EC%82%AC%EB%8B%AC&ridx=0&tot=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아사달을 '왕이 있는 대읍(大邑)'이라는 뜻으로 보고 평양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보았음. <<삼국유사>>에 단군왕검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고 불렀다고 했음] |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95%84%EC%82%AC%EB%8B%AC&ridx=0&tot=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아사달을 '왕이 있는 대읍(大邑)'이라는 뜻으로 보고 평양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보았음. <<삼국유사>>에 단군왕검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고 불렀다고 했음] | ||
*# [https://www.google.com/search?q=%E5%A4%A7%E6%B1%B6%E5%8F%A3&rlz=1C1CAFC_enKR879KR879&sxsrf=APq-WBsh6dP6MDNM7KxdSPp6daHbwmeALg:1646658195795&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j4-s3mh7T2AhU2zIsBHeHxAFUQ_AUoAXoECAIQAw&biw=720&bih=726&dpr=1.25 고고학적 발굴과 아사달: 아름다운 대문구문화(B.C.4300년~B.C.2200) 유물들] | *# [https://www.google.com/search?q=%E5%A4%A7%E6%B1%B6%E5%8F%A3&rlz=1C1CAFC_enKR879KR879&sxsrf=APq-WBsh6dP6MDNM7KxdSPp6daHbwmeALg:1646658195795&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j4-s3mh7T2AhU2zIsBHeHxAFUQ_AUoAXoECAIQAw&biw=720&bih=726&dpr=1.25 고고학적 발굴과 아사달: 아름다운 대문구문화(B.C.4300년~B.C.2200) 유물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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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70526/8446562/1 출처: <<동아일보>> 2007.5.26일자, 신용하 교수 제공 사진] |
2022년 3월 7일 (월) 22:34 판
<<삼국유사>> <기이>
★ 한국사데이터베이스_삼국유사 번역문을 볼 수 있는 사이트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5, 33쪽
'기이'란 기이한 것을 기록한다는 뜻이다. ... 특히 맨 첫머리에서도 드러나듯 일연의 <<삼국유사>> 찬술 의도와 서술 태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우리 개국 시조 단군의 존재를 처음으로 내세우면서 신이(神異)로움의 정당성과 비합리주의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으며 민족 자주적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국유사>> <기이>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 나라를 개창하여 조선(朝鮮)이라 했으니 고[高-요임금-]와 같은 시대이다."
- 아사달과 관련한 여러 논의들
- 고고학적 발굴과 아사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