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유학: 대화

An_SW
Esang21c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4월 1일 (월) 14:5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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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필요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하곤 합니다. 대화란 뭘까요? 대화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대화는 무엇을 위한 걸까요? 유학에서는 대화를 어떻게 이해해 왔을까요?


대화로 시작한 유학, 공자의 문답법

  • 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자의 어록이 담긴 『논어(論語)』는 제자들의 물음에 공자가 답하는 경우들이 많이 나타남. 같은 개념을 설명하면서도 제자들에 따라 다르게 답변했음
 顏淵(안연)이 問仁(문인)한대 子曰(자왈) “克己復禮爲仁(극기복례위인)이니 一日克己復禮(일일극기복례)면 天下歸仁焉(천하귀인언)하나니 爲仁(위인)이 由己(유기)니 而由人乎哉(이유인호재)아?” 顏淵曰(안연왈) “請問其目(청문기목)하노이다.” 子曰(자왈) “非禮勿視(비례물시)하며 非禮勿聽(비례물청)하며 非禮勿言(비례물언)하며 非禮勿動(비례물동)이니라.” 顏淵(안연)이 曰(왈) “回雖不敏(회수불민)이나 請事斯語矣(청사사언의)리이다.”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니, 하루 동안이라도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로 말미암는 것이니, 남으로 말미암는 것이겠는가?” 안연이 말했다. “청컨대 그 조목을 묻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지만 이 말씀을 일삼아 행하겠습니다.”
 (『논어』 「안연(顏淵)」)
 仲弓(중궁)이 問仁(문인)한대 子曰(자왈) “出門如見大賓(출문여견대빈)하며 使民如承大祭(사민여승대제)하고 己所不欲(기소불욕)을 勿施於人(물시어인)이니 在邦無怨(무방무원)하며 在家無怨(재가무원)이니라. 仲弓(중궁)이 曰(왈) 雍雖不敏(옹수불민)이나 請事斯語矣(청사사어의)리이다.”
 중궁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문을 나갔을 때는 큰 손님을 본 듯이 하며,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고 집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 중궁이 말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지만, 이 말씀을 일삼아 행하겠습니다.”
 (『논어』 「안연(顏淵)」)
 司馬牛問仁(사마우문인)한대 子曰(자왈) 仁者(인자)는 其言也訒(기언야인)이니라. 曰(왈) “其言也訒(기언야인)이면 斯謂之仁已乎(사위지인의호)잇가?” 子曰(자왈) “爲之難(위지난)하니 言之得無訒乎(언지득무인호)아?”
 사마우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어진 사람[仁者(인자)]은 말을 조심한다.” “말을 조심하면 바로 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이것을 행하기가 어려우니 말을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논어』 「안연(顏淵)」)
 樊遲問仁(번지문인)한대 子曰(자왈) “居處恭(거처공)하며 執事敬(집사경)하며 與人忠(여인충)이니라 雖之夷狄(수지이적)이라도 不可棄也(불가기야)니라.”
 번지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거처할 적에 공손히 하며, 일을 집행할 적에 경건히 하며, 사람을 대할 적에 진실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비록 이적(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논어』 「헌문(憲問)」)
왜 답변이 달라질까요? 공자에게 대화는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