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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보면 순자는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와 본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스리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 점에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존재는 바로 인간, 인간인 '나'라고 본 점에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맹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매우 긍정적으로 본 것은 아닐까? | => 어떻게 보면 순자는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와 본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스리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 점에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존재는 바로 인간, 인간인 '나'라고 본 점에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맹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매우 긍정적으로 본 것은 아닐까? | ||
+ | ☞ <span style="color:#ff0000;">'''그렇다면 순자가 본 가능성으로서의 인간의 중요한 기능은?'''</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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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위의 원천으로서 인간의 마음'''</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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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자연계의 일반 사물과는 다른 인간의 특수성: 분별할 수 있는 지적 능력</br> | ||
+ | - 마음은 자연적으로 생겨나지만 사유기관으로서 감각기관의 인식을 분별하고 통괄하는 주관적 능동성을 가짐</br> | ||
+ | => 감각기관은 외적 기관이라서 자기 이익 욕심에 쉽게 이끌릴 수 있는 것이라면 이걸 통제할 수 있는 건 내적 기관인 마음</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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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pan style="color:#ff0000;">'''제대로 예를 시행할 수 있으려면?'''</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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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상황, 관계를 잘 분별해야 함</br> | ||
+ | => 주관적이고 능동적인 인위적 노력은 인간의 역사전통, 사회문화적 관습과 결합하여 객관적 사회규범이 되는데 이것도 인위임</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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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이 살아가는 데 무리를 짓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리를 짓되 분별이 없으면 다툼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면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사회가 어지러워지면 곤궁하게 된다. 그러므로 분계가 없다는 것은 인간의 큰 해이고 분계가 있다는 것이 천하의 큰 이익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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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간의 사회관계에서 구성원 각자의 사회적 역할은 분업의 의미를 지니게 됨. 사회적 지위는 신분적 차등과 연결됨. 인간사회에서 분업은 인간의 생존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효과적 수단임. 지위와 신분의 차등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바탕임</br> | ||
+ | => 역할, 속성 등은 유가철학에서 명(名)이라는 개념어로 쓰였음</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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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자 논리학의 바탕인 공자의 정명(正名)'''</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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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공자는 정명을 통해 이미 사용되고 있는 명칭의 본래적 의미를 밝히고자 했음. 그리고 그에 적합한 행위 실천을 요청했음</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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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녀는 자녀다워야 한다.[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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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공자는 명분과 실질의 괴리가 사회 혼란의 원인이라고 보았고 순자도 이에 근거하여 발전시켰음</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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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자의 제명(制名)'''</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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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자는 공자의 정명에서 더 나아가 명칭을 제정하는 문제를 논함. 명칭의 본연적 속성을 설명하고 좋은 명칭의 기준을 제시하고자 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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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칭에는 고유한 합당함이 없으니 약속하여 명명한 것이다. 약속을 정하여 관습이 이루어지는 것을 합당하다고 하고 약속한 것과 다른 것을 합당하지 않다고 한다. 명칭에는 고유한 실제 사물이 없고 약속하여 실제 사물을 명명하는 것이니 약속을 정하여 관습이 이루어지는 것을 실제 명칭이라고 한다. 명칭에는 고유한 좋음이 있으니 직접적이고 평이하여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것을 좋은 명칭이라고 한다. -<<순자>> <정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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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자는 잘못된 학설과 간사한 말들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보았음. 그래서 명칭을 제대로 제정해서 혼란을 방지해애 한다고 보았음 | ||
+ | => 언어를 바른 행위를 안내하는 수단지자 질서의 표준이라고 보았고 통치자는 명칭의 사용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고 사회 질서를 통일할 수 있다고 보았음 | ||
+ | => 대상을 지칭하는 명칭이 분명하지 않으면 혼란이 생기게 된다고 보았음. 순자가 말하는 혼란의 2가지 유형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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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불분명한 명칭이 사용되면 '같고 다름[동이(同異)]'이 구별되지 않아서 사람들 간에 뜻이 통하지 않게 될 수 있음 => 인식적 차원의 혼란 | ||
+ | 2. 혼란스러운 명칭은 '귀하고 천함[귀천(貴賤)]'을 구분하지 못하게 함. 귀천의 문제는 곧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연결됨 | ||
[[분류: 동양철학개설]] | [[분류: 동양철학개설]] |
2022년 5월 18일 (수) 14:53 판
인간의 홀로서기
☞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 중국 고대인들이 인식한 하늘
- 정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
- 하늘이 덕이 가장 높은 사람을 뽑아서 통치를 맡긴다고 생각했음
- 급작스러운 자연 현상의 변화가 보이면 하늘에서 다스림을 위임받은 인금의 덕이 부족해서라고 보았음
○ 순자의 인간, 하늘을 벗어난 홀로서기
- 인간과 하늘은 아무 상관 없음
- 잘 다스려지느냐 여부는 통치자가 하기에 달려 있음
=> 자연 현상과 인간 행위는 서로 아무관련 없음
-> 하늘로부터 인간의 독립
=> 하늘에 빌고 매달리는 행위는 의미없는 행위임
=> 낮과 밤의 변화, 사계절의 변화도 인간 삶과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음
=> 다만 문화적 기능으로서 하늘에 대한 숭배 인정: 제사, 장례, 점을 치는 행위 등은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문화적 기능임
○ 자연현상으로서의 하늘
- 하늘(자연)은 사람들이 사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제공해 주는 존재임
- 사람은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지니고 있으며 자연을 활용하는 존재임
=> 당시 사람들이 모든 일을 하늘의 뜻에 맡겨 놓고 운명이라고 생각한 데에서 벗어나 인간이 반드시 하늘을 이겨내야 한다고 보았음
☞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자연과는 구분되는 인간다움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공동체를 위한 규범: 예
- 순자가 인간 본성이 악하다고 말한 까닭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선은 작위에서 나온다. 인간의 본성으로 말하면 태어나면서 이익을 좋아한다. ... 태어나면서 증오하고 미워한다. ... 따라서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따른다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순자>> <성악>
○ 마이클 푸엣이 바라본 순자 성악의 의미
☞ 마이클 푸엣, 크리스틴 그로스 로 지음, 이창신 옮김, <<The Path: 세상을 바라보는 혀긴적 생각>>, 김영사, 2016,243~266쪽
- 순자는 자연스러운 것이 더 좋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생각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고 보았음
- 물론 맹자 말처럼 인간은 아이가 우물에 빠지면 누구든 달려가 구할 수도 있지만 순자는 우리에게 덜 이타적인 충동도 있음을 매 순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보았음
- 배고프고 피곤하다고 해서 자연스러운 감정에 굴복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동료에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어서는 안됨. 이는 오히려 우리의 자연스러운 감정, 욕구를 작위적으로 극복하는 것임
☞ 한 개인만 그러할까? 사실 인류의 역사는 작위의 역사가 아닌가?
아주 먼 옛날, 비가 오는 날도 있었을테고, 비가 오지 않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비가 언제 올지 아무도 몰랐다. 날이 추울 때도 있었을테고, 더울 때도 있었을 것이다. 추울 때는 입을 옷이 없는 사람은 얼어 죽을 수도 있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식물이 자라지 않았다. 비가 올 때는 식물과 열매가 자랐는데 덕분에 인간이 양분을 얻기도 했지만 독을 먹고 앓아눕기도 했다. 인간은 차츰 이런 일이 무작위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면서 언제 비가 오고 언제 비가 오지 않을지, 언제 춥고 언제 더울지 터득했다.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독이 있는 식물이 어떤 것인지도 깨달았다. 그리고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날씨 변화에 따라 식물을 심으면서, 그 변화가 계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이 계속되면서 식물을 심기 위해 땅을 더 갈고, 동물을 길들여 이 일에 투입하고, 길들일 수 없는 동물은 쫓아냈다. 결국 한때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혼돈으로 보이던 갑작스런 비, 바람, 추위, 더위, 양분, 독 같은 것들이 조화로운 체계로 바뀌었다. 땅에서 자라는 것이 이제는 하늘의 원대한 법칙과 관련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 그대로가 아니다. 인간이 세계를 길들인 결과다. 인간이 그렇게 만들었고 서로 별개였던 현상이 일련의 조화로운 과정이 되었다. -<<순자>>
=> 농업발명의 역사처럼 인간은 자연에 있는 것을 가져다 재구성하고, 고치고, 길들였음. 세상을 다스려왔음.순자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세상의 이치는 인간이 만들었다고 상기시킴
☞ 자연도 이렇게 다스렸는데 악할 수 있는 인간들이 모인 사회 또한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
○ 순자가 말한 인간 사회의 의미
-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음.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물건이 필요함. 하지만 혼자서 그 여러 가지 물건들을 일일이 만들어 가면서 살 수는 없음. 그래서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임 - 하지만 인간의 문제는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임. 그래서 서로 더 많이 갖기 위해 다툼.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사회는 붕괴될 것이고 그 피해는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임. 이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예임
=> 예는 인간의 욕구를 적절하게 절제하고 사람의 감정을 순화시킬 수 있는 것임
사람들은 배고프면 먹고자 하고 추우면 따뜻하게 하고자 하고 힘들면 쉬고자 하는데 이것이 사람의 감정이고 본성이다. 사람들이 배가 고파도 어른을 보면 먼저 먹으려 하지 않는 것은 사양하려고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 자식이 아버지에게 사양하고 아우가 형에게 사양하며 자식이 아버지를 대신해 일을 하고 아우가 형을 대신하여 일을 하는데 이 두 가지 행동은 모두 본성에 반대되고 감정에 어긋난다. 그렇지만 효자의 도리이고 예의의 형식인 것이다. -<<순자>> <성악>
=> 순자는 예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절제할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인간이 지닌 본능적인 감정들도 순화될 수 있다고 보았음. 그리고 이러한 예가 인간이 자신의 감정대로, 욕구대로 움직이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보았음
=> 하지만 순자의 예의 특징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님. 만일 과거에 만들어진 예의 제도만 강조한다면 권위주가 될 수밖에 없음. 시대에 맞게 예의 제도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보았음
☞ 이를 우리 대학생활에 적용해 본다면?
=> 어떻게 보면 순자는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와 본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스리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 점에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존재는 바로 인간, 인간인 '나'라고 본 점에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맹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매우 긍정적으로 본 것은 아닐까?
☞ 그렇다면 순자가 본 가능성으로서의 인간의 중요한 기능은?
○ 인위의 원천으로서 인간의 마음
- 자연계의 일반 사물과는 다른 인간의 특수성: 분별할 수 있는 지적 능력
- 마음은 자연적으로 생겨나지만 사유기관으로서 감각기관의 인식을 분별하고 통괄하는 주관적 능동성을 가짐
=> 감각기관은 외적 기관이라서 자기 이익 욕심에 쉽게 이끌릴 수 있는 것이라면 이걸 통제할 수 있는 건 내적 기관인 마음
☞ 제대로 예를 시행할 수 있으려면?
=> 상황, 관계를 잘 분별해야 함
=> 주관적이고 능동적인 인위적 노력은 인간의 역사전통, 사회문화적 관습과 결합하여 객관적 사회규범이 되는데 이것도 인위임
인간이 살아가는 데 무리를 짓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리를 짓되 분별이 없으면 다툼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면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사회가 어지러워지면 곤궁하게 된다. 그러므로 분계가 없다는 것은 인간의 큰 해이고 분계가 있다는 것이 천하의 큰 이익이다.
=> 인간의 사회관계에서 구성원 각자의 사회적 역할은 분업의 의미를 지니게 됨. 사회적 지위는 신분적 차등과 연결됨. 인간사회에서 분업은 인간의 생존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효과적 수단임. 지위와 신분의 차등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바탕임
=> 역할, 속성 등은 유가철학에서 명(名)이라는 개념어로 쓰였음
○ 순자 논리학의 바탕인 공자의 정명(正名)
- 공자는 정명을 통해 이미 사용되고 있는 명칭의 본래적 의미를 밝히고자 했음. 그리고 그에 적합한 행위 실천을 요청했음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녀는 자녀다워야 한다.[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 공자는 명분과 실질의 괴리가 사회 혼란의 원인이라고 보았고 순자도 이에 근거하여 발전시켰음
○ 순자의 제명(制名)
- 순자는 공자의 정명에서 더 나아가 명칭을 제정하는 문제를 논함. 명칭의 본연적 속성을 설명하고 좋은 명칭의 기준을 제시하고자 했음
명칭에는 고유한 합당함이 없으니 약속하여 명명한 것이다. 약속을 정하여 관습이 이루어지는 것을 합당하다고 하고 약속한 것과 다른 것을 합당하지 않다고 한다. 명칭에는 고유한 실제 사물이 없고 약속하여 실제 사물을 명명하는 것이니 약속을 정하여 관습이 이루어지는 것을 실제 명칭이라고 한다. 명칭에는 고유한 좋음이 있으니 직접적이고 평이하여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것을 좋은 명칭이라고 한다. -<<순자>> <정명>
=> 순자는 잘못된 학설과 간사한 말들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보았음. 그래서 명칭을 제대로 제정해서 혼란을 방지해애 한다고 보았음 => 언어를 바른 행위를 안내하는 수단지자 질서의 표준이라고 보았고 통치자는 명칭의 사용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고 사회 질서를 통일할 수 있다고 보았음 => 대상을 지칭하는 명칭이 분명하지 않으면 혼란이 생기게 된다고 보았음. 순자가 말하는 혼란의 2가지 유형은
1. 불분명한 명칭이 사용되면 '같고 다름[동이(同異)]'이 구별되지 않아서 사람들 간에 뜻이 통하지 않게 될 수 있음 => 인식적 차원의 혼란 2. 혼란스러운 명칭은 '귀하고 천함[귀천(貴賤)]'을 구분하지 못하게 함. 귀천의 문제는 곧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연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