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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4일 (목) 02:01 판

<<장자>> <제물론> 소개

동양고전종합DB, 안병주 <<장자>> 역주

○ <<장자>>를 통틀어 가장 난해하기로 이름난 부분이기도 함 ○ <제물론(齊物論)>이라는 편명에 대해 곽상(郭象, 252?~312?), 성현영(成玄英) 등의 주석가들은 옳고 그름[시비(是非)], 아름답고 추함[미추(美醜)]라는 편견을 떠나 일체의 사물이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세계를 주장한다는 의미로 보고 '제물(齊物)의 이론(論)'으로 보았음


<<장자>> <제물론> 1

 南郭子綦(남곽자기) 隱机而坐(은궤이좌)하야 仰天而噓(앙천이허)호대 荅焉似喪其耦(답언사상기우)러라
 顔成子游(안성자유) 立侍乎前(입시호전)이러니 曰何居乎(왈하거호)오
 形(형)은 固可使如槁木(고가사여고목)이며 而心(이심)은 固可使如死灰乎(고가사여사회호)아
 今之隱机者(금지은궤자)는 非昔之隱机者也(비석지은궤자야)로소이다
 子綦曰(자기왈) 偃(언)아 不亦善乎(불역선호)아 而問之也(이문지야)여
 今者(금자)에 吾喪我(오상아)호니 汝(여)는 知之乎(지지호)아
① 남곽자기(南郭子綦)가 팔뚝을 안석에 기대고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길게 한숨을 쉬는데, 멍하니 몸이 해체된 듯이 ② 자기 짝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③ 안성자유(顔成子游)가 앞에서 모시고 서 있다가 말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④ 육체는 진실로 시든 나무와 같아질 수 있으며 마음은 진실로 불꺼진 재와 같아질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안석에 기대고 계신 모습은 이전에 책상에 기대 계시던 모습이 아니십니다.” 자기(子綦)가 이렇게 대답했다. “언(偃, 안성자유)아, 너의 질문이 참으로 훌륭하구나. 지금 ⑤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는데, ⑥ 너는 그것을 알고 있는가!


  • ① 남곽자기(南郭子綦)

○ 가공의 철학자. 고대에 안쪽 성에는 주로 상류층의 사람들이 살았고 외곽에는 주로 하층민이 살았음
○ 이름을 남곽자기라고 지은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남곽(남쪽 외곽_에 살면서 도의 근본을 체득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아 설정한 인물로 보임


  • ② 자기 짝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喪其耦(상기우)]

○ 자기상실을 의미함
○ 육체를 잃어버리는 자기상실이 있고 반대로 정신을 잃어버리는 세속적인 의미의 자기상실이 있음


  • ③ 안성자유(顔成子游)

○ 성 안에 사는 출신이 귀한 사람이지만 거꾸로 성 밖의 피지배계층인 남곽자기에게 도를 물었다는 역설적인 우언임


  • ④ 육체는 진실로 시든 나무와 같아질 수 있으며 마음은 진실로 불꺼진 재와 같아질 수 있는 것입니까[形固可使如槁木(형고가사여고목)이며 而心固可使如死灰乎(이심고가사여사회호)]

○ ‘정적무심(靜寂無心)’을 이상으로 여기는 도가적 삶의 태도
○ 그러나 이 표현은 도와 일체가 되는 경지에 도달한 진인(眞人)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제삼자가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일 뿐임


  • ⑤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는데[吾喪我(오상아)]

○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림. 한원진(韓元震)은 “나를 잃어버림[喪我(상아)]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렸음을 말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면 천지만물을 일체로 보아 다시 저와 나의 구분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喪我 言忘其身也 忘其身 則視天地萬物爲一 不復知有彼我之分也].”고 풀이했음


  • ⑥ 너는 그것을 알고 있는가[汝知之乎(여지지호)]

○ 니가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경지를 알고 있느냐. 모를 것이라고 전제하고 묻는 역설적인 표현임


  • <제물론> 첫 시작부분 감상하기

☞ 후쿠나가 미츠지 지음, 정우봉·박상영 옮김, <<후쿠나가 미츠지의 장자 내편>>, 문진, 2020, 57쪽

 도성 안의 혼잡함을 피해 조용한 교외에 거처를 꾸미고 세속을 잊고 자기 자신조차 잊고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는 자기(子綦)는 소요유[절대자유 속에서 노님]의 빼어난 실천자이며, 드높이 세속을 초월한 그의 삶은 아득한 푸른 하늘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대붕의 웅대한 모습에도 빗댈 수 있을 것이다.
 어느날 그는 조용한 창가의 책상에 가만히 기대어 느긋하게 깊은 한숨을 쉰다. 그 모습은 "멍하니 짝을 잃어버린 듯 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서 공허한 마음에 자신도 세상도 잊은 사람 같다는 것이다.
 제자인 안성자유에게는 스승의 그 무표정하고 무감동한 모습이 혹은 시든 나무가 꼿꼿이 서 있는 듯하고 혹은 불기를 꺼뜨린 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는 자기(子綦)에게 이렇게 묻는다.
 "어찌 된 일입니까? 오늘 책상에 기대신 모습은 예전과는 다릅니다만."
 "언아, 정말 훌륭하구나"는 제자의 관찰이 예리한 것을 칭찬한 말이다.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있었다"라는 말은 <제물론>편 전체의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 근데 과연 이게 어떤 상태일까? 왜 우린 이런 최상의 상태로 살아가지 못하는걸까?


=> 만물제동의 철학은 이것을 명제로서 말로 표현하여 전달하는 것이 어렵고 아마 사상가들의 신비주의적인 체험 속에서 느껴서 얻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지전지구는 말했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구절들을 더 찾아보자!


<<장자>> <제물론> 2

 古之人(고지인)은 其知有所至矣(기지유소지의)로다
 惡乎至(오호지)오
 有以爲未始有物者(유이위미시유물자) 至矣盡矣(지의진의)라 不可以加矣(불가이가의)로다
 其次(기차)는 以爲有物矣(이위유물의)오 而未始有封也(이미시유봉야)라 하며 其次(기차)는 以爲有封焉(이위유봉언)이오 而未始有是非也(이미시유시비야)라 하나니
 是非之彰也(시비지창야) 道之所以虧也(도지소이휴야)요 道之所以虧(도지소이휴) 愛之所以成(애지소이성)
① 옛날 사람은 그 지(知: 앎)가 어떤 궁극적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 도달해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그것은 진정한 근원에서 물(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지점이다. 그것은 궁극의 경지에 이르러 있고, 사고의 한계를 다하고 있어서 이미 어떤 것마저도 추가하는 것이 없는 최고의 지이다. ② 그 다음 단계의 지는 사물은 존재하지만, 그 근원에서 이것 저것 등의 사실은 없다고 생각하는 지(知)이다. ③ 또 그 다음 단계의 지(知)는 사실은 존재하지만, 그 근원에서 시비 등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는 지(知)이다. ④ 그렇지만 더욱 내려가서 도를 손상시키는 직접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미 지라고 말할 수 없는) 시비의 가치판단이다. 그리고 ⑤ 마지막으로 이 도를 손상시키는 시비가 또 그대로 원인이 되어 (자기의 작은 성공이나 영화에 대한) 애호의 감정이 형성된다.
-지전지구 교수 해석에 대한 원용준 교수 번역문


☞ 후쿠나가 미츠지 지음, 정우봉·박상영 옮김, <<후쿠나가 미츠지의 장자 내편>>, 문진, 2020, 94~96쪽

  • ① 옛날 사람은 그 지(知)가 어떤 궁극적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 도달해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그것은 진정한 근원에서 물(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지점이다[古之人(고지인)은 其知有所至矣(기지유소지의)로다 惡乎至(오호지)오 有以爲未始有物者(유이위미시유물자) 至矣盡矣(지의진의)라 不可以加矣(불가이가의)로다]

○ '이것이 도(道)이다'라고 의식하거나 판단하는 것조차 없는 것
○ 그러한 경지에서는 도란 노자의 이른바 황홀하며 뒤섞여 이루어진 것, 구체적으로는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 아니 어떤 것이다라고 규정할 수조차 없는 혼돈 그 자체이며 그 혼돈과 한 몸이 된 경지, 지(知)를 잊은 지(知)야말로 "지극하고 극진하여 덧붙일 수가 없는" 경지임


  • ② 그 다음 단계의 지는 사물은 존재하지만, 그 근원에서 이것 저것 등의 사실은 없다고 생각하는 지(知)이다[其次(기차)는 以爲有物矣(이위유물의)오 而未始有封也(이미시유봉야)]

○ 최상의 경지(체험 그 자체의 세계)가 한 발짝 인간의 인식세계로 끌려 들어오면 거기에는 "물(物)이 있다"라는 판단이 성립하여 도의 실재성이 인식되기에 이름
○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아직 도의 실재성은 인식되면서도 그 인식된 도는 여전히 이질적인 연속(혼돈)이며 거기에는 아직 어떠한 경계 내지는 질서로서의 '봉(封)'도 발견되지 않음
○ 도와 하나인 자기가 인식되고 있는 경지
○ 최상의 경지는 아니지만 그것에 다음 가는 경지


  • ③ 또 그 다음 단계의 지(知)는 사실은 존재하지만, 그 근원에서 시비 등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는 지(知)이다[其次(기차)는 以爲有封焉(이위유봉언)이오 而未始有是非也(이미시유시비야)]

○ 혼돈은 차츰 그 경계질서를 인식의 세계 속에서 확실히 하여 도는 본래 그 자체 속에 혼연히 품고 있던 만물의 모습으로 나타남
○ 즉 일(一)이 다(多)가 되고 절대가 상대적인 것들로 전개되는 경지
○ 아직 시비 등의 가치가 있지 않다는 건 아직 가치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임


  • ④ 그렇지만 더욱 내려가서 도를 손상시키는 직접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미 지라고 말할 수 없는) 시비의 가치판단이다[是非之彰也(시비지창야) 道之所以虧也(도지소이휴야)]

○ 시비라는 가치판단이 가해지면 거기서부터 도의 사멸이 인간의 구제할 수 없는 미혹으로 시작됨 ○ 시비라는 가치판단이 확립되는 것과 함께 살아 있는 혼돈으로서의 도는 그 생명이 끊김


  • ⑤ 마지막으로 이 도를 손상시키는 시비가 또 그대로 원인이 되어 (자기의 작은 성공이나 영화에 대한) 애호의 감정이 형성된다[道之所以虧(도지소이휴) 愛之所以成(애지소이성)]

○ 생명이 끊긴 도의 공허한 주검으로부터 인간의 애증호오(사랑, 증오, 좋아함, 싫어함)라는 허상에 가득찬 아집이 무리지어 생겨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