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인간본성론: 이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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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일 (수) 16:12 판
이고(李翺 774?~836)라는 인물
☞ 김용남, 『이고: 성리학의 개창자』,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5
☞ 네이버 탑재 『중국역대인명사전』 참조
- 한유(768~824)의 제자
- 한유와 함께 송대 성리학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됨
- 한유가 불교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평가받는 것과는 달리 불교 이론과 수양 방법을 어느 정도 수용한 것으로 평가받음
- 당시 특별한 인맥이나 기득권을 지니지 못했던 유학자들은 대개 과거를 통해 벼슬에 나아갔고 이고 역시 과거를 통해 벼슬자리에 나아갔음
- 그의 나이 20대 중반(25~27세 무렵)에 진사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음. 안록산의 난 이후 무너진 사회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그에게는 급선무의 과제였음. 동요하는 민심을 잠재우고 불교가 아닌 유교로 부응하는 것이 그의 과제였음
- 성격이 강직하고 급해 의론할 때 피하는 게 없어서 권력자들이 그의 학문은 존중했지만 과격한 것을 싫어해 오랫동안 승진하지 못했음. 나중에 ‘중서사인’이라는 관직까지 올랐음. 이 관직은 나라에 큰 일이 생겼을 때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여(익명) 장관과 차관급인 중서령과 중서시랑이 이를 읽고 다양한 의견을 취합해 황제에게 보고할 수 있도록 했음. 그렇게 해서 국가의 주요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하는 직책이었음
이고의 주요 철학적 주제: 복성(復性: 본성 회복하기)
☞ 김용남, 『이고: 성리학의 개창자』,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5, 68쪽
☞ 원문출처: https://zh.wikisource.org/wiki/%E5%BE%A9%E6%80%A7%E6%9B%B8
- 이고의 존재 이유는 성인이 되는 데 있었음. 성인이 된다는 것은 욕망의 삶으로 인해 야기되는 고통이 극복되는 것임.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임. 행봉한 삶은 곧 순수한 본성의 삶을 살 때만 가능하기 때문임. 이것이 이고의 복성론의 핵심임
- 이고의 「복성서(復性書)」는 이러한 이고의 복성론의 핵심을 담고 있음
1.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는 근거는 성(性) 때문이고, 사람이 자기 성(性)을 미혹시키는 것은 정(情) 때문이다.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 일곱 가지는 모두 정의 작용이다. 정으로 이미 어두워지면 성은 숨어버리지만 성의 허물은 아니다. 칠정이 순환하여 교대로 오기 때문에 성이 충만해질 수 없는 것이다. 물이 혼탁하게 되면 그 흐름도 맑지 않게 되고, 불이 연기를 내게 되면 그 빛은 밝지 않게 되지만, 그것은 물과 불이 맑고 밝게 하는 데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래가 섞이지 않으면 흐름은 곧 맑아지고, 연기가 무성하지 아니하면 빛은 곧 밝아진다. 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성은 충만할 것이다.
人之所以為聖人者,性也;人之所以惑其性者,情也。喜、怒、哀、懼、愛、惡、欲,七者皆情之所為也,情旣昏,性斯匿矣;非性之過也,七者循環而交來,故性不能充也。水之渾也,其流不清;火之煙也,其光不明;非水、火清明之過,沙不渾,流斯清矣;煙不鬱,光斯明矣;情不作,性斯充矣。
생각해 보면.. 파도는 왜 치는가? 그것이 바다의 본성인가? 원래 바다는 잔잔한가 요동치는가? 인간의 본성은 원래 고요한가 요동치는가?
- 이고가 본 성과 정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