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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ff0000;">'''수령[원님이나 사또, 궁극적으로는 국왕]이 제 마음대로 형벌을 부과했을까?'''</span>
 
   ☞ <span style="color:#ff0000;">'''수령[원님이나 사또, 궁극적으로는 국왕]이 제 마음대로 형벌을 부과했을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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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청재판기관.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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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재우, <조선후기 수령의 법적 지위와 형벌권 행사의 실상: <<목민심서>>를 중심으로>, <<한국문화>> 91,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0, 149~175쪽</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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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령이 자체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태형은 50대로 그 이상은 원칙적으로는 관청의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처리해야 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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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다산 정약용 당시에는 이를 넘어서서 법조문을 기다리지 않고 공무수행상 필요한 강제수단으로서 수령이 자유롭게 형벌을 집행하기도 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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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령(守令)은 단지 태(笞) 50을 자단(自斷)하는 것이 허락되었을 뿐이며 신장과 곤장[刑ㆍ棍]은 쓸 수 없다. 만약 고문할 죄가 있으면 반드시 감영(監營)에 보고한 후에 행하는 것이 법의 뜻이다. 그러나 어찌 일일이 감영에 보고하고 행하겠는가? 비록 부득이 고문하더라도 고문하겠다고 감영에 보고해서는 안 된다. (중략) 만약 정배(定配: 죄인은 지방이나 섬으로 보내 일정기간동안 정해진 지역 내에서만 감시받으며 생활하게 하는 것)보낼 만한 죄가 있으면 순영(巡營)에 이송하여 조율(照律)해야지 스스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1789 거관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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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의: 알고서도 범하는 것</br>
 
- 고의: 알고서도 범하는 것</br>
 
- 과실: 뜻하지 않게 잘못을 범하는 것</br>
 
- 과실: 뜻하지 않게 잘못을 범하는 것</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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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명률>>에서 언급한 과실: "귀로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하며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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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이 부주의하거나 태만에 의해서 생겨난 경우에는 사형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풀어주고 고의로 저지른 죄는 비록 기한이 지나도 추구하여 죽여야 한다고 하면서 형사사건의 고의와 과실을 세심하게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음</br>
 
○ 사건이 부주의하거나 태만에 의해서 생겨난 경우에는 사형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풀어주고 고의로 저지른 죄는 비록 기한이 지나도 추구하여 죽여야 한다고 하면서 형사사건의 고의와 과실을 세심하게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음</br>
 
=> 다산은 살인에 있어서도 3 등급인 고의에 의한 살인, 폭행에 의한 살인, 과오에 의한 살인으로 분류했음. 또한 과실뿐만 아니라 주범과 종법, 자살과 타살의 구분, 공과 사의 구분, 정신질환 여부, 협박의 개입 여부 판단 등 판단 대상을 나누어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음</br>
 
=> 다산은 살인에 있어서도 3 등급인 고의에 의한 살인, 폭행에 의한 살인, 과오에 의한 살인으로 분류했음. 또한 과실뿐만 아니라 주범과 종법, 자살과 타살의 구분, 공과 사의 구분, 정신질환 여부, 협박의 개입 여부 판단 등 판단 대상을 나누어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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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ff0000;">'''이런 경우 나라면 어떤 판단을 했을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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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 지음, 오세진 편역, <<인간답게 산다는 것, 다산 정약용: 인간의 도리, 그리고 법과 정의에 관한 이야기>>, 홍익출판사, 2019, 83~</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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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패륜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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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문화현에 사는 배홍적인 10촌 친척 배학대와 시비가 붙었다. 배학대가 돼지를 함부로 풀어놓아서 농작물에 피해를 끼친 것이 사건의 발단으로 그러잖아도 이전에도 돼지 때문에 농작물에 피해를 준 적이 있어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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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구나 배학대는 배홍적의 사촌 형수와 몰래 간통한 적이 있어 배홍적은 이를 가문의 수치로 여겨 그에게 반감이 있었다. 결국 이 일을 거론하며 다투기 시작했고 마침내 큰 싸움이 벌어졌다. 배홍적과 그의 어머니, 이모가 함께 그를 몽둥이로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 등 폭행을 가했고 그런 와중에 느닷없이 배학대가 쓰러지더니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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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홍적의 어머니는 평소에 성질이 사납고 기운이 센 여자로 유명했는데 죽은 자의 신체를 토막내겠다는 증오심이 치밀어 쓰러진 배학대의 몸에 여러 차례 삽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렇게 악독하게 폭행을 가했지만 배학대를 사망에 이르게 한 치명상은 배홍적이 급소를 걷어찬 것이 원인으로 판명되어 주범은 배홍적으로 지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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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종범으로 지목되어 옥에 갇혀 있던 어머니가 곤장을 맞으며 조사를 받던 중에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배홍적은 죽은 어머니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며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반인륜적인 행위에 형조의 조사관과 정조 임금은 크게 분개했다. 다음은 형조에서 정조 임금에게 올린 사건 보고서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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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낳아주고 키워준 은혜를 생각하지 않은 채 죽은 어머니에게 모든 죄를 떠넘기며 오로지 빠져나가려고만 했으니 살인의 죄는 오히려 가볍고 인륜을 해친 죄가 더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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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개요: 어머니, 아들, 이모까지 뒤얽혀 피해자를 너무 잔인하게 폭행했기에 누가 주범이고 종범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우며 실제 치명상이 무엇인지 밝혀내가 어려운 상황</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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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의문의 여지가 있는 사건을 억지로 판결하는 것은 <<무원록>>에 기록된 내용대로 판결에 억울한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형법 원칙에 크게 위배되는 일임. 또한 아들과 어머니를 함께 가두었다가 어머니가 먼저 죽었는데 그 아들을 법으로 처리하면 하나의 살인 사건에 두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셈이 되는 것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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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형조의 조사관과 정조 임금은 배홍적이 어머니에게 죄를 돌리려고 한 점에 대해 인륜을 해치고 풍속을 무너뜨린 큰 죄라고 인식하면서도 살인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음. 이로써 배홍적은 사형을 면하고 유배형을 받았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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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의 견해: 배홍적이 어머니에게 모든 죄를 돌린 것은 본래 사건과는 관계없는 별도의 죄목임. 하지만 미천한 백성이 윤리도덕을 모르기에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셨으니 죄를 돌려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은 어머니가 살아 계신 경우에 죄를 돌리는 것과 큰 차이가 있으니 이를 감안해야 함</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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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에 대해 엄한 입장에 섰지만 도덕을 모르는 무지한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다소 온정적인 태도를 보였음</br>
  
  
 
[[분류: 한국철학사]]
 
[[분류: 한국철학사]]

2022년 6월 1일 (수) 15:46 기준 최신판

<<흠흠신서>> 서[편집 | 원본 편집]

동양에서는 통치자가 원한다면 마음대로 형벌을 내릴 수 있었을까?

☞ 정긍식, <대명률(大明律)의 죄형법정주의 원칙>, <<서울대학교 법학>> 49,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2008, 110~151쪽


  • 오늘날의 죄형법정주의

○ 어떤 행위가 범죄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행위 이전에 미리 성문의 법률로 규정되어 있어야 하는 원칙
○ 근대 형법의 기본원리는 법률이 없으면 범죄 없고 형벌도 없다는 것임

조선시대에는 죄형법정주의가 존재했을까?
수령[원님이나 사또, 궁극적으로는 국왕]이 제 마음대로 형벌을 부과했을까?


조선+청재판기관.png


☞ 심재우, <조선후기 수령의 법적 지위와 형벌권 행사의 실상: <<목민심서>>를 중심으로>, <<한국문화>> 91,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20, 149~175쪽

○ 수령이 자체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태형은 50대로 그 이상은 원칙적으로는 관청의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처리해야 했음
○ 하지만 다산 정약용 당시에는 이를 넘어서서 법조문을 기다리지 않고 공무수행상 필요한 강제수단으로서 수령이 자유롭게 형벌을 집행하기도 했음

 수령(守令)은 단지 태(笞) 50을 자단(自斷)하는 것이 허락되었을 뿐이며 신장과 곤장[刑ㆍ棍]은 쓸 수 없다. 만약 고문할 죄가 있으면 반드시 감영(監營)에 보고한 후에 행하는 것이 법의 뜻이다. 그러나 어찌 일일이 감영에 보고하고 행하겠는가? 비록 부득이 고문하더라도 고문하겠다고 감영에 보고해서는 안 된다. (중략) 만약 정배(定配: 죄인은 지방이나 섬으로 보내 일정기간동안 정해진 지역 내에서만 감시받으며 생활하게 하는 것)보낼 만한 죄가 있으면 순영(巡營)에 이송하여 조율(照律)해야지 스스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거관대요>>


  • 조선시대 형사법 기본원칙

○ 조선시대 형사법은 <<대명률>>이 일반적이었고 <<경국대전>> 등에 규정된 것은 특별법이었음. 형사법의 기본적이며 핵심적인 부분인 죄형법정주의와 관련된 조문은 <<대명률>>에 규정되어 있었음
○ 후에 새로운 법령들이 점차 증가하자 <<경국대전>>이 편찬되었으나 기본적으로는 <<대명률>>에 근거하여 형벌이 처리되었음
○ 중국고대의 형법은 국가권력 측에서 백생의 지배를 위한 것임. 중국에서 죄형법정주의 사상은 주나라 말, 진나라 한나라 시대에 성립했고 당나라 율법에서는 율령격식을 인용해서 처벌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선언되었음
○ 당나라 율법에서는 범죄를 처단할 때 구체적인 법조문을 인용할 것을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했으며 이는 후에 명나라, 청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음
○ 현대의 죄형법정주의는 범죄자, 나아가 개인을 국가의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주목적이라며 중국, 조선의 죄형법정주의는 개인의 보호보다는 국가에서 백성을 지배할 필요성에서 나온 것임


<<흠흠신서>> 과오로 저지른 범죄와 재차 저지른 범죄를 심리하다[편집 | 원본 편집]

  • 형벌의 기초에 관한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의 대립

☞ 한상돈, <중국 고대 형법의 주관주의 법사상>, <<경남법학>> 제18집, 경남대 법학연구소, 2003, 213~224쪽

○ 객관주의는 형벌의 목적이 정의 추구에 있다고 봄. 특히 유럽에서는 18세기 이후부터 새로운 인권사상과 이성적 사유운동의 영향으로 죄와 벌의 문제에 대해 진지한 자성을 하게 됐음. 특히 형벌의 내용과 운용에 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되었는데 전제적 요소를 제거하고 합리적으로 운용할 것을 제시했음. 형법학자들은 법제의 개혁을 시도하여 형법제도도 법제의 일부이기 때문에 마땅히 인권을 보장해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음. 죄책의 경중은 범죄의 손상 정도에 따라 정해져야 하며 객관적으로 일반대중이 죄에 타당한 벌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사회질서가 바로 잡힐 수 있다고 주장했음
○ 주관주의는 형벌은 응보가 아니기 때문에 범죄인의 반사회성을 교육을 통해 교정하는 데 있다고 봄. 주관주의가 중시하는 것은 행위자 내심(內心)의 악성임. 근대학파의 주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형법에 대해 행위자의 재범 우려가 있는 위험한 성격을 형사책임의 기초로 삼아 사회 방위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보았음


  • 중국 고대의 주관주의 사상

○ 중국 고대 형법에서 볼 수 있는 주관주의 사상에 대한 기록은 <<상서>>에 나옴. 여기에서 "생재사사, 호종적형(眚災肆赦 怙終賊刑)"임. 이를 <<흠흠신서>>에서는 "과오와 불행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자는 풀어서 사면해 주고 믿는 구석이 있어서 재차 범죄를 저지른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고 해석했음
○ 고의와 과실의 차이(진률(晉律))
- 고의: 알고서도 범하는 것
- 과실: 뜻하지 않게 잘못을 범하는 것
○ <<대명률>>에서 언급한 과실: "귀로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하며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 고의와 과실로 저지른 범죄에 관한 다산의 기본 입장

☞ 안나현, <흠흠신서를 통해 본 다산의 형벌사상>, <<안암법학>> 41, 안암법학회, 2013, 97~131쪽

○ 사건이 부주의하거나 태만에 의해서 생겨난 경우에는 사형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풀어주고 고의로 저지른 죄는 비록 기한이 지나도 추구하여 죽여야 한다고 하면서 형사사건의 고의와 과실을 세심하게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음
=> 다산은 살인에 있어서도 3 등급인 고의에 의한 살인, 폭행에 의한 살인, 과오에 의한 살인으로 분류했음. 또한 과실뿐만 아니라 주범과 종법, 자살과 타살의 구분, 공과 사의 구분, 정신질환 여부, 협박의 개입 여부 판단 등 판단 대상을 나누어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음


이런 경우 나라면 어떤 판단을 했을까?


☞ 다산 정약용 지음, 오세진 편역, <<인간답게 산다는 것, 다산 정약용: 인간의 도리, 그리고 법과 정의에 관한 이야기>>, 홍익출판사, 2019, 83~


  • 아들의 패륜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황해도 문화현에 사는 배홍적인 10촌 친척 배학대와 시비가 붙었다. 배학대가 돼지를 함부로 풀어놓아서 농작물에 피해를 끼친 것이 사건의 발단으로 그러잖아도 이전에도 돼지 때문에 농작물에 피해를 준 적이 있어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배학대는 배홍적의 사촌 형수와 몰래 간통한 적이 있어 배홍적은 이를 가문의 수치로 여겨 그에게 반감이 있었다. 결국 이 일을 거론하며 다투기 시작했고 마침내 큰 싸움이 벌어졌다. 배홍적과 그의 어머니, 이모가 함께 그를 몽둥이로 때리고 발로 걷어차는 등 폭행을 가했고 그런 와중에 느닷없이 배학대가 쓰러지더니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배홍적의 어머니는 평소에 성질이 사납고 기운이 센 여자로 유명했는데 죽은 자의 신체를 토막내겠다는 증오심이 치밀어 쓰러진 배학대의 몸에 여러 차례 삽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렇게 악독하게 폭행을 가했지만 배학대를 사망에 이르게 한 치명상은 배홍적이 급소를 걷어찬 것이 원인으로 판명되어 주범은 배홍적으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종범으로 지목되어 옥에 갇혀 있던 어머니가 곤장을 맞으며 조사를 받던 중에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배홍적은 죽은 어머니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며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반인륜적인 행위에 형조의 조사관과 정조 임금은 크게 분개했다. 다음은 형조에서 정조 임금에게 올린 사건 보고서에 실린 글이다.
 "낳아주고 키워준 은혜를 생각하지 않은 채 죽은 어머니에게 모든 죄를 떠넘기며 오로지 빠져나가려고만 했으니 살인의 죄는 오히려 가볍고 인륜을 해친 죄가 더 무겁습니다."

=> 사건 개요: 어머니, 아들, 이모까지 뒤얽혀 피해자를 너무 잔인하게 폭행했기에 누가 주범이고 종범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우며 실제 치명상이 무엇인지 밝혀내가 어려운 상황
=> 이렇게 의문의 여지가 있는 사건을 억지로 판결하는 것은 <<무원록>>에 기록된 내용대로 판결에 억울한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형법 원칙에 크게 위배되는 일임. 또한 아들과 어머니를 함께 가두었다가 어머니가 먼저 죽었는데 그 아들을 법으로 처리하면 하나의 살인 사건에 두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셈이 되는 것임
=> 따라서 형조의 조사관과 정조 임금은 배홍적이 어머니에게 죄를 돌리려고 한 점에 대해 인륜을 해치고 풍속을 무너뜨린 큰 죄라고 인식하면서도 살인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음. 이로써 배홍적은 사형을 면하고 유배형을 받았음


=> 다산의 견해: 배홍적이 어머니에게 모든 죄를 돌린 것은 본래 사건과는 관계없는 별도의 죄목임. 하지만 미천한 백성이 윤리도덕을 모르기에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셨으니 죄를 돌려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은 어머니가 살아 계신 경우에 죄를 돌리는 것과 큰 차이가 있으니 이를 감안해야 함
=> 다산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에 대해 엄한 입장에 섰지만 도덕을 모르는 무지한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다소 온정적인 태도를 보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