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35번째 줄: | 35번째 줄: | ||
= 삼국유사에 담긴 단군신화 = | = 삼국유사에 담긴 단군신화 = | ||
− | == | + | == 강원도와도 인연이 깊은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 == |
* '''이 곳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 * '''이 곳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 ||
43번째 줄: | 43번째 줄: | ||
☞ [https://www.google.com/maps/place/%EC%A7%84%EC%A0%84%EC%82%AC/@38.1231113,128.5429396,17z/data=!3m1!4b1!4m5!3m4!1s0x5fd8a5b71b244029:0xeda8b865223eef8f!8m2!3d38.1231071!4d128.5451336?hl=ko 양양 진전사 위치] | ☞ [https://www.google.com/maps/place/%EC%A7%84%EC%A0%84%EC%82%AC/@38.1231113,128.5429396,17z/data=!3m1!4b1!4m5!3m4!1s0x5fd8a5b71b244029:0xeda8b865223eef8f!8m2!3d38.1231071!4d128.5451336?hl=ko 양양 진전사 위치] | ||
+ | |||
+ | * '''일연 스님(1206~1289)이 삼국유사를 지은 까닭?'''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5, 9~) | ||
+ | ○ 고려시대 스님임.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9세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공부를 위해 전남 광주의 무등산 자락에 있는 무량사로 들어갔고, 14세 때 승려가 되기 위해 강원도 양양에 있는 진전사로 갔음<br/> | ||
+ | ○ 일연은 당시 고려 전기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지나친 사대주의로 일관해 중국 문화의 주변 혹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의식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음<br/> | ||
+ | ○ 고려가 떠받들던 중국 송나라가 망하고 중국인들이 그토록 무시하던 몽골족이 새롭게 원나라를 세운 사실은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음<br/> | ||
+ | ○ 사실상 일연의 삶은 몽골의 침략에 따른 내정 간섬과 상당히 관련되어 있음<br/> | ||
+ | ○ 그러나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민족 자주적 입장에 서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버금갈 만한 유구한 역사 민족임을 드러내려 했음<br/> | ||
+ | ○ 일연은 기존의 유교의 도덕적 사관에 의해 서술된 [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A%B5%AD%EC%82%AC%EA%B8%B0 <<삼국사기>>]를 편협한 시각에서 저술된 것이라고 판단했음. 그의 역사서술 태도는 탈유가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것임. 그의 민중 의식은 인간 평등이라는 자신의 불교적 가치관을 근본으로 하면서 피폐한 당시 사회에 대두된 민중에 대한 자각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음 |
2022년 3월 7일 (월) 14:11 판
단군신화
- 이곳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 태백산 천제단
- 외래 종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 민족은 어디서 빌고 기도했을까? (임선영, 정성식, 황광욱 지음, <한국철학, 화두로 읽는다>, 동녁, 1999, 16~17쪽)
얼핏 생각해 보면 장독대가 있고 마을 어귀의 장승, 산 중턱의 당나무, 솟대 그리고 산 정상 등이 떠오른다. 여러 기도하는 곳 가운데 가장 권위 있으며 온 나라, 온 민족의 발원을 모으는 장소는 아무래도 산 정상인 것 같다. 왜냐하면 산 정상에서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대상을 '하늘'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최초의 기도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항상 신웅(神雄)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 곰 여자가 단수(檀樹) 아래에서 잉태가 있기를 빌고 빌었다."
강화도 마리산(마니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불교의 영향이다. '마리'는 '머리'의 변형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으뜸산이라는 의미에서 마리산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강원도 태백산 등 마을과 동네 어귀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여지없이 기도터였다. 그런 산들은 대개 '대, 태, 백, 우, 수, 머리' 같은 이름과 뜻을 가지고 있다.
- 단군신화에 담긴 상징들 (임선영, 정성식, 황광욱 지음, <한국철학, 화두로 읽는다>, 동녁, 1999, 19쪽)
"단군 이야기는 상징 체계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인·환웅은 하늘 또는 하늘적 존재를 상징하고, 곰·호랑이는 땅 또는 땅적 존재를 상징한다. 여기에서의 하늘은 물론 물리적인 하늘이 아니라 정신·영혼·도덕성의 근원·생명의 씨·아버지·양(陽)을 나타내고 땅은 육체·물질·생명의 터·어머니·음(陰)을 나타낸다."
삼국유사에 담긴 단군신화
강원도와도 인연이 깊은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
- 이 곳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 일연 스님(1206~1289)이 삼국유사를 지은 까닭?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5, 9~)
○ 고려시대 스님임.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9세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공부를 위해 전남 광주의 무등산 자락에 있는 무량사로 들어갔고, 14세 때 승려가 되기 위해 강원도 양양에 있는 진전사로 갔음
○ 일연은 당시 고려 전기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지나친 사대주의로 일관해 중국 문화의 주변 혹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의식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음
○ 고려가 떠받들던 중국 송나라가 망하고 중국인들이 그토록 무시하던 몽골족이 새롭게 원나라를 세운 사실은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음
○ 사실상 일연의 삶은 몽골의 침략에 따른 내정 간섬과 상당히 관련되어 있음
○ 그러나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민족 자주적 입장에 서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버금갈 만한 유구한 역사 민족임을 드러내려 했음
○ 일연은 기존의 유교의 도덕적 사관에 의해 서술된 <<삼국사기>>를 편협한 시각에서 저술된 것이라고 판단했음. 그의 역사서술 태도는 탈유가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것임. 그의 민중 의식은 인간 평등이라는 자신의 불교적 가치관을 근본으로 하면서 피폐한 당시 사회에 대두된 민중에 대한 자각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