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인간본성론: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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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결국, 사람이 희망이다
☞ 한 학기동안 살펴본 유학의 인간본성론을 훑어보며 드는 한 가지 생각, 사람이 희망이다
- 지금까지 살펴본 유학의 인간본성론에서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성찰과 함께 수양과 공부, 좋은 습관들을 통해 선해질 수 있는 인간에 대해 논하고 있음
- 여기서 선이란 한 개인의 도덕적 삶에 관한 것임과 동시에 함께 하는 이들에게 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확충되어 더 나은 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음
- 그리고 그 희망의 주체는 사람, '나'임
- 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인공지능시대에 요구되는 사람의 역할은 기술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보다 나은 삶,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그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음
- 이를 위해 혹여 인문학(특히 유학)을 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미미하더라도 끊임없이 우리의 미래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잔혹한 세상이더라도 우리들이 품을 수 있는(혹은 품어야 하는) 희망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던져야 함
- 특히 오늘날 우리시대, 우리 삶에 요구되는 유학의 역할 중에 하나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지켜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변하지 않아야 할 삶과 사회의 원칙을 사유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됨.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 변화하는 것과 함께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유는 수 천 년간 지속되어 온 유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임
예) 성(性): 불변의 것, 모두가 동등하게 가지고 태어난 것, 보편
=> 그래서 착한 본성이 불선하게 되는 것을 성리학자들은 본성이 가려진 것이라고 보았음. 본성이 없어진 게 아니라
=> 하지만 후천적으로 주어지게 되는 시대, 환경, 습관, 공부 등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며 그 변화에 발맞춰 갈 필요가 있음
끊어진 전통? 단절된 시기? 근대 이후 유학은 사람에 대해, 사람들이 품어야 할 희망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사유해 왔나?
☞ 유학을 공부하면서 든 생각 중 하나. 한국 땅에서 유학을 공부한 '나'는 어떤 유학을 공부해 온 것일까? 내 공부의 뿌리는 어디인가?
- 백수문(白首文): 천자문의 다른 이름.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464~549) 초대 황제 무제가 왕자들에게 글씨를 가르치기 위해 위나라 종요(鍾繇)와 동진의 왕희지(王羲之) 글씨 가운데 겹치지 않은 일천 자를 탑본하여 종이 한 장에 한자씩 쓰게 했는데 글씨들이 뒤섞여 있어 순서가 없었음. 무제가 주흥사에게 각 글자마다 운을 붙이라고 명을 해서 무제의 명을 받은 주흥사가 일천자를 하루 사이에 편집했는데 주흥사의 머리와 수염 또한 하루 사이에 모두 하얗게 되어 있었다고 함
- 공자탄강(B.C.551년) 2513년 임인(壬寅) 중추(仲秋) 회일(晦日): 1962년 임인년 8월 그믐
☞ 광복, 한국전쟁 등의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그 시절, 우리 할아버지는 왜 천자문을 남기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