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인간본성론: 공자(2)"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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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 3.14 토론 결과 = * '''지난 3.14 토론 결과 학우분들의 문제의식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 '''공자의 인간본성론의 의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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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style="color:#ff0000;">'''질문 1: 인간은 왜 인(仁)해야 하나?'''</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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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속 인(仁) =
  
☞ <span style="color:#ff0000;">'''질문 2: 왜 군자가 되어야 하나?'''</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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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子曰(자왈) 巧言令色(교언영색)이 鮮矣仁(선의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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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말을 교묘하게 하며 얼굴빛을 꾸미는 사람 가운데 드물도다, 어진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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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학이(學而)」)
  
☞ <span style="color:#ff0000;">'''질문 2: 소인은 뭐가 문제인가?'''</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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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子曰(자왈) 弟子入則孝(제자입즉효)하고 出則弟(출즉제)하며 謹而信(근이신)하며 汎愛衆(범애중)하되 而親仁(이친인)이니 行有餘力(행유여력)이어든 則以學文(즉이학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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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제자는 집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집을 나가면 공손하며 삼가고 미덥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을 친해야 하니 행하고서 남은 힘이 있으면 글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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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학이(學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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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子曰(자왈) “人而不仁(인이불인)이면 如禮何(여례하)며 人而不仁(인이불인)이면 如樂何(여악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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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면서 어질지 않으면 예는 무엇 하며, 사람이면서 어질지 않으면 음악은 무엇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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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팔일(八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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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子曰(자왈) “里仁(리인)이 爲美(위미)하니 擇不處仁(택불처인)이면 焉得知(언득지)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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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마을이 어진 것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어진 데 거처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지혜로움을 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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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이인(里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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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子曰(자왈) “不仁者(불인자)는 不可以久處約(불가이구처약)이며 不可以長處樂(불가이장처락)이라. 仁者(인자)는 安仁(안인)하고 知者(지자)는 利仁(리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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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어질지 않은 사람은 오랫동안 어려움에 거처하지 못하며 오랫동안 즐거움에 거처하지 못한다. 어진 사람은 어진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진 것을 이롭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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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리인(里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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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子曰(자왈) “唯仁者(유인자)라야 能好人(능호인)하며 能惡人(능오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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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사람을 좋아할 수 있으며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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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이인(里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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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子曰(자왈) “苟志於仁矣(구지어인의)면 無惡也(무악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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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만일 어진 데에 뜻을 둔다면 나쁜 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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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리인(里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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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子曰(자왈) “富與貴(부여귀)는 是人之所欲也(시인지소욕야)나 不以其道(불이기도)로 得之(득지)어든 不處也(불처야)하며 貧與賤(빈여천)이 是人之所惡也(시인지소오야)나 不以其道(불이기도)로 得之(득지)라도 不去也(불거야)니라. 君子去仁(군자거인)이면 惡乎成名(오호성명)이리오? 君子無終食之間(군자무종식지간)을 違仁(위인)이니 造次(조차)에 必於是(필어시)하며 顛沛(전패)에 必於是(필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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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차지하지 않으며, 가난함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더라도 떠나지 않는다. 군자가 인(仁)을 버리면 어디에서 군자라는 이름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사이에도 인을 떠남이 없으니 위급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 인에 의지하고 엎어지는 때에도 반드시 이 인에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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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이인(里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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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子曰(자왈) “回也(회야)는 其心(기심)이 三月不違仁(삼월불위인)이오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기여즉일월지언이이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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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인에 이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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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옹야(雍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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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子曰(자왈) “知者(지자)는 樂水(요수)하고 仁者(인자)는 樂山(요산)이니 知者(지자)는 動(동)하고 仁者(인자)는 靜(정)하며 知者(지자)는 樂(낙)하고 仁者(인자)는 壽(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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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니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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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옹야(雍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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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夫仁者(부인자)는 己欲立而立人(기욕립이립인)하며 己欲達而達人(기욕달이달인)이니라. 能近取譬(능근취비)면 可謂仁之方也已(가위인지방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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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며,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하게 한다. 가까운 데에서 취하여 비유할 수 있으면 인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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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옹야(雍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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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子曰(자왈) “志於道(지어도)하며 據於德(거어덕)하며 依於仁(의어인)하며 游於藝(유어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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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도에 뜻을 두며 덕에 근거하며 인에 의지하며 예에 노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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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술이(述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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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子曰(자왈) “仁遠乎哉(인원호재)아? 我欲仁(아욕인)이면 斯仁(사인)이 至矣(지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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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이에 인이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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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술이(述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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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子曰(자왈) “恭而無禮則勞(공이무례즉로)하고 慎而無禮則葸(신이무례즉시)하고 勇而無禮則亂(용이무례즉난)하고 直而無禮則絞(직이무례즉교)니라. 君子篤於親則民興於仁(군자독어친즉민흥어인)하고 故舊不遺則民不偷(고구불유즉민불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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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공손하지만 예가 없으면 수고롭게 되고, 삼가지만 예가 없으면 두려워하게 되고, 용감하지만 예가 없으면 혼란스럽고, 강직하지만 예가 없으면 조급하다. 군자가 친척에게 독실하게 대하면 백성들은 인에 흥기하고 오래 사귄 사람을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각박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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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태백(泰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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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顏淵(안연)이 問仁(문인)한대 子曰(자왈) “克己復禮爲仁(극기복례위인)이니 一日克己復禮(일일극기복례)면 天下歸仁焉(천하귀인언)하나니 爲仁(위인)이 由己(유기)니 而由人乎哉(이유인호재)아?” 顏淵曰(안연왈) “請問其目(청문기목)하노이다.” 子曰(자왈) “非禮勿視(비례물시)하며 非禮勿聽(비례물청)하며 非禮勿言(비례물언)하며 非禮勿動(비례물동)이니라.” 顏淵(안연)이 曰(왈) “回雖不敏(회수불민)이나 請事斯語矣(청사사언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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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니, 하루 동안이라도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로 말미암는 것이니, 남으로 말미암는 것이겠는가?” 안연이 말했다. “청컨대 그 조목을 묻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지만 이 말씀을 일삼아 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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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안연(顏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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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仲弓(중궁)이 問仁(문인)한대 子曰(자왈) “出門如見大賓(출문여견대빈)하며 使民如承大祭(사민여승대제)하고 己所不欲(기소불욕)을 勿施於人(물시어인)이니 在邦無怨(무방무원)하며 在家無怨(재가무원)이니라. 仲弓(중궁)이 曰(왈) 雍雖不敏(옹수불민)이나 請事斯語矣(청사사어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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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궁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문을 나갔을 때는 큰 손님을 본 듯이 하며,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고 집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 중궁이 말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지만, 이 말씀을 일삼아 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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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안연(顏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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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司馬牛問仁(사마우문인)한대 子曰(자왈) 仁者(인자)는 其言也訒(기언야인)이니라. 曰(왈) “其言也訒(기언야인)이면 斯謂之仁已乎(사위지인의호)잇가?” 子曰(자왈) “爲之難(위지난)하니 言之得無訒乎(언지득무인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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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우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어진 사람은 말을 조심한다.” “말을 조심하면 바로 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이것을 행하기가 어려우니 말을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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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안연(顏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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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樊遲問仁(번지문인)한대 子曰(자왈) “居處恭(거처공)하며 執事敬(집사경)하며 與人忠(여인충)이니라 雖之夷狄(수지이적)이라도 不可棄也(불가기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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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지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거처할 적에 공손히 하며, 일을 집행할 적에 경건히 하며, 사람을 대할 적에 진실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비록 이적(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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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헌문(憲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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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子曰(자왈) “君子道者三(군자도자삼)에 我無能焉(아무능언)하니 仁者(인자)는 不憂(불우)하고 知者(지자)는 不惑(불혹)하고 勇者(용자)는 不懼(불구)니라.” 子貢曰(자공왈) “夫子自道也(부자자도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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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군자의 도가 세 가지인데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진 사람은 걱정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의심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스스로 겸양하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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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헌문(憲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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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子曰(자왈) “志士仁人(지사인인)은 無求生以害仁(무구생이해인)이오 有殺身以成仁(유살신이성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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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선행에 뜻을 둔 사(士)와 어진 사람은 살기를 구해서 인을 해치는 경우가 없고 자기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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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위령공(衛靈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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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子貢(자공)이 問爲仁(문위인)한대 子曰(자왈) 工欲善其事(공욕선기사)인댄 必先利其器(필선리기기)니 居是邦也(거시방야)하여 事其大夫之賢者(사기대부지현자)하며 友其士之仁者(우기사지인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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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공이 인을 행하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기술자가 그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연장을 날카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 이 나라에 살면서 대부 가운데 현명한 사람을 섬기며 사(士) 가운데 어진 사람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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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위령공(衛靈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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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子曰(자왈) “知及之(지급지)라도 仁不能守之(인불능수지)면 雖得之(수득지)나 必失之(필실지)니라. 知及之(지급지)하며 仁能守之(인능수지)라도 不莊以涖之(부장이리지)면 則民不敬(즉민불경)이니라. 知及之(지급지)하며 仁能守之(인능수지)하며 莊以涖之(장이리지)라도 動之不以禮(동지불이례)면 未善也(미선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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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지혜가 그 지위에 걸맞더라도 인으로 지킬 수 없다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그 직위를) 잃는다. 지혜가 걸맞으며 인으로 지킬 수 있더라도 위엄으로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지혜가 걸맞으며 인으로 지킬 수 있으며 위엄으로 임하더라도 백성들을 예로 동원하지 않으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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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위령공(衛靈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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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子曰(자왈) “民之於仁也(민지어인야)에 甚於水火(심어수화)하니 水火(수화)는 吾見蹈而死者矣(오견도이사자의)어니와 未見蹈仁而死者也(미견도인이사자야)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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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인(仁)에 대하여 <필요함은> 물과 불보다도 심하니, 물과 불은 내 밟다가 죽는 자를 보았지만 인(仁)을 밟다가 죽는 자는 내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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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위령공(衛靈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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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子張(자장)이 問仁於孔子(문인어공자)한대 孔子曰(공자왈) 能行五者於天下(능행오자어천하)면 爲仁矣(위인의)니라 請問之(청문지)한대 曰(왈) 恭寬信敏惠(공관심니혜)니 恭則不侮(공즉불모)하고 寬則得衆(관즉득중)하고 信則人任焉(신즉인임언)하고 敏則有功(민즉유공)하고 惠則足以使人(혜즉족이사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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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장(子張)이 공자에게 인(仁)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행할 수 있으면 인(仁)이 된다.” 하셨다. 자장이 다섯 가지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말했다.  “공손함〔恭〕, 너그러움〔寬〕, 믿음〔信〕, 민첩함〔敏〕, 은혜로움〔惠〕 이니,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여러 사람들을 얻게 되고, 믿음이 있으면 남들이 의지하게 되고, 민첩하면 공이 있게 되고, 은혜로우면 충분히 남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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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양화(陽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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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style="color:#ff0000;">'''질문 1: 공자는 왜 인(仁)을 강조한 의도가 뭘까?'''</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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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style="color:#ff0000;">'''질문 2: 인간은 왜 인(仁)해야 하나?'''</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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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style="color:#ff0000;">'''질문 3: 왜 군자가 되어야 하나?'''</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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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style="color:#ff0000;">'''질문 4: 소인은 뭐가 문제인가?'''</span></br>

2023년 3월 16일 (목) 15:20 판

3.14 토론 결과

  • 지난 3.14 토론 결과 학우분들의 문제의식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공자의 인간본성론의 의도와 목적이 뭘까?
  2. 악인들 개개인의 교화 가능성 시각 vs 좋은 정치적/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각 중에 공자는 어느 쪽일까?
  3. 결국 선악을 이야기할 때 늘 문제가 되는 건 악임(근데 악과 불선의 차이는?)
  4. 그런데 논어에서 공자는 정작 악보다 선에 대해 더 많이 얘기했음. 왜?
  5.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우리 일상속에서 마주하는 우리 내면 속 선/악의 문제가 아닐까? 악은 어쩌면 그렇게 거창한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악은 내가 맡은 본분을 다하지 않는 것, 게으름 등이 아닐까? 이렇게 되면 악의 문제가 정작 나의 문제가 되는 게 아닐까?
  6. 그렇다면 악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나? 악의 극복의 문제
  7. 악을 왜 극복해야 하나? 선이 좋은 건가? 왜 선이 좋나?
  8. 타고난 선과 배우는 선의 차이? 관계? 선을 배운다는 게 어떻게 배운다는 거냐?

이들 문제의식들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논어 속 인(仁), 군자, 소인에 관한 이야기들 속에서 찾아볼까요?


논어 속 인(仁)

1. 子曰(자왈) 巧言令色(교언영색)이 鮮矣仁(선의인)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말을 교묘하게 하며 얼굴빛을 꾸미는 사람 가운데 드물도다, 어진 사람이!”
    (『논어』 「학이(學而)」)


 2. 子曰(자왈) 弟子入則孝(제자입즉효)하고 出則弟(출즉제)하며 謹而信(근이신)하며 汎愛衆(범애중)하되 而親仁(이친인)이니 行有餘力(행유여력)이어든 則以學文(즉이학문)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제자는 집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집을 나가면 공손하며 삼가고 미덥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을 친해야 하니 행하고서 남은 힘이 있으면 글을 배운다.”
    (『논어』 「학이(學而)」)


 3. 子曰(자왈) “人而不仁(인이불인)이면 如禮何(여례하)며 人而不仁(인이불인)이면 如樂何(여악하)오.”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면서 어질지 않으면 예는 무엇 하며, 사람이면서 어질지 않으면 음악은 무엇 하겠는가?”
    (『논어』 「팔일(八佾)」)


 4. 子曰(자왈) “里仁(리인)이 爲美(위미)하니 擇不處仁(택불처인)이면 焉得知(언득지)리오?
   공자가 말했다. “마을이 어진 것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어진 데 거처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지혜로움을 얻겠는가?”
    (『논어』 「이인(里仁)」)


 5. 子曰(자왈) “不仁者(불인자)는 不可以久處約(불가이구처약)이며 不可以長處樂(불가이장처락)이라. 仁者(인자)는 安仁(안인)하고 知者(지자)는 利仁(리인)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어질지 않은 사람은 오랫동안 어려움에 거처하지 못하며 오랫동안 즐거움에 거처하지 못한다. 어진 사람은 어진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진 것을 이롭게 여긴다.”
    (『논어』 「리인(里仁)」)


 6. 子曰(자왈) “唯仁者(유인자)라야 能好人(능호인)하며 能惡人(능오인)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사람을 좋아할 수 있으며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논어』 「이인(里仁)」)


 7. 子曰(자왈) “苟志於仁矣(구지어인의)면 無惡也(무악야)니라.”
   공자가 말했다. “만일 어진 데에 뜻을 둔다면 나쁜 점이 없을 것이다.”
    (『논어』 「리인(里仁)」)


 8. 子曰(자왈) “富與貴(부여귀)는 是人之所欲也(시인지소욕야)나 不以其道(불이기도)로 得之(득지)어든 不處也(불처야)하며 貧與賤(빈여천)이 是人之所惡也(시인지소오야)나 不以其道(불이기도)로 得之(득지)라도 不去也(불거야)니라. 君子去仁(군자거인)이면 惡乎成名(오호성명)이리오? 君子無終食之間(군자무종식지간)을 違仁(위인)이니 造次(조차)에 必於是(필어시)하며 顛沛(전패)에 必於是(필어시)니라.
   공자가 말했다.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차지하지 않으며, 가난함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더라도 떠나지 않는다. 군자가 인(仁)을 버리면 어디에서 군자라는 이름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사이에도 인을 떠남이 없으니 위급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 인에 의지하고 엎어지는 때에도 반드시 이 인에 의지한다.”
    (『논어』 「이인(里仁)」)


 9. 子曰(자왈) “回也(회야)는 其心(기심)이 三月不違仁(삼월불위인)이오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기여즉일월지언이이의)니라.”
   공자가 말했다.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인에 이를 따름이다.”
    (『논어』 「옹야(雍也)」)
 10. 子曰(자왈) “知者(지자)는 樂水(요수)하고 仁者(인자)는 樂山(요산)이니 知者(지자)는 動(동)하고 仁者(인자)는 靜(정)하며 知者(지자)는 樂(낙)하고 仁者(인자)는 壽(수)니라.
    공자가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니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논어』 「옹야(雍也)」)


 11. 夫仁者(부인자)는 己欲立而立人(기욕립이립인)하며 己欲達而達人(기욕달이달인)이니라. 能近取譬(능근취비)면 可謂仁之方也已(가위인지방야이)니라.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며,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하게 한다. 가까운 데에서 취하여 비유할 수 있으면 인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 「옹야(雍也)」)


 12. 子曰(자왈) “志於道(지어도)하며 據於德(거어덕)하며 依於仁(의어인)하며 游於藝(유어예)니라.
    공자가 말했다. “도에 뜻을 두며 덕에 근거하며 인에 의지하며 예에 노닐어야 할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
 13. 子曰(자왈) “仁遠乎哉(인원호재)아? 我欲仁(아욕인)이면 斯仁(사인)이 至矣(지의)니라.”
    공자가 말했다.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이에 인이 이르는 것이다.”
    (『논어』 「술이(述而)」)
 14. 子曰(자왈) “恭而無禮則勞(공이무례즉로)하고 慎而無禮則葸(신이무례즉시)하고 勇而無禮則亂(용이무례즉난)하고 直而無禮則絞(직이무례즉교)니라. 君子篤於親則民興於仁(군자독어친즉민흥어인)하고 故舊不遺則民不偷(고구불유즉민불투)니라.”
    공자가 말했다. “공손하지만 예가 없으면 수고롭게 되고, 삼가지만 예가 없으면 두려워하게 되고, 용감하지만 예가 없으면 혼란스럽고, 강직하지만 예가 없으면 조급하다. 군자가 친척에게 독실하게 대하면 백성들은 인에 흥기하고 오래 사귄 사람을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각박해지지 않는다.”
    (『논어』 「태백(泰伯)」)


 15. 顏淵(안연)이 問仁(문인)한대 子曰(자왈) “克己復禮爲仁(극기복례위인)이니 一日克己復禮(일일극기복례)면 天下歸仁焉(천하귀인언)하나니 爲仁(위인)이 由己(유기)니 而由人乎哉(이유인호재)아?” 顏淵曰(안연왈) “請問其目(청문기목)하노이다.” 子曰(자왈) “非禮勿視(비례물시)하며 非禮勿聽(비례물청)하며 非禮勿言(비례물언)하며 非禮勿動(비례물동)이니라.” 顏淵(안연)이 曰(왈) “回雖不敏(회수불민)이나 請事斯語矣(청사사언의)리이다.”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니, 하루 동안이라도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로 말미암는 것이니, 남으로 말미암는 것이겠는가?” 안연이 말했다. “청컨대 그 조목을 묻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지만 이 말씀을 일삼아 행하겠습니다.”
    (『논어』 「안연(顏淵)」)


 16. 仲弓(중궁)이 問仁(문인)한대 子曰(자왈) “出門如見大賓(출문여견대빈)하며 使民如承大祭(사민여승대제)하고 己所不欲(기소불욕)을 勿施於人(물시어인)이니 在邦無怨(무방무원)하며 在家無怨(재가무원)이니라. 仲弓(중궁)이 曰(왈) 雍雖不敏(옹수불민)이나 請事斯語矣(청사사어의)리이다.”
   중궁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문을 나갔을 때는 큰 손님을 본 듯이 하며,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고 집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 중궁이 말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지만, 이 말씀을 일삼아 행하겠습니다.”
    (『논어』 「안연(顏淵)」)


 17. 司馬牛問仁(사마우문인)한대 子曰(자왈) 仁者(인자)는 其言也訒(기언야인)이니라. 曰(왈) “其言也訒(기언야인)이면 斯謂之仁已乎(사위지인의호)잇가?” 子曰(자왈) “爲之難(위지난)하니 言之得無訒乎(언지득무인호)아?”
   사마우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어진 사람은 말을 조심한다.” “말을 조심하면 바로 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이것을 행하기가 어려우니 말을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논어』 「안연(顏淵)」)


 18. 樊遲問仁(번지문인)한대 子曰(자왈) “居處恭(거처공)하며 執事敬(집사경)하며 與人忠(여인충)이니라 雖之夷狄(수지이적)이라도 不可棄也(불가기야)니라.”
   번지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거처할 적에 공손히 하며, 일을 집행할 적에 경건히 하며, 사람을 대할 적에 진실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비록 이적(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논어』 「헌문(憲問)」)


 19. 子曰(자왈) “君子道者三(군자도자삼)에 我無能焉(아무능언)하니 仁者(인자)는 不憂(불우)하고 知者(지자)는 不惑(불혹)하고 勇者(용자)는 不懼(불구)니라.” 子貢曰(자공왈) “夫子自道也(부자자도야)라.”
   공자가 말했다. “군자의 도가 세 가지인데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진 사람은 걱정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의심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스스로 겸양하신 말씀이다.”
    (『논어』 「헌문(憲問)」)


 20. 子曰(자왈) “志士仁人(지사인인)은 無求生以害仁(무구생이해인)이오 有殺身以成仁(유살신이성인)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선행에 뜻을 둔 사(士)와 어진 사람은 살기를 구해서 인을 해치는 경우가 없고 자기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21. 子貢(자공)이 問爲仁(문위인)한대 子曰(자왈) 工欲善其事(공욕선기사)인댄 必先利其器(필선리기기)니 居是邦也(거시방야)하여 事其大夫之賢者(사기대부지현자)하며 友其士之仁者(우기사지인자)니라.
    자공이 인을 행하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기술자가 그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연장을 날카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 이 나라에 살면서 대부 가운데 현명한 사람을 섬기며 사(士) 가운데 어진 사람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22. 子曰(자왈) “知及之(지급지)라도 仁不能守之(인불능수지)면 雖得之(수득지)나 必失之(필실지)니라. 知及之(지급지)하며 仁能守之(인능수지)라도 不莊以涖之(부장이리지)면 則民不敬(즉민불경)이니라. 知及之(지급지)하며 仁能守之(인능수지)하며 莊以涖之(장이리지)라도 動之不以禮(동지불이례)면 未善也(미선야)니라.”
   공자가 말했다. “지혜가 그 지위에 걸맞더라도 인으로 지킬 수 없다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그 직위를) 잃는다. 지혜가 걸맞으며 인으로 지킬 수 있더라도 위엄으로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지혜가 걸맞으며 인으로 지킬 수 있으며 위엄으로 임하더라도 백성들을 예로 동원하지 않으면 좋지 않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23. 子曰(자왈) “民之於仁也(민지어인야)에 甚於水火(심어수화)하니 水火(수화)는 吾見蹈而死者矣(오견도이사자의)어니와 未見蹈仁而死者也(미견도인이사자야)로라.”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인(仁)에 대하여 <필요함은> 물과 불보다도 심하니, 물과 불은 내 밟다가 죽는 자를 보았지만 인(仁)을 밟다가 죽는 자는 내 보지 못하였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24. 子張(자장)이 問仁於孔子(문인어공자)한대 孔子曰(공자왈) 能行五者於天下(능행오자어천하)면 爲仁矣(위인의)니라 請問之(청문지)한대 曰(왈) 恭寬信敏惠(공관심니혜)니 恭則不侮(공즉불모)하고 寬則得衆(관즉득중)하고 信則人任焉(신즉인임언)하고 敏則有功(민즉유공)하고 惠則足以使人(혜즉족이사인)이니라.
    자장(子張)이 공자에게 인(仁)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행할 수 있으면 인(仁)이 된다.” 하셨다. 자장이 다섯 가지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말했다.  “공손함〔恭〕, 너그러움〔寬〕, 믿음〔信〕, 민첩함〔敏〕, 은혜로움〔惠〕 이니,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여러 사람들을 얻게 되고, 믿음이 있으면 남들이 의지하게 되고, 민첩하면 공이 있게 되고, 은혜로우면 충분히 남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
    (『논어』 「양화(陽貨)」)


질문 1: 공자는 왜 인(仁)을 강조한 의도가 뭘까?

질문 2: 인간은 왜 인(仁)해야 하나?

질문 3: 왜 군자가 되어야 하나?

질문 4: 소인은 뭐가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