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제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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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無)에 관해 사유하다[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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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없는 것.png


나에게 없는 것 감정.png

<<노자>> 제11장[편집 | 원본 편집]

 三十輻(삼십복)이 共一轂(공일곡)하나니 當其無(당기무)일새 有車之用(유거지용)하고
 埏埴以爲器(연식이위기)하나니 當其無(당기무)일새 有器之用(유기지용)하고 鑿戶牖以爲室[착호유이위실]하나니 當其無[당기무]일새 有室之用[유실지용]이라
 故有之以爲利(고유지이위리)는 無之以爲用(무지이위용)이니라
서른 개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는데 그 바퀴통이 비어 있기에 수레의 쓰임이 있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니 그 (그릇 속이) 없기에[비어있기에] 그릇의 쓰임이 있고,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니 그 (방 속이) 없기에[비어있기에] 방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유(有)가 이로운 것은 무(無)가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

바퀴살.jpg

☞ 해설 참고: 동양고전종합DB

=> 바퀴, 그릇, 방, 창문은 물론 문 등의 형상을 통해 도(道)의 일정한 기능을 표현하고 있음. 빈 중심과 가득찬 주변으로 이루어진 구조는 물질적으로 또는 기계적으로는 물론이고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기능함
=> 성인은 자신의 마음을 비움으로써 스스로를 다스린다고 여겨지는 데 사회의 중심에 있는 성인 군주는 함이 없고 그럼으로써 국가가 잘 기능하도록 함


○ 참고: <<노자>> 제35장의 도(道)

 道之出口(도지출구)면 淡乎其無味(담호기무미)하며 視之不足見(시지부족견)이요 聽之不足聞(청지부족문)이나 用之不足旣(용지부족기)니라
도를 입으로 말하면 담백하여 아무 맛이 없으며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으나 쓰임에 다함이 없다.


<<노자>> 제2장[편집 | 원본 편집]

 天下皆知美之爲美(천하개지미지위미)나 斯惡已(사악이)요 
 皆知善之爲善(개지선지위미)이나 斯不善已(사불선이)라
 故(고)로 有無相生(유무상생)하며 難易相成(난이상성)하며
 長短相較(장단상교)하며 高下相傾(고하상경)하며 音聲相和(음성상화)하며 前後相隨(전후상수)니라
 是以(시이)로 聖人(성인)은 處無爲之事(허무위지사)하고
 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하여
 萬物(만물)이 作焉而不(辭)(작언이불사)하며 生而不有(생이불유)하며 爲而不恃(위이불시)하며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하나니
 夫唯(弗)居(부유불거)니 是以不去(시이불거)니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여길 줄만 아는데 이것은 추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선한 것을 선하다고 여길 줄만 아는데 이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유[有(있음)]와 무[無(없음)]는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어주고, 긺과 짧음은 서로 비교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음악소리와 (사람의) 노랫소리는 서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무위(無爲)의 일에 머무르면서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이 일어나도 말하지 않으며, 살게 두되 소유하려 하지 않고, 베풀면서도 자신이 베풀었다 하지 않고,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을 자기 덕분이라고) 자처하지 않는다. 공을 자처하지 않으니 (그 공이) 사라지지 않는다.
  •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읽어볼까요?

=> 여기에서 유와 무가 서로를 낳는다는 말은 뭘까? 중간에 무위를 이야기한 맥락은 뭘까? 이 구절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기타 등등

<<노자>> 제40장[편집 | 원본 편집]

 反者(반자)는 道之動(도지동)이요
 弱者(약자)는 道之用(도지용)이니
 天下萬物生於有(천하만물생어유)하고 有生於無(유생어무)니라
되돌아가는 것은 도(道)의 움직임이요, (도의) 부드러움과 약함은 (다하지 않는) 도의 쓰임이다. 천하의 만물은 유(有)에서 생겨나고 유(有)는 무(無)에서 생겨난다.
  •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읽어볼까요?

=> 왜 유에서 무가 생겨날까? 무를 전제하지 않고 유에서 천하 만물이 생겨났다고 하면 어떻게 달라질까? 여기에서 유가 무에서 생겨났다는 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기타 등등


<<노자>> 제57장[편집 | 원본 편집]

 以正治國(이정치국)하고 以奇用兵(이기용병)하니 以無事取天下(이무사취천하)하니라
 吾何以知其然哉(오하이지기연재)리오 以此(이차)로다
 天下多忌諱(천하다기휘)면 而民彌貧(이민미빈)하고 民多利器(민다리거)면 國家滋昏(국가자혼)하고
 人多伎巧(인다기교)면 奇物滋起(기물자기)하고
 法令滋彰(법령자창)하면 盜賊多有(도적다유)하니라
 故(고)로 聖人云(성인운) 我無爲而民自化(아무위이민자화)하고 我好靜而民自正(아호정이민자정)하고 我無事而民自富(아무사이민자부)하고 我欲無欲而民自樸(아욕무욕이민자박)이라하니라
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이한 계책으로 군대를 운용하니 일거리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천하를 취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알겠는가? 이 때문이다. 천하에 꺼리고 피해야 할 것이 많으면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에게 이로운 기물이 많으면 국가는 더욱 혼란해진다. 사람에게 기교와 사치가 많아지면 기교한 물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법령이 많아지면 도적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성인은 “내가 무위(無爲)하면 백성이 저절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이 저절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삼음이 없으면 백성이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을 없애니 백성이 저절로 순박해진다.”고 했다.
  •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읽어볼까요?

=> 무위의 정치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노자>>가 무위의 정치를 말한 의도는 무엇일까? 기타 등등


★ 참고: 유(有)와 무(無)는 서양철학의 존재로적 개념인 존재(being)와 비존재(non-being)의 의미로 이해 되기도 함. 하지만 앵거스 그레이엄(Angus C. Graham)은 "...에 있다(there is)" 혹은 "...에 없다(there is not)"라는 뜻이 기본 의미라는 점을 상기시켜 '무엇이라고 규정하여 말할 수 있는 것(something)'과 '무엇이라고 규정하여 말할 수 없는 것(nothing 혹은 no-thing-ness)'란 의미로 옮기기도 함). 이런 까닭에 최근의 영역자들은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옮기고 있는데 로저 에임스(Roger T. Ames)는 유와 무를 각각 '규정된 것(the determinate)'과 '규정되지 않은 것(the indeterminate)'로, 에드먼드 라이덴(Edmund Lyden)은 '있음(being)'과 '없음(beingless)'으로 번역하기도 했음(동양고전종합DB 참고)


오늘의 토론 주제 (2022.09.30)[편집 | 원본 편집]

1. 각각의 구절에서 말하는 무(無)는 무엇일까? 이를 통해 정의해 보는 <<노자>>의 무(無)는?2. 우리가 생각했던 없음과 <<노자>>의 무(無)의 차이점 혹은 공통점은?3. <<노자>>의 무위(無爲)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위는 현실 정치, 현실 삶에서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의 토론 내용 (2022.09.30)[편집 | 원본 편집]

<<노자>>의 무(無)는?

○ 무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감각하지 못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것. 형이상학적인 무. 인지되지 못하는 것이 '무'
○ <<노자>>의 무는 긍정적임. 유를 이롭게 하는 무. 공기처럼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도움이 되는 것.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언가 있는 것
끝이 없는 것. 쓰임에 다함이 없는 것
유를 뒷받침하기 위해 무를 이야기 함.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무
○ 유가 무를 따라옴. 무는 자연스러운 것, 순리적인 것


<<노자>>의 무위(無爲)는?

○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도, 목적이 없는 행위. 그냥 하는 행위가 아니라 선이 되는 행위
○ 무위의 정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임
○ 무소유의 삶, 무행위의 삶, 무목적의 삶
○ 전쟁 등 인간의 인위적 행위로 인해 일어나는 혼란에 대해 당시 시대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한 것. 무언가를 만들면 만들수록 부정적인 영향, 결과가 나타나기에 무위를 주장한 것으로 보임


참고: <<노자>>의 도와 무에 관한 논의들[편집 | 원본 편집]

☞ 허영주, <노자 ‘유(有)’와 ‘무(無)’그리고 ‘도(道)’ 대한 비본질적 관점: 도덕경 ‘생(生)’자에 대한 해석 중심으로>, <<생명연구>> 제41집, 2016, 17~43쪽

○ <<노자>>는 도를 유와 무를 가지고 설명함. 노자가 말한 도와 유와 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시도되었음. 이러한 해석들 중 큰 흐름은 도를 1) 본질적으로 보는 관점과 2) 비본질적으로 보는 관점으로 나눌 수 있음

1. 본질적 관점
- 본체론, 본체 생성론, 우주발생론, 생성론 등으로 불리며 <<노자>>의 도를 우주 혹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본체, 근원인 형이상학적인 실체로 보는 관점임
- 이 주장은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뉘어짐
(1) 도에서 무가 발생되고 무에서 유가 발생된다는 주장: 도->무->유
(2) 도와 무가 동일하며 도 즉 무에서 유가 발생된다는 주장: 도=무->유
- 유와 무를 독립된 실체로 인식함

2. 비본질적 관점
- 도를 우주를 생성하는 본체가 아니라 세계가 존재하는 형식 혹은 법칙으로 해석하는 관점
- 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없으며 대신 도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대답할 수 있음
- 무와 유가 서로의 존재 근거가 됨. 유와 무를 각각의 독립적 실체로 보지 않고 유가 없으면 무가 없고 무가 없으면 유도 존재하지 않음. 우주내의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종류가 만나고 떨어지면서 엮어지고 얽혀진다고 보는 관점
- 무와 유가 서로 존재근거로써 유지하여 세계를 구성한다는 법칙을 노자는 억지로 도라고 이름 붙인 것임

어떤 관점을 지지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