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단군신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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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구문화에서 발굴된 토기는 고조선 전기 [https://www.google.com/maps/place/%EC%B2%AD%EC%B2%9C%EA%B0%95/@39.5947709,124.9568633,9z/data=!4m5!3m4!1s0x5fd5057bc126faf9:0x46e86fac2e6eaeea!8m2!3d39.5770274!4d125.4532935?hl=ko 청천강] 이남부터 한강 이북 지역에 크게 성행 사용되어 지금도 발굴되고 있는 고조선 전기문명의 특유의 토기형식인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4328 팽이형 토기]와 같은 모양임<br/> | ○ 대문구문화에서 발굴된 토기는 고조선 전기 [https://www.google.com/maps/place/%EC%B2%AD%EC%B2%9C%EA%B0%95/@39.5947709,124.9568633,9z/data=!4m5!3m4!1s0x5fd5057bc126faf9:0x46e86fac2e6eaeea!8m2!3d39.5770274!4d125.4532935?hl=ko 청천강] 이남부터 한강 이북 지역에 크게 성행 사용되어 지금도 발굴되고 있는 고조선 전기문명의 특유의 토기형식인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4328 팽이형 토기]와 같은 모양임<br/> | ||
○ 대문구문화에서 발굴된 팽이형 토기 윗부분에 새겨진 그림을 신용하는 아사달 문양이라고 보았음<br/> | ○ 대문구문화에서 발굴된 팽이형 토기 윗부분에 새겨진 그림을 신용하는 아사달 문양이라고 보았음<br/> | ||
− | [[파일:Sin.jpg|300px|아사달 설명]] | + | [[파일:Sin.jpg|300px|아사달 설명]]<br/> |
+ | ○ 신용하는 고조선이 한반도에서 건국된 후 북으로는 요동, 요서 방면으로, 서로는 발해와 서해를 건너 산동, 하북, 하남 방면으로, 넘으로는 한강을 건너 한반도 남해안으로 확산되어 고조선문명권을 형성 발전시켜 간 것이라고 보기도 했음<br/> | ||
+ | -출처: 신용하, 「고조선 ' 아사달 ' 문양이 새겨진 산동 대문구문화 유물」, 『한국학보』 27권 1호, 일지사 2001 2~23쪽 |
2022년 3월 7일 (월) 22:48 판
<<삼국유사>> <기이>
★ 한국사데이터베이스_삼국유사 번역문을 볼 수 있는 사이트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5, 33쪽
'기이'란 기이한 것을 기록한다는 뜻이다. ... 특히 맨 첫머리에서도 드러나듯 일연의 <<삼국유사>> 찬술 의도와 서술 태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우리 개국 시조 단군의 존재를 처음으로 내세우면서 신이(神異)로움의 정당성과 비합리주의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으며 민족 자주적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국유사>> <기이>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 나라를 개창하여 조선(朝鮮)이라 했으니 고[高-요임금-]와 같은 시대이다."
- 아사달과 관련한 여러 논의들
- 고고학적 발굴과 아사달
☞ 출처: <<동아일보>> 2007.5.26일자, 신용하 교수 제공 사진
○ 대문구문화에서 발굴된 토기는 고조선 전기 청천강 이남부터 한강 이북 지역에 크게 성행 사용되어 지금도 발굴되고 있는 고조선 전기문명의 특유의 토기형식인 팽이형 토기와 같은 모양임
○ 대문구문화에서 발굴된 팽이형 토기 윗부분에 새겨진 그림을 신용하는 아사달 문양이라고 보았음
○ 신용하는 고조선이 한반도에서 건국된 후 북으로는 요동, 요서 방면으로, 서로는 발해와 서해를 건너 산동, 하북, 하남 방면으로, 넘으로는 한강을 건너 한반도 남해안으로 확산되어 고조선문명권을 형성 발전시켜 간 것이라고 보기도 했음
-출처: 신용하, 「고조선 ' 아사달 ' 문양이 새겨진 산동 대문구문화 유물」, 『한국학보』 27권 1호, 일지사 2001 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