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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 '''인간의 죄의 문제''' == *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하는 잣대로 쓰이기도 하는 죄에 관한 감정''' ☞ 안승우, <<<주역>>의 죄와 벌(1):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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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실존적 한계성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유학에서는 인욕으로 보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죄로, 여기에서 죄란 윤리적인 내용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근본적인 면이 더 강조된 것이라고 지적했음</br> | ○ 인간이 실존적 한계성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유학에서는 인욕으로 보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죄로, 여기에서 죄란 윤리적인 내용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근본적인 면이 더 강조된 것이라고 지적했음</br> | ||
○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한계 극복의 측면에서 기독교에서는 한시적으로는 죄 없이 살아갈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죄가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반면, 유학을 비롯한 동양 종교에서는 주체적 결단에 의해 근원적이고 내면적으로 죄가 완벽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음</br> | ○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한계 극복의 측면에서 기독교에서는 한시적으로는 죄 없이 살아갈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죄가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반면, 유학을 비롯한 동양 종교에서는 주체적 결단에 의해 근원적이고 내면적으로 죄가 완벽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음</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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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pan style="color:#ff0000;">'''형벌의 목적도 죄에 대한 반성, 교화였을까?'''</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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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pan style="color:#ff0000;">'''동양 고대에도 형벌이 있었을까??'''</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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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국 고대의 형벌의 탄생과 형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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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곽말약은 형벌의 용도를 두 가지 시각에서 바라보았는데, 첫째는 제사에 쓸 희생(人牲)이고, 둘째는 노예를 만드는 것이라고 보았음</br> | ||
+ | ○ 특히 전쟁이 매우 빈번해지면서 필연적인 결과로 생산이 피폐해지고 포로가 증가했으며, 증가한 포로들은 최초에는 대체로 희생으로 쓰였으나 인간의 생산적 가치의 발견과 함께 피폐해진 생산에 쓰이면서 노예제도가 나타났다고 보았음</br> | ||
+ | (郭沫若著作編輯出版委員會 편, <<郭沫若全集: 歷史編 第一卷>>, 人民出版社, 1982, 54쪽)</br> | ||
+ | ○ 고대 형벌의 기능에 대해 이성원은 형벌의 1차적 기능이 응징과 보복에 있다고 보았고, 특히 육형, 추방형 등의 형벌은 외형적·공간적으로 이형화(異形化)를 강제하거나 이를 지향하는 비인화(非人化)를 통해 공동체로부터 배제하고 소외한 것이라고 보았음</br> | ||
+ | (이성원, <古代中國의 刑罰觀念과 肉刑>, <<동양사학연구>>, 제67집(동양사학회, 1999), 8-19쪽)</br> | ||
+ | => 고대의 육형(肉刑): 코를 베어내는 의형(劓刑),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묵형(墨刑), 발 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 등 신체를 손상하는 형벌임</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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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pan style="color:#ff0000;">'''고대 형벌은 잔인하기만 했을까?'''</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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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교화의 기능으로서의 형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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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경범죄에 대한 형벌</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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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해서는) 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돌(嘉石)에 선하게 되도록 놓아두었으니, 무릇 만민 가운데 죄와 과실이 있는데 아직 법에 걸릴 정도가 아니지만 마을에 해를 입히는 자는 질곡(桎梏: 손과 발에 차는 수갑)을 씌어 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돌에 앉게 하고 사공(司空: 관직 이름) 밑에서 부역하게 한다. 중죄(重罪)의 경우 열흘 하고도 3일간 앉아 있게 하고 1년간 부역 살게 한다. 그 다음은 9일간 앉아 있게 하고 9개월간 부역 살게 한다. 그 다음은 7일간 앉아 있게 하고 7개월간 부역 살게 한다. 그 다음은 5일간 앉아 있게 하고 5개월간 부역 살게 한다. 죄가 가벼운 죄의 경우 3일간 앉아 있게 하고 3개월간 부역 살게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보증을 서게 하고서야 용서하고 석방해 주었다. -<<주례(周禮)>> <대사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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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pan style="color:#ff0000;">'''아름다운 돌 위에 앉아있게 한 이유?'''</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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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공언의 주석: “(죄 지은) 백성을 놓아두어서 그 무늬와 결을 생각하게 해서 잘못을 뉘우치고 고쳐 스스로 가다듬게 하려고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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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나라 때를 기록한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84%9C 한서]>>: “죄를 후회하고 선(善)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하며 이로 인해 그들의 죄를 용서해 준다."</br> | ||
+ | ○ 한나라 때 <<대대례기>>: “백성에게 작은 죄가 있다고 해도 반드시 그 善한 점으로 그 과실을 용서해주고 만일 죽을 죄라도 살게 해준다면 선해질 것이다.”</br> | ||
+ | => 사면은 죄에 대한 자기 반성을 의도하는 것이면서 용서를 통해 궁극적으로 보다 선한 길로 이끌고자 한 것이었음</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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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pan style="color:#ff0000;">'''그렇다면 다산 정약용이 살던 시대의 형벌은?'''</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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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 당시 법집행의 양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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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산이 1803년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만에 군포를 내지 않는다고 호통치며 소를 빼앗아간 일로 남성이 자신의 생식기를 잘라버린 일을 소재로 하여 지은 시</br> | ||
+ | ○ 조선시대에는 병역의무자인 양인 남성이 현역 복무에 나가지 않는 대신 세금을 부과했음. 원칙적으로 베[포(布)]로 냈기 때문에 군포라고 불렸음. 면포 대신 그에 합당한 쌀, 조, 콩 등의 곡식을 내기도 했음</br> | ||
+ | ○ 다산이 살던 시기에는 죽은 이에도 세금을 부과하고 아이를 낳아도 바로 세금을 내야 해서 백성들의 생활이 극심한 상황에 놓여 있었음</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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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절양/ 정약용></br> | ||
+ | 갈밭 마을 젊은 여인 오래도록 우는 소리 서러워라. | ||
+ | 현문(관아의 문)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길 | ||
+ | 싸움터 나간 남편이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 ||
+ | 예로부터 스스로 남근을 잘랐던 일 들어 보지 못했구나</br> | ||
+ | 시아버지 죽어 이미 상복 입었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 ||
+ | 삼대(三代)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다 실렸으니 | ||
+ | 가서 억울함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 ||
+ | 이정(里正: 지방행정조직의 최말단 책임자)은 호통하며 마구간 소 끌고 갔네</br> | ||
+ | 칼을 갈아 방에 드니 자리에는 피가 가득 | ||
+ | 스스로 탄식하길 자식을 낳은 것이 화로구나 | ||
+ | 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음형(蠶室淫刑: 거세 당하는 형벌) 당했던고</br> | ||
+ | ...</br> | ||
+ | 재력과 세력 있는 사람들은 일년 내내 풍악 울리며 즐기면서 | ||
+ | 쌀 한 톨 한 치 베도 바치는 일 없네 | ||
+ | 다같은 백성이데 이다지 공평하지 못한가 | ||
+ | 객 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시경의 편명. 공평무사한 군자를 읊은 시)을 외워보네 | ||
+ | |||
+ | ☞ 번역 참조: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compare.do?treeId=020306&levelId=hm_109_0020 우리역사넷], 윤경수, <다산시 애절양에 대하여>, <<외대논총>> 제7집, 1989</br> |
2022년 5월 19일 (목) 01:56 판
인간의 죄의 문제
-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하는 잣대로 쓰이기도 하는 죄에 관한 감정
☞ 안승우, <<<주역>>의 죄와 벌(1): 개인적 죄와 벌에 관한 윤리적 접근>, <<범한철학>> 제89집, 범한철학회, 2018
○ 죄의식의 감정의 경우, 문화적 진화의 관점에서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다루어지기도 했음
○ 프로이트가 말한 죄의식: 인간의 내면화된 도덕적 양심으로부터 일어나는 고도로 발달된 도덕 감정
○ 이는 종종 수치심과 비교되기도 했음
○ 수치심: 부도덕한 행위 혹은 죄를 지은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잘못을 내면적으로 깨우쳐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외부의 판단에 의해. 혹은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생겨나는 감정
○ 죄의식: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 의존해서 발생하는 감정이라기보다는 행위자 스스로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후회하고 이를 반성해서 일어나는 감정
=> 수치심과 죄의식이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가르는 요소가 되기도 했음
=> 서구문명: 어린 아이의 사회화 과정에서 죄의식에 민감하게 하는 것이 주된 과제로 여겨짐
=>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 수치의 감정을 주입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음
=> 서양과 동양을 ‘죄책감 사회’ 대 ‘수치심 사회’로 대비시킴(Wolfram Eberhard, Guilt and Sin in Traditional Chin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67, p.2)
☞ 이렇게만 볼 수 있을까? 동양에도 죄의식이 있지 않을까? 동양의 죄의 특징은 뭘까?
- 동양의 죄
☞ 줄리아 칭 지음, 임찬순·최효선 옮김, <<유교와 기독교>>, 서광사, 1993, 104-107쪽
○ 한자의 ‘죄(罪)’는 죄(sin)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범죄(crime)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
○ 죄라고 하면 범죄의 의미와 함께, 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도덕적 측면에서의 잘못이라는 의미의 죄의 의미도 지니고 있음
○ 이러한 동양 사회에서의 ‘죄’라는 언어 자체가 지닌 다의성 때문에 이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규정짓기가 애매하다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는 죄에 관한 인식의 문제에 있어 범죄를 비롯하여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 주기도 함
○ 줄리아 칭은 동양 사회에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생기는 외면적・피상적 수치심으로 느끼는 도덕성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도덕적 악에 대한 의식이 내면화되어 죄의식을 갖게 되는 도덕성은 없다고 보는 일부 견해를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음
○ 그러면서 칭은 동서양의 죄에 대한 의식의 차이를 지적했음. 특히 서양의 기독교에서의 죄의 특징으로 반역을 들면서 이는 인간 자신의 양심의 타락이면서 신의 명령에 대한 반역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았음
○ 반면 유학에서는 <<논어>> <요왈(堯曰)>의 “(탕왕(湯王)이 말하길) 제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백성의 탓은 아닙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임금인 제 탓입니다.”라고 한 것을 들어 죄에 관한 개념이 존재했음을 밝히면서도, 이를 신에 대한 반역으로 해석하지 않으며,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거나 현실 밖의 세계에 속한 것으로 보지 않는 특징을 지닌다고 말했음
○ 오히려 유학에서의 죄의 문제는 신이라는 외부적·초월적 존재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본 것임
- 동양의 죄와 서양의 죄의 비교
☞ 배요한, <유교적 인간 이해에 대한 신학적 고찰>, <<선교와 신학>> 제25집,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 2010, 219-224쪽
○ 배요한은 기독교에서의 죄는 신의 영역으로 해소 불가능하지만 유학에서의 죄는 인간의 영역이기에 인간의 주체적 노력에 의해 해소 가능하다는 점을 밝혔음
○ 인간이 실존적 한계성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유학에서는 인욕으로 보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죄로, 여기에서 죄란 윤리적인 내용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근본적인 면이 더 강조된 것이라고 지적했음
○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한계 극복의 측면에서 기독교에서는 한시적으로는 죄 없이 살아갈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죄가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반면, 유학을 비롯한 동양 종교에서는 주체적 결단에 의해 근원적이고 내면적으로 죄가 완벽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음
☞ 형벌의 목적도 죄에 대한 반성, 교화였을까?
☞ 동양 고대에도 형벌이 있었을까??
- 중국 고대의 형벌의 탄생과 형태
○ 곽말약은 형벌의 용도를 두 가지 시각에서 바라보았는데, 첫째는 제사에 쓸 희생(人牲)이고, 둘째는 노예를 만드는 것이라고 보았음
○ 특히 전쟁이 매우 빈번해지면서 필연적인 결과로 생산이 피폐해지고 포로가 증가했으며, 증가한 포로들은 최초에는 대체로 희생으로 쓰였으나 인간의 생산적 가치의 발견과 함께 피폐해진 생산에 쓰이면서 노예제도가 나타났다고 보았음
(郭沫若著作編輯出版委員會 편, <<郭沫若全集: 歷史編 第一卷>>, 人民出版社, 1982, 54쪽)
○ 고대 형벌의 기능에 대해 이성원은 형벌의 1차적 기능이 응징과 보복에 있다고 보았고, 특히 육형, 추방형 등의 형벌은 외형적·공간적으로 이형화(異形化)를 강제하거나 이를 지향하는 비인화(非人化)를 통해 공동체로부터 배제하고 소외한 것이라고 보았음
(이성원, <古代中國의 刑罰觀念과 肉刑>, <<동양사학연구>>, 제67집(동양사학회, 1999), 8-19쪽)
=> 고대의 육형(肉刑): 코를 베어내는 의형(劓刑),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묵형(墨刑), 발 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 등 신체를 손상하는 형벌임
☞ 고대 형벌은 잔인하기만 했을까?
- 교화의 기능으로서의 형벌
○ 경범죄에 대한 형벌
(경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해서는) 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돌(嘉石)에 선하게 되도록 놓아두었으니, 무릇 만민 가운데 죄와 과실이 있는데 아직 법에 걸릴 정도가 아니지만 마을에 해를 입히는 자는 질곡(桎梏: 손과 발에 차는 수갑)을 씌어 무늬가 있는 아름다운 돌에 앉게 하고 사공(司空: 관직 이름) 밑에서 부역하게 한다. 중죄(重罪)의 경우 열흘 하고도 3일간 앉아 있게 하고 1년간 부역 살게 한다. 그 다음은 9일간 앉아 있게 하고 9개월간 부역 살게 한다. 그 다음은 7일간 앉아 있게 하고 7개월간 부역 살게 한다. 그 다음은 5일간 앉아 있게 하고 5개월간 부역 살게 한다. 죄가 가벼운 죄의 경우 3일간 앉아 있게 하고 3개월간 부역 살게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보증을 서게 하고서야 용서하고 석방해 주었다. -<<주례(周禮)>> <대사구>
☞ 아름다운 돌 위에 앉아있게 한 이유?
=> 가공언의 주석: “(죄 지은) 백성을 놓아두어서 그 무늬와 결을 생각하게 해서 잘못을 뉘우치고 고쳐 스스로 가다듬게 하려고 했다.”
○ 한나라 때를 기록한 <<한서>>: “죄를 후회하고 선(善)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하며 이로 인해 그들의 죄를 용서해 준다."
○ 한나라 때 <<대대례기>>: “백성에게 작은 죄가 있다고 해도 반드시 그 善한 점으로 그 과실을 용서해주고 만일 죽을 죄라도 살게 해준다면 선해질 것이다.”
=> 사면은 죄에 대한 자기 반성을 의도하는 것이면서 용서를 통해 궁극적으로 보다 선한 길로 이끌고자 한 것이었음
☞ 그렇다면 다산 정약용이 살던 시대의 형벌은?
-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 당시 법집행의 양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
○ 다산이 1803년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만에 군포를 내지 않는다고 호통치며 소를 빼앗아간 일로 남성이 자신의 생식기를 잘라버린 일을 소재로 하여 지은 시
○ 조선시대에는 병역의무자인 양인 남성이 현역 복무에 나가지 않는 대신 세금을 부과했음. 원칙적으로 베[포(布)]로 냈기 때문에 군포라고 불렸음. 면포 대신 그에 합당한 쌀, 조, 콩 등의 곡식을 내기도 했음
○ 다산이 살던 시기에는 죽은 이에도 세금을 부과하고 아이를 낳아도 바로 세금을 내야 해서 백성들의 생활이 극심한 상황에 놓여 있었음
<애절양/ 정약용>
갈밭 마을 젊은 여인 오래도록 우는 소리 서러워라. 현문(관아의 문)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길 싸움터 나간 남편이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예로부터 스스로 남근을 잘랐던 일 들어 보지 못했구나
시아버지 죽어 이미 상복 입었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삼대(三代)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다 실렸으니 가서 억울함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이정(里正: 지방행정조직의 최말단 책임자)은 호통하며 마구간 소 끌고 갔네
칼을 갈아 방에 드니 자리에는 피가 가득 스스로 탄식하길 자식을 낳은 것이 화로구나 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음형(蠶室淫刑: 거세 당하는 형벌) 당했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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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력과 세력 있는 사람들은 일년 내내 풍악 울리며 즐기면서 쌀 한 톨 한 치 베도 바치는 일 없네 다같은 백성이데 이다지 공평하지 못한가 객 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시경의 편명. 공평무사한 군자를 읊은 시)을 외워보네
☞ 번역 참조: 우리역사넷, 윤경수, <다산시 애절양에 대하여>, <<외대논총>> 제7집,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