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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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聖學十圖)>> 소개
○ 1568년, 68세의 퇴계가 17세의 선조에게 바친 책
○ 1567년 선조는 16세로 즉위하자 퇴계에게 관직을 내렸으나 퇴계가 벼슬을 사양해서 응하지 않다가 다음해 7월 판중추부사[군사, 왕명 출납의 사무를 관장하던 중앙 관청의 가장 높은 관직]로 임명됨. 하지만 경연에서 여러 차례 시강도 했으나 늙고 병약한 자신의 한계도 느끼고 어린 선조의 학문적 이해 능력에도 한계를 느껴 12월에 <<성학십도>>를 만들어 올림. <<성학십도>>는 퇴계의 평생의 학문적 여정이 담겨 있는 책임. 이후 퇴계는 귀향하여 2년 뒤 음력 1570년 12월(양력 1571년 1월) 70세로 세상을 떠남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 1년 무진(1568) 12월 1일
이황이 《성학십도》를 올리다
이황이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렸는데, 1. 태극도(太極圖), 2. 서명도(西銘圖), 3. 소학도(小學圖), 4. 대학도(大學圖), 5.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6.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7. 인설도(仁說圖), 8. 심학도(心學圖), 9. 경재잠도(敬齋箴圖), 10.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였다. 임금은 그것이 학문하는 데 매우 긴절한 것이라 하여 그것을 병풍으로 만들라고 명하여 이를 보면서 반성하였다. 그때 이황은 돌아갈 뜻을 이미 결정했기 때문에 이 도(圖)를 만들어 올리며 ‘제가 나라에 보답할 것은 이 도뿐입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