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유학: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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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 이론의 일상적 실천의 지침으로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곤 하는 단어 한 글자는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아마도 중(中)?
☞ 중(中)은 뭘까요?
☆ 관련 키워드: #중(中) #중용(中庸) #중화(中和) #중정(中正)
역동적 균형점, 중(中)
- 네이버 한자사전 속 중(中)에서 나타나듯 그저 가운데가 아닌 다양한 명사, 동사적 의미
- '중용(中庸)'이라는 글자에서 살펴보는 '중(中)'의 의미
○ 송나라 성리학자인 주희(朱熹, 1130~1200)는 '중(中)'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 너무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꼭 알맞은 것이라고 풀이했음. '용(庸)'은 일상적인 것이라고 풀이했음
☞ 주희의 『중용장구(中庸章句)』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 싶으신 분은 클릭!
○ 중용은 참 이치에 대한 인식[지(知)]과 실천[행(行)]을 아우르는 개념임
☞ 더 자세한 사항을 보고 싶다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참고해 주세요~
☞ 이걸 봤을 때 유학에서의 중용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꼭 맞게 하는 균형잡기! 이게 관념적으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하는 게 아니라, 안된다는 전제 하에 되뇌이는 다짐 혹은 교훈이 아니라 "일상적 실천"[용(庸)]이라는 점! 유학의 중용은 상황성+실천 & 그 근거가 되는 이론적 정밀성을 갖추고 있다!
☞ 사진출처: https://pixabay.com/
☞ 생각해보면 중(中)은 늘 변화합니다. 왜냐하면 일상이라는 상황은 늘 변하니까요. 하지만 중(中)의 원칙은 한결같죠.
☞ 그런데 어떻게 변화무쌍한 일상적 상황[용(庸)]에 꼭 맞는 역동적 균형점[중(中)]을 잘 지켜갈 수 있을까요? 관계도, 조직도, 내 삶도 이런 균형점을 잃어서 허물지곤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 감정의 상태를 포착하는 중(中)
☞ 그런데 생각해보면 삶이 허물어질 수도 있는 똑같은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데도 어떤 사람은 참 평화로운데, 어떤 사람은 너무 침체되고 우울해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 이런 감정적 상태는 상대방에게 전염되기도 하죠.
喜怒哀樂之未發(희노애락지미발)을 謂之中(위지중)이오 發而皆中節(발이개중절)을 謂之和(위지화)니 中也者(중야자)는 天下之大本也(천하지대본야)오 和也者(화야자)는 天下之達道也(천하지달도야)니라. 致中和(치중화)면 天地位焉(천지위언)하며 萬物育焉(만물육언)이니라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정(情)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고 이르고,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정(情)이 일어나되, 모두 절도(節度)에 맞는 상태를 화(和)라고 하니, 중(中)이란 천하의 큰 근본이고, 화(和)란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道)이다.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편안히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제대로 길러진다.
-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음. 유학은 우리의 그러한 자연스러운 감정 자체를 부정하지 않음. 하지만 그 감정이 어떻게 발로되는지, 상황에 따라 시의적절한지, 또 공적인 감정에서 나온 것인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공적 감정을 잘 불러일으키는 건지 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봄
☞ 참고할 만한 책: 마사 누스바움, 『정치적 감정』 (물론 유학과 그 전제조건이 다를 수 있음)
☞ 역동적 균형점을 잡아가는 주체는 바로 나. 내 감정이 얼마나 시의적절하게 표출되는가, 그 감정이 내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공적이고 적절하고 좋은 감정들, 인간다운 인간 본연의 감정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유학은 주목했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에게는 모두 차마 남을 해치지 못하는 마음[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있다. …… 모두가 차마 남을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지금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 측은(惻隱)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귀기 위해서도 아니고, 마을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인명을 구조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도 구하지 않았다는 악평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이상으로 살펴보면 다음을 알 수 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고,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고, 사양지심은 예(禮)의 단서고, 시비지심은 지(智)의 단서다. 사람들이 이 사단이 있는 것은 그들이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맹자(孟子)』, 「등문공 하(公孫丑 上)」)
윗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뒤에 오는 사람에게 앞장서서 하지 말며, 뒤에 온 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앞사람을 따르지 말며, 오른쪽 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왼쪽 사람과 교제하지 말며, 왼쪽 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오른쪽 사람과 교제하지 마는 것, 이것을 혈구지도(絜矩之道)라고 한다. (所惡於上으로 毋以使下하며 所惡於下로 毋以事上하며 所惡於前으로 毋以先後하며 所惡於後로 毋以從前하며 所惡於右로 毋以交於左하며 所惡於左로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니라) (『대학(大學)』)
- 혈구지도(絜矩之道):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잡아서 남을 헤아리는 것
☞ 그런데 여기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개인적인 욕심,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까지 넓혀나갈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 생각 등일 것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진솔한가, 진정성 있는가, 그런 마음에서 나온 감정, 말인가, 그래서 남에게, 세상에게 보다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인가 등
좋은 마음 상태가 바른 생각과 행동 이어지는 중(中)
- 중정(中正): 자기 중심을 잘 지키면서도 바른 생각, 행동, 판단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역량
☞ 우리는 가끔 잊긴 하지만 이 지구의 중심은? 내가 서 있는 곳. 우리 몸의 한가운데 중심은? 우리 마음.
☞ 이 중용의 원리를 적용시켜 여러분이 앞으로 팀플을 하실 때, 지역 사람들을 만날 때, 일을 할 때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점은 바로 이 좋은(공적인) 마음, 좋은(공적인) 생각, 좋은(공적인) 감정으로 자기 중심을 잡고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럼 사람도 따라오고, 기회도 오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가보다. 순리대로 하자'는 마음으로 다음을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