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의 시간관
왜 시간에 대해 성찰해야 하는가?
☞ 여러분에게 시간은 무엇인가요? 인간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나요? 여러분은 어떤 시간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나요?
☞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시간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 양자역학 과학이론으로 보는 인터스텔라의 시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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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쌤앤파커스, 2019) 내용 발췌
움직이는 친구는 멈춰 선 친구에 비해 덜 늙고, 생각할 시간도 적고, 그가 보는 시계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며, 그가 기르는 식물은 싹을 틔우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많이 움직임 많이 움직일수록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른다. 하지만 이 움직임의 영향은 아주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일 정도의 결과를 확인하려면 움직임이 매우 빨라야 한다. 1970년대에 제트기에 초정밀 시계를 가지고 탑승해 처음으로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한 바 있다. 실험 결과, 비행 중인 시계는 지상에 있는 다른 시계에 비해 시간이 다소 뒤쳐져 있었다. 요즘은 다양한 물리학 실험을 통해 속도로 말미암은 시간 지연 현상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 고유시간은 당시이 어디 있는지에 따라, 인접해 있는 물질의 질량이 많고 적은지에 따라 달라질 뿐 아니라, 이동하는 속도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 시계가 등장하기 전,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시간을 가늠한 유일한 척도는 낮과 밤의 교차였다. 낮과 밤의 리듬은 동물과 식물의 수명도 조율한다. 낮의 리듬은 세계 곳곳에 언제나 존재한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낮의 리듬은 지구상 생명의 기원 그 자체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 같다. ...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상대성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 실제로 잘 살펴보면 매우 '사물다운' 사물들은 장기간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아주 단단한 돌의 경우, 우리가 화학과 물리학, 광물학, 지질학, 심리학에서 배운 바로는 양자장의 복잡한 진동이고 힘들의 순간적인 상호 작용이다. 돌은 짧은 순간 동안 자신의 형상을 유지하고, 다시 먼지로 분해되기 전 자체적으로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이다. ... 입자들은 시간 속에 살지 않는다. 끊임없이 서로 상호 작용하며 그러한 상호 작용에 의거해서만 입자들이 진실로 존재한다. 이 상호 작용이 세상의 사건이고 방향도 없고 선형적이지도 않은 시간의 최소 기본 형태다. ... 우리 자아를 형성하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이 책의 논증에 특히 중요한 아래의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 첫 번째는 우리 각자를 세상에 대한 '하나의 관점'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풍부한 상관관계를 통해 우리 모두 각각에 반영된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성찰하고 받은 엄격하게 통합된 방식으로 정교하게 설명하는 복잡한 프로세스다. 2. 우리는 세상을 성찰하면서 그것을 실체들로 조직화한다. 다시 말해, 세상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한결같고 안정적인 연속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세상을 그룹화하고 분류한다. 세상과의 상호작용이 더 잘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 나는 내면적 성찰이 아닌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자아에 대한 개념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3. 우리의 자아를 세우는 세 번째 요소는 기억이다. ...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를 형성한 프로세스들은 도처에 깔려있고, 기억은 이 프로세스들을 함께 단단히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 우리 자신이 어떠한 시간관을 가지고 있느냐는 한편으론 내가 내 자신, 자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여전히 시간은 나와는 상관없이 과거->현재->미래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시간 앞에서 우리 자신은 무력한 존재라고 생각하나요?
- 근대적 시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 보던 타임즈
『매일신보』 1924.6.14.일자 칼럼
시간은 인간 세상의 윤전기(輪轉機)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自然)의 윤전기이다. 인간이 만든 윤전기는 멈추는 때도 있고 휴식하는 때도 있지만 자연의 윤전기는 일분일각(一分一刻)을 휴식하지도 않고 또 정체하지도 않는 것이다. 또 시간은 자연의 급행열차다. 인간이 만든 기차는 느리게 갈 때도 있고 빠르게 갈 때도 있지만 자연의 기차는 어떤 때이건 급행이다. … 시간은 마치 사람을 일대(一大) 마석(磨石)의 한 가운데 앉아놓고서 휴식이 없이 이것을 돌려 굴러가게 해서[선전(旋轉)] 사람의 근골(筋骨)과 정신을 닳아서 없어지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근골과 정신이 닳아서 없어짐을 따라서 늙음을 재촉하며 늙음은 병을 불러들이며 병은 죽음을 불러오게 하는 것이다. 시간은 인간 세상에만 한하여 이처럼 짧고 이처럼 빠른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해는 자연히 장구하지만 나의 해는 자연히 짧은 것이며 하늘의 해는 자연히 영구하지만 나의 해는 자연히 빠른 것이다. … 이른바 유용하게 (시간을) 소비하며 의미 있게 사용한다고 하면 이에 시간 절약의 문제를 낳는 것이다. … 시간을 공연히 허비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시간을 유익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주역』의 시간관
- 공간, 위치, 사건을 통한 시간 인식
55. 풍괘(豊卦) 「단전」 日中則昃(일중즉측)하며 月盈則食(월영즉식)하나니 天地盈虛(천지영허)도 與時消息(여시소식)이온 而況於人乎(이황어인호)며 況於鬼神乎(황어귀신호)여
해가 중천에 있으면 기울고, 달이 차면 줄어드니 천지의 차고 비는 것도 때에 맞게 줄어들고 불어나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며 귀신에게 있어서이겠는가?
「계사전」 剛柔相摩(강유상마)하며 八卦相盪(팔괘상탕)하니 鼓之以雷霆(고지이뇌정)하며 潤之以風雨(윤지이풍우)하며 日月運行(일월운행)하여 一寒一暑(일한일서)라 乾道成男(건도성남)하고 坤道成女(곤도성녀)하니 乾知大始(건지대시)요 坤作成物(곤작성물)이라 乾以易知(건이이지)하고 坤以簡能(곤이간능)이라 易則易知(이즉이지)하고 簡則易從(간즉이종)이니 易知則有親(이지즉유친)이요 易從則有功(이종즉유공)이라
강(剛)과 유(柔)가 서로 갈리며, 팔괘가 서로 밀고 뒤섞이는 것이니 우레와 번개로 고동치며 바람과 비로 적셔주며 해와 달이 운행하고, 한 번은 춥고 한 번은 덥다. 건(乾)의 도(道)는 남자를 이루고 곤(坤)의 도(道)는 여자를 이루니, 건(乾)은 큰 시작을 알고 곤(坤)은 만들어 물건을 이룬다. 건(乾)은 쉬움으로써 알고 곤(坤)은 간략함으로써 능하다. 쉬우면 쉽게 알 수 잇고 간략하면 쉽게 따를 수 있으니 쉽게 알 수 있으면 친함이 있고 쉽게 따를 수 있으면 공효가 있다.
- 마치면 시작이 있음[종즉유시(終則有始)]
건괘 「문언전」 九三曰(구삼왈) 君子終日乾乾(군자종일건건)하여 夕惕(석척)이나 若厲无咎(약려무구)는 何謂也(하위야)오 子曰(자왈) 君子進德脩業(군자진덕수업)하나니 忠信(충신)은 所以進德也(소이진덕야)요 脩辭立其誠(수사립기성)은 所以居業也(소이거업야)라 知至至之(지지지지)라 可與幾也(가여기야)며 知終終之(지종종지)라 可與存義也(가여존의야)라 是故(시고)로 居上位而不驕(거상위이불교)하며 在下位而不憂(재하위이불우)라 故(고)로 乾乾因其時而惕(건건이기시이척)하면 雖危(수위)나 无咎矣(무구의)리라
구삼에 “군자가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써서 저녁까지도 두려운 듯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덕을 증진시키고 사업을 닦아나가야 하니, 진실함으로 미덥게 함은 덕을 증진시키는 것이고, 말을 닦아 진실함을 확립함은 사업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데를 알아 이르므로 함께 기미를 알 수 있고, 마칠 데를 알아 끝마치므로 함께 의로움을 보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며, 아랫자리에 있으면서도 근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힘써서 때를 따라 두려워하면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을 것이다.”
「계사전」 原始反終(원시반종)이라 故(고)로 知死生之說(지사생지설)하니라
시작에 근원하여 마지막을 반추한다. 그래서 사생(死生)의 이론을 안다.
- 미래에서 본 현재, 현재에서 본 미래
「계사전」 子曰 知幾其神乎(자왈 지기기신호)인저 君子(군자)는 上交不諂(상교불첨)하며 下交不瀆(하교부독)하며 其知幾乎(기지기호)인저. 幾者(기자)는 動之微(동지미)니 吉之先見者也(길지선현자야)니 君子(군자)는 見幾而作(견기이작)하야 不俟終日(불사종일)이라
공자가 말했다. “기미를 아는 것은 신묘하도다! 군자는 윗사람과 교류하더라도 아첨하지 않고 아랫사람과 교류하더라도 모독하지 않으니 기미를 아는 것이로구나! 기미라는 것은 움직임이 은미한 것이고, 길함이 먼저 나타난 것이니 군자는 기미를 보고 신속히 행동하여 하루가 마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 현재와 미래를 점치는 점사에 담긴 의미
「계사전」
吉凶者(길흉자)는 言乎其失得也(언호기실득야)요 悔吝者(회린자)는 言乎其小疵也(헌호기소자야)요 无咎者(무구자)는 善補過也(선보과야)라
길과 흉은 잃음[失]과 얻음[得]을 말한 것이요, 뉘우침[회(悔)]과 부끄러운 일을 당함[린(吝)]은 작은 하자를 말한 것이요, 허물없음[무구(无咎)]은 허물을 잘 보완한 것이다.
-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
易(역)이 窮則變(궁즉변)하고 變則通(변즉통)하고 通則久(통즉구)라
역(易)은 궁하면[극한 상황에 이르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는 길이 생기고, 통하면 오래 지속할 수 있다.
☞ 정병석 교수님 해석(정병석, 『주역 하』, 을유문화사, 2015, 618쪽)
○ "궁(窮)"은 막혀서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곤경에 이른 것을 말함
○ "변(變)"은 발전의 단계를 말함
○ "통(通)"은 발전의 연속성을 말함
○ 현상계의 모든 만물은 실제로 궁하지 않을 수 없고, 또 변하지 않을 수 없고, 통하여 다시 궁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다시 변함. 한마디로 무궁히 변통함. 즉 궁->변->통->궁->변->통의 반복임. 말하지만 역도(易道) 자체가 발전이 어려운 단계에 이르면 변하고 다시 새로운 단계를 열어 다시 한번 변하여 연속성을 가지면서 장기적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임
- 인과의 원리
2. 곤괘(坤卦) 「문언전」
積善之家(적선지가)는 必有餘慶(필유여경)이요 積不善之家(적불선지가)는 必有餘殃(필유여앙)하나니 臣弑其君(신시기군)하며 子弑其父(자시기부) 非一朝一夕之故(비일조일석지고)라
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아도는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으니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며 자녀가 부모를 시해하는 것은 하루아침과 하루저녁에 일어난 변고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