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신서 4
원수를 마음대로 죽이다[편집 | 원본 편집]
- <<흠흠신서>>에 나타난 원수를 죽임에 대해
○ <<주례>> <추관, 조사(朝士>: "원수를 갚으려는 자는 법관에 의해 원수의 범죄 사실이 장부에 기록되어 있다면 원수를 죽이더라도 죄가 없다."
○ 중국 정현(127~200): "나라 안에 같이 살면서 서로 도피하지 않은 자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경우에는 반드시 먼저 법관에게 말해야 한다."
○ 중국 가공언: "원수는 모두 국가의 법으로 징계해야 한다. ... 그 원수를 갚으려 할 때에는 먼저 법관에게 보고하여 기록하도록 한 뒤라야 죽이더라도 죄가 없다."
=> 다산의 견해: 원수가 당연히 죽어야 할 정도의 죄를 지었다면 법관이 잡아서 죽여야지 피살자의 가족이 사사로이 가서 죽여서는 안됨. 혹여 죽임을 당한 게 분명하지 않은데 사사로이 원수라고 지목하고서 공공연히 복수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
☞ 사적 보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 중국에서 복수와 관련된 예법의 전개
☞ 김지수, <전통 중국에서 복수의 예법과 철학지혜: 예와 법의 긴장관계, <<법학논총>> 제41권 제3호, 전남대 법학연구소, 2021, 1~40쪽
○ 유교경전인 <<예기>>에 나타난 복수의 권한과 의무
- <<예기>> <곡례>: "부모의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떠받들 수 없고 형제의 원수와는 집에 돌아가 병기를 가져올 틈이 없으며 벗의 원수와는 한 나라에서 함께 살 수 없다."
- <<주례>>: 복수는 원칙상 살인 후 복수를 두려워하여 피살자의 가족을 다시 살해하는 악질범이나 화해 후 피난 조처(부모 원수는 해외에 피난시키고 형제 원수는 천리밖에 피난시킴)에 따르지 않는 자 등에 제한해 허용되며 그 경우에도 관가에 먼저 신고해야 했음. 무기를 휴대한 도적에 대한 공격살해는 공동체 보호를 위한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무죄이고 정당한 복수라도 반드시 관가에 먼저 신고 등록한 뒤 합법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제한이 있음
- 율령체계에서 복수에 관한 법규정
○ 새로운 왕조가 성립하여 통치권력이 안정을 이루는 초기에 사사로운 복수를 금지하는 법령이 공포되는 사례들이 있음. 후한 말 당시 권력을 진 조조가 백성들한테 사적 복수를 못하도록 명령을 내리기도 했음
○ 가장 완정한 체계로 집대성되어 전해오는 당나라 율법 및 명·청시대 율법의 규정에 나타난 복수
- 당나라 율법: 조부모, 부모, 남편 등이 타인에게 살해되었는데 사사로이 화해하는 자는 유배형에 처했음. 살해된 지 30일이 경과하기 전에 관가에 고발해야 했음. 복수에 관해 고발하는 것은 도의적 윤리의무로 요구되었음. 살인죄로 처형당해야 할 범인이 사면을 받은 경우에는 천리 밖으로 이주시키는 제도가 있었고 화해가 성립하더라도 살인범을 멀리 격리시켜 복수를 피하도록 했음
- 명·청시대 율법: 형벌을 조금 낮추긴 했지만 기본상 사사로운 화해를 당나라 때에 마찬가지로 금지했음. 하지만 관가에 고발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명문의 처벌규정을 삭제했음
=> 부모형제를 살해한 사람을 용서해 화해하기란 보통 사람의 감정본능으로는 기대하기 힘듬
=> 일반적인 사람의 감정상 기대하기 어려운 화해가 당사자 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사회적 권세나 지위에 의한 강압의 경우나 또는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탐욕심에서 나온 경우가 많을 것임
=> 그래서 법이 사적 화해를 금지하고 고발을 의무화한 것은 이러한 윤리도덕상 해이와 폐단을 방지하기 위한 것임
○ 사후 복수의 금지, 즉시 복수의 인정
- 명·청시대 율법에서는 사후 복수를 원칙상 금지하는 명문 규정을 덧붙여 정당방위 목적의 복수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음
- 조부모나 부모가 타인에게 피살당한 경우 관가에 신고하지 않고 스스로 그를 살해하면 장(杖) 60에 처하는데 즉시 현장에서 살해하면 논죄하지 않음. 조금이라도 지체하여 시간이 경과하거나 장소가 바뀐 후의 행위는 사후 복수가 됨. 부모가 피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분노가 폭발하여 즉시 복수하는 것은 인정과 도의에 부합하는 정당항 행위로서 범죄가 될 수 없다고 보았음
☞ 의로운 살해가 성립 가능할까?
- 의로운 죽임, 의살(義殺)의 조건
☞ 김호, <'의살(義殺)'의 조건과 한계: 다산의 <<흠흠신서>>를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84, 2012, 331~362쪽
○ 의살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복수임
○ 의살로 여겨졌던 사례1
1789년(정조13) 강진에 살았던 김은애는 한 동네의 노파가 그녀가 음란하다며 나쁜 소문을 퍼뜨리자 이에 수치심을 느끼고 원한을 품고 있다가 칼로 여러 차례 노파를 찔러 죽인 후 관아에 자수했다.
=> 다산은 김은애의 복수 살인이 정당하려면 그녀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논증해야 하지만 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음. 때문에 다산은 김은애가 노파를 격하게 살해한 정황을 들어(주저하고 머뭇거리지 않고) 그녀가 느낀 수치심과 분노를 예측했고 이를 통해 명예 회복에 대한 정당한 폭력으로 인정했음
○ 의살로 여겨졌던 사례2
1787년(정조 11년) 황해도 평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김초동은 둑을 쌓는 노역에 동원되었다가 같은 마을의 김연석에게 모욕을 당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 다투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초동의 가족들이 원수를 갚는다며 김연석을 때려 살해했다.(가족 중에 김초동의 동생 김큰놈이 있었다)
☞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판결해야 할까?
☞ 몇 가지 고려해 볼만한 사항:
- 김초동이 김연석과 다투다가 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것인지 아니면 김연석이 김초동을 물에 떠밀어 살해한 것인지 분명치 않음. 타살이라면 김연석은 죽을 죄에 처해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상 참작 될 것임
- 하지만 만일 김초동의 자살이 김연석의 모욕 때문이라면 당시의 법(도덕) 감정에 비추어 보았을 때 김초동의 가족들이 김연석에게 복수할 수 있으며 따라서 형의 원수를 갚은 김큰놈은 참작 감형될 수 있을 것임
=> 정조는 눈앞에서 벌어진 형의 죽음에 분노하여 김연석을 구타 살해한 동생의 행위는 천리와 인정상 당연한 일이라고 판단하고 석방을 결정했음 => 다산은 김연석이 김초동을 물에 빠뜨려 살해했다면 가족 중 동생 김큰놈이 복수하든 아내 한씨가 복수하든 상관없다고 주장했음. 그렇지 않고 자살한 경우에 대해서는 다산의 구체적인 답변이 남아 있지는 않음. 하지만 김호는 복수할 수 없다고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음
<다산 정약용의 언급>
"살인했는데 그 살인이 의롭다고 하는 경우는 죽임을 당한 사람이 큰 잘못을 저질러 인정과 도리로 따져보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때 이를 의롭게 죽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나의 부모 형제를 모욕했다고 해서 사사롭게 죽일 수 있겠는가?"
-<<흠흠신서>> 권1
=> 사소한 모욕과 수치심이 극단적 보복 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했음
○ 의살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던 사례
황해도 곡산의 창고지기였던 최주변과 민성주가 칼을 가지고 서로 놀다가 최주변이 다쳤는데 이후 상처가 번져 사망하게 되었다. 이에 최주변의 아내 안소사가 민성주를 복수 살해했다.
=> 다산은 민성주가 최주변을 칼로 찌른 것은 단지 서로 장난하다가 그런 것으로 이후 최주변이 관리를 잘못하여 죽었을 뿐이라고 판단했음. 안소사에 대해 남편이 죽으면 원수를 갚는다는 말만 듣고 이 일이 복수할 만한 일이 아니라 사실을 헤아리지 않고 살해한 것으로 이를 방면해 준다면 오히려 윤리를 손상할 수 있다고 보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