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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곤륜산은 후대에는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더욱 부각되며 낙원으로 묘사되기도 함
 
○ 이러한 곤륜산은 후대에는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더욱 부각되며 낙원으로 묘사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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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사정기> 들여다보기 Part 3 ===
 
=== <유사정기> 들여다보기 Part 3 ===

2022년 3월 26일 (토) 21:52 판

<<목은문고>> 제1권 <유사정기(流沙亭記)>

☞ 번역문 출처: 한국고전종합DB

<유사정기(流沙亭記)> 전체 내용

 1.
 유사(流沙)는 우공(禹貢)에 그 지명이 기재되어 있으니, 성인의 명성과 교화가 그래도 미친 지역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것으로 정자의 이름을 삼기까지 하다니, 나로서는 그 뜻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옛사람들이 한가로이 노닐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에 편액(扁額)을 내걸 때에는, 으레 유명한 산수(山水)를 가탁한다든가, 혹은 대표적인 선인(善人)이나 악인(惡人)을 게시하여 권선징악의 뜻을 보인다든가, 아니면 선대(先代)와 향리(鄕里)에서 그 이름을 취하여 근본을 잊지 않는 뜻을 붙이는 것이 관례이다.
 따라서 유사(流沙)처럼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환경이 조악(粗惡)해서 중국의 인물이 배출되지 않음은 물론 배와 수레가 닿지 않는 곳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말하기조차 싫어하여 그 이름을 일컫는 것을 부끄러워할 텐데, 더구나 대서특필하여 출입문 사이에다 기재해 놓으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나의 형이 그런 이름을 붙인 이면에는 필시 범상치 않은 뜻이 들어 있으리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2. 천하는 광대한 것인 만큼 성인의 교화가 그에 비례하여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오히려 외적(外的)인 일이요, 사람의 몸이 비록 작긴 하지만 광대한 천하와 서로 함께할 수가 있으니, 이것은 우리의 내적(內的)인 일이다. 우선 외적인 일의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동쪽으로는 해가 뜨는 곳까지, 서쪽으로는 곤륜산(崑崙山)까지, 북쪽으로는 불모(不毛)의 지역까지, 남쪽으로는 눈이 내리지 않는 곳까지 성인의 교화가 다다르고 이르고 미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혼연일체가 되는 경우는 드문 반면에 분열 현상이 언제나 많이 일어나곤 하니, 내가 정말 마음속으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3. 그런데 내적인 일의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힘줄과 뼈로 묶여 있는 우리의 육신과 성정(性情)의 미묘한 작용을 보이는 우리의 몸속에, 마음이라는 것이 자리하고서 우주를 포괄한 가운데 온갖 만물과 수작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그 마음은 어떠한 위무(威武)로도 분리시킬 수가 없고, 어떠한 지력(智力)으로도 꺾을 수가 없이, 외연(巍然)히 나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거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외따로 떨어진 극지(極地)에 잠복하여 칩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가슴속의 도량(度量)으로 보면 성인의 교화를 받는 사방의 어떤 먼 곳까지도 내 마음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 형의 뜻도 사실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옛날에는 사방을 돌아다닐 뜻을 지닌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4. 신축년(1361, 공민왕10) 겨울에 병화(兵禍)를 피해서 동쪽으로 가다가 처음으로 영해부(寧海府)에 발을 딛게 되었는데, 이곳은 나의 외가(外家)인 동시에 우리 형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해로 말하면 동쪽으로 대해(大海)와 맞닿아 일본(日本)과 이웃하고 있으니, 실로 우리 동국(東國)의 극동(極東)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하겠다. 지금 내가 다행히 한 모퉁이에 이르러서 동극(東極)을 극(極)할 수 있었고 보면 다른 모든 곳도 미칠 수가 있을 것인데, 하물며 이 동극과 서로 마주하고 있는 서극(西極)의 유사(流沙)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 누대 위에서 술잔을 들고 있을 적에 나에게 기문(記文)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에, 내가 흔쾌히 이와 같이 적게 되었다. 지정(至正) 임인년(1362, 공민왕11)에 짓다.


<유사정기> 들여다보기 Part 1

유사(流沙)는 우공(禹貢)에 그 지명이 기재되어 있으니, 성인의 명성과 교화가 그래도 미친 지역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것으로 정자의 이름을 삼기까지 하다니, 나로서는 그 뜻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② 옛사람들이 한가로이 노닐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편액(扁額)을 내걸 때에는, 으레 유명한 산수(山水)를 가탁한다든가, 혹은 대표적인 선인(善人)이나 악인(惡人)을 게시하여 권선징악의 뜻을 보인다든가, 아니면 선대(先代)와 향리(鄕里)에서 그 이름을 취하여 근본을 잊지 않는 뜻을 붙이는 것이 관례이다.
 따라서 유사(流沙)처럼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환경이 조악(粗惡, 거칠고 좋지 않음)해서 중국의 인물이 배출되지 않음은 물론 배와 수레가 닿지 않는 곳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말하기조차 싫어하여 그 이름을 일컫는 것을 부끄러워할 텐데, 더구나 대서특필하여 출입문 사이에다 기재해 놓으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③ 우리 형이 그런 이름을 붙인 이면에는 필시 범상치 않은 뜻이 들어 있으리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 유사(流沙)

안대회, <한시감상: 천하의 한쪽 끝에서> (한국고전번역원 itkc.or.kr에 탑재)

○ 이 글은 목은 이색이 경상북도 영해부, 곧 현재의 울진군 평해읍에 있었던 유사정이라는 정자에 붙인 기문(記文)
울진군 평해읍 구글 지도 위치
○ 이 정자는 평해에 있는 월송정, 관어대와 더불어 고려 때부터 이름이 있는 정자였다고 함. 조선 중기까지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함. 이 정자의 이름은 '흐를 유(流)', '모래 사(沙)'의 한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대회는 아마도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백사장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았음. 바닷물에 휩쓸려 다니는 모래상을 흔히 '유사(流沙)'라고 이름하기 때문
○ 목은의 다른 시에서도 유사정이 등장함

 영해(寧海) 김좌윤(金左尹)의 서신을 받다
단양(영해의 옛날 이름)의 소식이 근래에 드물었는데 / 丹陽音耗近來稀 갑자기 건어(말린 물고기)를 얻으니 성의가 작지 않네 / 忽得乾魚意不微 어느 날에나 벼슬 그만두고 동해로 가서 / 何日乞身東海去 달밤에 물가에 앉아 낚싯줄을 드리울꼬 / 月中垂釣坐苔磯
유사정 위에서 술잔 가득 부어 마실 제 / 流沙亭上酒杯深 맑은 노래 달 가득 거문고가 기억나누나 / 記得淸歌月滿琴 전배들의 풍류를 누가 다시 이을 건고 / 前輩風流誰復繼 근래에는 구름 숲에 봉화가 마냥 비추리 / 邇來烽火照雲林
이량곡 어귀에 밤이 한창 깊어지거든 / 伊良谷口夜深天 등잔 밑 단란한 자리에 술이 끝없었는데 / 燈火團欒酒似泉 노인들이 연래에 모두 세상을 떠났는지라 / 耆舊年來盡凋喪 몇 번이나 동녘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던고 / 幾回東望一茫然

○ 목은의 아버지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영해 사람인 김택(金澤)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에 목은은 외가에서 태어났음
○ 하지만 여기에서 '유사'를 목은은 유교경전인 <<서경>> <우공>편에 나오는 '유사'로 해석했음. 여기에서는 중국 서쪽 끝에 있는 나라를 일컬음. 이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을 상징하는 것임. <<서경>>에서는 우임금의 공적이 동쪽으로는 바다가 닿은 데까지, 서쪽으로는 유사에 이르기까지 미쳤다는 말을 할 때 '유사'가 등장했음
○ 안대회는 목은이 동쪽 끝 바닷가 정자에서 오히려 서쪽 끝 유사를 떠올리고 있는 것은 천하의 중심(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원대한 꿈을 가진다면 세계의 중심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목은이 지금은 천하의 외진 변방에 살지만 언젠가는 중심에 서보겠다는 의미를 피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제시하기도 했음


  • 옛사람들이 한가로이 노닐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

- 남호현, <<한국디자인DNA 심화연구: 정자문화>>

 ☞ 질문: 이곳 어디인지 아시나요?

-사진출처: 문화유산채널

활래정.jpg

○ 우리의 정자문화에는 신선사상, 도가사상, 음양사상, 유가사상 등의 사상적 배경이 담겨 있음
○ 정자는 세속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 은거하면서 자기 수양을 하는 것을 삶의 중요한 과정으로 삼았음
○ 한국의 정자와 정원의 특징은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자연의 연장임. 정자를 주위 자연에 어울리도록 세밀하게 꾸밈으로써 인위적이지 않고, 황량한 대지 위에 어울리도록 화려하게 지어진 건축물이 아님
○ 선교장의 활래정은 연못가에 연꽃과 연잎으로 둘러싸여 있음. 연꽃은 순결하고 고상한 품격을 상징하는 것으로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는 <애련설>에서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그것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의 모습을 칭송하면서 '꽃 가운데 군자'라고 표현하기도 했음
○ 선교장의 활래정은 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선비들은 특히 시내가 흐르는 장소를 좋아했고 그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음. 나를 닦고 수양하는 일련의 생활들을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을 물의 요소에서 찾고자 했으며 물을 보면서 자기반성, 수양을 하는 도구로 삼았던 것임


  • 우리 형

○ 목은 이색(1328~1396)이 이 기문을 쓰던 때는 이 글에서 밝히고 있는이 1362년 임인년이었음.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신축년(1361년), 공민왕 10년에 홍건적이 대거 고려로 침입해 들어와서 개경까지 함락시켰음. 그 때 공민왕이 안동 지역으로 피난했는데 목은이 왕을 모시고 함께 이 지역에 왔다가 외가가 있는 영해를 방문했음(안대회)
-참고: 안동이 지리적으로, 피난처로 좋은 곳이었던 것으로 보임
-안동도호부는 고려에서 군사적 요충지로 설치된 곳이었으며 후에 점차 일반 행정 기구로 변화했음 ○ 이 글에 나오는 형은 그의 외가쪽 친척으로 그 형의 부탁으로 이 글을 짓게 됐음


<유사정기> 들여다보기 Part 2

 천하는 광대한 것인 만큼 성인의 교화가 그에 비례하여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오히려 외적(外的)인 일이요, ④ 사람의 몸이 비록 작긴 하지만 광대한 천하와 서로 함께할 수가 있으니, 이것은 우리의 내적(內的)인 일이다.
 우선 외적인 일의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동쪽으로는 해가 뜨는 곳까지, 서쪽으로는 ⑤ 곤륜산(崑崙山)까지, 북쪽으로는 불모(不毛, 아무 식물도 자라지 못하는 지역)의 지역까지, 남쪽으로는 눈이 내리지 않는 곳까지 성인의 교화가 다다르고 이르고 미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혼연일체가 되는 경우는 드문 반면에 분열 현상이 언제나 많이 일어나곤 하니, 내가 정말 마음속으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 사람의 몸이 비록 작긴 하지만 광대한 천하와 서로 함께할 수가 있으니

- 이기동, <<이색: 한국 성리학의 원천>>,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86~87쪽

○ '천인무간'을 기반으로 하는 목은의 사상에서는 하늘과 사람이 하나이고 만물과 사람이 역시 하나로 이해되는데 이는 외형적·물질적 차원이 아님. 이는 사람 안에 있는 형이상학적 존재를 통해서 가능한 것임
○ 위의 글에서 외적인 것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파악되는 물질적인 세계에서의 개념이고 내적인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정신적 세계에서 규정되는 개념임
○ 물질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한 묶음의 근육과 뼈로 이루어진 미미한 것이지만 정신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우주만물과 일체가 되는 절대적 존재가 된다는 것임
○ 목은의 사상에서 내면세계는 우주만물의 전체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참다운 가치는 모두 내면세계에서 찾아짐
○ 진정한 즐거움은 내면세계에 있다고 말했던 목은의 또다른 글

 군자는 종신(終身: 몸을 마칠 때까지, 죽을 때까지)의 즐거움이 있다. 하루아침의 즐거움은 나의 즐거움이 되지 못한다. 꼭 해야 한다는 것도 없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없다.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 부끄러움이 싹 트지 않는다면 이른바 '나'라는 것은 편안하게 그 가운데에 있다.
 ...
 벼슬은 나를 귀하게 하는 것이고, 봉록은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다.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필시 나를 궁하게 할 수도 있고, 나를 귀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나를 천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명(命)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남에게 달려 있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은문고>> 
 ☞질문: 이 글을 보면서 생각나는 시가 있지 않나요?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
- 엄국현, <윤동주 시에 나타난 유교적 기독교와 종말론>, <<한국문화논총>> 제46집, 2007
=> 부끄러움 없는 삶,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실현하라는 하늘의 명령이며, 당위적인 삶임. 그러나 지상의 인간은 잎새처럼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괴로워하며 흔들리는 존재임
=> 시적 자아는 그러나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며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고자 결단함으로써 당위와 현실 사이의 거리를 극복하고자 함
=> 윤동주의 시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 마음의 수양이란 문제임. 윤동주의 시에 명상의 모티프가 나타나는 것은 1937년 그의 나이 21세 때부터임. 일찍부터 마음을 닦는 유교적 수양론에 익숙했던 것으로 보임. 다만 유학에서는 거경(居敬)과 격물치지라는 방법을 통해 정신을 수양한다면 윤동주는 걷기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닦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체험적 수양방법이 그의 시에서 돋보인다고 할 수 있음


  • 곤륜산

○ 곤륜산은 중국 신화에서 신이 사는 곳으로 표현됨. 고대 신화책 <<산해경>>에서는 곤륜산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음

 "해내(海內)의 공륜허가 서북쪽에 있는데 천제(天帝) 하계(下界)의 도읍이다. 곤륜혀는 사방이 800리이고 높이가 만 길이다. 산 위에는 높이가 다섯 심(尋), 둘레가 다섯 아름이나 되는 목화(木禾)가 자라고 옥으로 난간을 두른 아홉 개의 우물이 있다. 앞에 아홉 개의 문이 있고 문에는 개명수라는 신이 지키고 있는 이곳은 여러 신들이 사는 곳이다."

○ 이러한 곤륜산은 후대에는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더욱 부각되며 낙원으로 묘사되기도 함


<유사정기> 들여다보기 Part 3

 그런데 내적인 일의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힘줄과 뼈로 묶여 있는 우리의 육신과 성정(性情)의 미묘한 작용을 보이는 우리의 몸속에, 마음이라는 것이 자리하고서 우주를 포괄한 가운데 온갖 만물과 수작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그 마음은 어떠한 위무(威武)로도 분리시킬 수가 없고, 어떠한 지력(智力)으로도 꺾을 수가 없이, 외연(巍然)히 나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거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외따로 떨어진 극지(極地)에 잠복하여 칩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가슴속의 도량(度量)으로 보면 성인의 교화를 받는 사방의 어떤 먼 곳까지도 내 마음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 형의 뜻도 사실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옛날에는 사방을 돌아다닐 뜻을 지닌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피곤해서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