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주역형성사와 해석사
☞ 이 주역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주역 형성에 관한 전통적인 견해
- 『주역』 「계사전」
“복희씨가 우러러서는 하늘에서 형상을 관찰하고 굽어보아서는 땅에서 법칙을 관찰하며 온갖 새와 짐승의 무늬를 살피고 각각의 토지에 마땅한 바를 살펴서 가깝게는 몸에서 멀게는 만물에서 그 형상을 취하였다. 이에 비로소 팔괘(八卦)를 만들어 이로써 신명(神明)의 덕에 통하고 만물의 실정을 분류하였다.” 古者包犧氏之王天下也,仰則觀象於天,俯則觀法於地,觀鳥獸之文,與地之宜,近取諸身,遠取諸物,於是始作八卦,以通神明之德,以類萬物之情.
⇒ 8괘는 복희가 만들었다고 보았음
“은(殷)·주(周)의 사이에 이르러 주왕(紂王)이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 하늘을 거스르고 만물에게 포악하게 했다. 문왕이 제후를 규합해서 (하늘의) 명(命)에 순종하고 도를 행하고자 해서 하늘과 인간을 잇는 점(占)을 본받을 수 있었다. 이에 역(易)을 중첩해서 여섯 효를 만들고 상·하편을 지었다.” 至於殷·周之際, 紂在上位, 逆天暴物. 文王以諸侯順命而行道, 天人之占可得而效. 於是重易六爻, 作上下篇.
⇒ 주나라 문왕이 6개의 효를 중첩시켜 64괘를 만들었고 괘사를 달았다고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음
☞ 주나라 문왕이 갇혀 있었던 유리옥(羑里獄)의 현재 모습: 구글지도
<위기의 시대에 쓰여진 책, 『주역』> “『역』이 흥기한 때는 중고(中古)시대일 것이다. 『역』을 지은 사람은 우환이 있었을 것이다.” 易之興也, 其於中古乎. 作易者, 其有憂患乎.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 이후 주 문왕을 이어 주공이 효사를 만들었다는 견해가 전통적임(마융(馬融, 79~166)과 육적(陸績, 188~219) 등): 효사의 일부 내용들이 주나라 문왕 이후의 일을 담고 있음
“공자가 만년에 『역(易)』을 좋아해서 「단(彖)」, 「계(繫)」, 「상(象)」, 「설괘(說卦)」, 「문언(文言)」을 정리했다. 『역』 읽기를 죽간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했다.[위편삼절(韋編三絕)] 孔子晚而喜易, 序彖·繫·象·說卦·文言. 讀易, 韋編三絕.”
⇒ 십익, 『역전』 부분은 공자가 지었다고 보았음
주역 형성에 관한 최근 견해들
“나의 『고사변』 작업은 봉건주의를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다. 나는 고서(古書)가 단지 고서일 뿐 현대의 지식이 되지 않게 하고, 고대사가 단지 고대사일 뿐 현대의 정치와 윤리가 되지 않게 하고, 고인(古人)이 단지 고인일 뿐 현대 사상의 권위가 되지 않게 하려고 한다. 바꿔 말하면, 나는 종교적 성향을 가진 봉건 경전인 ‘경(經)’을 잘 챙겨 봉건 박물관으로 보내어 그 존엄성을 벗기고 그런 뒤 옛 사상이 다시는 새로운 시대 안에서 연속될 수 없도록 하려고 한다.”
-고힐강 저, 김병준 역, 『고사변 자서』, 소명출판, 2012
- 고힐강의 『고사변』의 의미
○ 고힐강이 내세운 논문의 모든 결론이 옳다고 할 수는 없으며, 스스로 고대사 논의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된 인식에 대해 수정하기도 했지만, 그의 시각은 기존 고대사, 유교경전 해석에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음
○ 그의 소신은 중국 사학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침. 고서(古書)와 고인(古人)의 권위에 눌려 이를 무조건 승인하고 그것에 기초해서 고대사를 해석하지 않게 되었으며, 유교 경전도 역사학적 사료 비판을 거쳐야 할 대상이라고 인식하게 됨
- 주역의 작자와 성립연대와 관한 논의들
☞ 療名春 등 지음, 심경호 옮김, 『주역철학사』, 예문서원, 2009, 710~713쪽
○ 『주역』 경문(『역경』)의 작자에 대해 고힐강, 여영량(余永梁) 등은 복희, 문왕이 지은 것이 아니라 주나라 초기 작품이라고 보았음
○ 이경지(李鏡池) 등은 『주역』이 서주 말기에 시경과 대략 같은 시기에 편성되었고 작자는 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음
○ 『역전』에 대해서는 전목(錢穆), 고힐강, 풍우란(馮友蘭) 등은 공자 작자설을 부정했음
○ 『역경』의 형성 연대에 관해 풍우란은 장기간에 걸쳐 온축되었으며 은말 주초에 원형이 이루어졌으나 문왕, 주공에 의해 만든 것은 아니며 『역전』도 공자 한 사람이 일시에 만든 것이 아니라 전국 말에서 진한에 이르는 시기 유가의 작품이라고 보았음
○ 고형(高亨, 1900~1986)은 십익이 모두 전국시대에 쓰여졌으며, 「단전」과 「상전」은 조금 빨라 춘추 말기에 쓰여졌을 것이라고 보았음
- 고대인들의 생활상이 담긴 문헌으로서 주역에 대한 이해: 곽말약(郭沫若, 1892~1978)
☞ 郭沫若著作編輯出版委員會 편, 『郭沫若全集: 歷史編 第一卷』(人民出版社, 1982), 37-67쪽
○ 『역경』 괘·효사는 매우 추상적이거나 혹은 매우 단순한 관념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현실 사회의 생활과 관련한 구절들임. 이러한 생활 양상들은 당시에 현존하고 있었던 것임
○ 이러한 생각 하에 곽말약은 『역경』에 담긴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어렵(漁獵)·목축·교통·경작·기물 등의 생활의 토대, 가족관계·정치조직과 제사·전쟁·상벌과 같은 사회 구조로서의 행정 사항·계급, 종교·예술·사상 등의 정신적 산물로 분석하여 논의했음
- 출토문헌 주역의 발견과 새로운 논의들
☞ 정병석, 『점에서 철학으로』, 동과서, 2014, 179쪽
○ 1973년~1974년 중국 호남성 장사시 마왕퇴 한묘(漢墓)에서 출토된 마왕퇴백서 『주역』, 1994년 홍콩의 문물시장에서 도굴된 채로 발견되어 상해박물관측이 입수, 정리한 상해박물관 소장 초나라 죽서(竹書)인 일명 상박초간(上博楚簡) 『주역』 등이 발견되었음
○ 출토문헌 『주역』의 특징은 숫자괘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임. 괘에 1~9의 숫자가 선별적으로 사용되었음. 6자괘가 더 일찍 출현했다는 설이 등장했으며, 8괘를 중첩해서 64괘를 만들었다는 것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견해가 존재함
- 청화간(淸華簡) 『서법(筮法)』
☞ 원용준, 「청화간 『서법』의 특징과 그 역학사적 의의」, 『유교사상문화연구』 65, 한국유교학회, 2016, 159쪽
○ 2008년 중국 청화대학(淸華大學)은 도굴되었던 전국시대 죽간들을 입수했음. 이를 정리하여 2010년 “청화대학장전국죽간(淸華大學藏戰國竹簡)”, 약칭 “청화간”이라는 명칭으로 공개했음
○ 특히 『서법』은 고대 역학(易學) 및 점법 체계를 담고 있어 고대 점술문화를 이해하는 단서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