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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은 근대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임. 근대에는 유학적 도덕과 서구 근대적 문명이라는 보편문명 간의 충돌적 만남이 있었음. 문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근대적 지평에서 어떤 삶을 영위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었음
 
* 문명은 근대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임. 근대에는 유학적 도덕과 서구 근대적 문명이라는 보편문명 간의 충돌적 만남이 있었음. 문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근대적 지평에서 어떤 삶을 영위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었음
=> 위정척사사상: 낯선 문명에 대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 서양 문명을 배척하는 것이 곧 성리학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음. 강력한 타자인 성양에 대항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려 했음</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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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정척사사상: 낯선 문명에 대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 서양 문명을 배척하는 것이 곧 성리학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음. 강력한 타자인 서양에 대항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려 했음</br>
 
=> 개화론자: 서구 근대문명이 자연과학을 비롯한 학문 발달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들처럼 부강한 문명국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학문을 우선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음. 이들 개화파는 척사론을 비판했음. 문명화를 추구했던 개화파들에게 근대적 삶을 해명해주지 못하는 유학적 도덕의식을 고수하는 것은 무의미했기 때문임</br>
 
=> 개화론자: 서구 근대문명이 자연과학을 비롯한 학문 발달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들처럼 부강한 문명국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학문을 우선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음. 이들 개화파는 척사론을 비판했음. 문명화를 추구했던 개화파들에게 근대적 삶을 해명해주지 못하는 유학적 도덕의식을 고수하는 것은 무의미했기 때문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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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 개념을 통해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격변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한국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자각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음
 
* 주체 개념을 통해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격변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한국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자각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음
 
=> 예를 들어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C%9D%80%EC%8B%9D 박은식]은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의 사상적 전환을 통해 보편타자와 마주 선 주체 인식을 정립하고 그 토대 위에서 당면한 시대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유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음. 특히 '진아(眞我)'는 그의 사상의 중심 개념임. 그가 말한 진아란 사심, 사욕과 같은 사사로운 자의식이 없으며 양지의 본능을 주재로 삼고 개인적인 영예와 화복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지 않는 도덕적 주체임</br>
 
=> 예를 들어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C%9D%80%EC%8B%9D 박은식]은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의 사상적 전환을 통해 보편타자와 마주 선 주체 인식을 정립하고 그 토대 위에서 당면한 시대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유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음. 특히 '진아(眞我)'는 그의 사상의 중심 개념임. 그가 말한 진아란 사심, 사욕과 같은 사사로운 자의식이 없으며 양지의 본능을 주재로 삼고 개인적인 영예와 화복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지 않는 도덕적 주체임</br>
 
  
 
= '''오늘의 토론 주제(2022.11.21)''' =
 
= '''오늘의 토론 주제(2022.11.21)''' =

2023년 1월 8일 (일) 21:17 기준 최신판

☞ 박정심, <<한국근대사상사>>, 천년의 상상, 2016

유럽중심주의와 서구적 보편문명[편집 | 원본 편집]

근대라는 용어[편집 | 원본 편집]

  • '근대'라는 용어는 16세기에 처음 나타났는데 그 어원은 라틴어의 부사형 modo에서 기원한 것으로 최근, 지금, 당대라는 뜻이었음
  • 14~15세기 이후 프랑스혁명에 이르는 약 5세기동안의 '근대'는 지리상 발견으로 불리는 유럽 세계의 팽창, 르네상스, 종교개혁, 절대왕정의 성립과 붕괴라는 급격한 변화로 점철된 시기를 말함
  • 역사상의 근대는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하며 19~20세기 들어 개선, 만족, 효율 등과 거의 같은 의미를 띠게 되었음
  • 이성과 계몽을 축으로 한 서구적 근대성(modernity)은 유럽 근대사회의 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임. 계몽주의 철학은 이성과 합리성을 그 본질로 함. 인간 주체가 이성에 기초해 자기 바깥세계를 합리적으로 파악하고 역사를 진보, 발전시킨다는 논리가 서구 근대사회의 핵심 기반이었음
  • 개인을 발견했다는 측면에서 근대는 인간해방의 시대였음. 하지만 동일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성과 계몽의 보편성은 억압의 기제로 작동했음. 서구와 같은 이성의 역사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은 문명성의 부재를 의미하였기 때문에 곧 야만으로 환치되었으며 정체성에 대한 강요와 왜곡을 낳았음

보편 문명으로서의 서구[편집 | 원본 편집]

  • 문명화(civilization)는 유럽 근대의 산물로 18~19세기 유럽문명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개념이었음
  • 문명은 생활의 모든 영역, 즉 국가와 사회, 경제와 기술, 법률과 종교와 도덕 등을 포괄하는 또는 개인과 공동체 모두와 관련을 맺는 총체적 개념으로 사용되었음
  • 문명에 대한 유럽인의 자긍심은 곧 미개하고 야만적인 타자, 즉 유럽의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타자들을 문명화해야 한다는 '백인의 의무'로 직결되었음


유럽, 시공간적 중심성[편집 | 원본 편집]

  • 근대적 시간 개념을 상징적으로 표상해주는 기계는 시계와 기차였음
  • 분초 단위로 근대인의 일상을 통제할 수 있었던 기계식 시간이 인간의 사고와 행위를 제어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은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 공장 노동자의 출퇴근시간 및 노동시간 통제는 물론 학교 또한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였음
  •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학교에서 근대적 시간을 적극 도입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음

참고: 한국 근대 시간의 도입

  • 근대적 시간이 자리잡으면서 '신구(新舊)'라는 개념적 규정이 탄생했음. '신구'란 단순히 시간적 선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됨[구(舊)]'은 낡아서 쓸모없으므로 버려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음. 반면 '새로움'은 물 건너서 온 건 유용한 것이므로 우리가 수용해야 할 선진문물임
  • 근대적 시간 개념을 도입한다는 것은 그리니치 천문대를 중심으로 편제된 근대적 시간성에 편입되는 것이며 동시에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직선적 시간관을 용인한다는 의미였음. 시간이 계절적 리듬에 종속되는 농경사회의 순환적 시간관에서 벗어나 이제 과거와 미래는 서로 대등한 의미와 길이를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과거란 다시 오지 않는 것이므로 시간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서만 달려가는 것이 되었음
  • 중화주의가 지리적, 종족적, 문화적 공간의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듯, 조선 후기 서양의 천문, 지리학이 지리적 인식뿐 아니라 '천하에서 세계로' 시선을 전환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듯 지리적 공간은 인간의 의식적 사고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역사적 의미 또한 강하게 내포했음
  • 천하는 지구적 '세계'의 일부분으로 편입되었고 중국은 지나(支那)라는 지역적 용어로 격하되었음. 대신에 근대 유럽 혹은 서양이 우리가 문명화를 통해 도달해야 할 공간이 되었음

=> 서양은 시공간적으로 새로운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근대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치를 표상하면서 확산되었음


동양 개념의 등장[편집 | 원본 편집]

  • 동양(oriental)은 서양에 대한 동양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도 포함된 아시아권을 뜻함. 유럽이란 단어의 어원은 고대 아시리아어의 어둠(ereb)으로 곧 해가 지는 땅이란 뜻이었으며 아시아의 어원 아슈(assu)는 일출을 의미했음. 그렇다면 동양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동쪽을 일컬음
  • 그러나 일본에 의해 번역된 동양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을 가리키는 지리적 개념이었을 뿐 아니라 서양의 타자를 의미하는 개념이었음. 아편전쟁(1839~1842)을 시작으로 해체되기 시작하여, 청일전쟁을 거치면서 중화주의가 해체되면서 일본은 동양의 맹주로 자처하면서 무너진 중화 체제를 대신하고자 했음. 영국처럼 제국이 되고 싶었던 일본은 아시아의 영국이 되려고 했으며 유럽과 '다른' 자신을 '동양'이라고 인식했음
  • 조선에서의 동양 개념의 등장

☞ 김윤희, <1909년 대한제국 사회의 '동양' 개념과 그 기원: 신문 매체의 의미화 과정을 중심으로>, <<개념과 소통>> 4,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2009

○ 1897~1898년 <<독립신문>>에서는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 세력이 동양의 세력 범위에 점차 침투하여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여러 부문을 지배함)의 상황에서 동양 삼국이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음. 서양 사람들이 아메리카의 적색인종을 멸망시키고, 아프리카의 흑색인종을 종으로 삼고, 아세아의 갈색인종을 그들의 호령 아래 두었다고 하면서 "오직 조선과 일본과 청국의 황색인종이 아직 그중 안에 들지 않았다"고 하여 황인종의 범위를 동양 삼국에 한정이었음
=> 이때 동양은 인종, 글자, 풍속의 동질성을 가진 세 국가의 연대 단위를 의미하는 것이었음

○ 비슷한 시기, 서양문명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던<<독립신문>>과 같은 문명개화론자들은 동양은 서양의 침략에 대응해야 하는 공동의 이해를 가진, 함께 문명화를 달성해야 하는 동양 삼국의 의미를 지녔음. 따라서 이들은 서양의 침략에 대한 방어 또는 군사, 경제력의 발전 등과 같은 현실적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연대를 구상했음


한국 근대, 자신을 사유하다[편집 | 원본 편집]

다음의 이 말에 동의하나요?
 자연이 자연인 것은 스스로 이해한 삶이 없기 때문이며 인간이 인간인 것은 스스로 이해한 삶을 갖기 때문이다. 근대란 유럽인들의 삶의 이해이다. 그런 까닭에 엄밀한 의미에서 동양에는 근대가 없다. 근대화란 말은 있되 근대란 없다. 있다면 그것은 모방이다. 우리의 근대는 유럽과는 전혀 이질적인 환경세계를 유럽적으로 바꾸어내려는 의지이며 그 흔적일 뿐이다.
 -이성환, <근대와 탈근대>, <<모더니티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7, 153~154쪽
다음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서구적 근대 자체가 우리에게 야누스적 타자여서, 거듭 말하지만 근대는 수용과 모방의 역사인 동시에 저항과 충돌의 역사이기도 했다. 근대 이후 역사가 타자적 자기인식에서 유래했다면 우린 여전히 타자중심적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주체적 자기인식이란 불가능하다.
 우리의 비극은 보편으로 가장된 서구적 문맥과 인식 틀을 준거로 삼아 우리의 문화적 텍스트들을 해독하려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결핍된 타자로서의 자기인식과 비주체적 세계인식을 넘어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자신의 문화적 텍스트를 그것이 만들어지고 형상화되어온 문화적 문법으로서의 사상적,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인식론적 전환이다.
 ...
 주체는 스스로 누구인지 그리고 주체와 마주 선 타자는 또 누구인지 물으며, 동시에 타자의 물음에 귀 기울이고 그에 답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 근대의 주체 또한 당대의 현실에서 '생성'되었으며 자신의 삶을 추동해나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정심, <<한국근대사상사>>, 천년의 상상, 2016, 55~56쪽


한국 근대 주체와 관련된 문제들[편집 | 원본 편집]

☞ 박정심, <<한국근대사상사>>, 천년의 상상, 2016

  • 근대적 문명성을 수용하는 문제와 마주했음. 한국은 중화적 질서에서 벗어나 동양의 중심으로 등장한 일본,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서양과 새로운 관계 맺음을 이루어나가야만 했음
  • 식민지 조선민족은 백인문명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에서는 황인종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했음. 더러는 인종적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백인우월주의적 허위의식을 비판할 수 있는 논리를 새롭게 구축하기도 했음.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속에서 그들과 구별되는 민족의식이 성장했음
  • 서구중심주의나 친일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 시선으로 그들과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주체성 정립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음. 서구적 근대에 매몰되지 않는 한국 근대는 민족적 근대주체를 정립하는 것에서 시작했음


한국 근대를 이해하는 핵심 주제어: 문명, 민족(인종), 주체[편집 | 원본 편집]

  • 문명은 근대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임. 근대에는 유학적 도덕과 서구 근대적 문명이라는 보편문명 간의 충돌적 만남이 있었음. 문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근대적 지평에서 어떤 삶을 영위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었음

=> 위정척사사상: 낯선 문명에 대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 서양 문명을 배척하는 것이 곧 성리학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음. 강력한 타자인 서양에 대항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려 했음
=> 개화론자: 서구 근대문명이 자연과학을 비롯한 학문 발달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들처럼 부강한 문명국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학문을 우선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음. 이들 개화파는 척사론을 비판했음. 문명화를 추구했던 개화파들에게 근대적 삶을 해명해주지 못하는 유학적 도덕의식을 고수하는 것은 무의미했기 때문임

  • 민족 개념은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자장 속에서 생성된 근대적 삶의 지평을 제국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전개되었음. 사회다윈주의는 국가주의 및 인종주의와 결합하여 국가를 하나의 혈연적 공동체로 인식했음. 인종주의는 사회다윈주의와 결합함으로써 백인우월주의와 제국주의 침략의 생물학적 토대가 되었음. 근대 인종주의는 생물학적 구분을 넘어서 인종적 차별과 문화적 편견을 동반한 하나의 신화로 작동했음

=> 일례로 윤치호는 조선이 야만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근본 원인이 유학 숭상에 있다고 보았으며 인종적, 문명적 열등의식을 지니고 있었음. 이는 같은 황인종임에도 불구하고 문명화에 성공한 일본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이어졌음. 한국이 강대국의 식민지가 될 수박에 없다면 영국에 종숙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미개 상태에 있다가 개화로 나아간 일본을 본받아 뒤따르는 것이 좋다고 했음

  • 주체 개념을 통해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격변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한국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자각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음

=> 예를 들어 박은식은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의 사상적 전환을 통해 보편타자와 마주 선 주체 인식을 정립하고 그 토대 위에서 당면한 시대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유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음. 특히 '진아(眞我)'는 그의 사상의 중심 개념임. 그가 말한 진아란 사심, 사욕과 같은 사사로운 자의식이 없으며 양지의 본능을 주재로 삼고 개인적인 영예와 화복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지 않는 도덕적 주체임

오늘의 토론 주제(2022.11.21)[편집 | 원본 편집]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나는 누구인가를 살펴볼 때 여전히 근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벗어났다고 생각하나요?

※ 참고: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의 "한국인은 왜 독립적 사고를 못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