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록 남시보에게 답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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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의 문집인 <<퇴계전서>>에는 남언경에게 보낸 편지가 9통 실려 있음</br>
 
○ 퇴계의 문집인 <<퇴계전서>>에는 남언경에게 보낸 편지가 9통 실려 있음</br>
 
○ 퇴계 이황, 율곡 이이와도 교류했으며, 한국 유학자로서는 드물게 양명학에 관심을 가졌음</br>
 
○ 퇴계 이황, 율곡 이이와도 교류했으며, 한국 유학자로서는 드물게 양명학에 관심을 가졌음</br>
이 편지를 주고받던 때는 1550년대로(1558년) 퇴계는 30살 정도 차이나는 남시보와도 자유롭게 토론할 정도로 나이차를 가리지 않고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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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는 30살 정도 차이나는 남시보와도 자유롭게 토론할 정도로 나이차를 가리지 않고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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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으니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나에게도 역시 이러한 한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포부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지만 나의 경우는 나의 헛됨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퇴계집>> 권11 '이중구에게 답함'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으니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나에게도 역시 이러한 한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포부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지만 나의 경우는 나의 헛됨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퇴계집>> 권11 '이중구에게 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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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왜 공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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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 <span style="color:#ff0000;">'''뭘 공부하고 있나요? 왜 공부하나요? 평생 공부한다면 그 공부의 대상이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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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대의 퇴계는 여전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공부했다. 대체 뭘 공부한 걸까? 평생 해야 할 공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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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선영, 정성식, 황광욱, <<한국철학, 화두로 읽는다>, 동녘, 1999</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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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의 앎의 대상: 인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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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어떤 원리로 태어나는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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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만물은 무엇때문에 구별되는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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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것이 가장 인간다운 것인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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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다울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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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이 이 같은 의문을 해석하고 해결하는 기반은 성리학이었음. 학문만이 아니라 나라의 건국 이념 자체가 성리학이었던 조선시대 당시 이황에게 성리학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성리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고 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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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 <span style="color:#ff0000;">'''제대로 배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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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1501~1570)의 최고의 스승, 주희(朱熹, 113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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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스스로를 확신하지 말고 선생을 믿으라고 옛 사람이 말하지 않았는가. 주자(주희)는 내가 스승으로 삼는 분이며 또한 천하에 예나 지금이나 으뜸 스승으로 사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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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리학은 고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 분야의 넓이가 끝이 없으며 역사의 길이도 만만치 않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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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성리학에 관련된 인물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그 이론의 갈래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이나 주장을 할 수도 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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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는 여러 성리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도 주희를 스승으로 삼아 주희의 이론에 충실하려고 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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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희 성리학을 통해 발견한 퇴계의 인간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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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리학은 '심성의리지학(心性義理之學)'의 줄임말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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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心): 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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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性): 본성</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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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義): 옳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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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理): 이치</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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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마음,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 우주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고 보았음.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 만물의 일부이고 자연, 만물은 이(理)와 기(氣)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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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마음과 본성이 어떻게 구성되었느냐[심성론]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리]의 문제로 연결된다고 보았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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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만물을 설명하는 틀: 이(理)와 기(氣)</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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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理): 원리, 도리, 형이상</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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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氣): 현실 세계의 물질적 재료, 도구, 형이하</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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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설명하는 틀: 역시 이(理)와 기(氣)</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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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理): 하늘이 부여한 본성, 공정하고 바름. 공정하고 바른 마음이 이 리(理)에서 나오며 이를 진리의 마음이라는 뜻으로 도심(道心)으로 불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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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氣): 자신의 육체에 기인한 본성, 사사로운 욕망이 끼기 때문에 악으로 흐를 수 있어서 인심(人心)이라고 불렀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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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가 평생 하고자 했던 공부는 바로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잘 닦아갈까 하는 마음 공부라고 할 수 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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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 <span style="color:#ff0000;">'''근데 왜 욕망이 문제일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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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지니는 욕망 그 자체가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그 욕망이 한 개인이나 작은 집단을 위한 것일 때는 대다수의 다른 사람을 짓밟고 빼앗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임. 특히 퇴계가 살던 시대는 사회정치적으로 이러한 소수 집단의 욕망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핍박받던 시대였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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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의 현실 인식이 담긴 이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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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교빈,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2009</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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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가 살던 조선 중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때였음. 무오, 갑자, 기묘, 을사 등 4대 사화가 모두 이 무렵에 일어났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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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화는 사림 세력과 훈구 세력의 대립이었음. 사림파는 국가와 사회를 걱정하는 양심적인 지식인들이었으며 훈구파는 임금 주변에 빌붙어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기성 관료들이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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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림파의 맥은 정몽주(고려말, 조선초), 길재(고려말, 조선초),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등의 인물이었음. 예컨대 김종직의 제자였던 김굉필(1454~1504)은 무오사화 때 귀양 갔다가 갑자사화 때 사약을 받았으며, 김굉필의 제자였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1606 조광조(1482~1520)] 역시 기묘사화 때 유배되어 죽임을 당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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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사화 때(1545) 퇴계 자신도 정치적 모략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났고 그의 형은 곤장을 맞고 귀양을 가다가 매 맞은 후유증으로 도중에 죽고 말았음. 퇴계의 철학 속에는 이러한 시대를 살아간 사림파들의 실천적 삶을 설명하는 논리가 담겨 있는 것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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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 <span style="color:#ff0000;">'''근데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원래 욕망에 가득찬 존재이지 않을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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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가 지키고자 했던 도덕 원리로서의 이(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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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 <span style="color:#ff0000;">'''만일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신념, 원칙, 철학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요?'''</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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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의 철학에서 이(理)는 모든 존재의 존재 원리인 동시에 도덕 원리임. 그리고 이 도덕 원리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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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理)가 도덕원리인 까닭은 절대 불변의 존재로서 선의 원리이기 때문임. 그러나 기(氣)는 이와 달리 변화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선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악으로 나타날 수도 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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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는 이(理)를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보았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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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 <span style="color:#ff0000;">'''그런데 이치라는 거 보이지도 않고 알기도 어렵고 그런 거 아닌가?'''</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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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뿐이지, 퇴계는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며 우리 마음만 맑게 할 수 있다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음. 순수한 마음을 유지해갈 수 있다면 이 도덕원리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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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 <span style="color:#ff0000;">'''왜 퇴계는 이렇게까지 이(理)를 중시한 것일까?'''</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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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는 어떻게 하면 한 인간이, 한 사회가, 한 임금이 개인적 욕망을 억누르고 오로지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졌음. 그리고 개인적인 욕망이 삶의 추동력이 되는 사람과 도덕적 인간이 되려는 것이 삶의 근원적 힘인 사람을 가치적으로 엄격히 구분하려고 했음. 마치 썩은 정치 세력이 순수한 사림들과 섞일 수 없다는 보는 것처럼, 그 순수함이 물들지 않도록 잘 지켜가려는 것처럼</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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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 이(理)는 그저 관념적이고 이론적인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 가야 하는 것임. 그리고 퇴계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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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평, "이 도리는 일상생활에서 익혀야 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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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송나라의 이동(李侗, 1093~1163)</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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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의 도는 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마음을 고요하게 한 가운데 희로애락의 감정이 발동되어 이에 휘둘리기 전에 감지되는 순수한 천리(天理: 하늘의 이치) 그대로를 체득하고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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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어렵고, 고원한 이야기를 하는 철학자로 보이더라도 만일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자신이 말한 대로, 자신의 이론대로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실천적인 철학은 없지 않을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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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한국철학사]]

2022년 4월 14일 (목) 00:32 기준 최신판

-이황 지음, 최중석 옮김, <<이퇴계의 자성록>>, 국학자료원, 2003, 51쪽

자성록 남시보.jpg


○ 남시보는 그의 자(字)이고 이름은 남언경(南彦經)임
○ 퇴계의 문집인 <<퇴계전서>>에는 남언경에게 보낸 편지가 9통 실려 있음
○ 퇴계 이황, 율곡 이이와도 교류했으며, 한국 유학자로서는 드물게 양명학에 관심을 가졌음
○ 퇴계는 30살 정도 차이나는 남시보와도 자유롭게 토론할 정도로 나이차를 가리지 않고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했음


 ☞질문: 어떻게 이렇게 열린 토론, 열린 공부가 가능했을까?


  • 퇴계 이황의 진정한 공부, 나를 수양하기 위한 공부인 위기지학(爲己之學)

유학의 두 가지 공부
-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 위인지학(爲人之學)
- 나를 위한 공부: 위기지학(爲己之學)

퇴계의 위기지학

 "위기지학이란 도리를 우리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으로 삼고, 덕행을 우리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으로 삼아서 가까운 곳에서 공부에 착수해서 마음으로 터득하고 몸소 행하는 것이다. 위인지학이란 마음으로 터득하고 몸소 행하는 것은 힘쓰지 않고 헛된 것을 꾸미고 외물에 따라가서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퇴계선생언행록>> 권1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으니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나에게도 역시 이러한 한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포부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지만 나의 경우는 나의 헛됨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퇴계집>> 권11 '이중구에게 답함'


  •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왜 공부하는가?

 ☞ 질문: 뭘 공부하고 있나요? 왜 공부하나요? 평생 공부한다면 그 공부의 대상이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 50대의 퇴계는 여전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공부했다. 대체 뭘 공부한 걸까? 평생 해야 할 공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 임선영, 정성식, 황광욱, <<한국철학, 화두로 읽는다>, 동녘, 1999


퇴계의 앎의 대상: 인간
- 인간은 어떤 원리로 태어나는가?
- 인간과 만물은 무엇때문에 구별되는가?
- 어떤 것이 가장 인간다운 것인가?
- 인간다울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
=> 이황이 이 같은 의문을 해석하고 해결하는 기반은 성리학이었음. 학문만이 아니라 나라의 건국 이념 자체가 성리학이었던 조선시대 당시 이황에게 성리학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성리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고 했음


 ☞ 질문: 제대로 배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 퇴계(1501~1570)의 최고의 스승, 주희(朱熹, 1130~1200)
 "감히 스스로를 확신하지 말고 선생을 믿으라고 옛 사람이 말하지 않았는가. 주자(주희)는 내가 스승으로 삼는 분이며 또한 천하에 예나 지금이나 으뜸 스승으로 사는 분이다."

○ 성리학은 고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 분야의 넓이가 끝이 없으며 역사의 길이도 만만치 않음
○ 또한 성리학에 관련된 인물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그 이론의 갈래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이나 주장을 할 수도 있음
○ 퇴계는 여러 성리학자들의 이론 가운데서도 주희를 스승으로 삼아 주희의 이론에 충실하려고 했음


  • 주희 성리학을 통해 발견한 퇴계의 인간에 대한 이해

○ 성리학은 '심성의리지학(心性義理之學)'의 줄임말임
- 심(心): 마음
- 성(性): 본성
- 의(義): 옳음
- 리(理): 이치
=> 인간의 마음,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 우주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고 보았음.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 만물의 일부이고 자연, 만물은 이(理)와 기(氣)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음
=> 사람의 마음과 본성이 어떻게 구성되었느냐[심성론]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리]의 문제로 연결된다고 보았음

○ 자연만물을 설명하는 틀: 이(理)와 기(氣)
- 이(理): 원리, 도리, 형이상
- 기(氣): 현실 세계의 물질적 재료, 도구, 형이하

○ 인간을 설명하는 틀: 역시 이(理)와 기(氣)
- 리(理): 하늘이 부여한 본성, 공정하고 바름. 공정하고 바른 마음이 이 리(理)에서 나오며 이를 진리의 마음이라는 뜻으로 도심(道心)으로 불렀음 - 기(氣): 자신의 육체에 기인한 본성, 사사로운 욕망이 끼기 때문에 악으로 흐를 수 있어서 인심(人心)이라고 불렀음
☞ 퇴계가 평생 하고자 했던 공부는 바로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잘 닦아갈까 하는 마음 공부라고 할 수 있음

 ☞ 질문: 근데 왜 욕망이 문제일까?

☞ 인간이 지니는 욕망 그 자체가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그 욕망이 한 개인이나 작은 집단을 위한 것일 때는 대다수의 다른 사람을 짓밟고 빼앗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임. 특히 퇴계가 살던 시대는 사회정치적으로 이러한 소수 집단의 욕망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핍박받던 시대였음


  • 퇴계의 현실 인식이 담긴 이기론

☞ 김교빈,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2009
○ 퇴계가 살던 조선 중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때였음. 무오, 갑자, 기묘, 을사 등 4대 사화가 모두 이 무렵에 일어났음
○ 사화는 사림 세력과 훈구 세력의 대립이었음. 사림파는 국가와 사회를 걱정하는 양심적인 지식인들이었으며 훈구파는 임금 주변에 빌붙어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기성 관료들이었음
○ 사림파의 맥은 정몽주(고려말, 조선초), 길재(고려말, 조선초),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등의 인물이었음. 예컨대 김종직의 제자였던 김굉필(1454~1504)은 무오사화 때 귀양 갔다가 갑자사화 때 사약을 받았으며, 김굉필의 제자였던 조광조(1482~1520) 역시 기묘사화 때 유배되어 죽임을 당했음
○ 을사사화 때(1545) 퇴계 자신도 정치적 모략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났고 그의 형은 곤장을 맞고 귀양을 가다가 매 맞은 후유증으로 도중에 죽고 말았음. 퇴계의 철학 속에는 이러한 시대를 살아간 사림파들의 실천적 삶을 설명하는 논리가 담겨 있는 것임


 ☞ 질문: 근데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원래 욕망에 가득찬 존재이지 않을까?


  • 퇴계가 지키고자 했던 도덕 원리로서의 이(理)
 ☞ 질문: 만일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신념, 원칙, 철학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요?

○ 퇴계의 철학에서 이(理)는 모든 존재의 존재 원리인 동시에 도덕 원리임. 그리고 이 도덕 원리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임
○ 이(理)가 도덕원리인 까닭은 절대 불변의 존재로서 선의 원리이기 때문임. 그러나 기(氣)는 이와 달리 변화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선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악으로 나타날 수도 있음
=> 퇴계는 이(理)를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보았음


 ☞ 질문: 그런데 이치라는 거 보이지도 않고 알기도 어렵고 그런 거 아닌가?

=>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뿐이지, 퇴계는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며 우리 마음만 맑게 할 수 있다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음. 순수한 마음을 유지해갈 수 있다면 이 도덕원리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음

 ☞ 질문: 왜 퇴계는 이렇게까지 이(理)를 중시한 것일까?

=> 퇴계는 어떻게 하면 한 인간이, 한 사회가, 한 임금이 개인적 욕망을 억누르고 오로지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졌음. 그리고 개인적인 욕망이 삶의 추동력이 되는 사람과 도덕적 인간이 되려는 것이 삶의 근원적 힘인 사람을 가치적으로 엄격히 구분하려고 했음. 마치 썩은 정치 세력이 순수한 사림들과 섞일 수 없다는 보는 것처럼, 그 순수함이 물들지 않도록 잘 지켜가려는 것처럼
=> 그리고 이 이(理)는 그저 관념적이고 이론적인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 가야 하는 것임. 그리고 퇴계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음

○ 이연평, "이 도리는 일상생활에서 익혀야 한다."
- 중국 송나라의 이동(李侗, 1093~1163)
- 학문의 도는 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마음을 고요하게 한 가운데 희로애락의 감정이 발동되어 이에 휘둘리기 전에 감지되는 순수한 천리(天理: 하늘의 이치) 그대로를 체득하고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음

☞ 아무리 어렵고, 고원한 이야기를 하는 철학자로 보이더라도 만일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자신이 말한 대로, 자신의 이론대로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실천적인 철학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