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실의 상권2"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 '''<<천주실의>> 제1편: "천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그것을 주재하며 안양(安養)하심을 논함" 주요 논의 전개 과정(2)''' == 일의 나타난 끝[...) |
|||
31번째 줄: | 31번째 줄: | ||
=> 리치가 덕행의 근원을 외재하는 절대 존재에서 찾는 원칙을 굽히지 않는 만큼이나 유학자들도 외재하는 권선징악의 주재자를 승인하기 어려웠음. 그 목적성을 뚜렷하게 할 경우 현실에서 작동하는 기복을 바라는 사사로운 마음의 발로가 인정되기 때문임</br> | => 리치가 덕행의 근원을 외재하는 절대 존재에서 찾는 원칙을 굽히지 않는 만큼이나 유학자들도 외재하는 권선징악의 주재자를 승인하기 어려웠음. 그 목적성을 뚜렷하게 할 경우 현실에서 작동하는 기복을 바라는 사사로운 마음의 발로가 인정되기 때문임</br> | ||
− | ○ 마테오리치가 말한 선행을 하는 사람들의 올바른 의지[정의(正意)]의 세 가지 형태 | + | ☞ <span style="color:#ff0000;">'''우리는 왜 선행을 행하는가?'''</span> |
+ | |||
+ | ○ '''마테오리치가 말한 선행을 하는 사람들의 올바른 의지[정의(正意)]의 세 가지 형태'''</br> | ||
+ | |||
+ | 1. 하급: 천당에 오르고 지옥의 고통을 면하려는 의지에 의해</br> | ||
+ | 2. 중급: 천주의 은덕을 두텁게 입은 것에 보답하려는 의지에 의해</br> | ||
+ | 3. 상급: 천주의 성스러운 뜻에 화합하여 순명[順命: 명을 따름]하려는 의지에 의해</br> | ||
+ | |||
+ | 오직 먼저 지옥의 고통으로써 겁을 주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하고 이들을 천당의 즐거움으로써 유도해야만 이들은 비로소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 ||
+ | 그러면 선을 [선 그 자체 때문에] 좋아하고 악을 [악 그 자체 때문에] 싫어하는 뜻을 이루는 데로 점차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 ||
+ | ... | ||
+ | 천당에 올라가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선[의 지향]에 두어 이미 편안하여 바뀔 수 없으며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악[의 지향]에 이미 고정시켜서 고칠 수 없습니다. | ||
+ | 우리들은 덕성[의 추구]에로 마음을 결정하여 불선한 데로 옮겨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
+ | 우리들은 인자하고 의로운 군자들을 오래도록 가까이하고 죄악에 물든 소인배들과는 영원히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br> | ||
+ | -마테오 리치 지음, 송영배 등 옮김, <<천주실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305~309쪽 | ||
+ | |||
+ | |||
+ | * '''마테오 리치의 이기론, 영혼과의 관계''' | ||
+ | |||
+ | ☞ 안종수, <마테오 리치의 이기관(理氣觀)>, <<철학논총>> 제60집, 새한철학회, 37~58쪽</br> | ||
+ | |||
+ | 군자는 도리[리(理)]를 가장 주된 것으로 봅니다. 도리가 있으면 순종하고 도리가 없으면 반대합니다. | ||
+ | |||
+ | ○ 마테오 리치(1552~1610)가 중국에 왔던 당시 중국의 명나라는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었음. 성리학에서 기독교의 인격신에 해당하는 개념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고대 경전 속에서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상제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음</br> | ||
+ | |||
+ | ○ 당시에 성리학에서는 이(理)를 세상의 본질로 보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석이 중요했음</br> | ||
+ | |||
+ | 1. 실체와 속성에 대한 구분</br> | ||
+ | |||
+ | 사물의 범주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실체가 있고 속성이 있습니다. 다른 개체에 의뢰하지 않는 사물로서 자립적인 개체로 존립할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하늘과 땅, 귀신, 사람, 새와 짐승, 초목, 쇠와 돌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실체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스스로는 설 수 없는 사물로서 다른 물체에 의탁하여 존립하는 것, 예를 들면 오상(인, 의, 예, 지, 신), 오색(청색, 황색, 적색, 백색, 흑색), 오미(단맛, 짠맛, 매운맛, 신맛, 쓴맛), 칠정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속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입니다.</br> | ||
+ | -마테오 리치 지음, 송영배 등 옮김, <<천주실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85~86쪽 | ||
+ | |||
+ | 2. 리치는 이(理)를 속성으로 보았음</br> | ||
+ | |||
+ | 중국의 문인들이나 학자들이 '이'를 따져서 말할 때에는 두 가지 경우: '이'는 마음 속에 있음, 또는 '이'는 사물 속에 있음을 말합니다. 사물의 실정이 마음 속에 있는 '이'와 합치하면 그 사물은 비로소 참으로 실재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마음 밖의] 사물 속에 있는 그 '이'들을 끝까지 파고들어가 그것을 다 알아낼 수 있으면 그것을 '사물에 나아가 인식함[격물(格物)]'이라고 합니다. | ||
+ | '이'가 마음속에 있거나 '이'가 사물 속에 있다는 말에 의거한다면 '이'는 진실로 속성입니다. 어떻게 사물의 근원이 되겠습니까?</br> | ||
+ | -마테오 리치 지음, 송영배 등 옮김, <<천주실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87~88쪽 | ||
+ | |||
+ | 3. 이(理)는 사물의 속성이기 때문에 먼저 사물이 있은 후에 존재할 수 있음. 그래서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음</br> | ||
+ | |||
+ | 4. 이(理)가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을 들어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다고 보았음</br> | ||
+ | |||
+ | =>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matter)는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그 능력은 질료 자체에 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바깥의 원인이 필요하다고 보았음. 그리고 다시 그 운동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모든 운동의 근본 원인을 찾을 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부동의 원동자'로 자신은 운동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원인임. 그리스도교의 신은 결국 이 부동의 원동자와 같다고 할 수 있음</br> | ||
+ | |||
+ | 5. 이(理)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신과 같지 않다고 보았음</br> | ||
+ | |||
+ | => 이(理)에 의지(will)가 있다면 기의 작용을 시작하게 하거나 멈추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br> | ||
+ | |||
+ | |||
+ | ○ 마테오 리치의 기(氣)에 대한 관점</br> | ||
+ | |||
+ | - 그는 성리학의 기에 대해 4원소(물, 불, 흙, 공기) 가운데 공기로 이해했음</br> | ||
+ | => 하지만 성리학에서 기를 중시하는 이들은 물질뿐만 아니라 영혼이나 정신도 모두 기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았음. 활동능력을 가진 존재는 모두 기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도 했음. 사람의 정신과 영혼도 기로 되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 소멸하게 된다고 보았음</br> | ||
+ | => 이에 대해 마테오 리치는 영혼을 기라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음. 그는 육체는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살게 하는 다른 존재가 있어야 하며 그런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정신이라 영혼이기에 육체와 같은 차원의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음</br> | ||
+ | => 리치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의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임.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떠나는 것이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았음. 영혼이 육체를 떠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육체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임. 그런데 기와 정신이 같은 것이라면 육체와 같은 것이어서 분리될 수 없게 됨</br> | ||
+ | |||
+ | |||
+ | [[분류: 중국철학사]] |
2022년 5월 25일 (수) 11:02 기준 최신판
<<천주실의>> 제1편: "천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그것을 주재하며 안양(安養)하심을 논함" 주요 논의 전개 과정(2)[편집 | 원본 편집]
일의 나타난 끝[말(末)]을 관찰하여 그 근원[본(本)]을 알 수 있으며 이미 그렇게 되어진 꼴[결과]을 보고서 그렇게 된 까닭[원인]을 [추리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세의 고생과 수고로움을 마다 않고 정신을 오롯이 하여 도를 닦아서 사후의 영원한 안락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 유교의 사서(四書: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근원과 끝[본말(本末)]
사물에는 근원과 끝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알면 도(道)에 가까운 것이다.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종시(事有終始)하니 지소선후(知所先後)면 즉근도의(則近道矣)리라.
- 마테오리치의 사후세계, 천당지옥에 관한 당시 유학자들의 반응
☞ 이경구, <서학의 개념, 사유 체계와 소통·대립 양상: 마테오 리치의 저작과 논쟁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 34, 한국사상사학회, 2010, 153~181쪽
○ 마테오리치는 인간의 영혼이 불멸하여 사후의 천당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말했음. 이러한 사후세계에 대한 마테오리치의 관점은 유학자들에게 비판받는 지점이기도 했음
○ 유학자들은 천당지옥설이 불교의 학설이라고 말했음
=> 이에 대한 리치의 응답: 천당지옥과 윤회설은 원래 서양[유대교]과 피타고라스의 이론이었고 불교는 이를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음
석가모니는 천주와 천당 지옥에 관한 뜻을 [천주교로부터] 빌려 가짐으로써 자기의 사사로운 뜻과 사특한 도리를 전했습니다. ... 석가모니가 미처 태어나기도 전에 천주교인들은 이미 그런 이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리를 닦은 사람은 내세에 반드시 천당에 올라가서 무궁한 복락을 받고 지옥에 떨어져서 끊임없는 재앙을 받는 일을 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사람의 순수한 영혼은 언제나 살아 있고 소멸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마테오 리치 지음, 송영배 등 옮김, <<천주실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122~123쪽
○ 마테오리치의 천당지옥설에 대한 유학자들의 두번째 비판은 기복과 같은 공리(功利: 다른 목적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공명과 이익)로서 사람들, 특히 일반인들을 현혹하는 이단이라는 점이었음
- 천당에 대한 관점의 차이: 중국의 관리였던 공도립(龔道立)은 인한 사람[인인(仁人)]의 본심이 바로 천당이기에 천국의 보상과 지옥의 중벌은 천리[보편적 덕성]에 근거한 본심이 심판하는 것이고 마음 밖에 외재자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음
=> 이에 대해 리치는 윤리의 가치에는 동의하면서도 덕행의 순수함은 천주에게 나온다는 점을 말하며 그 근원에 있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았음
=> 리치가 덕행의 근원을 외재하는 절대 존재에서 찾는 원칙을 굽히지 않는 만큼이나 유학자들도 외재하는 권선징악의 주재자를 승인하기 어려웠음. 그 목적성을 뚜렷하게 할 경우 현실에서 작동하는 기복을 바라는 사사로운 마음의 발로가 인정되기 때문임
☞ 우리는 왜 선행을 행하는가?
○ 마테오리치가 말한 선행을 하는 사람들의 올바른 의지[정의(正意)]의 세 가지 형태
1. 하급: 천당에 오르고 지옥의 고통을 면하려는 의지에 의해
2. 중급: 천주의 은덕을 두텁게 입은 것에 보답하려는 의지에 의해
3. 상급: 천주의 성스러운 뜻에 화합하여 순명[順命: 명을 따름]하려는 의지에 의해
오직 먼저 지옥의 고통으로써 겁을 주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하고 이들을 천당의 즐거움으로써 유도해야만 이들은 비로소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선을 [선 그 자체 때문에] 좋아하고 악을 [악 그 자체 때문에] 싫어하는 뜻을 이루는 데로 점차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 천당에 올라가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선[의 지향]에 두어 이미 편안하여 바뀔 수 없으며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악[의 지향]에 이미 고정시켜서 고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덕성[의 추구]에로 마음을 결정하여 불선한 데로 옮겨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인자하고 의로운 군자들을 오래도록 가까이하고 죄악에 물든 소인배들과는 영원히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테오 리치 지음, 송영배 등 옮김, <<천주실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305~309쪽
- 마테오 리치의 이기론, 영혼과의 관계
☞ 안종수, <마테오 리치의 이기관(理氣觀)>, <<철학논총>> 제60집, 새한철학회, 37~58쪽
군자는 도리[리(理)]를 가장 주된 것으로 봅니다. 도리가 있으면 순종하고 도리가 없으면 반대합니다.
○ 마테오 리치(1552~1610)가 중국에 왔던 당시 중국의 명나라는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었음. 성리학에서 기독교의 인격신에 해당하는 개념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고대 경전 속에서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상제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음
○ 당시에 성리학에서는 이(理)를 세상의 본질로 보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석이 중요했음
1. 실체와 속성에 대한 구분
사물의 범주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실체가 있고 속성이 있습니다. 다른 개체에 의뢰하지 않는 사물로서 자립적인 개체로 존립할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하늘과 땅, 귀신, 사람, 새와 짐승, 초목, 쇠와 돌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실체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스스로는 설 수 없는 사물로서 다른 물체에 의탁하여 존립하는 것, 예를 들면 오상(인, 의, 예, 지, 신), 오색(청색, 황색, 적색, 백색, 흑색), 오미(단맛, 짠맛, 매운맛, 신맛, 쓴맛), 칠정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속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마테오 리치 지음, 송영배 등 옮김, <<천주실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85~86쪽
2. 리치는 이(理)를 속성으로 보았음
중국의 문인들이나 학자들이 '이'를 따져서 말할 때에는 두 가지 경우: '이'는 마음 속에 있음, 또는 '이'는 사물 속에 있음을 말합니다. 사물의 실정이 마음 속에 있는 '이'와 합치하면 그 사물은 비로소 참으로 실재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마음 밖의] 사물 속에 있는 그 '이'들을 끝까지 파고들어가 그것을 다 알아낼 수 있으면 그것을 '사물에 나아가 인식함[격물(格物)]'이라고 합니다. '이'가 마음속에 있거나 '이'가 사물 속에 있다는 말에 의거한다면 '이'는 진실로 속성입니다. 어떻게 사물의 근원이 되겠습니까?
-마테오 리치 지음, 송영배 등 옮김, <<천주실의>>,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87~88쪽
3. 이(理)는 사물의 속성이기 때문에 먼저 사물이 있은 후에 존재할 수 있음. 그래서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음
4. 이(理)가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을 들어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다고 보았음
=>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matter)는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그 능력은 질료 자체에 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바깥의 원인이 필요하다고 보았음. 그리고 다시 그 운동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모든 운동의 근본 원인을 찾을 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부동의 원동자'로 자신은 운동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원인임. 그리스도교의 신은 결국 이 부동의 원동자와 같다고 할 수 있음
5. 이(理)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신과 같지 않다고 보았음
=> 이(理)에 의지(will)가 있다면 기의 작용을 시작하게 하거나 멈추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
○ 마테오 리치의 기(氣)에 대한 관점
- 그는 성리학의 기에 대해 4원소(물, 불, 흙, 공기) 가운데 공기로 이해했음
=> 하지만 성리학에서 기를 중시하는 이들은 물질뿐만 아니라 영혼이나 정신도 모두 기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았음. 활동능력을 가진 존재는 모두 기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도 했음. 사람의 정신과 영혼도 기로 되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 소멸하게 된다고 보았음
=> 이에 대해 마테오 리치는 영혼을 기라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음. 그는 육체는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살게 하는 다른 존재가 있어야 하며 그런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정신이라 영혼이기에 육체와 같은 차원의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음
=> 리치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의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임.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떠나는 것이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았음. 영혼이 육체를 떠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육체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임. 그런데 기와 정신이 같은 것이라면 육체와 같은 것이어서 분리될 수 없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