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제1장
☞ 번역문 출처: 동양고전종합DB
道(도)는 可道(가도)면 非常道(비상도)요 名(명)은 可名(가명)이면 非常名(비상명)이라. 도(道)는 (문자로) 표현할 수 있으면 [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은 (문자로) 규정할 수 있으면 [이름이 이름지어질 수 있으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 왕필 주:
○ (문자로) 표현된 도와 (문자로) 규정된 이름은 (구체적 사태를 가리키는) 지사(指事: 글자를 통해 표현된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태)나 (아주 구체적인 형태를 가리키는) 조형(造形)에 해당하므로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문자로) 표현할 수 없고 (문자로) 규정할 수 없다.
無名(무명)은 天地(천지)[萬物(만물)]之始(지시)요 有名(유명)은 萬物之母(만물지모)라. 무명(無名)은 만물의 시작이요,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미이다.
◈ 왕필 주:
○ 무릇 유(有)는 모두 무(無)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만물이) 아직 형체가 없고 이름이 없는 때가 만물의 시작이요, (만물이) 형체가 있고 이름이 있는 때에는 (도(道)가 만물을) 자라게 하고 길러주며 형통케 하고 성장케 하니 (만물의) 어미가 된다. 이는 도가 형체가 없고 이름이 없는 상태에서 만물을 시작하고 이루어주지만, 만물은 (그 도에 의해) 시작되고 이루어지면서도 그 소이연(所以然: 그러한 까닭)을 알지 못하니 신비하고 또 신비하다고 했다.
故常無欲(고상무욕)이면 以觀其妙(이관기묘)하고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없으면 그 신묘함을 보고,
◈ 왕필 주:
○ ‘묘(妙)’란 지극히 ‘작다[미(微)]’는 뜻이다. 만물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 시작한 뒤에 성장하고, 무(無)에서 시작한 뒤에 생장한다. 따라서 늘 욕심이 없어 그 마음을 텅 비워내면 그 시작하는 만물의 신비를 볼 수 있다.
☞ 왕필이 말하는 무욕(無欲)의 상태는 개개인의 욕망 절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신분과 직무를 얻어 사회 전체가 조화와 질서를 이룬 상태를 가리킴. 마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음악가가 되면 조각가가 되려는 욕심을 내지 않는 것과 같음
常有欲(상유욕)이면 以觀其徼(이관기요)하니라. 항상 욕심이 있으면 그 돌아가는 끝을 본다.
◈ 왕필 주:
○ ‘끝[요(徼)]’이란 돌아가 마치는 곳이다. 무릇 유(有)가 이롭게 되려면 반드시 무(無)를 써야 한다. 욕심의 뿌리인 (마음은) 도에 나아간 뒤에야 가지런해진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있으면 마치고 (돌아가는) 만물의 끝을 볼 수 있다.
此兩者(차양자)는 同出而異名(동출이이명)으로 同謂之玄(동위지현)이니 玄之又玄(현지우현)이 衆妙之門(중묘지문)이라 이 두 가지는 함께 나와 이름을 달리한 것으로, 함께 일컬어 ‘현묘하다’고 하는데, 현묘하고 또 현묘한 것이 온갖 미묘한 것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 왕필 주:
○ 양자(兩者)란 ‘시작[시(始)]’과 ‘어미[모(母)]’이다. ‘함께 나왔다[동출(同出)]’는 것은 ‘함께 현(玄)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이름이 다르다[이명(異名)]’는 것은 (‘시작[시(始)]’과 ‘어미[모(母)’가) 하는 일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래서 머리 쪽에 있으면 ‘시(始)’라 일컫고, 끝 쪽에 있으면 ‘모(母)’라고 일컫는다.
○ ‘현(玄)’은 깊고 어두운 것이니, 고요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무유(無有)]이며 ‘시작[시(始)]’과 ‘어미[모(母)’가 나오는 곳으로서 〈이러한 현(玄)에 대해〉 ‘이름[명(名)]’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함께 ‘현(玄)’이라고 이름을 붙여 말할 수 없다.
○ 그런데도 ‘함께 일컬어 현(玄)이라 한다.[동위지현(同謂之玄)]’고 말한 것은 그렇게 (이름을) 붙여 일컬을 수 없다는 데서 취한 것이다.
○ 그렇게 (이름을) 붙일 수 없다면 ‘현(玄)’이라는 하나의 (글자로) 확정할 수 없으니, 만약 ‘현(玄)’이란 하나의 (글자로) 확정하면 이것은 곧 이름이요 〈본래의 뜻을〉 크게 잃은 것이다. 그래서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현지우현(玄之又玄)]’고 〈형용하는 의미로 중복하여〉 말한 것이다.
○ 뭇 신비함이 모두 같은 현(玄)에서 나오니, 이 때문에 ‘온갖 미묘한 것들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했다.
◈ 현(玄: 현묘함):
☞ 노자 지음, 김원중 옮김, <<노자 도덕경>>, 휴머니스트, 2021, 35쪽
○ 도는 '그윽하고 미묘하며 심원한' 것으로 이 '현(玄)'이라는 글자로 나타냄
○ '현묘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확실하게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신비스럽다는 의미로서 '도'의 개념과 기본적으로 상통함
○ 이 글자의 풀이말이 가리키는 색은 본래 적흑색에 가까움
○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이라는 말에서 보이듯이 하늘의 색을 '현(玄)'으로 표현해 왔음
○ 고대 글자풀이책인 <<설문해자>>에서 "현이란 그윽하고 먼 것[玄幽遠也]"이라고 했는데 '현'은 깊고도 먼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
○ 왕필은 '현'을 만물의 시작일 뿐 아니라 어미[母]가 나오는 장소로 보았으며 절대적인 물아일체를 형용한 글자로 보았음
<<노자>>에 보이는 도(道) (일부)
☞ 번역문: 동양고전종합DB / 노자 지음, 김원중 옮김, <<노자 도덕경>>, 휴머니스트, 2021 참조
4장. 道沖而用之(도충이용지)로되 (或)[又]不盈(혹우불영)하니 淵兮似萬物之宗(연혜사만물지종)이로다
도는 [그릇처럼] 비어 있으면서도 작용하니 그 작용을 다하지 않을 듯하고 깊으면서도 만물의 근원인 것 같다.
8장. 上善(상선)은 若水(약수)하니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부쟁)하며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라 故幾於道(고기어도)니라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물고 있으므로 도에 가깝다.
9장. 持而盈之(지지영지)는 不如其已(불여기이)요 揣而銳之(췌이예지)는 不可長保(불가장보)라 金玉(금옥)이 滿堂(만당)이면 莫之能守(막지능수)하고 富貴而驕(부귀이교)면 自遺其咎(자유기구)라 功遂身退(공수신퇴)는 天之道(천지도)니라
가지고 있으면서 더 채우려고 하는 것은 그만두느니만 못하다. (뾰족한 날을) 다듬으면서 그것을 더 날카롭게 하는 것은 오래도록 보존할 수 없다. 금과 옥이 집안을 가득 채우면 그것을 지킬 수가 없고 부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공이 이루어지면 자신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道)이다.
18장. 大道(대도)가 廢(폐)하니 有仁義(유인의)하고 慧智(지혜)가 出(출)하니 有大僞(유대위)니라
큰 도가 없어지자 인(仁)과 의(義)가 생겨났고 (교묘한) 지혜가 나타나자 큰 거짓이 생겨났다.
32장. 道常無名(도상무명)이라 [樸(박)은 雖小(수소)나] 天下莫能臣也(천하막능신야)니라
도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 통나무처럼 비록 보잘것없지만 천하의 누구도 (그것을) 신하로 부릴 수 없다.
오늘의 토론 주제 (2022.09.20)
☞ 1. <<노자>>의 도(道)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는? ☞ 2. <<노자>>의 도(道)는 우리 삶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