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칠정논쟁2
사단칠정 논쟁에 대한 퇴계의 글들
☞ 이상호, <<사단칠정 자세히 읽기>>, 글항아리, 2011, 164~192쪽
1.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인, 의, 예, 지의 본성에서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희[喜: 기쁨], 노[怒: 성냄]. 애[哀: 슬픔], 구[懼: 두려움], 애[愛: 사랑], 오[惡: 미움], 욕[欲: 욕구]는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바로 마음 밖에 있는 사물 및 다양한 사건이 사람의 오관[五官: 눈, 귀, 코, 혀, 피부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접하게 되고 그것이 마음을 움직여 각 환경에 따라 감정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선한 감정이 활동하게 되는 곳을 맹자는 '마음'이라고 했는데 마음이란 이와 기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理) 위주로 맹자가 말했던 것은 왜일까요? 인, 의, 예, 지와 같은 본성이 순수하게 감정 속에 자리잡고 있고 이 네 가지 선한 감정인 사단이 그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 사단은 참으로 선하기만 하므로 '사단이 없으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정은 '선한' 감정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칠정은 아직 선과 악이 결정되지 않은 감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라도 똑바로 살피지 않게 되면 마음이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사단과 칠정 모두 이와 기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근거에 따라 각각 주된 것, 또는 중심을 두는 것이 다릅니다. 바로 이 점을 가리켜서 어느 것은 이에서 나왔고 어느 것은 기에서 나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양선생사칠리기왕복서>> <퇴계답고봉사단칠정분리기변>
2. 사단도 감정이고 칠정 역시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 둘 모두가 정말 같은 감정이라면 굳이 사단이니 칠정이니 하면서 달리 부르겠습니까? ... 옛날 성현들께서 언제 이와 기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 둘을 뭉뚱그려 하나의 존재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구별하지 않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양선생사칠리기왕복서>> <퇴계답고봉사단칠정분리기변>
3. 만약 칠정을 사단과 대비시켜 각각 구분해서 말한다면 칠정이 기와 관계를 맺는 것처럼 사단은 이와 관계를 맺는 것이니, 이처럼 두 감정은 각각 다른 혈맥이 있고 그 이름을 통해 각각 가리켜 말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각각의 감정이 드러나는 데 있어서 주된 역할을 한 것에 따라 나누어 소속시킬 수 있습니다. ... 사단이 마음 밖의 사물이나 상황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감정이라는 사실에 있어서도 칠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일 뿐입니다.[사즉이발이기수지(四則理發而氣隨之), 칠즉기발이이승지(七則氣發而理乘之耳)]
=>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일 뿐입니다.[사즉이발이기수지(四則理發而氣隨之), 칠즉기발이이승지(七則氣發而理乘之耳)]'를 이상호는 "사단은 이치가 주도적으로 드러나려고 하자 기가 그러한 이치를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드러나려고 하자 이치가 그 기를 타게 된 것"이라고 번역했음
4. 옛날 사람들은 사람이 말을 타고 드나드는 것을 가지고 이가 기를 타고 드나드는 것에 비유했는데 이것은 참으로 좋은 비유입니다. 사람은 말이 없으면 드나들지 못하고 말은 사람이 없으면 길을 잃게 되니 (드나들 때에는) 사람과 말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 떨어질 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러한 상황을 가지고 말하면서 사람과 말을 한꺼번에 묶어서 말을 하게 되면 사람과 말은 모두 그 속에 있으니 사단과 칠정을 섞어서 말한 것이 바로 이러한 상황입니다. 또 사람이 가는 것만을 가리키면서 말을 함께 가는 것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말 속에는 '말이 간다는 사실' 역시 포함되어 있으니 사단만을 말하면서 별도로 기를 말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경우입니다. 또 말이 가는 것만을 가리켜 말하면서 사람이 함께 가는 것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말 속에는 사람이 가는 것을 포함하고 있으니 칠정만을 말한 것이 이러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내가 사단과 칠정을 나누어 말하는 것을 보고 그대께서는 항상 섞어서 말한 경우만을 가지고 나의 말을 논박하니 이것은 '사람도 가고 말도 간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사람과 말은 같이 가는 것이므로 나누어 말할 수 없다고 우기는 것과 같습니다. 또 내가 칠정을 가지고 기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들을 가지고 이에 의해 드러난 것이라고 굳이 말하니 이것은 마치 '말이 간다'라는 말을 듣고 '사람도 간다'라고 애써 말하는 것과 같습닌다. 또 내가 사단은 이가 감정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하면 그대께서는 다시금 기가 드러난 것이라고 굳이 말하니 이것은 마치 사람이 간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 반드시 말도 간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학십도(聖學十圖)>> 제6도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에 나타난 퇴계의 사단칠정에 대한 생각
☞ 이황 지음, 이광호 옮김, <<성학십도(聖學十圖)>>, 홍익출판사, 2012, 83~92쪽
- <심통성정도> 원본 그림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심통성정도> 한글 번역본 (출처: 이광호 옮김, <<성학십도>>)
- <심통성정도> 상도(上圖): 정복심(程復心) 그림
- <심통성정도> 중도(中圖), 하도(下圖): 퇴계 그림
○ 오랜 기간동안 고봉과 편지 왕래를 통해 정립된 사단칠정에 대한 퇴계의 이론이 중도, 하도의 두 그림 안에 갖추어져 있음
○ <심통성정도> 중도의 성(性): 본연지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임. 그래서 이 본연지성에서 나온 정(情: 감정)은 선함. 칠정은 사단을 포함하여 모두 선함
○ <심통성정도> 하도의 성(性): 성은 본래 하나이지만 맑고 탁하고 순수하고 섞임의 차이가 있는 기품 속에 있기 때문에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두 명칭으로 구분됨. 이와 기를 아우르고 있어서 선과 악이 여기에서부터 갈라지게 됨. 퇴계는 이 하도의 그림과 관련하여 배우는 사람들이 늘 한결같이 경(敬)을 견지해야 하며, 마음이 미발(未發: 아직 발동되지 않음)인 때에 늘 마음을 다잡고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음
오늘의 토론 주제(2022.10.12): 퇴계의 마음 읽기
☞ 1. 고봉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퇴계가 끝까지 지켜가려 한 것은 무엇일까요? ☞ 2.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토론 내용(2022.10.12): 퇴계의 마음 읽기
☞ 고봉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퇴계가 끝까지 지켜가려 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도덕적으로 최고 기준(이렇게까지 인간이 할 수 있다는)을 제시하고자 했음
=> 인간의 순수한 마음이 한국적 철학의 키워드임. 퇴계는 오감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선한 인간의 순수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하늘이 준 인간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한 것으로 보임
=> 선이 있기 때문에 당위적 행위, 도덕적 실천을 할 수 있음
=> 선이라는 도덕성의 준거로 도덕에 당위성을 부여했음
=> 인간의 당위를 지킨다면 학문적 이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임
☞ 퇴계는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적 선이 있다고 생각하고 기준을 정하고 싶었다고 생각됨
☞ 의문: 퇴계가 생각한 인간의 지향, 목표의 범위는 어디까지 였을까?
☞ 의의: 당위적 근거로서 사단을 정의해서 인간의 지향, 목표를 높게 설정했음. 평등주의적, 인본주의적으로
○ 퇴계는 사단, 칠정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중요시한 것으로 보임. 퇴계는 사단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음. 사단과 칠정을 혼합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것으로 보임
=> 사단과 칠정을 같이 보면 사단이 없는 상태의 가능성이 생김. 사단이 없으면 인간이 아님. 이 가능성을 없애면 안된다고 퇴계는 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