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문고 유사정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An_SW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새 문서: == <<목은문고>> 제1권 <유사정기(流沙亭記)> == ☞ 번역문 출처: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Z&cate2...)
 
3번째 줄: 3번째 줄:
 
☞ 번역문 출처: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Z&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BT_0020A_0430_010_0030 한국고전종합DB]
 
☞ 번역문 출처: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Z&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BT_0020A_0430_010_0030 한국고전종합DB]
  
유사(流沙)는 우공(禹貢)에 그 지명이 기재되어 있으니, 성인의 명성과 교화가 그래도 미친 지역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것으로 정자의 이름을 삼기까지 하다니, 나로서는 그 뜻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유사(流沙)는 우공(禹貢)에 그 지명이 기재되어 있으니, 성인의 명성과 교화가 그래도 미친 지역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것으로 정자의 이름을 삼기까지 하다니, 나로서는 그 뜻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옛사람들이 한가로이 노닐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에 편액(扁額)을 내걸 때에는, 으레 유명한 산수(山水)를 가탁한다든가, 혹은 대표적인 선인(善人)이나 악인(惡人)을 게시하여 권선징악의 뜻을 보인다든가, 아니면 선대(先代)와 향리(鄕里)에서 그 이름을 취하여 근본을 잊지 않는 뜻을 붙이는 것이 관례이다.
+
  옛사람들이 한가로이 노닐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에 편액(扁額)을 내걸 때에는, 으레 유명한 산수(山水)를 가탁한다든가, 혹은 대표적인 선인(善人)이나 악인(惡人)을 게시하여 권선징악의 뜻을 보인다든가, 아니면 선대(先代)와 향리(鄕里)에서 그 이름을 취하여 근본을 잊지 않는 뜻을 붙이는 것이 관례이다.
따라서 유사(流沙)처럼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환경이 조악(粗惡)해서 중국의 인물이 배출되지 않음은 물론 배와 수레가 닿지 않는 곳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말하기조차 싫어하여 그 이름을 일컫는 것을 부끄러워할 텐데, 더구나 대서특필하여 출입문 사이에다 기재해 놓으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나의 형이 그런 이름을 붙인 이면에는 필시 범상치 않은 뜻이 들어 있으리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
  따라서 유사(流沙)처럼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환경이 조악(粗惡)해서 중국의 인물이 배출되지 않음은 물론 배와 수레가 닿지 않는 곳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말하기조차 싫어하여 그 이름을 일컫는 것을 부끄러워할 텐데, 더구나 대서특필하여 출입문 사이에다 기재해 놓으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나의 형이 그런 이름을 붙인 이면에는 필시 범상치 않은 뜻이 들어 있으리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천하는 광대한 것인 만큼 성인의 교화가 그에 비례하여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오히려 외적(外的)인 일이요, 사람의 몸이 비록 작긴 하지만 광대한 천하와 서로 함께할 수가 있으니, 이것은 우리의 내적(內的)인 일이다.
+
  천하는 광대한 것인 만큼 성인의 교화가 그에 비례하여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오히려 외적(外的)인 일이요, 사람의 몸이 비록 작긴 하지만 광대한 천하와 서로 함께할 수가 있으니, 이것은 우리의 내적(內的)인 일이다.
우선 외적인 일의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동쪽으로는 해가 뜨는 곳까지, 서쪽으로는 곤륜산(崑崙山)까지, 북쪽으로는 불모(不毛)의 지역까지, 남쪽으로는 눈이 내리지 않는 곳까지 성인의 교화가 다다르고 이르고 미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혼연일체가 되는 경우는 드문 반면에 분열 현상이 언제나 많이 일어나곤 하니, 내가 정말 마음속으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
  우선 외적인 일의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동쪽으로는 해가 뜨는 곳까지, 서쪽으로는 곤륜산(崑崙山)까지, 북쪽으로는 불모(不毛)의 지역까지, 남쪽으로는 눈이 내리지 않는 곳까지 성인의 교화가 다다르고 이르고 미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혼연일체가 되는 경우는 드문 반면에 분열 현상이 언제나 많이 일어나곤 하니, 내가 정말 마음속으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내적인 일의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힘줄과 뼈로 묶여 있는 우리의 육신과 성정(性情)의 미묘한 작용을 보이는 우리의 몸속에, 마음이라는 것이 자리하고서 우주를 포괄한 가운데 온갖 만물과 수작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그 마음은 어떠한 위무(威武)로도 분리시킬 수가 없고, 어떠한 지력(智力)으로도 꺾을 수가 없이, 외연(巍然)히 나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거하고 있다 할 것이다.
+
  그런데 내적인 일의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힘줄과 뼈로 묶여 있는 우리의 육신과 성정(性情)의 미묘한 작용을 보이는 우리의 몸속에, 마음이라는 것이 자리하고서 우주를 포괄한 가운데 온갖 만물과 수작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그 마음은 어떠한 위무(威武)로도 분리시킬 수가 없고, 어떠한 지력(智力)으로도 꺾을 수가 없이, 외연(巍然)히 나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거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외따로 떨어진 극지(極地)에 잠복하여 칩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가슴속의 도량(度量)으로 보면 성인의 교화를 받는 사방의 어떤 먼 곳까지도 내 마음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 형의 뜻도 사실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옛날에는 사방을 돌아다닐 뜻을 지닌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
  그렇다면 비록 외따로 떨어진 극지(極地)에 잠복하여 칩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가슴속의 도량(度量)으로 보면 성인의 교화를 받는 사방의 어떤 먼 곳까지도 내 마음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 형의 뜻도 사실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옛날에는 사방을 돌아다닐 뜻을 지닌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신축년(1361, 공민왕10) 겨울에 병화(兵禍)를 피해서 동쪽으로 가다가 처음으로 영해부(寧海府)에 발을 딛게 되었는데, 이곳은 나의 외가(外家)인 동시에 나의 형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해로 말하면 동쪽으로 대해(大海)와 맞닿아 일본(日本)과 이웃하고 있으니, 실로 우리 동국(東國)의 극동(極東)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하겠다. 지금 내가 다행히 한 모퉁이에 이르러서 동극(東極)을 극(極)할 수 있었고 보면 다른 모든 곳도 미칠 수가 있을 것인데, 하물며 이 동극과 서로 마주하고 있는 서극(西極)의 유사(流沙)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 누대 위에서 술잔을 들고 있을 적에 나에게 기문(記文)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에, 내가 흔쾌히 이와 같이 적게 되었다.
+
  신축년(1361, 공민왕10) 겨울에 병화(兵禍)를 피해서 동쪽으로 가다가 처음으로 영해부(寧海府)에 발을 딛게 되었는데, 이곳은 나의 외가(外家)인 동시에 나의 형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해로 말하면 동쪽으로 대해(大海)와 맞닿아 일본(日本)과 이웃하고 있으니, 실로 우리 동국(東國)의 극동(極東)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하겠다. 지금 내가 다행히 한 모퉁이에 이르러서 동극(東極)을 극(極)할 수 있었고 보면 다른 모든 곳도 미칠 수가 있을 것인데, 하물며 이 동극과 서로 마주하고 있는 서극(西極)의 유사(流沙)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 누대 위에서 술잔을 들고 있을 적에 나에게 기문(記文)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에, 내가 흔쾌히 이와 같이 적게 되었다.
지정(至正) 임인년(1362, 공민왕11)에 짓다.
+
  지정(至正) 임인년(1362, 공민왕11)에 짓다.

2022년 3월 22일 (화) 01:18 판

<<목은문고>> 제1권 <유사정기(流沙亭記)>

☞ 번역문 출처: 한국고전종합DB

 유사(流沙)는 우공(禹貢)에 그 지명이 기재되어 있으니, 성인의 명성과 교화가 그래도 미친 지역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것으로 정자의 이름을 삼기까지 하다니, 나로서는 그 뜻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옛사람들이 한가로이 노닐며 휴식을 취하는 장소에 편액(扁額)을 내걸 때에는, 으레 유명한 산수(山水)를 가탁한다든가, 혹은 대표적인 선인(善人)이나 악인(惡人)을 게시하여 권선징악의 뜻을 보인다든가, 아니면 선대(先代)와 향리(鄕里)에서 그 이름을 취하여 근본을 잊지 않는 뜻을 붙이는 것이 관례이다.
 따라서 유사(流沙)처럼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환경이 조악(粗惡)해서 중국의 인물이 배출되지 않음은 물론 배와 수레가 닿지 않는 곳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말하기조차 싫어하여 그 이름을 일컫는 것을 부끄러워할 텐데, 더구나 대서특필하여 출입문 사이에다 기재해 놓으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나의 형이 그런 이름을 붙인 이면에는 필시 범상치 않은 뜻이 들어 있으리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천하는 광대한 것인 만큼 성인의 교화가 그에 비례하여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오히려 외적(外的)인 일이요, 사람의 몸이 비록 작긴 하지만 광대한 천하와 서로 함께할 수가 있으니, 이것은 우리의 내적(內的)인 일이다.
 우선 외적인 일의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동쪽으로는 해가 뜨는 곳까지, 서쪽으로는 곤륜산(崑崙山)까지, 북쪽으로는 불모(不毛)의 지역까지, 남쪽으로는 눈이 내리지 않는 곳까지 성인의 교화가 다다르고 이르고 미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혼연일체가 되는 경우는 드문 반면에 분열 현상이 언제나 많이 일어나곤 하니, 내가 정말 마음속으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내적인 일의 시각에서 살펴본다면, 힘줄과 뼈로 묶여 있는 우리의 육신과 성정(性情)의 미묘한 작용을 보이는 우리의 몸속에, 마음이라는 것이 자리하고서 우주를 포괄한 가운데 온갖 만물과 수작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그 마음은 어떠한 위무(威武)로도 분리시킬 수가 없고, 어떠한 지력(智力)으로도 꺾을 수가 없이, 외연(巍然)히 나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거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외따로 떨어진 극지(極地)에 잠복하여 칩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가슴속의 도량(度量)으로 보면 성인의 교화를 받는 사방의 어떤 먼 곳까지도 내 마음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 형의 뜻도 사실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옛날에는 사방을 돌아다닐 뜻을 지닌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신축년(1361, 공민왕10) 겨울에 병화(兵禍)를 피해서 동쪽으로 가다가 처음으로 영해부(寧海府)에 발을 딛게 되었는데, 이곳은 나의 외가(外家)인 동시에 나의 형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해로 말하면 동쪽으로 대해(大海)와 맞닿아 일본(日本)과 이웃하고 있으니, 실로 우리 동국(東國)의 극동(極東)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하겠다. 지금 내가 다행히 한 모퉁이에 이르러서 동극(東極)을 극(極)할 수 있었고 보면 다른 모든 곳도 미칠 수가 있을 것인데, 하물며 이 동극과 서로 마주하고 있는 서극(西極)의 유사(流沙)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 누대 위에서 술잔을 들고 있을 적에 나에게 기문(記文)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에, 내가 흔쾌히 이와 같이 적게 되었다.
 지정(至正) 임인년(1362, 공민왕11)에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