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 선비문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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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송설> 속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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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임경당의 집 주위는 빙 둘러 소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 소나무가 꽤나 빽빽하게 많이 심어져 있었다. 이 소나무를 가리키면서 임경당은 말했다. “우리 선친께서 손수 심으신 것이죠. 우리 형제들이 모두 여기에 집을 지어놓고 살았는데 이 소나무가 울타리가 되어주었죠. 이 소나무를 보면 부모님 생각이 그치지가 않아요.” 그러면서 임경당은 이런 말을 했다. “제가 항상 두려운 것은 세대가 멀어지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어지면 도끼로 베어지는 일을 피하지 못할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대에게 몇 마디 말을 받아서 가묘(家廟)의 벽 위에 걸어두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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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은 임경당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한다. 율곡은 󰡔예기(禮記)󰡕 「옥조(玉藻)」의 문장을 인용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서책을 차마 읽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 아버지의 손때가 남아있기 때문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사용하던 술잔과 그릇으로 차마 마시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의 입김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드리워져 있는 소나무는 더욱 그러하겠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감흥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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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가 고된 노력으로 쌓아올린 것은 반드시 한 세대를 거쳐야 비로소 가업으로 이루어지길 기약할 수 있는데 자손들이 불초하면 무너짐이 한순간이니 한 해를 마치길 기다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빠를 것입니다. 이 소나무가 심어진 뒤에 수 십 년을 기다려야 비로소 큰 나무[成樹]가 될 수 있는데 도끼로 벤다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질 것입니다. 가업을 이루기는 어렵고 파괴하기는 쉬운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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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n style="color:#ff0000;">'''강릉의 그 수많은 소나무들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심어지고 길러지고 지켜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나무가 이제는 강릉 곳곳을 지키고 있다. 강릉의 문화도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는 미처 그 손길을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이런 감성과 생각을 지니게 하는 밑바탕에는 강릉의 문화, 전통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span></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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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유가철학]]

2022년 10월 31일 (월) 12:48 판

문화 속에 깃들 철학 찾기

강릉의 유적지, 얼마나 가 보았나요?

☞ 윤사순, <<조선, 도덕의 성찰: 조선 시대 유학의 도덕철학>>, 돌베개, 2010, 15~25쪽

○ 한국인의 철학적 사유를 살펴볼 수 있는 것들에는 비정형화된 것과 정형화되지 않은 것이 있음
○ 정형화된 것은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으로 한국철학자들의 문집, 글 등에서 살펴볼 수 있음
○ 한편 한국인의 철학적 사유를 살펴볼 수 있는 비정형화된 문화적 측면도 있음. 이론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사유는 한국의 언어를 비롯한 문화에 깃든 사유인 만큼, 정형화된 사유보다 더 원초적인 성격을 띰. 한국인은 독특한 언어와 문자, 그리고 독특한 문화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 그리고 이 언어와 문화 및 역사를 이루는 근본 바탕과 뼈대가 철학임


문화에서 드러나는 비정형화된 한국의 철학적 사유들

  • 강릉의 임경당

임경당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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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임경당 위치

- 임경당(臨鏡堂)은 김열(金說, 1506~?)의 호임. 강릉 김씨(25세손)로 어릴 때부터 과거 응시를 위한 공부를 접어서 임영처사(臨瀛處士)라고 불리기도 했음. 그는 학문과 문장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효친과 우애로 수신제가에 힘썼던 인물로 존경받았음.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와 친분이 있기도 했음
=> 이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인터넷 족보에서 살펴볼 수 있음: <강릉김씨대종회 인터넷족보>(http://www.gnkim.kr/)
- 강릉의 임경당을 방문해 보면 자연의 바위를 그대로 담장 삼아 집을 지었고 바닥에 솟아 올라와 있는 바위를 그대로 두었음


  • 율곡이 임경당을 위해 남긴 「호송설(護松說)」

○ <호송설> 다운로드 받고 싶으시면 클릭(출처: 율곡학프로젝트(http://yulgok.geeo.kr/))

파일:호송설.pdf

○ <호송설> 속 일화

 당시 임경당의 집 주위는 빙 둘러 소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 소나무가 꽤나 빽빽하게 많이 심어져 있었다. 이 소나무를 가리키면서 임경당은 말했다. “우리 선친께서 손수 심으신 것이죠. 우리 형제들이 모두 여기에 집을 지어놓고 살았는데 이 소나무가 울타리가 되어주었죠. 이 소나무를 보면 부모님 생각이 그치지가 않아요.” 그러면서 임경당은 이런 말을 했다. “제가 항상 두려운 것은 세대가 멀어지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어지면 도끼로 베어지는 일을 피하지 못할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대에게 몇 마디 말을 받아서 가묘(家廟)의 벽 위에 걸어두고자 합니다.”
 율곡은 임경당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한다. 율곡은 󰡔예기(禮記)󰡕 「옥조(玉藻)」의 문장을 인용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서책을 차마 읽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 아버지의 손때가 남아있기 때문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사용하던 술잔과 그릇으로 차마 마시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의 입김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드리워져 있는 소나무는 더욱 그러하겠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감흥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선조가 고된 노력으로 쌓아올린 것은 반드시 한 세대를 거쳐야 비로소 가업으로 이루어지길 기약할 수 있는데 자손들이 불초하면 무너짐이 한순간이니 한 해를 마치길 기다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빠를 것입니다. 이 소나무가 심어진 뒤에 수 십 년을 기다려야 비로소 큰 나무[成樹]가 될 수 있는데 도끼로 벤다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질 것입니다. 가업을 이루기는 어렵고 파괴하기는 쉬운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강릉의 그 수많은 소나무들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심어지고 길러지고 지켜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나무가 이제는 강릉 곳곳을 지키고 있다. 강릉의 문화도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는 미처 그 손길을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이런 감성과 생각을 지니게 하는 밑바탕에는 강릉의 문화, 전통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