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연습: 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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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조선학 운동
☞ 최재목, <1930년대 조선학(朝鮮學) 운동과 ‘실학자(實學者) 정다산(丁茶山)’의 재발견>, <<다산과 현대>>,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2012, 69~101쪽
☞ 백승철, <1930년대 조선학운동의 전개와 민족인식, 근대관>, <<역사와 실학>> 36, 역사실학회, 2008, 113~148쪽
- 1930년대에 조선학 운동, 국학 운동이 일어나게 됨. 조선학은 "조선에 고유한 것, 조선 문화의 특색, 조선의 전통을 천명하여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함
- 특히 다산 정약용 서거 99주년(1934)~100주년(1935) 행사를 계기로 실학과 정약용이 재발견, 호출되기 시작함
- 조선학은 특히 민족주의 진영에 속하는 인사들 사이에서 널리 수용되어 갔음
- 1930년대에는 일제의 탄압과 수탈이 사상문화와 민족정신의 영역에까지 확장되고 있었던 때임. 당시 자본주의 세계의 경제공황 위기에 따라 일본도 경제적 타격을 입었으며 이를 타개하고자 만주 침략 전쟁을 도발하고 식민지 조선의 수탈을 강화함. 그리고 그 수탈정책의 일환으로 황국신민화 체계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일어남
- 그 한 예로 식민사관에 입각한 조선 연구를 강화하는데 식민 통치 이전의 조선을 정체된 사회로 치부하고 일제 치하의 조서는 발전=개화=문명화=계몽된 사회로 논증하여 부각시키는 전략을 구사함. 이 과정에서 민족의 정통성, 민족혼은 폄하되거나 부정됨
- 이에 대응하여 조선학 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은(정인보, 안재홍, 현상윤 등을 들 수 있음) 조선 후기의 실학에 주목했음. 그리고 그 실학의 학풍이 반계 유형원(1622~1673) 이후 성호 이익(1681~1763)을 거쳐 다산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다고 보았음
- 또한 이 조선학 운동의 일환으로 단군에 주목하기도 했음. 단군조선에 관한 이념은 민족주의 진영의 역사관, 민족관, 국가관을 모두 내포한 개념이었음
- 실학 연구를 통해 드러난 민족주의 계열의 근대관의 예시로 현상윤을 들 수 있음. 그는 "실학운동이 계속되고 성공되었다면 필연적으로 구미의 물질문명이 훨씬 용이하게 또는 일찍이 조선에 수입되었을 것"이라고 하여 조선사회의 내적인 근대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음
☞ 윤사순, <실학 의미의 변이>, 한국사상사연구회, <<실학의 철학>>, 예문서원,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