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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ff0000;">'''진나라의 막강한 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법가사상 덕분이었다.'''</span>
 
   ☞ <span style="color:#ff0000;">'''진나라의 막강한 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법가사상 덕분이었다.'''</span>
 
 
○ '''진시황의 공적들'''</br>
 
 
- 문자의 통일: 이전에는 지역마다 글자가 달라서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 예서로 문자를 통일했음</br>
 
- 도량형의 통일: 당시 중국은 서로 사용하는 길이의 단위와 양을 제는 도구의 크기가 달라 상품 교역과 세금 부과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를 통일했음</br>
 
- 화폐의 통일: 당시 지역마다 사용하는 화폐가 달랐는데 이를 통일해서 금, 동으로 만든 원형 화폐를 사용하도록 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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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본 <<한비자>>는 20권 55책으로 한비(韓非)와 그의 후학들의 저술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책의 이름은 <<한자(韓子)>>였지만, 당나라 유학자인 한유(韓愈)와 구별하기 위해서 송나라시대부터 <<한비자>>라고 개정되었음</br>
 
- 현행본 <<한비자>>는 20권 55책으로 한비(韓非)와 그의 후학들의 저술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책의 이름은 <<한자(韓子)>>였지만, 당나라 유학자인 한유(韓愈)와 구별하기 위해서 송나라시대부터 <<한비자>>라고 개정되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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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비자 이전의 법가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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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chinesewiki.uos.ac.kr/wiki/index.php/%EA%B4%80%EC%A4%91 관자(관중)]: 제나라의 정치가, 제나라 환공을 한때 춘추시기 최고 권력자로 만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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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chinesewiki.uos.ac.kr/wiki/index.php/%EC%9E%90%EC%82%B0 자산(子産)]: 정나라의 정치가. 중국 최초로 성문법 공표, 실제 정치 속에서 법에 의한 통치를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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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愼到): 맹자와 동시대 인물, 통치의 중요 요소로 ‘세(勢)’를 강조함. 착함과 똑똑함으로는 민중을 복종시킬 수 없지만 권세와 지위로는 복종시킬 수 있다고 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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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불해: 기원전 4세기 후반 활동, 통치의 주요 요소로 ‘술(術)’을 강조. 통치자가 신하를 제압하는 정치술, 책략, 권모술수를 주장했음
  
== '''한비자 정치사상의 기본 전제''' ==
 
 
1. 군주와 신하는 본질적으로 이해를 달리 한다.</br>
 
2. 신하는 반드시 이기심에 의해 움직인다.</br>
 
3.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인간의 이기심도 변한다.(사회변천론)</br>
 
 
  ☞ <span style="color:#ff0000;">'''사람을 믿을 수 없다면, 이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까요?'''</span>
 
 
 
  ☞ <span style="color:#ff0000;">'''한비자의 사상이 법가 사상으로 지칭되는 이유, 법!'''</span>
 
 
 
○ '''진나라가 사람들이 법을 따르게 했던 방법'''
 
 
  진나라에서 신법을 만들어 포고하기 전에 백성들이 신법을 신용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3장이나 되는 나무를 도읍 저잣거리의 남문에 세우고 모인 백성들에게 “이것을 북문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자에게 10금을 준다.”고 하였다. 백성들이 이상하게 여겨 옮기지 않았다. 다시 “옮길 수 있는 자에게 50금을 준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옮기자 즉시 50금을 주어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법령을 공포하였다.- <<사기>> <상군열전>
 
 
 
 
* '''한비자의 핵심 사상: 법'''
 
 
  법과 술(術)을 버려두고 임의대로 통치하면 요임금 같은 성왕도 천하는 고사하고 나라 하나조차 바로잡지 못할 것이다. 컴퍼스와 곱자를 버리고 눈대중으로 헤아리면 해중(奚仲, 우임금 때 수레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장인)이라도 바퀴 하나를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 그러나 '''평범한 군주라도 법과 술(術)을 존중하여 잘 지키고, 서툰 목수라도 컴퍼스와 곱자를 잘 사용하면 만에 하나의 실수도 없을 것이다.''' -<<한비자>> <용인(用人)>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는 경우에는 백성들이 자신을 위해 선행을 하리라는 것을 믿지 않고, 악행을 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백성들 중 나를 위해 선행을 하는 자는 나라 안에서 열손가락 꼽기 힘들지만, 백성이 악행을 못하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면 온 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다.''' 통치를 하는 사람은 다수를 위한 방법을 취하고 소수를 위한 방법을 버린다. 그러므로 군주는 덕에 힘쓰지 않고 법에 힘쓴다. -<<한비자>> <현학>
 
 
=> 군주는 선행을 할 필요도 덕으로 다스릴 필요도 없으며 인격적으로 감화시킬 필요도 없음. 군주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고매한 인격은 필요 없음</br>
 
 
  ☞ <span style="color:#ff0000;">'''동의하시나요?'''</span>
 
 
 
○ '''권력의 두 손잡이: 상과 벌'''</br>
 
 
  권력의 두 손잡이란 형(刑)과 덕(德)이다. 무엇을 형과 덕이라고 하는가? 사형에 처하는 것을 형이라고 하고, 포상을 내리는 것을 덕이라고 한다. '''신하된 자는 주벌을 두려워하고 포상을 받고 싶어 한다. 따라서 군주가 직접 그의 형과 덕을 사용한다면 신하들은 형의 위세를 두려워하고 덕의 이익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한비자>> <이병>
 
 
 
  ☞ <span style="color:#ff0000;">'''하지만 그 권위가 윗사람에게만 주어진다면?'''</span>
 
 
- 한비자 사상에 따르면 군주가 직접 정치를 행하지 않고 신하에게 정치를 맡김. 단 상벌의 권위만큼은 군주가 지니며 신하들을 평가하여 임무 수행 여부에 따라 상벌을 행사함</br>
 
  
=> 이처럼 군주가 상벌을 엄격하게 실행하면 무능력자는 관직을 준다고 해도 감히 맡지 못함. 따라서 모든 무능력자는 제거되고 능력자만이 관직에 남게 됨
 
=> 군주는 상벌의 권력만 쥐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스릴 수 있음. 이 때 군주는 자신의 감정을 신하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됨. 군주의 감정을 신하들이 알면 신하들에 의해 군주는 조종됨</br>
 
  
  
 
[[분류: 동양철학개설]]
 
[[분류: 동양철학개설]]

2022년 5월 24일 (화) 16:47 판

진시황의 막강한 권력의 바탕이 되었던 법가사상

진시황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요? 진시황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진시황.jpg

☞ 이미지 출처: The Epoch Times, NTD TV 제공

=> 진시황(B.C.259~B.C.210) 하면 아마도 떠올리는 것들: 어지러운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인물. 북족에 있는 흉노족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건축하기 시작한 인물(후에 만리장성은 5~6천킬로미터에 달하는 건축물로 축조되게 됨), 죽지 않는 불로초를 찾았던 인물


통일 전후의 진나라 영토

진나라통일전후.png

☞ 그림 출처: 위키백과 진나라


  • 진시황의 무덤, 병마용의 발견

사마천 <<사기>> <진시황본기>에 기록된 진시황 무덤

 여산(酈山)에 진 시황을 안장하였다. 옛날 진 시황이 처음 즉위하여 여산에 치산(治山) 공사를 벌였는데, 천하를 통일한 후에는 전국에서 이송되어온 죄인 70만여 명을 시켜서 깊이 파게 하고 구리물을 부어 틈새를 메워서 외관을 설치했으며, 모형으로 만든 궁관(宮觀: 도자기로 만든 방의 모형과 사람 인형), 백관(百官), 기기(奇器)·진괴(珍怪: 진짜 혹은 모형으로 만든 사치품)들을 운반해다가 그 안에 가득 보관하였다. 
 장인(匠人)에게 명령하여 자동으로 발사되는 궁전(弓箭: 기계식 활쏘는 장치)을 만들어 놓고 그곳을 파내어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쏘게 하였으며, 수은으로 강, 바다를 만들고, 기계로 수은을 주입하여 흘러가도록 하였다. ... 수많은 사람들을 그 안에 순장시켰다. ...
 장중한 상례가 끝나고 보물들도 이미 다 매장되자 묘도(墓道)의 가운데 문을 폐쇄하고, 또 묘도의 바깥문을 내려서 장인과 노예들이 모두 나오지 못하게 폐쇄하니 다시는 빠져나오는 자가 없었다. 묘지 바깥에 풀과 나무를 심어서 묘지가 마치 산과 같았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진시황의 무덤, 병마용

-1974년 농민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 184cm~197cm 크기의 점토로 만들어진 병사가 8천여 점
-130개의 실제 크기의 전차 모형, 520점의 말이 있었음
-지금까지 끊임없이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무덤임

병마용 위치


어마어마한 물자와 인력의 동원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체 어떻게 통치했기에?


폭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시황의 중국문화사에서의 공적들

- 문자의 통일: 이전에는 지역마다 글자가 달라서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 예서로 문자를 통일했음
- 도량형의 통일: 당시 중국은 서로 사용하는 길이의 단위와 양을 제는 도구의 크기가 달라 상품 교역과 세금 부과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를 통일했음
- 화폐의 통일: 당시 지역마다 사용하는 화폐가 달랐는데 이를 통일해서 금, 동으로 만든 원형 화폐를 사용하도록 했음


진나라의 막강한 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법가사상 덕분이었다.


  • 법가: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변화시키려고 할 필요도 없다

○ 유가는 도덕적 수양에 의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음을 주장. 인간에게 윤리적, 도덕적으로 고차원적인 행위를 요구
○ 법가는 군주와 법 앞에 만민이 평등. 성인이 될 필요성은 전혀 없음. 인간을 고차원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대신 모든 이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상벌에 의존함으로써 귀족을 끌어내렸음
○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였으므로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믿었음. 순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선하게 변모시키기 위하여 인위적인 교화에 역점을 두었지만 한비자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음.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전제 아래에서 이를 이용한 정치술을 연구하였을 뿐임


법가사상을 종합한 한비자라는 인물

○ 성은 한(韓) 이름은 비(非)
○ 말은 잘하지 못했으나 저술에 뛰어났음, 그가 남긴 책이 바로 <<한비자>>임
○ 이사(李斯, 후에 진시황의 재상이 됨)와 함께 순자에게서 배웠는데 이사는 스스로 한비보다 자기가 못하다고 여겼음
○ 한나라에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0여만 자의 글을 저술했음
○ 진시황이 한비의 책을 일고 감탄하여 “이 사람을 만나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했음. 한비는 사신으로 진나라에 갔다가 이사와 요가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서 죽었음 (<<사기>> <노자한비열전>)

○ 한비자의 최후

 한비자를 직접 본 진나라 왕이 그를 만나보고는 한동안 망설였다. 아마 한비자의 언변이 매우 서툴렀기 때문일 것이다. 이 한동안의 망설임이 한비자에게는 결정적이었다. 이사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한비자를 죽이자는 진언을 한다.
 “한비자는 한나라의 공자(公子)입니다. 그를 중하게 쓰면 진나라를 위하여 진심으로 진력하지 않을 것이며, 그를 그대로 돌려보낸다면 장래의 화근이 될 것입니다. 이 기회에 죄를 물어 없애는 것만 못합니다.”
 이사의 진언에도 불구하고 한비자의 역량을 아까워한 진왕은 다시 한동안 망설이게 된다. 한비자를 일단 옥에 가두었다. 이사는 틈을 주지 않고 옥중에 독약을 보내 자살을 강요했다. 그것이 진왕의 뜻이 아님을 안 한비자가 진왕을 만나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고 했지만 허락되지 않았음을 물론이다.
 한비자를 옥에 가두기는 했지만 그 직후 진왕은 마음이 변하여 한비자를 사면하려고 옥중에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한비자의 목숨이 끊긴 후였다.
-신영복, 『강의』, 돌베개, 2004, 461~462쪽


○ <<한비자>>라는 책
- 현행본 <<한비자>>는 20권 55책으로 한비(韓非)와 그의 후학들의 저술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책의 이름은 <<한자(韓子)>>였지만, 당나라 유학자인 한유(韓愈)와 구별하기 위해서 송나라시대부터 <<한비자>>라고 개정되었음

○ 한비자 이전의 법가의 인물들 - 관자(관중): 제나라의 정치가, 제나라 환공을 한때 춘추시기 최고 권력자로 만들었음 - 자산(子産): 정나라의 정치가. 중국 최초로 성문법 공표, 실제 정치 속에서 법에 의한 통치를 실현 - 신도(愼到): 맹자와 동시대 인물, 통치의 중요 요소로 ‘세(勢)’를 강조함. 착함과 똑똑함으로는 민중을 복종시킬 수 없지만 권세와 지위로는 복종시킬 수 있다고 보았음 - 신불해: 기원전 4세기 후반 활동, 통치의 주요 요소로 ‘술(術)’을 강조. 통치자가 신하를 제압하는 정치술, 책략, 권모술수를 주장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