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인간본성론: 한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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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유학의 인간본성론]] | [[분류: 유학의 인간본성론]] |
2023년 5월 2일 (화) 14:49 판
중국 불교의 중국사상사에 대한 기여
☞ 모리 미키사부로 지음, 오진탁 옮김, 『불교와 노장사상』, 경서원, 1992
- 중국인은 유교에 의해 충족될 수 없는 하나의 요구가 있었음. 그것은 ‘인간의 행복 문제’임
- 유교는 ‘자기 인생을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 수 있는가’를 가르치지만, ‘그 인생을 어떻게 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하지 않음
어떤 문제의식이 더 자신에게 와 닿나요?
- 인간은 현세만이 아니라 과거, 미래에도 삶이 있다는 삼세(三世)이론, 전생에 선이든 악이든 자신이 지은 업이 현세의 자기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고 또한 현세의 선 혹은 악을 행한 업이 내세의 그것을 좌우한다는 응보설은 종래 유교에서 풀 수 없었던 ‘도덕과 행복의 관계‘ 문제를 해결했음
- 특히 지식인의 경우 서민계층보다 추상적 이론을 보다 용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음
- 『열반경』의 근본을 이루는 불성론(佛性論)의 경우 인간 존재에게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 그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중국 지식인에게 친숙한 테마였음
- 맹자가 성선설을 주창한 이래 본성의 선악문제는 유학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
- 성선설은 하늘의 신이 인간 안에 내재한다는 의미이지만 불성론은 부처가 인간 내부에 있다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음. 두 경우 모두 그 최고 원리가 인간에 내재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음
- 본래 불교는 깨달음에 의한 해탈, 지혜를 통한 구원을 궁극 목적으로 하지만, 초월신에 의한 구제를 기대하지는 않음. 석가모니 자신도 이런 구원자로서 신앙되기를 거부했다는 측면에서 중국 불교는 원시불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임
- 동아시아 불교는 한문으로 번역한 이른바 ‘한역(漢譯)’ 경전을 매개로 하는 한자문화권의 불교임.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경전이 한역되고 이것이 한자문화권인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로 전해짐으로써 동아시아 불교가 성립하는 것임. 그런데 ‘한역’은 단순히 번역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도와 중국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적 배경 및 정치·사회적 제 조건의 차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음. 그 과정에서 인도 불교의 중국적 변용은 필연적임
한유(韓愈, 768~824)라는 인물, 그의 철학적 과제
☞ 진래 지음, 안재호 옮김 『송명성리학』, 예문서원, 2011
- 한유는 당나라를 대표하는 문장가이자 철학자, 정치가임
-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잃고, 3살 때 아버지를 잃었음. 7살 때부터 독서를 시작하여 13살에 문장에 재능을 보였음
- 시인, 문장가로서 화려한 수식으로 가득한 문장보다는 글은 진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보았음. 당시 불교 승려의 특권에 반대하고 유학의 본질을 시대에 맞게 되살려 내려고 노력했음
- 한유는 가난하고 비천한 집안의 출신이었고 큰형의 집에서 형수의 보살핌 속에서 양육되었지만 얼마 후 형마저 죽었고 형수가 그를 성인이 될 때까지 돌봐주었음. 그는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고”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매우 고달프게 공부를 했음
- 한유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음
“원래 문학을 좋아했지만 곤궁하고 처량한 처지를 하소연할 길이 없어, 경전, 역사서, 다양한 학설을 탐구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침잠했고 구절구절마다 반복해 읽으면서 학문을 연마했고 글을 짓는 데 힘썼다.”
=> 이런 그는 후에 중국역사상 대표적인 문장가, 철학자 중 한 사람이 됨
- 한유(768~824)가 비판한 당시의 불교
☞ 김경순, 「한유의 철학과 북송학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 『동서철학연구』, 동서철학연구회, 2013, 248쪽
○ 안록산의 난이 763년에 끝나고 5년 뒤에 태어난 한유가 살던 시기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음
○ 당시 당나라 조정에서는 도교와 불교를 우대했는데 특히 불교의 경우 세금의 혜택을 받기도 했고 노비를 소유하는 등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음. 한유는 이런 현실을 비판함. 또한 백성들은 돈을 모아 시주하는 것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고, 나이가 많건 적건 도망가 자신들의 생업을 버리는 세태를 걱정했음
“불법이 중국에 들어온 지 600여 년이 되는데, 모든 백성들은 부역을 피해 도망가서 불교에 들어가고 도교의 고사(高士)라는 사람들은 참선에 빠져 있는데도 관리들은 이것을 제어하지 않는다.” -한유 『송영사(送靈師)』
○ 당시 한유는 도교와 불교를 국가기강과 부모와 자식간의 인륜을 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도교와 불교를 막아야 한다고 보았음. 그러면서 도교와 불교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유학이 필요하다고 보았음. 당시 유학이 단순히 화려한 글을 위한 문장 속에서만 쓰였는데 한유는 유교경전에 담겨 있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도를 회복해야 한다고 보았음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모두가 자신의 행복만 생각한다면? 때론 내가 속해 있는 이 사회, 집단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 또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행복이 꼭 개인의 행복만 의미할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야말로 더 큰 행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물론 불교, 도교가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한유가 비판했던 당시 불교, 도교의 우려되는 측면이었다)
한유의 「원도(原道): 도의 근원을 밝힘」
☞ 이주해 옮김, 『한유문집1』(창려문초(昌黎文鈔), 문학과지성사, 2009, 493~501쪽
☞ 원문출처: https://zh.wikisource.org/wiki/%E5%8E%9F%E9%81%93
1. 주나라의 도가 쇠하고 공자께서 세상을 뜨자 진나라 때 분서의 화를 만났고, 한나라 때는 황로사상이 유행했으며, 진(晉)·위·양·수 때 불교가 성행했다. 도덕과 인의를 말하는 자들은 양주(楊朱)에 빠지지 않으면 묵적(墨翟)에 빠졌고, 노자에 빠지지 않으면 불교에 빠졌다. ... 옛날의 이른바 마음을 바로 하고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장차 큰일을 해내고자 하는 뜻이 있어서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은 다스리고자 하면서 천하 국가는 도외시한다. ... 소위 선왕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일러 인이라 하고 행동이 합당한 것을 일러 의라 하며 인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일러 도라 하고 스스로 충족되어 외물에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을 일러 덕이라 한다. ... 그 도는 알기 쉽고 그 가르침은 행하기 쉽다. 이러한 까닭에 이것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면 순조롭고 상서롭다. 이것으로 남을 대하면 인자하고 공정하다. 이것으로 마음을 다스리면 조화롭고 평안하다. 이것으로 천하 국가를 다스리면 어디를 가건 마땅치 않음이 없다. 그러니 살아서는 본성을 얻을 수 있고 죽어서는 도리를 다할 수 있다. ... 요임금은 이 도를 순임금에게 전했고, 순임금은 이 도를 우임금에게 전했으며, 우임금은 이 도를 탕임금에게 전했고. 탕임금은 이 도를 다시 문왕, 무왕, 주공, 공자에게 전했다. 공자가 이 도를 맹가에게 전했다. 맹가가 죽은 뒤로 이 도는 전해지지 않았다. 순자와 양웅이 있었으나, 가렸으되 세심하게 하지 못했고, 말을 했으되 상세하게 하지 못했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불교와 도교를] 막지 않으면 [선왕의 도가] 흐르지 않고, [불교와 도교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선왕의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
周道衰,孔子沒,火于秦,黃老于漢,佛于晉、魏、梁、隋之間。其言道德仁義者,不入于楊,則入于墨;不入于老,則入于佛。...古之所謂正心而誠意者,將以有爲也。今也欲治其心,而外天下國家 ... 夫所謂先王之教者,何也?博愛之謂仁,行而宜之之謂義,由是而之焉之謂道,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 何道也?曰:斯吾所謂道也,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堯以是傳之舜,舜以是傳之禹,禹以是傳之湯,湯以是傳之文、武、周公,文、武、周公傳之孔子,孔子傳之孟軻。軻之死,不得其傳焉。荀與揚也,擇焉而不精,語焉而不詳。... 然則如之何而可也?曰:「不塞不流,不止不行。」人其人,火其書,廬其居,明先王之道以道之,鰥寡孤獨廢疾者有養也。其亦庶乎其可也。
=> 양주: 자신의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서 천하가 이롭게 되더라도 하지 않는다는 위아(爲我)주의
=> 묵적: 머리의 정수리부터 갈아서 발뒤꿈치까지 이르도록 하더라도 천하에 이롭다면 한다는 이타주의
=>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부시랑의 자리까지 올라가며 사회의 리더의 역할을 했던 한유는 당시 시대의 문제점을 불교와 도교의 성행으로 보았음. 그리고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정당성의 근거가 필요했음. 맹자는 다양한 학설들이 성행했던 전국시기에 양주와 묵자의 이론을 이단으로 간주하면서 유교의 정통성을 지켜가려고 했음
그런데
한유의 「원성(原性): 성(性)의 근원을 밝힘」
2. 성(性)이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정(情)이란 사물을 접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성의 등급에는 셋이 있고, 성을 이루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정의 등급에는 셋이 있고 정을 이루는 것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무슨 말인가? 성의 등급에는 상중하 세 가지가 있다. 상품인 사람은 오직 선만 있을 뿐이다. 중품인 사람은 인도하여 상품이 되게 할 수도 하품이 되게 할 수도 있다. 하품인 사람은 악만 있을 뿐이다.
性也者,與生俱生也;情也者,接於物而生也。性之品有三,而其所以爲性者五;情之品有三,而其所以爲情者七。曰:何也?曰:性之品有上、中、下三。上焉者,善焉而已矣;中焉者,可導而上下也;下焉者,惡焉而已矣。
그렇다면 왜 상중하로 나뉘어질까? 그리고 그런 세 등급의 본성의 차이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발휘되는가? 왜 문제가 되는가?
3. 성을 이루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인(仁), 예(禮), 신(信), 의(義), 지(智)가 그것이다. 상품인 사람은 이 다섯 가지에 있어서 하나를 주로 삼아 나머지 넷을 행한다. 중품인 사람은 이 다섯 가지에 있어서 하나가 조금 갖추어져 있거나 하나가 조금 위배되어 있고, 나머지 넷은 뒤섞여 있다. 하품인 사람은 이 다섯 가지에 있어서 하나는 위배되어 있고 나머지 넷도 어그러져 있다. 성이 정에 미치는 영향은 그 등급을 보아야 한다. 정의 등급에는 상중하 세 가지가 있고, 정을 이루는 것에는 일곱 가지가 있으니, 기쁨[희(喜)], 노여움[노(怒)], 슬픔[애(哀)], 두려움[구(懼)], 사랑[애(愛)], 미움[오(惡)], 하고자 함[욕(欲)]이 그것이다. 상품인 사람은 이 일곱 가지에 있어서 무엇을 하건 중도를 지킨다. 중품인 사람은 이 일곱 가지에 있어서 심한 것이 있는가 하면 없는 것이 있는데. 그래도 중도에 맞고자 노력한다. 하품인 사람은 이 일곱 가지에 있어서 아예 없거나 너무 심하거나 해서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한다. 정이 성에 끼치는 영향도 그 등급을 보아야 한다.
其所以爲性者五:曰仁、曰禮、曰信、曰義、曰智。上焉者之於五也,主於一而行於四;中焉者之於五也,一不少有焉,則少反焉,其於四也混;下焉者之於五也,反於一而悖於四。性之於情視其品。情之品有上、中、下三,其所以爲情者七:曰喜、曰怒、曰哀、曰懼、曰愛、曰惡、曰欲。上焉者之於七也,動而處其中;中焉者之於七也,有所甚,有所亡,然而求合其中者也;下焉者之於七也,亡與甚,直情而行者也。情之於性視其品。
- 『예기』 「예운(禮運)」의 칠정(七情): "무엇을 사람의 정(情)이라고 하는가?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을 말한다. 이 일곱가지는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何謂人情?喜怒哀懼愛惡欲七者,弗學而能。]”
- 『예기』 「중용(中庸)」: “희노애락이 아직 발동되어 나오지 않는 상태를 ‘중’이라고 하며 이미 발동되어 마디마디마다 꼭꼭 들어맞는 상태를 ‘화(和)’라고 한다. ‘중’은 천하의 큰 근본이며, ‘화’는 천하가 도에 이른 것이다. 일단 중화가 성립되면 천지가 제자리를 잡으며, 만물이 육성된다.[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中也者,天下之大本也;和也者,天下之達道也。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 한유는 본성을 잘 지켜나갈 수 있는 이유, 그렇지 못한 이유를 감정과 연관시킴. 인간의 감정이 지닌 성격 그 자체보다는 감정을 운용하는 사람의 등급에 더 관심을 보였음
4. 맹자는 성을 이야기하면서 사람의 성은 선하다고 했다. 순자는 성을 이야기하면서 사람의 성은 악하다고 했다. 양웅은 선을 이야기하면서 사람의 성에는 선과 악이 혼재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선했는데 악해졌다든가, 처음에는 악했는데 선해졌다든가, 처음에는 선과 악이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선해지거나 악해졌다든가, 이 모든 학설들은 중품만을 거론하고 상품과 하품은 빠뜨린 것이다. ... 그렇다면 상품과 하품은 끝내 변할 수 없는가? 상품의 성은 배움을 통해 더욱 밝아질 수 있고, 하품의 성은 위엄을 두려워함으로써 허물을 적게 지을 수 있다. 따라서 상품의 성을 지닌 사람은 가르칠 수 있고 하품의 성을 지닌 사람은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타고난 등급은 바꾸지 못한다고 공자께서도 말씀하셨다.
孟子之言性曰:人之性善;苟子之言性曰:人之性惡;揚子之言性曰:人之性善惡混。夫始善而進惡,與始惡而進善,與始也混而今也善惡,皆舉其中而遺其上下者也,得其一而失其二者也。... 然則性之上下者,其終不可移乎?曰:上之性,就學而易明;下之性,畏威而寡罪。是故上者可教,而下者可制也。其品則孔子謂不移也。
=> 『논어』 「양화(陽貨)」: "오직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만은 어찌할 수 없다.[唯上智與下愚不移)"
오늘의 토론 주제(2023.05.02)
인간 본성과 감정에 대한 이해가 우리를 보다 더 행복한 삶, 나은 삶으로 정말 이끌어줄 수 있나? 오늘날 인성에 관한 논의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의 맥락에서 한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