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전서 사생귀신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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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전서>> <사생귀신책> 소개[편집 | 원본 편집]

★ 번역문출처: 한국고전종합DB, <<율곡전서>> <사생귀신책>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 최일범, <율곡 이이의 사생관에 관한 연구>, <<동양철학연구>> 제64집, 동양철학연구회, 2010, 43~61쪽
☞ 이영경, <율곡 사상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 <<한국민족문화>> 38,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0, 253~279쪽

  • 율곡 이이(1536~1584)의 죽음에 대한 관심

○ 율곡은 죽음의 문제가 정면으로 논의되어야 만 삶의 문제, 인간의 문제, 인간됨의 문제가 온전히 해명될 수 있다고 이해했음
○ <사생귀신책>은 과거시험의 한 단계에서 제출하는 책문의 하나임
○ 율곡이 제시한 책문에 의하면 당시 유학자들이 사생(死生: 죽음과 삶)과 관련해서 가장 관심 있던 것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음

1. 사생의 정의로서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수명에 관한 문제로서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는가? 혹은 수명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연장될 수 있는가? 그 방법은 무엇인가?
3. 기도를 통해서 수명을 연장하거나 귀신과 소통할 수 있는가?
4. 인간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 대체로 이 질문들에 대해 율곡은 성리학의 이론을 중심으로 불교의 윤회설과 도교의 신선과 방술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드러냈음


  • <사생귀신책>에서의 물음

기존의 죽음에 대한 관점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말 들어봤죠?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진다는 말

- 사람이 죽으면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진다고 보았음
- 훈호처창[焄蒿悽愴, 향기 (훈), 증발하는 모양 (호), 슬퍼할 (처), 슬플 (창)]: <<예기>> <제의(祭義)>에 나오는 말로,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는 신체와 기(혼백)가 합하여 생명체를 이루지만 사람이 죽으면 기가 신체에서 분리되어 증발해 하늘로 올라가서 신이 되는데 사람이 이 기운의 냄새를 맡으면 슬퍼지는 것이라고 보았음. 후에 주희는 '훈호'는 기가 사람에게 감촉으로 느껴지는 것이고 '처창'은 신이 이를 때 싸늘한 바람이 이는 것이라고 보았음
=> 그렇다면 죽은 이후에도 지각이 있다는 것인가? 있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이 허황되지 아닌 거 아닌가? 만일 지각이 없다면 제사를 지낼 필요가 있나?


  • <사생귀신책>에서 율곡의 대답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기가 모여 있는 것이며 죽음이란 기가 흩어진 것임

- 율곡은 지각을 눈, 귀 등의 감각 작용과 마음의 사유작용으로 구분함. 감각 작용은 백(魄)의 신령함이고 마음의 사유작용은 혼(魂)의 신령함이라고 보았음
- 율곡은 정기(精氣)라는 개념을 언급하는데 정(精)은 쉽게 말하자면 음식을 먹고 소화해서 얻은 영양분이고 영야이 충실하면 기로 변화하고 기에 의해서 생명이 살아갈 수 있으며 만약 영양이 부족해서 기를 생산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게 됨. 정을 수련해서 기로 변화시키고 기를 수련해서 신으로 변화함
- 사람이 죽으면 이런 정, 기, 신은 흩어짐

하지만 기가 모이고 흩어지게 하는 일정한 원리, 감각을 느끼고 사유를 하게 하는 일정한 원리 자체는 존재하는 거 아닌가?

=> 이것이 바로 이(理)임


기는 모이고 흩어짐이 있으나 이(理)는 처음과 끝이 없음

- 이(理)는 감각하고 생각하게 하는 원리이고 형이상학적 근거임

그런에 이 원리 자체에 지각이 있는가?

=> 없음. 이것이 기(氣)와의 차이임. 율곡은 기에는 지각이 있지만 이(理)에는 지각이 없다고 보았음

그렇다면 이 이(理)의 의의는?

=> 기는 모이고 흩어지기 때문에 유한함. 하지만 이(理)에 의해 만물과 인간은 모두 영원할 수 있음. 즉 개체로서 기를 가진 개개의 인간, 사물은 태어난 이후에 죽기 마련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는 만물과 인간은 영원히 태어나고 태어남. 이 이(理) 덕분에.

하지만 이(理)는 기(氣)와 함께 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음

=> 이(理)는 기가 모임으로 인해서 생명을 얻게 되면 동시에 기에 내재하여 인간의 본성[성(性)]이 됨. 이(理)와 기의 속성과 관계에 대해 율곡은 "기가 없으면 발동할 수 없지만 이(理)가 없으면 발할 곳이 없다."라고 했음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본 후에 측은한 마음이 발동한다. 보고 측은해 하는 것은 기(氣)이니 이것이 기가 발동한다는 것이며, 측은해 하는 마음의 근본은 인(仁)이니 이것이 곧 이(理)가 탄다는 것이다." -<<율곡전집>>

=>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을 발동하는 주체는 기이다. 감각기관이 있기 때문에 '보고' 마음이라는 기관이 있기에 마음이 '발동'할 수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왜 그런 마음이 발동했을까? 만일 일정한 원리가 없다면, 방향성이 없다면 엉뚱하게 분노하거나 기뻐하거나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 발동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우물에 빠지는 아이를 보면 놀라고 측은해 하는 마음으로 구해주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 일정한 원리가 발동하는 이유에 대해 율곡은 "이(理)가 기를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음. 측은해 하는 마음이 발동하게 하는 근거는 인간 본성의 하나인 인(仁) 때문임


하지만 정기는 바로 소멸되지는 않음

- 사람이 죽으면 정기가 흩어지지만 바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손이 정성과 공경하는 마음이 있으면 조상에게 감격을 줄 수 있음
- 자손이 정성과 공경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상이 생전에 거처하며, 웃으며 말씀하며, 즐기며 좋아했던 것을 생각하여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면 곧 조상의 기(氣)가 후손의 마음을 통해 다시 모이게 된다는 것임
- 율곡이 말하는 감격은 신비스러운 것이 아님. 기(氣)로써 감격한다는 것은 자손이 정성으로 마음을 집중하여 조상이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행동을 생각하여 마치 살아서 눈앞에 나타난 듯이 되는 상태를 의미함. 즉 감격은 조상을 생각하는 후손의 정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 후손의 마음과 무관하게 작용하는 조상의 귀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


기가 소멸했어도 이(理)의 감격이 가능함

- 기의 속성을 생겨나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것이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하지만 이(理)는 불변이기 때문에 정성으로 감격할 수 있다고 함

자손의 정신이 선조의 정신이란 율곡의 말은 무슨 의미일까?
제사의 참 기능은 무엇일까? 단순히 조상을 위해서일까?


참고: 전통사회에서 상장례 의식의 기능

☞ 안경진·박경숙, <노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경험: 죽음의 고통과 삶의 의미>, <<인간·환경·미래>> 제26호, 인제대학교 인간환경미래연구원, 2021, 64~85쪽

- 과거의 사람들은 죽음 이후 존재가 삶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서 상장례 의식, 제사 의식을 행했고 이러한 타인의 죽음을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시간들을 통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
- 오늘날 고독사와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죽음이 우리 일상과 분리되고, 죽음에 대한 준비와 대응의 몫이 온전히 개인에게 맡겨지면서 각각의 개인들이 죽음에 대해 애써 생각하지 않으며 죽음을 타자화하다 죽음의 고통에 대해 성찰할 기회들을 잃고 살아간다고 보았음
- 그리고 실제로 노인요양기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노인들, 그리고 돌봄종사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그들이 겪고 있는 죽음에 관한 인식은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근원적인 상실의 경험, 정리되지 못한 관계로 인한 고통, 후회와 원망으로 가득한 삶, 자신의 죽음에 대한 성찰을 차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동적인 태도, 원치 않는 방식대로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죽음에 대한 돌봄 부담감, 관계로부터의 고립과 상실감 속에서 홀로 죽는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나타났음


  • 율곡이 말한, 죽음에 관한 기(氣)의 영역, 이(理)의 영역의 구분의 필요성

☞ 이영경, <율곡 사상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 <<한국민족문화>> 38,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0, 253~279쪽


죽음과 관련한 기(氣)의 영역

 "사람이 맑은 기를 타고나면 착하기는 하지만 맑은 기를 타고난 사람이 꼭 후(厚)하다는 법이 없으니, 어진 사람이 꼭 장수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탁한 기를 타고난 사람이 악하기는 하지만 탁한 기를 타고난 사람이 반드시 박(薄)하라는 법은 없으니, 어질지 못한 사람이 꼭 요절한다고 기필할 수는 없다. 그러니 안연의 일찍 죽음과 도척[고대의 유명한 도둑 이름]의 장수를 어찌 의심하겠는가?" -<<율곡전서>> <수요책(壽夭策)>

=> 사람의 수명을 좌우하는 것은 기의 굳셈과 부드러움이며 여기에 이(理)가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없음. 장수함과 일찍 죽음의 문제는 사람이 받은 천부적인 인품의 선, 악과는 부관한 것임

그렇다면 죽지 않기 위해 병을 적극적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은 소용없는 것인가?
 "몸을 닦아 천명을 기다리는 사람은 이(理)로써 기를 수양하는 사람이고, 섭생을 해서 장수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기로써 기를 기르는 사람이다. 이(理)로써 기를 기르면 장수를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장수할 수 있고, 기로써 기를 기르면 비록 장수할 수 있을지라도 이(理)에 해로울 수 있다. 하물며 푸닥거리 따위로 명(命)을 비는 것이겠는가? 그러나 의약으로 병을 치료하는 일은 성인(聖人)도 했다." -<<율곡전서>> <수요책(壽夭策)>

=> 이(理)로 기를 수양하는 사람: 천리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욕망을 절제하고 바른 도리를 실천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기운을 바르고 건강하게 하는 것
=> 오로지 기로만 기를 수양하는 사람: 자칫 도리를 해칠 수 있음
=> 병을 고치기 위한 일정하고 정상적인 치료적 의약 처방은 꼭 해야 함
=>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잘 닦아나가면서도 수용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삶이라고 보았음

'나'는 좋은 죽음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갈지?


  • 사회윤리로 귀결되는 율곡의 삶과 죽음의 철학

☞ 이영경, <죽음과 사후적 실체에 관한 율곡의 윤리의식>, <<대동철학>> 제15집, 대동철학회, 2001, 65~84쪽

○ 인간이 죽게 되면 의식이 없게 되므로 사후적 실체는 살아있던 때의 존재와 같은 의식적 동일성을 가지지 못할 수 있음. 그렇게 되면 사후적 존재에 대한 의례로서의 제사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가질 수도 있음. 그 의례를 행하는 주체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대상 사이에 아무런 교감도 없다면 의미가 없을 것임
○ 하지만 율곡은 기존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의 견해처럼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를 지낸다면 그것이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보았음

 중국 성리학자 주희: "조상의 정신과 혼백은 비록 이미 흩어졌다 하더라도 자손의 정신과 혼백이 조금은 서로 이어져 있다. 그러므로 제사의 예식에 진실함과 경건함을 다하면 곧 조상의 혼백에 이를 수 있다."
- <<주자전서>> 권31, <어록>

○ 지성이면 감천(感天)이란 말처럼 지극한 정성이 유가적 의례의 본질이 된다는 점에 율곡 또한 주목함
○ 율곡은 사후적 실체가 인격적 실체가 아니라 이(理)와 연관시켜서 말했음. 기의 모이고 흩어짐은 기의 유한적 속성이므로 이런 형기(形氣, 형체와 기질)를 부여받은 존재인 인간 사후에 그 기(氣)적인 실체는 소멸되는 것임. 하지만 본래 우주의 원리로서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개별 인간의 형성과정에서도 인간에게 부여되는 이(理)는 무한하며 이것이야말로 사후적 실체와 감통할 수 있다고 보았음
○ 이러한 이(理)에 순응하는 순리적인 측면은 성리학자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져 왔음. 공자 또한 제사의 근본적인 기능을 이러한 의식을 통해 도덕 심성을 가꾸게 하려는 데 있었음. 인귀(人鬼, 사람이 죽은 후의 귀)에게 제사지냄으로써 효를, 천신(天神)에게 제사드림으로서 경(敬, 공경)을 마음속에 기를 수 있다고 보았음
○ 율곡은 기본적으로 제사를 효의 차원으로 접근하지만 이에 더 나아가서 산 자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확장하는 언급을 했음. 제사는 죽은 자에게 복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면 죽은 자의 기를 펼 수 있다고 하면서 제사의식의 주체가 곧 산 자라고 보았음. 마음을 바르게 하고 교화를 통해 천도를 밝히려는 수양적 노력이 결국 사후적 실체의 굽어진 기까지 펼 수 있다고 본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