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박괘와 복괘 읽기
박괘(剝卦)
- 괘의 순서: 현행본 『주역』의 23번째 괘
- 박(剝)의 의미: 박괘의 ‘박(剝)’은 일반적으로 깎여서 떨어진다는 ‘박락(剝落)’의 의미로 쓰이고 있음. 이를 음양소식(陰陽消息: 음양이 깎이고 자라남)의 관점에서 설명하곤 함. 즉 음이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해서 양을 변화시켜 양이 깎여 떨어져나가는 상(象)으로 해석하는 것임
- 괘상: 산지박(山地剝), 곤하간상(坤下艮上)
=> 박괘는 하괘의 곤괘와 상괘의 간괘로 구성되어 있음
박괘(剝卦) 괘사
剝(박)은 不利有攸往(불리유유왕)하니라. 박(剝)은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나아가는 것이 있으면 불리하다.)
- 여러 음이 자라나고 성대해져서 양을 쇠퇴하게 하고 깎는 때이기 때문에 여러 소인들이 군자를 깎아내리는 때임(정이)
- 음이 건괘를 깎아나가고 있는 상황으로 해석되기도 함. 유(柔)가 강(剛)을 변화시켜서 소인의 도가 자라나는 상황임(『주역집해(周易集解)』, 우번(虞翻))
박괘(剝卦) 「단전」
彖曰(단왈) 剝(박)은 剝也(박야)니 柔變剛也(유변강야)니 不利有攸往(불리유유왕)은 小人(소인)이 長也(장야)일새라. 順而止之(순이지지)는 觀象也(관상야)니 君子尙消息盈虛(군자상소식영허) 天行也(천행야)라. 「단전(彖傳)」에 말했다. “박(剝)은 깎임이니, 유(柔)가 강(剛)을 변화시킨 것이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음은 소인(小人)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때에) 순응하여 멈춤은 상(象)을 관찰해 보고서 하는 것이니, 군자가 소식(消息: 사그라들고 자라남)과 영허(盈虛: 가득차고 빔)를 숭상하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
- 박괘 단전의 “소식영허”라는 구절은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보임. 진고응이라는 학자는 「단전」이 도가사상의 체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음(陳鼓應, 『易傳與道家思想』, 臺灣商務印書館, 1994, 37~40쪽)
=> 마치면 시작이 있다(終則有始), 사그라들기도 하고 불어나기도 하고 가득차기도 하고 비기도 한다고 하는 소식영허(消息盈虛) 등의 주역의 구절은 도가문헌인 장자 등에서도 똑같이 나타남
- 순이지지(順而止之: 순응하여 멈춤)
○ 여기에서 순응함(順)은 하괘 곤괘의 성질이고 멈춤(止)은 상괘 간괘의 성질임. 이를 「단전」에서는 박괘의 때에 처한 사람의 처세 방법으로 언급되고 있음
○ 즉 박괘의 때에는 시대에 순응하여 나아가려 하지 않고 멈춰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임
- 유가와 도가철학이 종합된 『주역』
○ 『주역』은 유가경전으로서 굳건한 위치를 지키고 있지만 한편으로 점치는 책으로서 『역경』 안에는 도가 사유가 배태된 철학적 배경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들이 나타나며 후대에 완성된 철학책으로서의 『역전』 부분에는 도가 문헌과 동일한 구절이 나오기도 함
○ 『주역』곤괘(坤卦), 유약함에 대한 존중: 강하고 진취적인 양(陽)의 미덕과 함께 물러나고 유한 음(陰)의 미덕도 함께 존중하고 있음
○ 도가사상가들은 소식영허의 가득참의 반대로서의 텅빔을 중시함. 『주역』 겸괘(謙卦)에서는 가득찬 것에 대한 경계, 겸허함의 가치를 말함
○ 유교경전으로서의 『주역』이 도가의 장점을 수용한 것이라고 보든, 아니면 도가적 사유가 일부 주역에 녹아있다고 보든 어쨌든 아마도 『주역』이 철학서로서의 역전부분이 완비되어 가면서 유가와 함께 도가를 어느 정도 그 기술적인 방향에서든 그 사상적인 방향에서도 종합해 나갔다고 하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임
박괘(剝卦) 「상전」
象曰(상왈) 山附於地剝(산부어지박)이니 上(상)이 以(이)하여 厚下(후하)하여 安宅(안택)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산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박(剝)이니, 윗사람이 이를 본받아서 아랫사람들에게 후덕하게 하여 집을 편안하게 한다.”
- 산부어지박(山附於地剝: 산이 땅에 붙어 있는 것)
○ 산은 본래 높은데 지금 땅에 붙어 있으니 깎여서 떨어져나간 상(象)임(공영달)
- 상이후하안택(上以厚下安宅: 윗사람이 이를 본받아서 아랫사람들에게 후덕하게 함)
○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풍족하고 후덕하게 하고 만물의 거처를 편안하게 해서 박괘의 때를 예방함(공영달)
여괘(旅卦) 효사, 「상전」
初六(초육)은 剝牀以足(박상이족)이니 蔑貞(멸정)이라 凶(흉)하도다. 초육은 상(牀)을 깎되 상의 발에서부터 함이니, 바른 것을 없애니 흉하다.
象曰(상왈) 剝牀以足(박상이족)은 以滅下也(이멸하야)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박상이족(剝牀以足)’은 아래에서 소멸시키는 것이다.”
- 박상이족(剝牀以足: 상을 깎되 상의 발에서부터 함)
○ 초효는 가장 아래에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상의 발이라고 표현하고 있음
○ 직접적으로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깎아나감이 먼 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상황임
- 멸정(蔑貞)
○ 蔑(멸)은 없앤다는 뜻. 아래에서부터 바름, 정도(正道)를 깎아나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흉한 상황임(정이)
六二(육이)는 剝牀以辨(박상이변)이니 蔑貞(멸정)이라 凶(흉)토다. 육이(六二)는 상(牀)을 깎아나가되 변(辨)에 이름이니, 정도(正道)를 소멸시켜서 흉하도다.
象曰(상왈) 剝牀以辨(박상이변)은 未有與也(미유여야)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박상이변(剝牀以辨)’은 아직 함께 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 박상이변(剝牀以辨: 상을 깎아나가되 변에 이름)
○ ‘변’은 침상의 본체 아래, 침상의 발 윗부분, 발과 침상의 본체를 나누는 부분임(공영달)
○ 이제 깎여서 떨어져나감이 위 침범하여 ‘변’이라는 부분까지 이른 것으로 점차 사람의 몸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뜻함
- 未有與也(미유여야: 아직 함께 하는 이가 없음)
○ 박괘의 육이효는 육오효와 불응의 관계이기 때문에 응하여 함께하는 이가 없다고 한 것임
六三(육삼)은 剝之无咎(박지무구)니라. 육삼은 박(剝)의 때에 있어서 허물이 없다.
象曰(상왈) 剝之无咎(박지무구)는 失上下也(실상하야)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박지무구(剝之无咎)’는 위아래의 여러 음들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 剝之无咎(박지무구: 박(剝)의 때에 있어서 허물이 없음)
○ 육삼효가 상구효와 응하기 때문에 여러 음들이 양을 깎아나가지만 자신 혼자 양과 협력하고 있으니 박괘에 때에 처해 있지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임(왕필)
- 失上下也(실상하야: 위아래의 여러 음들과 단절되어 있음)
○ 삼효가 비록 상효와 응의 관계에 있지만 삼효의 위아래로 각각 두 음이 있지만 홀로 양과 응하고 있기 때문에 위아래 음들과 멀어졌음을 의미함. 위아래 음들과 편당짓지 않기 때문에 위아래와 단절되어 있어 괘사에서 허물이 없다고 말했다고 본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