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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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학이편 번역문[편집 | 원본 편집]

학이 1번째 구절[편집 | 원본 편집]

 子[ㅣ] 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락호아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군자(君子)답지 않겠는가?"
 ☞질문: 논어의 가장 처음은 왜 이 세 문장으로 시작할까?
 1. 공자에게 배움이란?
 2. 논어에 나오는 벗(붕우(朋友))
 3. 군자(君子)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학이 2번째 구절[편집 | 원본 편집]

 有子[ㅣ] 曰 其爲人也ㅣ 孝弟오 而好犯上者ㅣ 鮮矣니 不好犯上이오 而好作亂者ㅣ 未之有也니라
 유자 왈 기위인야 효제오 이호범상자 선의니 불호범상이오 이호작란자 미지유야니라.
 공자의 제자 유자(有子=유약(有若))가 말하였다.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경스러우면서 윗사람 범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드무니, 윗사람 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亂)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않다.
 君子[는] 務本이니 本立而道生하나니 孝弟也者는 其爲仁之本與인뎌
 군자 무본이니 본립이도생하나니 효제야자는 기위인지본여인저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道)가 생기는 법이다. 효(孝)와 공경[悌]은 인(仁)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 1. 질문: 유약의 질문들을 보면 유약은 어떤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나요?
 ☞ 2. 질문: 왜 윗사람을 범하고, 난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공자는 경계했을까?
 ☞ 3. 질문: 근데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생긴다는 게 무슨 말일까? 공자가 말하는 도는 무엇일까?


1. 스승과 닮았던 제자 유약(임옥균 역주, <<논어 정독>>, 삼양미디어, 2015, 37~38쪽)

○ <<논어>>에서 유약을 '유자'라고 한 것을 보면 유약의 제자들이 <<논어>>의 편찬에 참여한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임
○ 유약은 실천적인 학문 성향을 보인 것으로 여겨짐. 그래서 스승 공자가 가르친 인을 행하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우야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임
○ 아울러 유약은 예의 실천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임. 그것도 한 번 세워진 예를 원칙적으로 지킬 것을 요구했던 원칙론자였음
○ 정치사상의 측면에서 그는 스승을 따라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생각을 가졌음


2. 공자의 시대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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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백과

<참고자료: 김충열, <<중국철학사1>>, 예문서원, 2006>
○ 공자가 살았던 주나라 시대의 정치제도는 혈연관계가 군주와 신하관계로 이어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음
○ 따라서 국가 사회의 윤리 질서는 그것을 형성하고 있는 가정 윤리에 의존했으며, 가정 윤리는 가정 구성의 기본 단위인 개인, 더 정확히 말해서 그 개인의 내재된 심성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효제(부모에 대한 효, 형제자매간의 공경)에 의존했음
○ 주나라 봉건제도는 "천하가 한 가정이고, 온 나라 안이 한 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
○ 하지만 공자의 시대에 이르게 되면 통치 계급 내부에서 정권 투쟁이 발생했고 통치자들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 백성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음. 여기에 이민족의 침범까지 일어나게 됨
○ 주나라가 처음 세워졌을 때 백성을 중요한 정치 행위의 대상으로 보고, 백성들의 뜻(민의)이 바로 천명의 대변이라고 여겼음. 하지만 정치가 문란해지자 백성들은 다시 착취와 부역, 노동의 대상으로 간주되어 백성을 위한 정치라는 정치적 명분이 유명무실하게 되었고 그 결과 백성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전쟁에 동원되었음
○ 주나라의 통치제도는 혈연관계를 기반으로 했기에 신하가 군주를 이기고 왕이 되고자 벌였던 전쟁은 혈연관계가 무너진 것이기도 했음
○ 아울러 주나라는 혈연을 중심으로 한 종법 질서를 가지고 정치 조직의 기준을 세웠지만 그 이전부터 이어져왔던 '어진 이를 관리로 등용하는 제도' 또한 중시했음. 하지만 혈연관계에 기반한 통치질서가 무너지면서 정권이 소인들 또는 친족 외의 인물에 의해 조종되는 타락 현상을 가져 왔음

 <공자 당시의 시대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들>
해와 달이 나쁜 징조를 나타내며 모두 자기의 궤도를 가지 않는다. 나랏일은 곳곳마다 혼란이 일어나니 위정자가 어진 이를 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날 해가 달을 삼킨 것은 그래도 예사였는데 지금은 달이 해를 삼키니 불길한 징조가 아닌가. -<<시경>> <시월지교(十月之交)>
 하늘이 죄의 그물을 내리시니
 나라를 좀먹는 해충 나라 안에 득실득실
 모두들 무례히 제멋대로 갖가지 어지러운 꼴 일삼아
 기어이 나라 망치고 말겠네.
 ...
 이전에는 착한 사람 그렇게도 잘살더니
 지금에는 착한 사람이 이렇게도 못나에. -<<시경>> <소민(召旻)>
 어떤 이는 편히 쉬고 어떤 이는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네.
 ...
 어떤 이는 밖에서의 비참한 울부짖음 못 듣는지 편히 쉬고 있지만
 어떤 이는 잔혹한 억압과 착취에 숨이 막힐 지경이네.
 어떤 이는 산수간에서 즐겁게 노닐지만
 어떤 이는 왕족을 위해 죽도록 기를 쓰고 일하네.
 어떤 이는 즐겁게 술 마시지만
 어떤 이는 혹여 책잡힐까 가슴 졸이네. -<<시경>> <북산(北山)>

3. <논어>에 나오는 도(道)

 子曰(자왈) 富與貴(부여귀)는 是人之所欲也(시인지소욕야)나 不以其道得之(불이기도득지)면 不處也(불처야)니라.
공자가 말했다.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도(道)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 정당한 방법으로서의 도
 子曰(자왈) 朝聞道(조문도)면 夕死(석사)라도 可矣(가의)니라.
해석1: 공자가 말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해석2: 공자가 말했다. "아침에 세상에 도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 진리의 도, 도덕의 도
 子曰(자왈) 人能弘道(인능홍도)요 非道弘人(비도홍인)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도를 크게 할 수 있고 도가 사람을 크게 할 수 없다."
☞ 도덕의 핵심, 주체는 사람
  • 도(道)와 덕(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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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道): 辵(간다)+首(머리, 머리가 향하는 곳, 목적지), 사람이 가는 길(길, 방법 등의 의미도 지님)
○ 덕(德): 行(간다)+悳(곧을 직(直)+마음 심(心)
☞ 공자는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셨다."라고 했음. 하늘이 부여했다는 의미를 통해 인간다운 인격과 그 가능성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열려 있다는 것을 말했음. 따라서 이러한 덕의 실현과 수행이 공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학문의 목표가 되었음. 공자 이전부터 군주의 덕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근원적인 힘으로 인식되었음. 공자에 이르러 덕 개념은 정치적 의미에서 하늘이 준 인간다움의 인격을 지칭하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확산되었음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는 사람이 경유하는 길로 경유자의 주관 밖에 있는 것이고 덕은 사람에게 주어지고 사람이 닦아나가는 것으로 주관 안에 있는 것 (김익수, <공자의 도에 관한 연구>, <<건국대학교 대학원 논문집>> 제12집, 1980, 4~5쪽)


학이 3번째 구절[편집 | 원본 편집]

 子曰(자왈) 巧言令色(교언영색)이 鮮矣仁(선의인)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말을 교묘하게 하며 얼굴빛을 꾸미는 사람 가운데 드물도다, 어진 사람이!”
 ☞ 질문: 교언영색하는 사람,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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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질문: 그런데 왜 교언영색하는 사람 중에 인한 사람이 드문 걸까요? 대체 인이 뭐길래?


<<논어>>에 보이는 인(仁) (선별)[편집 | 원본 편집]

 1. 子曰(자왈) “不仁者(불인자)는 不可以久處約(불가이구처약)이며 不可以長處樂(불가이장처락)이라. 仁者(인자)는 安仁(안인)하고 知者(지자)는 利仁(리인)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어질지 않은 사람은 오랫동안 어려움에 거처하지 못하며 오랫동안 즐거움에 거처하지 못한다. 어진 사람은 어진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진 것을 이롭게 여긴다.”
 (『논어』 「리인(里仁)」)
 2. 子曰(자왈) “唯仁者(유인자)라야 能好人(능호인)하며 能惡人(능오인)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사람을 좋아할 수 있으며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논어』 「리인(里仁)」)
 3. 子曰(자왈) “富與貴(부여귀)는 是人之所欲也(시인지소욕야)나 不以其道(불이기도)로 得之(득지)어든 不處也(불처야)하며 貧與賤(빈여천)이 是人之所惡也(시인지소오야)나 不以其道(불이기도)로 得之(득지)라도 不去也(불거야)니라. 君子去仁(군자거인)이면 惡乎成名(오호성명)이리오? 君子無終食之間(군자무종식지간)을 違仁(위인)이니 造次(조차)에 必於是(필어시)하며 顛沛(전패)에 必於是(필어시)니라.
 공자가 말했다.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차지하지 않으며, 가난함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더라도 떠나지 않는다. 군자가 인(仁)을 버리면 어디에서 군자라는 이름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사이에도 인을 떠남이 없으니 위급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 인에 의지하고 엎어지는 때에도 반드시 이 인에 의지한다.”
 (『논어』 「리인(里仁)」)
 4. 夫仁者(부인자)는 己欲立而立人(기욕립이립인)하며 己欲達而達人(기욕달이달인)이니라. 能近取譬(능근취비)면 可謂仁之方也已(가위인지방야이)니라.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며,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하게 한다. 가까운 데에서 취하여 비유할 수 있으면 인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 「옹야(雍也)」)
 5. 子曰(자왈) “君子道者三(군자도자삼)에 我無能焉(아무능언)하니 仁者(인자)는 不憂(불우)하고 知者(지자)는 不惑(불혹)하고 勇者(용자)는 不懼(불구)니라.” 子貢曰(자공왈) “夫子自道也(부자자도야)라.”
 공자가 말했다. “군자의 도가 세 가지인데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진 사람은 걱정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의심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스스로 겸양하신 말씀이다.”
 (『논어』 「헌문(憲問)」)
 6. 子張(자장)이 問仁於孔子(문인어공자)한대 孔子曰(공자왈) 能行五者於天下(능행오자어천하)면 爲仁矣(위인의)니라 請問之(청문지)한대 曰(왈) 恭寬信敏惠(공관심니혜)니 恭則不侮(공즉불모)하고 寬則得衆(관즉득중)하고 信則人任焉(신즉인임언)하고 敏則有功(민즉유공)하고 惠則足以使人(혜즉족이사인)이니라.
 자장(子張)이 공자에게 인(仁)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행할 수 있으면 인(仁)이 된다.” 하셨다. 자장이 다섯 가지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말했다.  “공손함〔恭〕, 너그러움〔寬〕, 믿음〔信〕, 민첩함〔敏〕, 은혜로움〔惠〕 이니,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여러 사람들을 얻게 되고, 믿음이 있으면 남들이 의지하게 되고, 민첩하면 공이 있게 되고, 은혜로우면 충분히 남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
 (『논어』 「양화(陽貨)」)


학이 4번째 구절[편집 | 원본 편집]

 曾子曰(증자왈) 吾日三省吾身(오일삼성오신)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위인모이불충호)아 與朋友交而不信乎(여붕우교이불신호)아 傳不習乎(전불습호)아니라.
 공자의 제자 증자(=증삼(曾參))가 말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 자신을 반성하니 남을 위해 일을 계획하면서 진심[충(忠)]을 다하지는 않았는가? 벗과 교제하면서 믿음직하지[신(信)] 못한 점은 없었는가? 내가 익히지 않은 것을 함부로 전해주지 않았는가?
 ☞ 1. 질문: 증자가 반성한 내용을 보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 2. 질문: 증자가 말한 충(忠)은 무슨 의미일까요?
 ☞ 3. 질문: 증자가 말한 신(信)은 무슨 의미일까요?


1. 공자의 도를 전한 증자 (임옥균 역주, <<논어 정독>>, 삼양미디어, 2015, 40쪽)

○ 증자는 자신을 늘 반성하는 사람이었으니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고 또한 내면적 수양에 집중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음
○ 유학에서는 내성외왕(內聖外王: 내적으로는 성인이 되고 외적 왕의 자질과 덕을 갖춤)을 강조하는데 증자는 내성(內聖)을 강조한 사람이었다고 보기도 함
○ 증자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음

 "나의 발을 열어 보고 나의 손을 열어 보아라. <<시경>>에 '전전긍긍하여,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하고 엷은 얼음을 밟듯이 하라.'라고 했으니 이제야 나는 어려움에서 벗어났음을 알겠구나, 제자들이여!"

○ 이를 보면 증자가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음


2-1. 충(忠)의 본래 의미

○ 우리는 일반적으로 '충(忠)'이라고 했을 때 상대에 대한 충성을 떠올리기 쉽지만, 충(忠)자의 원래 뜻은 그렇지 않음
○ 충(忠)자는 가운데 중(中)+마음 심(心)의 뜻으로 마음 한 가운데, 즉 마음을 다한다는 진심(盡心)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
○ 따라서 증자가 반성의 내용으로 삼은 "남을 위해 일을 계획사면서 진심을 다했는가?"라는 말은 남에게 충성했는가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남이 어떻게 보건 상관없이 내 자신을 향한 것으로 내 마음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내 진심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지 돌이켜 보는 것임


2-2. 공자의 인(仁)을 실천하는 핵심 방법, 충서(忠恕)

 子曰(자왈) 參乎(삼호)아, 吾道一以貫之(오도일이관지)니라. 
 曾子曰(증자왈) 唯(유)라. 
 子出(자출)커시늘 門人問曰(문인문왈) 何謂也(하위야)잇고 
 曾子曰(증자왈) 夫子之道(부자지도)는 忠恕而已矣(충서이이의)시니라.
 공자가 말했다. "증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었다."
 증자가 말했다. "예."
 공자가 나가니 문인들이 물었다.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증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

○ 충(忠)은 서(恕)와 함께 공자의 인을 실천하는 방법의 핵심 원리이기도 함
○ 충은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진심, 서(恕)는 같을 여(如)+마음 심(心)으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에 대해 남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공감의 원리에 바탕하여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임


3. <<논어>>에 보이는 신(信)

○ 신(信)이라는 글자는 사람 인(人)+말씀 언(言)으로 기본적으로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 믿음, 신뢰의 의미를 지님
○ <<논어>>에서 신(信)은 충(忠)과 함께 종종 쓰임

 主忠信(주충신)하며 無友不如己者(무우불여기자)오 過則勿憚改(과즉물탄개)니라.
 진실과 믿음을 주로 하며, 자기보다 못한 이를 벗 삼지 말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거리끼지 말아야 한다. <<논어>> <학이>
 子曰(자왈) 主忠信(주충신)하며 徙義崇德也(사의숭덕야)니라.
 공자가 말했다. "진실과 믿음을 위주로 하며 옳은 데로 옮아가는 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다." <<논어>> <안연>
 子張(자장)이 問行(문행)한대 
 子曰(자왈) 言忠信(언충신)하며 行篤敬(행독경)이면 雖蠻貊之邦行矣(수만맥지방)이라도 行矣(행의)어니와
 공자의 제자 자장이 통행되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말이 진실하고 미더우며 행실이 돈독하고 공경스러우면 비록 이민족의 나라에서도 통행된다." <<논어>> <위령공>
 -번역문 출처: 임옥균 역주, <<논어 정독>>, 삼양미디어, 2015

○ 엄연석은 이에 대해 충서의 서 개념에 대신하여 충신의 신뢰 개념이 쓰였다고 보면서 신뢰 개념이 서(恕)와 의미연관성이 크다고 보았음
○ 즉 신뢰는 서(恕)를 통해 나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갖게 되는 결과로서의 남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고 보았음
○ 하지만 여기에서의 믿음은 주관적인 것이 아님. 공자는 믿음과 관련하여 배움[학(學)]을 중시했음. 그는 믿음을 좋아하면서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타인을 해치는 폐단을 낳는다고 경고했음. 진정한 믿음은 객관적 상황에 대한 지식에 따른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을 가져야 함 -엄연석, <<<논어>>에서 공동체의 가치와 '신뢰[신(信)]' 개념>, <<철학사상>> 15, 2002


다시, 학이 2번째 구절인 인을 행하는 근본으로서의 효제[편집 | 원본 편집]

백민정, <정약용 철학에서 효제(孝弟) 관념이 갖는 공적 의미>, <<한국실학연구>> 23, 한국실학회, 2012, 252~316쪽

  • 기본적인 효제의 의미
 ○ 효제(孝弟 또는 孝悌)는 유교경전에서 부모에 대한 친애[親愛: 친하고 사랑함]의 감정[=효]과 형제간의 공경심[=제]를 의미함
 ○ 나아가 사회와 국가에 확장됨으로써 혈연적 가족 너머의 타인과 관계맺게 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관계의 원리임
 ○ 유교경전에서는 가족에 대해 갖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사회적으로 확장시켜 나아가는 것을 중시했음. 단순히 가족이니까 사랑해야 한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가족에 대해 갖는 자연스러운 애정의 감정을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사랑, 이 사회와 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돕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보았음. 그래서 인(仁)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임
 ☞ 질문: 그렇다면 효제를 그저 가족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아예 보다 공적 개념, 사회적 개념으로 확장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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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중앙일보 2019.7.31일자, 김준태 박사

 ○ 강진 유배 당시 다산은 자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효제를 강조하면서 부모형제간의 친애와 공경은 많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자기부모 혹은 자기자식을 가리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칭송할 만하다고 했음
 ○ "집에 찾아온 다른 사람이 하루를 보내고 열흘을 넘겨도 끝내 누가 누구의 아버지가 되며 누가 누구의 아들이 되는지를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그 집안의 기상을 떨칠 만하다."

☞ 질문: 이 곳 어디인지 아시나요?

선교장

-사진출처: 감성여행기: 아량 넓은 만석꾼의 집-선교장

 ○ 다산은 결국 효제의 이상적 의미는 가족의 협소한 단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음
 ○ 그는 부모에 대한 효도라는 것도 선천적 본성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어려운 문제로 마음의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수양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음. 가족에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타인을 만나 타인을 정당하게 대우하며 잘 섬길 수 있다고 보았음
 ○ 그래서 <<논어>>에서는 인(仁)을 "극기복례[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감]"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음. 인을 실천하는 데에는 자신을 이기는 자기수양의 문제인 것임
 ○ 즉 이기적이고 사적인 자기를 넘어서 남을 향해 마음을 열고 남을 향해 열려 있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 이는 혈연적 관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넘어서야 하는 것임

논어 학이편 등장인물[편집 | 원본 편집]

등장인물 생몰년 태어난 곳 관계 대화주제
공자 기원전 551년~ 기원전 479년 중국 취푸 논어의 주요 화자이자 주인공
유약(有若) 기원전 518년~기원전 458년 노(魯)나라 사람 공자 제자 효, 제(弟), 예(禮), 조화 등 실천적 문제
증삼(曾參) 기원전 505년~기원전 435년 노(魯)나라 사람 공자 제자 공자의 도(道), 효도, 벗과의 관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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