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순언(醇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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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장태, <순언과 율곡의 노자 이해>, <<동아문화>> 제43집,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2018
율곡 이이(1536~1584)의 <<노자>> 주석서 <<순언>>
- 율곡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주자학(성리학, 유학)의 정통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녔던 인물임
- <<순언>>은 현재 알려진 조선시대 유학자의 <<노자>> 주석서 가운데 최초의 저술로 알려져 있음
- 1611년 율곡의 문집이 처음 간행되고 그 후에 <<속집>>, <<외집>>, <<별질>>이 차례로 간행되었으나 <<순언>>은 어디에도 수록되지 않았음. <<율곡집>>을 편찬하던 율곡의 제자들이 <<율곡집>>에 수록하기를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저술로 받아들여졌음. 사실상 율곡의 학맥에서도 <<순언>>에 관해 아무도 논의하지 않아 거의 외면당한 형편이었음
- 율곡의 <<순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홍계희(1703~1771)에 의해서임. 홍계희는 1750년 <<순언>>의 끝에 붙인 발문에서 그가 충청도 관찰사로 충남 논산군의 연산면을 지나다가 김집(金集, 1574~1656 : 율곡의 제자였던 김장생의 아들)의 후손에게서 김집이 손으로 옮겨 적은(필사한) <<순언>>을 우연히 구해보고 없어질까 염려하여 몇 권을 활자로 인쇄했다고 함
- 율곡의 <<순언>>은 <<노자>> 본문의 5,000여 자에서 2,098자를 선택하여 40장으로 나누고 구절을 나누어 <<순언>>을 편찬했음. 이러한 선택의 원칙은 이치에 가까워 취할 만한 것은 선택하고, 이치에 어긋남이 있어서 버려야 할 것은 제외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음. <<노자>>에서 '순수한[순(醇)]' 것을 취하여 <<순언(순수한 말)>>이라는 제목을 붙였음
율곡의 이단에 대한 인식
- 율곡은 이단배척을 엄격하게 주장했던 인물임. 그는 "이단의 교설과 세상을 미혹시키는 술법에 대해서는 일체 금지하여 끊어야 한다."고 하여 이단의 금지를 요구했음
- 그러나 율곡 자신이 19세 때 금강산에 입산하여 불법을 닦았던 일이 있었으며 금강산에서 승려와 묻고 답하면서 "마음이 곧 부처이다"라는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맹자가 성품이 선함을 말하면서 말할 때마다 반드시 요, 순을 일컫는 것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하기도 했음. 이처럼 유교와 불교의 가르침이 근원에서 소통할 수 있음을 지적했음
- 율곡은 노자와 불교를 이단으로 인정했지만 <<노자>>에 대해서는 독특한 평가를 했음. 그는 <<노자>>에 취할 만한 부분과 취할 수 없는 폐단의 부분을 엄격하게 구분했음. 예를 들어 무위(無爲)와 무욕(無欲)은 이치에 가까운 말이라 군자도 취하지만 양생의 말, 공허를 오묘한 작용으로 삼는 것 등은 비판했음
- 그러면서 그는 <<노자>>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음
다만 자신을 극복하고 인욕을 막음이나, 고요하고 신중함으로 자신을 지킴이나, 겸허함으로 자신을 기르는 것이나, 자애롭고 간략함으로 백성을 다스림의 의리는 모두 친절하고 맛이 있어서 배우는 자에게 유익하니, 성인의 글이 아니라 하여 살펴보지 않아서는 안 된다. -<<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