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역 분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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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느끼는 이 분노가 잘못된 것에 대해서 순리적으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 기분,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다 싫은 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가? 혹여 이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고 있지는 않나? 타인에게 옮기는 분노는 올바른 분노가 아니다.</br> | => 우리가 느끼는 이 분노가 잘못된 것에 대해서 순리적으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 기분,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다 싫은 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가? 혹여 이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고 있지는 않나? 타인에게 옮기는 분노는 올바른 분노가 아니다.</br> | ||
=> 혈기에서 나온 분노와 합당한 이치·의로움에서 나온 분노를 구분해야 함. 전자는 있어서는 안되지만 후자는 없어서는 안될 것임</br> | => 혈기에서 나온 분노와 합당한 이치·의로움에서 나온 분노를 구분해야 함. 전자는 있어서는 안되지만 후자는 없어서는 안될 것임</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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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style="color:#ff0000;">'''그렇지만 합당하지 않다고 매번마다 분노해도 될까요?'''</span> | ☞ <span style="color:#ff0000;">'''그렇지만 합당하지 않다고 매번마다 분노해도 될까요?'''</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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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용기'''</br> | ○ '''진정한 용기'''</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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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제자 자로가 자신의 용맹함을 은근히 어필하면서 공자에게 만일 천자의 군대인 삼군(三軍)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겠냐고 물음. 그 의도를 간파한 공자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맨몸으로 황하강을 건너려고 하면서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이와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일에 임해서는 신중하고 계획하기를 좋아하여 일을 성사시키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네."라고 대답함</br> | - 공자의 제자 자로가 자신의 용맹함을 은근히 어필하면서 공자에게 만일 천자의 군대인 삼군(三軍)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겠냐고 물음. 그 의도를 간파한 공자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맨몸으로 황하강을 건너려고 하면서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이와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일에 임해서는 신중하고 계획하기를 좋아하여 일을 성사시키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네."라고 대답함</br> | ||
-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 조심성을 수반하는 것임. 그리고 상황성을 고려하는 것임. 진짜 용기를 내야 할 일이 아닌데 만용을 부리는 것은 진정한 군자의 용기가 아님 | -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 조심성을 수반하는 것임. 그리고 상황성을 고려하는 것임. 진짜 용기를 내야 할 일이 아닌데 만용을 부리는 것은 진정한 군자의 용기가 아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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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 한국철학사]] |
2022년 5월 9일 (월) 23:57 기준 최신판
<<인역>> 분노[편집 | 원본 편집]
☞ 어떤 느낌이 드나요?
- 주역의 8괘 중 진괘(震卦), 우레
○ 주역 8괘의 진괘가 중첩된 주역 64괘의 진괘에서 살펴볼 수 있는 우레의 상징
- 우레가 옴에 놀라고 두려워함
- 우레가 백리 바깥까지 놀라게 함 => 멀리 있는 사람은 놀라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게 함
=> 인간의 삶으로 가져오면 "군자가 이 진괘의 상징을 본받아서 두려워하여 몸을 닦고 돌아본다[공구수성(두려워할 공 恐, 두려워할 구 懼, 닦을 수 修, 살필 성 省)]
=> 이 진괘를 성이심은 인간의 감정 중 분노와 연결시킴
- 함양(涵養)공부
○ 외부 사물, 사람과 마주하기 전에 희노애락의 감정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상태, 평상시에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
○ 경(敬) 공부를 중시하는데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마음을 놓아버리거나 안일하게 하지 않는 것임
○ 마주하는 일마다 그 일, 사람에 마음을 온전히 집중하고 마음을 풀어놓지 않는 것
- 존양성찰
○ 존양(存養): 마음이 아직 움직이지 않았을 때 올바른 마음을 함양하는 것
○ 성찰(省察): 이미 행동으로 옮긴 뒤에 자신의 행위가 옳았는지 반성하는 것
- 일찍이 맹자가 말한 동요하지 않는 마음, 부동심(不動心)
어느날 맹자의 제자인 공손추가 맹자에게 물었다. "만일 선생님께서 강대국인 제나라의 높은 자리에 오르셔서 뜻을 펼칠 수 있게 되신다면 마음이 동요되시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아니다. 나는 40세에 (이미) 마음을 동요하지 않았다[부동심(不動心)]." ... 제자인 공손추가 맹자에게 물었다. "부동심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있다." 맹자가 말했다. ... "의지는 기(氣)의 장수이고 기는 몸에 꽉 차 있는 것이니 의지가 최고이고 기가 그 다음이다. 그래서 그 의지를 잘 잡고서 또 그 기를 포악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맹자>> <공손추 상>
☞ 하지만 문제는 우리 마음이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내 기분, 몸상태, 외부 사람에 의해 격렬하게 움직인다는 거 아닐까요?
=> 맹자도 이러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했음. 의지가 한결 같으면 기를 움직일 수 있지만 오히려 기가 한결같으면 의지를 움직이게 함. 예컨대 갑자가 넘어지거나, 달리는 사람은 기에 의해 마음을 동요하게 됨
☞ 그렇다면 기(氣)를 미리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
- 맹자의 부동심의 장점에 대해 묻는 공손추에게 맹자는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고 답함. 이 호연지기란 의리를 많이 축적해서 생겨나는 것으로 의리에서 나오는 것임. 기가 도의(道義: 사람이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도덕적 의리)에 배합되어 도의를 행하기를 용맹하고 결단성 있게 할 수 있음
- 성이심이 지적한 우리의 분노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들
☞ 성이심이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나요?
☞ 마땅히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지 않는 것도 잘못된 것 아닐까요?
○ 이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분노가 이치에 있으면 분노를 타인에게 옮기지 않는다. 반면 혈기에서 분노가 요동치면 타인에게 옮기게 된다.
=> 우리가 느끼는 이 분노가 잘못된 것에 대해서 순리적으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 기분,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다 싫은 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가? 혹여 이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고 있지는 않나? 타인에게 옮기는 분노는 올바른 분노가 아니다.
=> 혈기에서 나온 분노와 합당한 이치·의로움에서 나온 분노를 구분해야 함. 전자는 있어서는 안되지만 후자는 없어서는 안될 것임
☞ 그렇지만 합당하지 않다고 매번마다 분노해도 될까요?
○ 진정한 용기
강직할 수 없고 천명에 맡길 수 없다면 이는 분명 소인의 두려움이며 나약함이니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 하거나 맨몸으로 깊은 강을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면 성인은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 하거나 맨몸으로 깊은 강을 건너려 한다는 것은 <<논어>> <술이>에 나오는 말임
- 공자의 제자 자로가 자신의 용맹함을 은근히 어필하면서 공자에게 만일 천자의 군대인 삼군(三軍)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겠냐고 물음. 그 의도를 간파한 공자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맨몸으로 황하강을 건너려고 하면서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이와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일에 임해서는 신중하고 계획하기를 좋아하여 일을 성사시키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네."라고 대답함
-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 조심성을 수반하는 것임. 그리고 상황성을 고려하는 것임. 진짜 용기를 내야 할 일이 아닌데 만용을 부리는 것은 진정한 군자의 용기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