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칠정논쟁1"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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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호, <<사단칠정 자세히 읽기>>, 글항아리, 2011, 67~71쪽</br> | ☞ 이상호, <<사단칠정 자세히 읽기>>, 글항아리, 2011, 67~71쪽</br> | ||
− | ○ 세상의 모든 존재가 이와 기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원칙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됨. 사람에게도 사람의 이치가 주어져 있으며 그러한 이치가 사람을 형성하는 다양한 속성들의 기와 만나 '나'라는 특수한 사람을 만듬 | + | ○ 세상의 모든 존재가 이와 기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원칙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됨. 사람에게도 사람의 이치가 주어져 있으며 그러한 이치가 사람을 형성하는 다양한 속성들의 기와 만나 '나'라는 특수한 사람을 만듬</br> |
=> 모든 사물, 사건은 이와 기로 구성됨. 기는 모든 사물을 구성하는 재료이고 이(理)는 사물의 본질과 규칙임 | => 모든 사물, 사건은 이와 기로 구성됨. 기는 모든 사물을 구성하는 재료이고 이(理)는 사물의 본질과 규칙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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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마음이 성(性)과 정(情)을 총괄하고 주재한다고 보았음[심통성정(心統性情)]. 여기에서 성(性)은 이(理)임</br> | ○ 인간의 마음이 성(性)과 정(情)을 총괄하고 주재한다고 보았음[심통성정(心統性情)]. 여기에서 성(性)은 이(理)임</br> | ||
○ 인간의 마음은 생각하고 느끼는 활동을 하지만 성(性)은 그렇지 못함. 인간의 성인 인, 의, 예, 지 4덕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작용을 할 수 없음. 인간 마음의 활동을 뜻하는 사람[마음]의 기의 영역은 인의예지가 표현되는 다양한 방식과 사람이 가진 일상적 감정, 욕망 등임. 마찬가지로 도덕 본성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행동을 제어하는 모든 마음의 활동도 사람의 기임</br> | ○ 인간의 마음은 생각하고 느끼는 활동을 하지만 성(性)은 그렇지 못함. 인간의 성인 인, 의, 예, 지 4덕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작용을 할 수 없음. 인간 마음의 활동을 뜻하는 사람[마음]의 기의 영역은 인의예지가 표현되는 다양한 방식과 사람이 가진 일상적 감정, 욕망 등임. 마찬가지로 도덕 본성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행동을 제어하는 모든 마음의 활동도 사람의 기임</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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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단칠정 논쟁의 시작으로''' == | == '''다시, 사단칠정 논쟁의 시작으로''' == |
2022년 10월 5일 (수) 00:11 판
조선 성리학의 주요 과제
☞ 윤사순, <<조선, 도덕의 성찰>>, 돌베개, 2010
○ "천인심성합일지도"라는 제목 그 자체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이 하늘, 만물과 하나라는 점에 주목했음
○ 권근은 '인(人)'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인(人)은 인(仁)이다"라고 해석했음
=> 인(仁)은 공자에게 "사람을 사랑하는 것[애인(愛人)]"으로 설명된 뒤에 성리학을 일으킨 정호(程顥, 1032~1085)는 우주의 입장에서 "생(生: 낳음)의 뜻"이라고 했음. 또 후에 주희(1130~1200)에 오면 인(仁)은 "만물을 낳는 이치[생물지리(生物之理)]" 또는 "만물을 낳는 본성[생물지성(生物之性)]"이라고 해석됨
=> 권근은 이러한 중국 성리학자들의 "사람에 대한 사랑"을 넘어선 "만물 생성의 특성(혹은 이치/본성)"을 가리키는 인(仁)의 의미를 인간을 이해하는 데 적용함. 즉 만물을 낳는 이치로서 인(仁)이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만큼 인간의 인간다움을 의미하는 인(仁)은 사람을 살리고 만물을 살리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음
☞ 그런데 이 선한 마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선의 근원, 본성 파악을 위한 천명 연구
- <중용(中庸)>에서 말한 인간 본성의 근원으로서의 천명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 본성]이라고 한다.[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 <중용>에서는 하늘이 명한[천명(天命)] 본성이 인간에게 구비되어 있다고 보았음
- 후대 중국 성리학들이 정의한 인간 본성
○ 후에 중국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구분했음. 기질지성은 기질로 인한 본성의 의미이고 본연지성은 사단과 관련된 인의예지의 본성임
추만 정지운의 <천명도>
○ 16세기 조선 성리학계를 대표하는 추만 정지운(1509~1561), 하서 김인후(1510~1560), 퇴계 이황(1501~1570), 고봉 기대승(1527~1572) 등은 모두 천명에 대한 연구에 열중했음. 이들은 다 <천명도>를 그렸는데 정지운은 그것에 대한 해설서인 <<천명도해(天命圖解)>>를 지었고, 이황도 같은 종류의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지었음
○ 천명에 대한 성리학적 연구, 그림과 해설을 통한 연구 방식은 다른 나라의 성리학계에서 볼 수 없는 특수한 현상임. 천명에 대한 그림을 통한 연구는 조선 성리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음
- 정지운의 <천명도>(고려대 소장 만송문고 <천명도해>)
- 이황의 <천명신도(天命新圖)>
☞ 퇴계는 자신의 <천명도>에 대해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이 <천명도>를 통해 진실로 천명이 자신에게 구비되어 있음을 알고 덕성을 존중하여 그것을 보존, 확충[존덕성(尊德性)]하고 믿고 따름을 극진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음. 그는 주렴계의 태극도설을 모델로 하면서도 천명을 하나의 권역으로 보고 순선한 성(性)과 그로부터 발현되는 사단칠정에 이르는 선의 일맥을 표현하고 있음 (이정환, <퇴계 <천명도설>과 <천명도>에 대한 철학적, 도상적 재검토>, <<퇴계학보>> 제135집, 2014, 9쪽)
사단칠정 논쟁의 시작
배경
○ <<퇴계집>>에 따르면, 추만 정지운이 그와 이웃에 살았는데 퇴계의 조카가 정지운의 <천명도>를 얻어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는데 그 도설과 해설에 고칠 곳을 발견하게 됨. 처음에는 누가 지은 것인지 모르다가 수소문 해서 그것이 정지운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됨
○ 특히 이 <천명도>에서 정지운이 "사단은 ‘이(理)’에서 발하며,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라고 작성했던 부분을 이황이 "사단은 ‘이(理)’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로 고치게 함
○ 이에 정지운도 이황의 견해를 따라 새로 <천명신도>를 작성하게 됨
○ 정지운이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에게 보여주었고 고봉은 이에 대해 비판함
○ 정지운이 고봉에게 <천명도>를 보여주었고, 고봉은 이에 대해 비판함. 이 비판이 여러 경로를 통해 퇴계의 귀에 들어가고, 퇴계(1501~1570)는 비판의 일부를 인정하면서 자신이 수정한 내용을 고봉에게 편지로 전달했음. 이후 10여 년간 약 10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쟁을 벌임
사단칠정논쟁을 살펴보기 전에 참고해야 할, 조선성리학의 기반인 주자학적 시각
☞ 이상호, <<사단칠정 자세히 읽기>>, 글항아리, 2011, 67~71쪽
○ 세상의 모든 존재가 이와 기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원칙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됨. 사람에게도 사람의 이치가 주어져 있으며 그러한 이치가 사람을 형성하는 다양한 속성들의 기와 만나 '나'라는 특수한 사람을 만듬
=> 모든 사물, 사건은 이와 기로 구성됨. 기는 모든 사물을 구성하는 재료이고 이(理)는 사물의 본질과 규칙임
천지간에는 이(理)도 있고, 기(氣)도 있다. 이는 형이상학적인 도며 사물을 생성하는 근본이다. 기는 형이하학적인 물질[기(器)]이며, 사물을 생성하는 도구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이 생성될 때는 반드시 리를 품수한 후에 성(性)이 생기고, 기를 품수한 뒤에 형(形)이 생긴다. 天地之間, 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是以人物之生, 必稟此理然後有性, 必稟此氣然後有形. (<<주문공문집>> 권58)
○ 사람에게 주어진 사람의 이치에 대해 주희는 맹자의 철학에 주목했음. 맹자는 모든 사람에게 선한 본성이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어서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음. 주자학은 "사람의 본성이 곧 하늘의 이치이다[성즉리(性卽理)."라고 보았음
☞ 여기서 필연적으로 드는 질문. 주자학과 조선 성리학의 공통적인 질문: 어째서 악이 생겨날까?
○ 인간의 본성은 이(理)이기 때문에 선할 수밖에 없는데 어째서 악이 생겨날까?
① 본연지성(천명지성): 천지의 이(理)를 품부받아 생긴 성(性). 하늘이 명한 성(性). 맹자가 선하다고 한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성(性)
② 기질지성: 인간은 이와 함께 기 또한 품부받음. 이 때 받은 기에 깃들어 있는 성. 이 육체적인 요소인 기의 작용에 의해 욕망이 발동되어 현실에서 악으로 흘러갈 수 있게 됨
☞ 여기서 관건은 인간의 마음
○ 주자학에서는 사람을 곧 마음으로 보았음. 사람의 마음[심(心)] 또한 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이와 기로 이루어져 있음
○ 인간의 마음이 성(性)과 정(情)을 총괄하고 주재한다고 보았음[심통성정(心統性情)]. 여기에서 성(性)은 이(理)임
○ 인간의 마음은 생각하고 느끼는 활동을 하지만 성(性)은 그렇지 못함. 인간의 성인 인, 의, 예, 지 4덕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작용을 할 수 없음. 인간 마음의 활동을 뜻하는 사람[마음]의 기의 영역은 인의예지가 표현되는 다양한 방식과 사람이 가진 일상적 감정, 욕망 등임. 마찬가지로 도덕 본성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행동을 제어하는 모든 마음의 활동도 사람의 기임
다시, 사단칠정 논쟁의 시작으로
☞ 이상호, <<사단칠정 자세히 읽기>>, 글항아리, 2011, 155~158쪽
○ 1558년 10월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이황(1501~1570)에게 갓 과거에 급제한 젊은 학자 기대승(1527~1572)이 찾아왔음. 당시 이황의 나이 58세였고 기대승은 32세였음. 이황이 정지운의 <<천명도설>>을 수정한 데 대해 세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고 기대승 역시 그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서울에 있는 이황을 찾았음
- 퇴계가 고봉에게 보낸 첫 편지
여러 동학들 사이에서 사단과 칠정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내 생각에도 지난번에 내가 말한 것에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마친 그대의 지적과 비판을 받고 보니 더욱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다음과 같이 고쳐 보았습니다.
=> "사단은 ‘이(理)’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를 "사단의 발함은 순수한 이(理)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함은 기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선악이 있습니다.[四端之發純理, 故無不善, 七情之發兼氣, 故有善惡]"로 바꿈
- 고봉이 퇴계에게 답한 편지
사단과 칠정의 구별이 있을 뿐 칠정 밖에 다시 사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만약 "사단은 이(理)에서 발하여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은 기에서 발하여 선과 악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이와 기가 갈라져서 두 가지가 되는 것이며 칠정이 성(性)에서 나오지 않고 사단이 기(氣)를 타지 않는 것이 되니, 말의 뜻에 병폐가 없을 수 없을뿐더러 후학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또 “사단의 발함은 순수한 리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함은 기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고 고치신다면 비록 앞의 말씀보다 약간 나은 것 같지만 저의 생각으로는 역시 타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 이는 기를 주재하고 기는 이의 재료이니 이 두 가지에는 원래 구분이 있으나 그것이 사물에 있어서는 사실 혼합되어 있어 나눌 수 없습니다. 다만 리는 약하고 기는 강하며 리는 조짐이 없고 기는 자취가 있기 때문에 유행하고 발현하는 사이에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과불급] 차이가 있게 됩니다. 이것이 칠정의 발함이 혹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여 성의 본체가 혹 온전하지 못함이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 선한 것은 바로 천명의 본연이고, 악한 것은 곧 기품의 과불급이니 이른바 사단, 칠정이란 것이 원래부터 별개의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