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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 '''사물을 보는 방법 열 가지: 역물십사''' == ☞ <span style="color:#ff0000;">'''그런 경험 해본 적 있나요? 어릴 때 아빠가 엄청 크다고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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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ff0000;">'''이럴 때 우리는 크다, 작다라고 하는 게 절대적인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span>
 
   ☞ <span style="color:#ff0000;">'''이럴 때 우리는 크다, 작다라고 하는 게 절대적인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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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ff0000;">'''하지만 우리는 이 크다, 작다라는 말에 갇혀 자칫 우리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쓰는 개념, 언어의 진상이 무엇인지 때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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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시기의 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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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가로 분류되는 학파들은 상시고가 다른 명제들을 제시하면서 개념, 명(名)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했음. 이들은 다시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될 수 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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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혜시로 대표되는 입장: '명'의 상대성을 부각시켜 언어적 분별의 덧없음을 주장함</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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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손룡으로 대변되는 입장: '명'의 독립성과 본질에 주목함. 그는 개념(명)과 실상(실)의 관계가 일탈되고 혼란되어 있는 상태를 크게 문제시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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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시의 사물을 보는 방법 열 가지: 역물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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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극히 커서 밖이 없는 것을 가장 큰 것이라고 하고, 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것을 가장 작은 것이라고 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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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 <추수>편에는 항상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자부하던 황하의 물귀신이 황하가 홍수로 넘치는 바람에 바다로 떠밀려 내려가서 바다의 신을 만나는 얘기가 나옴. 처음으로 자기보다 큰 것을 만나서 놀라는 황하의 신에게 바다의 신은 자기도 천지와 비교하면 커다란 창고에 들어 있는 곡식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함</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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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언제나 자기 경험의 범주에만 머물러 있기 쉬움. 그래서 경험상 자기가 본 가장 큰 것을 크다고 하고 가장 작은 것을 작다고 함. 하지만 이런 개념은 모두 상대적일 뿐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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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큰 것은 밖이 없는 것이며 정말 작은 것은 안이 없는 것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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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지만 그 크기는 천 리가 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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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께와 넓이는 다른 개념임. 지극히 얇아 두께가 없어짐에 이른 것이 기하학의 면(面) 개념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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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 자체가 어떨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함. 하지만 두께와 넓이가 상관 없는 다른 개념이듯이 겉모습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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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늘과 땅은 높이가 똑같고 산과 연못은 똑같이 평평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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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 하늘보다 더 높은 것과 비교하면 하늘도 낮은 부류에 속함</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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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의 위치에서 보면 세상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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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쪽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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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이라고 하면 그 연장선의 끝은 무한히 계속될 것임. 방향을 지칭하는 남쪽은 끝이 없지만 남쪽이라는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경우는 끝이 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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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일상에서 아무런 기준도 없이 바람직한 사람, 바람직한 세상을 말하기도 함. 그러나 어떤 기준을 가지고 말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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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ff0000;">'''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나요? 근데 그 규정이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요? 그 기준은 절대적인 건가요?'''</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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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가를 안다.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이 바로 그곳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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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나라는 중국 북쪽에 있던 나라이고 월나라는 남쪽에 있던 나라임. 그러므로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은 서로 다른 방향이어서 겹치지 않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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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명제대로라면 중심이 없다는 말이 됨. 더 비약하면 어디든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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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함. 그래서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생기고 다툼이 일어날 수 있음. 그러나 자기만 중심이 아님. 모든 사람이 누구나 자기 삶의 중심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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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늘 월나라에 가서 어제 돌아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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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제, 오늘의 구분은 무의미함</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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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에서 보면 오늘은 내일이 되지만 내일의 시점에서 보면 어제가 됨. 우주의 역사에서 보면 몇 만 년도 잠깐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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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존재함. 문장으로 성립하지만 실제로는 있을 수 없음(안병주)</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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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와 오늘이라는 말에는 비록 일정한 기준이 없을지라도 한 논변 안에서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야 함. “어제 도착했다”의 어제가 어제였다고 하더라도 “오늘 월나라에 가서”의 ‘오늘’에 대한 ‘어제’는 아님.(풍우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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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해가 막 하늘 가운데 뜬 상태는 막 지는 상태이며 어떤 존재가 막 태어났다는 것은 막 죽어 가는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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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성 원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관찰자의 위치임.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 보임. 이제 겨우 다섯 개 남았다는 말과 아직도 다섯 개나 남았다는 말은 내용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음. 하지만 보는 사람의 시각에서는 큰 차이가 남</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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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면만 보고 사는 사람들을 향한 비판</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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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많이 같은 것과 조금 같은 것은 다르다. 이것을 조금 같거나 조금 다른 것이라고 한다. 만물은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같지만 또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을 크게 같거나 크게 다른 것이라고 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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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꽃잔디.jpg|500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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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ff0000;">'''가끔 이런 꽃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꽃들은 같을까, 다를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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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다, 다르다는 동전의 양면인 셈임.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같아지기도 하고 달라지고다 함</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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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멩이들조차도 같은 돌멩이는 하나도 없음. 전체를 강조하면 개인은 아무 의미가 없음. 반대로 개인을 강조하면 개인을 침해하는 전체가 부정되어야 함</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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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 <덕충부>: "다른 것을 기준으로 보면 간과 쓸개도 그 차이가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멀고, 같은 것을 기준으로 보면 만물이 모두 하나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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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둥근 고리는 풀 수 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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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근 고리 그 자체는 현실에 놓여 있더라도 그에 앞서 부수면 안 된다는 머릿속의 고정된 생각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음. 나무를 쪼개서 책상을 만든다고 할 때 나무에서 보면 부수는 것이지만 책상에서 보면 만들어내는 것임. 부순다와 만든다, 푼다와 이어져 있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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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만물을 사랑하라. 온 세상이 한몸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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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제들의 결론.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차별성이 부정되어야 함</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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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물을 차별없이 두루 사랑하다보면 천지와 한 몸처럼 될 수 있음(김철신)</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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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ff0000;">'''그런데 왜 혜시는 이런 얘기를 했을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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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상식이라 믿는 것들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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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ff0000;">'''내가 상식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그런데 그게 진짜 절대적인 상식일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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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자의 혜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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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신, <순자의 혜시 비판 고찰>, <<철학논집>> 제24집, 2011, 61~82쪽</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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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자의 입장에 의하면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같음과 다름을 결정할 경우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고 보았음. 그것은 같은 유(類)에 한해서만 비교해야 한다는 것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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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류가 같지 않은데 비교하다 보면 나무와 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긴가, 지혜와 곡식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많은가 하는 등의 비교가 발생할 소지가 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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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의 '길다'는 뿌리에서 그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잎사귀까지의 길이가 길다는 것이고 밤의 '길다'는 어둠의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에서의 '길다'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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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이 둘이 모두 '길다'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질지라도 그 '길다'의 척도는 서로 다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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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곡식의 많음은 저울로 잴 수 있는 유형한 많음인 반면 지혜가 많음은 저울로 잴 수 없는 무형한 많음이니 이 역시 많음의 척도가 서로 다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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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비교의 대상들이 서로 종류가 같으지 갖지 않은지를 살핀 뒤 종류가 같은 경우에 한해서만 그것들 사이의 같음과 다름을 결정할 수 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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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순자는 인간이 귀, 눈, 입, 귀, 몸의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같은 감각기관으로 서로 같은 종류에 속한 사물들에 대해 서로 같은 감각이나 인상을 얻게 됨. 또한 마음을 통해 같은 종류의 대상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인식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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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대상의 같음과 다름이 인식되고 결정되면 같은 유형이나 범주에 속하는 것에는 반드시 같은 이름을 쓰고 반대로 다른 유형이나 범주에 속하는 것에는 반드시 다른 이름을 써야 한다고 보았음. 그리고 이는 사회적 약속이라고 보았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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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은 본래 고정된 것이 없고 약정하여 이름 붙여진다. 약정하여 사회에서 공인되면 이를 일컬어 마땅하다고 하고, 약속과 다르면 이를 일컬어 마땅하지 않다고 한다. 이름에는 본래 고정된 실(實, 실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나 약속하여 그 실에 이름이 붙여지고 약정하여 사회에서 공인되면 그것을 실명(實名)이라고 한다." -<<순자>> <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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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가 지닌 사회성에 대해 혜시가 망각했다고 보았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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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시는 "하늘과 땅은 높이가 똑같고 산과 연못은 똑같이 평평하다."라고 했는데 이는 일종의 평등주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음. 수직적이고 등급적인 관계에 의해 마련된 질서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를 제시하고 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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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순자는 기존의 등급 질서가 붕괴됨으로써 야기된 현실의 급격한 혼란을 평등적인 질서의 마련을 통해 돌파하려는 혜시 식의 처방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내비침</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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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자는 등급 질서의 확립이 사회적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특효약이라고 보았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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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각자 자기의 견해를 알려주려고 하지만 서로 다른 사물들의 명과 실이 같지 않은데도 함께 섞여 있게 되면 귀와 천이 분간되지 못하고 같음과 다름이 구별되지 못한다. ... 그러므로 성왕은 분별하고 명칭을 제정하여 사실을 지시하니 위로는 귀와 천이 밝혀지고 아래로는 같음과 다름이 변별된다." -<<순자>> <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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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ff0000;">'''순자의 생각에 동의하나요?'''</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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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동양철학개설]]

2022년 5월 31일 (화) 14:46 기준 최신판

사물을 보는 방법 열 가지: 역물십사[편집 | 원본 편집]

그런 경험 해본 적 있나요? 어릴 때 아빠가 엄청 크다고 생각했는데

내옆의아빠.png

☞ 그림 출처: [동화책 <<내 옆의 아빠>> (수쉬 지음, 위문숙 번역) http://mobile.picturebook-museum.com/artist_book.asp?b_code=18931]

어느날 나이가 들어보니 아빠가 갑자가 엄청 작아 보이는 순간

아버지뒷모습.jpg

☞ 그림 출처: 박순철 화백의 <아버지 뒷모습>

엄청 큰 상처라고 생각했는데 친구한테 이야기하고 보니, 마음에서 털어내고 보니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았던 상처
이럴 때 우리는 크다, 작다라고 하는 게 절대적인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크다, 작다라는 말에 갇혀 자칫 우리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쓰는 개념, 언어의 진상이 무엇인지 때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전국시기의 명가

○ 명가로 분류되는 학파들은 상시고가 다른 명제들을 제시하면서 개념, 명(名)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했음. 이들은 다시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될 수 있음
1. 혜시로 대표되는 입장: '명'의 상대성을 부각시켜 언어적 분별의 덧없음을 주장함
2. 공손룡으로 대변되는 입장: '명'의 독립성과 본질에 주목함. 그는 개념(명)과 실상(실)의 관계가 일탈되고 혼란되어 있는 상태를 크게 문제시했음


  • 혜시의 사물을 보는 방법 열 가지: 역물십사

1. 지극히 커서 밖이 없는 것을 가장 큰 것이라고 하고, 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것을 가장 작은 것이라고 한다.

=> <<장자>> <추수>편에는 항상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자부하던 황하의 물귀신이 황하가 홍수로 넘치는 바람에 바다로 떠밀려 내려가서 바다의 신을 만나는 얘기가 나옴. 처음으로 자기보다 큰 것을 만나서 놀라는 황하의 신에게 바다의 신은 자기도 천지와 비교하면 커다란 창고에 들어 있는 곡식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함
=> 사람은 언제나 자기 경험의 범주에만 머물러 있기 쉬움. 그래서 경험상 자기가 본 가장 큰 것을 크다고 하고 가장 작은 것을 작다고 함. 하지만 이런 개념은 모두 상대적일 뿐임
=> 정말 큰 것은 밖이 없는 것이며 정말 작은 것은 안이 없는 것임


2.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지만 그 크기는 천 리가 된다.

=> 두께와 넓이는 다른 개념임. 지극히 얇아 두께가 없어짐에 이른 것이 기하학의 면(面) 개념임
=>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 자체가 어떨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함. 하지만 두께와 넓이가 상관 없는 다른 개념이듯이 겉모습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음


3. 하늘과 땅은 높이가 똑같고 산과 연못은 똑같이 평평하다.

=> 높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 하늘보다 더 높은 것과 비교하면 하늘도 낮은 부류에 속함
=> 절대의 위치에서 보면 세상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


4. 남쪽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

=> 남쪽이라고 하면 그 연장선의 끝은 무한히 계속될 것임. 방향을 지칭하는 남쪽은 끝이 없지만 남쪽이라는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경우는 끝이 있음
=> 우리는 일상에서 아무런 기준도 없이 바람직한 사람, 바람직한 세상을 말하기도 함. 그러나 어떤 기준을 가지고 말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나요? 근데 그 규정이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요? 그 기준은 절대적인 건가요?


5. 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가를 안다.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이 바로 그곳이다.

=> 연나라는 중국 북쪽에 있던 나라이고 월나라는 남쪽에 있던 나라임. 그러므로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은 서로 다른 방향이어서 겹치지 않음
=> 이 명제대로라면 중심이 없다는 말이 됨. 더 비약하면 어디든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임
=>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함. 그래서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생기고 다툼이 일어날 수 있음. 그러나 자기만 중심이 아님. 모든 사람이 누구나 자기 삶의 중심임


6. 오늘 월나라에 가서 어제 돌아왔다.

=> 영원한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제, 오늘의 구분은 무의미함
=> 어제에서 보면 오늘은 내일이 되지만 내일의 시점에서 보면 어제가 됨. 우주의 역사에서 보면 몇 만 년도 잠깐임
=>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존재함. 문장으로 성립하지만 실제로는 있을 수 없음(안병주)
=> 어제와 오늘이라는 말에는 비록 일정한 기준이 없을지라도 한 논변 안에서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야 함. “어제 도착했다”의 어제가 어제였다고 하더라도 “오늘 월나라에 가서”의 ‘오늘’에 대한 ‘어제’는 아님.(풍우란)


7. 해가 막 하늘 가운데 뜬 상태는 막 지는 상태이며 어떤 존재가 막 태어났다는 것은 막 죽어 가는 것이다.
=> 상대성 원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관찰자의 위치임.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 보임. 이제 겨우 다섯 개 남았다는 말과 아직도 다섯 개나 남았다는 말은 내용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음. 하지만 보는 사람의 시각에서는 큰 차이가 남
=> 한 면만 보고 사는 사람들을 향한 비판


8. 많이 같은 것과 조금 같은 것은 다르다. 이것을 조금 같거나 조금 다른 것이라고 한다. 만물은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같지만 또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을 크게 같거나 크게 다른 것이라고 한다.

꽃잔디.jpg

가끔 이런 꽃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꽃들은 같을까, 다를까?

=> 같다, 다르다는 동전의 양면인 셈임.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같아지기도 하고 달라지고다 함
=> 돌멩이들조차도 같은 돌멩이는 하나도 없음. 전체를 강조하면 개인은 아무 의미가 없음. 반대로 개인을 강조하면 개인을 침해하는 전체가 부정되어야 함
=> <<장자>> <덕충부>: "다른 것을 기준으로 보면 간과 쓸개도 그 차이가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멀고, 같은 것을 기준으로 보면 만물이 모두 하나다."


9. 둥근 고리는 풀 수 있다.

=> 둥근 고리 그 자체는 현실에 놓여 있더라도 그에 앞서 부수면 안 된다는 머릿속의 고정된 생각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음. 나무를 쪼개서 책상을 만든다고 할 때 나무에서 보면 부수는 것이지만 책상에서 보면 만들어내는 것임. 부순다와 만든다, 푼다와 이어져 있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임


10. 만물을 사랑하라. 온 세상이 한몸이다.

=> 명제들의 결론.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차별성이 부정되어야 함
=> 만물을 차별없이 두루 사랑하다보면 천지와 한 몸처럼 될 수 있음(김철신)


그런데 왜 혜시는 이런 얘기를 했을까?


=> 우리가 상식이라 믿는 것들에 대한 비판


내가 상식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그런데 그게 진짜 절대적인 상식일까?


  • 순자의 혜시 비판

☞ 김철신, <순자의 혜시 비판 고찰>, <<철학논집>> 제24집, 2011, 61~82쪽

○ 순자의 입장에 의하면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같음과 다름을 결정할 경우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고 보았음. 그것은 같은 유(類)에 한해서만 비교해야 한다는 것임
=> 종류가 같지 않은데 비교하다 보면 나무와 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긴가, 지혜와 곡식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많은가 하는 등의 비교가 발생할 소지가 있음
=> 나무의 '길다'는 뿌리에서 그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잎사귀까지의 길이가 길다는 것이고 밤의 '길다'는 어둠의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에서의 '길다'임
=> 그러므로 이 둘이 모두 '길다'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질지라도 그 '길다'의 척도는 서로 다름
=> 또한 곡식의 많음은 저울로 잴 수 있는 유형한 많음인 반면 지혜가 많음은 저울로 잴 수 없는 무형한 많음이니 이 역시 많음의 척도가 서로 다름
=> 따라서 비교의 대상들이 서로 종류가 같으지 갖지 않은지를 살핀 뒤 종류가 같은 경우에 한해서만 그것들 사이의 같음과 다름을 결정할 수 있음

○ 또한 순자는 인간이 귀, 눈, 입, 귀, 몸의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같은 감각기관으로 서로 같은 종류에 속한 사물들에 대해 서로 같은 감각이나 인상을 얻게 됨. 또한 마음을 통해 같은 종류의 대상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인식할 수 있음

○ 따라서 대상의 같음과 다름이 인식되고 결정되면 같은 유형이나 범주에 속하는 것에는 반드시 같은 이름을 쓰고 반대로 다른 유형이나 범주에 속하는 것에는 반드시 다른 이름을 써야 한다고 보았음. 그리고 이는 사회적 약속이라고 보았음

 "이름은 본래 고정된 것이 없고 약정하여 이름 붙여진다. 약정하여 사회에서 공인되면 이를 일컬어 마땅하다고 하고, 약속과 다르면 이를 일컬어 마땅하지 않다고 한다. 이름에는 본래 고정된 실(實, 실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나 약속하여 그 실에 이름이 붙여지고 약정하여 사회에서 공인되면 그것을 실명(實名)이라고 한다." -<<순자>> <정명>

=> 언어가 지닌 사회성에 대해 혜시가 망각했다고 보았음

○ 혜시는 "하늘과 땅은 높이가 똑같고 산과 연못은 똑같이 평평하다."라고 했는데 이는 일종의 평등주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음. 수직적이고 등급적인 관계에 의해 마련된 질서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를 제시하고 있음
=> 하지만 순자는 기존의 등급 질서가 붕괴됨으로써 야기된 현실의 급격한 혼란을 평등적인 질서의 마련을 통해 돌파하려는 혜시 식의 처방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내비침
=> 순자는 등급 질서의 확립이 사회적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특효약이라고 보았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각자 자기의 견해를 알려주려고 하지만 서로 다른 사물들의 명과 실이 같지 않은데도 함께 섞여 있게 되면 귀와 천이 분간되지 못하고 같음과 다름이 구별되지 못한다. ... 그러므로 성왕은 분별하고 명칭을 제정하여 사실을 지시하니 위로는 귀와 천이 밝혀지고 아래로는 같음과 다름이 변별된다." -<<순자>> <정명>
순자의 생각에 동의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