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형 솔성
<<논형>> <솔성>편[편집 | 원본 편집]
- 왕충 이전의 본성론
1. 맹자의 성선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전제
2. 순자의 성악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전제
3. 고자(告子)의 성무선악설: 인간의 본성은 선, 악이 없다는 전제
☞ 근데 이 인간 본성은 누가 내려주는 것일까?
- 왕충의 '하늘[천(天)]'의 인격성에 대한 부정
☞ 히하라 도시쿠니 지음, 김동민 옮김, <<국가와 백성 사이의 한(漢): 한제국, 덕치와 형벌의 이중주>>, 글항아리, 2013, 81쪽
○ 한나라 때 형이상학은 의지를 가진 하늘을 그 근저에 깔고 있음. 이 하늘은 인간사에 대해 길흉, 재앙 등을 내려준다고 보았음
○ 그러나 왕충은 이것을 부정하고, 하늘과 땅, 천지는 기(氣)를 구성 요소로 한 자연물이라고 생각했음. 하늘은 목적 의지를 갖지 않은 물리적 존재로 본 것임
○ 하늘이 의지가 없는 물체라면 '재이 사상[하늘이 재앙과 이변을 내린다는 사상]'은 성립되지 않음. 혈맥이 조화롭지 못하면 사람에게 병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풍기(風氣)가 조화롭지 않으면 홍수나 가뭄, 추위와 더위의 이상 변화가 생긴다고 보았음. 재이의 발생은 군주의 덕성이나 정치와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고 말함
☞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본성론에 관한 논의는 중요했다. 왜냐하면 인간본성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고 이전에 믿어왔기 때문이다.
- 왕충의 인간본성에 관한 논의
☞ 히하라 도시쿠니 지음, 김동민 옮김, <<국가와 백성 사이의 한(漢): 한제국, 덕치와 형벌의 이중주>>, 글항아리, 2013, 81~82쪽
○ 만물은 기로부터 생겨남. 인간도 예외가 아님. 삶과 죽음은 기가 모이거나 흩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왕충은 말함. 이것이 바로 왕충을 유물론자로 여기는 까닭임
○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는 것처럼, 기가 모여서 인간이 되며, 인간이 죽으면 기는 흩어짐. 기가 모여서 생긴 혈맥의 기능, 즉 정신은 기가 흩어짐과 동시에 소멸해버림
○ 인간 사후에 영혼 또는 귀신만 남아 있을 수 없음. 영혼의 존재가 부정되면 조상의 신령에 대한 숭배는 그 근거를 상실하고 제사는 쓸데없는 일이 됨
○ 똑같은 하늘의 기를 부여받았음에도 인간의 본성에 현명하고 어리석음, 선하고 악함의 차이가 있는 것은 기의 두텁고 얇음, 많고 적음의 차이 때문임
○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아니라 기의 분량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보았음
○ 본성의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기에 의한 것으로 사람마다 본성이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고 종류마다 각양각색임. 따라서 일률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선 또는 악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고 왕충은 말함
- 인간을 어떻게 선으로 이끌 것인가?
☞ 임옥균, <<왕충>>,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69쪽
○ 왕충의 관심은 현상적인 인간의 본성이 어떠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선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있었음
○ 왕충은 학교와 감옥의 기능을 중시했음. 학교는 사전 예방의 기능을 하며 감옥은 사후 처리의 기능을 함
○ 왕충은 가변성과 불변성의 두 측면에서 말했음. 상층과 하층 사람의 순선과 순악은 변화할 수 없지만 보통 사람의 본성은 선에서 악으로, 악에서 선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보았음
- 왕충의 양주, 묵자 등 제자백가 철학에 대한 관심 (왕충 씀, 이주행 옮김, <<논형>>, 소나무, 1996, 107쪽)
열다섯 살 난 사람은 순백색의 실과 같다. 선이나 악으로 점차 바뀌게 되는 것은, 마치 청색이나 홍색 염료로 순백색의 실을 물들여서 푸르게 하거나 붉게 만드는 일과 같다. 일단 푸르게 되거나 붉게 되면 본연의 색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양주는 갈림길에서 통곡했고, 묵자는 순백색의 실을 보고 통곡했다. 본바탕을 손상하거나 버리면 다시는 바꿀 수 없다. 사람의 본성은 이처럼 선이 악으로 될 수 있고, 악이 선으로 될 수 있다.
☞ 유교를 국교로 했던 한나라 때 아웃사이더 학문, 보잘 것 없는 학문 이라 여겼던 양주, 묵자 등의 제자백가 학문을 왕충은 존중했다!
☞ 한나라 때 유학자들은 제자백가의 책을 "작은 편린", "부스러기 옥의 가루"에 비유하는 등 하찮게 보았음
☞ 하지만 왕충은 유가경전에서 빠진 부분들을 바로잡아줄 수 있고 경전의 약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 것으로, 잘 선택해서 후세에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음
○ 양주는 갈림길에서 통곡했다
☞ 펑유란 지음, 정인재 옮김, <<간명한 중국철학사>>, 마루비, 2020, 104~114쪽
- 양주(楊朱)의 생존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묵자, 맹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생존했던 것으로 보임
- 맹자 당시까지만 해도 묵자와 함께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 맹자가 "양주, 묵적(묵자)의 말이 천하를 꽉 채웠다"고 했을 정도
- 양주의 사상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위아주의(爲我主義)로 털 한 올을 뽑아 세상이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하지 않는 사상으로 유명했음(<<맹자>>)
<<열자>> <양주>편에 실린 양주의 사상
금자(禽子)가 양주에게 물었다. "당신은 털 한 올 뽑아 온 세계를 구제할 수 있다면 하겠는가?" 양주가 대답했다. "천하는 본래 털 하나로 구제될 수 없다." 금자가 다시 물었다. "만일 구제할 수 있다면 하겠는가?" 양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금자는 나가서 양주의 제자인 맹손양에게 오고갔던 대화에 대해 말했는데 그걸 듣고 맹손양이 말했다. "당신은 선생님(양주)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고. 그 이유를 당신에게 말하고 싶소. 당신은 살갗을 할퀴고 천만금을 얻는다면 그 짓을 하겠습니까?" 금자가 말했다. "나는 하겠다." 맹손양이 다시 물었다. "당신은 사지 하나를 끊어 나라를 얻는다면 그 짓을 하겠습니까?" 금자가 가만히 있었다. 그 때 맹손양이 말했다. "털 한 올은 피부보다 미미하고 작으며 피부는 사지 하나보다 미미하고 작습니다. 그러나 많은 털을 모으면 피부만큼 중요하고 많은 피부를 합하면 사지만큼 중요합니다. 털 한 올은 본래 몸의 만분의 일인데 어찌 가볍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 "생명을 온전하게 하여 그 진수를 보전하며 물질 때문에 신체에 누를 끼치게 하지 않는"(<<회남자>>) 양주의 사상은 후에 노장사상과 결합되어 인간세상의 각종 해독에 대비하여 자기 생명을 보존하는 것을 최선책으로 하는 양생사상으로 발전함
<<순자>> <왕패>편
양주가 갈림길에서 울며 말하기를 '여기서 반걸음이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다면 천 리나 어긋날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했으니, [그가 곧 이 때문에] 슬피 울었던 것이다.
양주곡구도왈(楊朱哭衢涂曰) 차부과거규보(此夫過擧蹞步)면 이각질천리자부(而覺跌千里者夫)라하니 애곡지(哀哭之)라.
☞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 중국 청나라때 학자인 왕선겸(王先謙, 1842∼1917)은 이렇게 말했음
갈림길에서 반걸음이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다면 그 즉시 천리나 어긋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한 생각이 맞느냐 틀리냐에 따라 앞으로 평생의 사정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니 반드시 끝내 천리까지 간 뒤에 그 잘못을 깨닫는 것은 아니다.
-참고: 동양고전종합DB <<순자집해>>
○ 묵자는 순백색의 실을 보고 통곡했다
☞ 펑유란 지음, 정인재 옮김, <<간명한 중국철학사>>, 마루비, 2020, 86~102쪽
- 묵자 집단을 창시한 사람은 묵적(墨翟)으로, 정확한 생존 연대는 확실하지 않고 공자 이후, 맹자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음
- 당시 묵적의 명성이 공자만큼 높았으며 그의 가르침도 당시 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임
- 공자가 초기 주나라 때의 전통적인 제도, 예, 음악, 문물들을 동경하여 윤리적으로 이들을 합리회 내지 정당화하려고 힘썼던 반면 묵자는 그 제도 등의 타당성과 효용성에 회의를 품고 이들을 좀 더 유용한 것으로 대체시키려고 했음. 공자는 고대문명을 합리화한 옹호자였다면 묵자는 고대문명의 비평가였음
- 묵자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兼愛)를 주장했음
- 묵자 집단은 벙어전술과 무기제조법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던 이들로 공격적인 전쟁을 반대하고 자기 방어를 위해 싸우는 데 합심했음. 특히 강대국으로부터 약소국을 지키기 위한 방어전쟁에 참여했음
- 묵자가 실에 물들이는 모습을 보고 탄식했다는 말은 <<묵자>>에 나옴
<<묵자>> <소염>편
묵자가 실에 물을 들이는 것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푸른 물감으로 물들이면 푸른색이 되고, 노란 물감으로 물들이면 노란색이 된, 넣는 물감이 바뀌면 그 색깔 또한 변한다. ... 실에 물을 들이는 것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나라의 임금 또한 신하의 영향을 받는다. ... 임금이 영향을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았기에 나라는 망하고 자신은 형벌을 받았으며 ... 임금과 신하는 흩어지고 백성들은 거처를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 왕충은 양주와 묵자의 언급을 통해 대다수의 인간 또한 그 본성이 순백색의 실과 같이 어떤 선, 악의 경향성을 지니고 태어나지 않지만 잘못된 교육, 환경 등으로 인해 악으로 물들 수 있음을 경계했음. 그리고 한번 물들어버리면 변화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음
- 동양 인성론에 나타난 인간관의 특징
☞ 왕충 씀, 이주행 옮김, <<논형>>, 소나무, 1996, 115쪽
처음에는 교만하였지만 나중에 공손하게 된 것은 성현의 교화와 황제의 위엄있는 덕이 성정을 변하게 한 것이다. 성품이 악한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성인의 교화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만 옳다고 자부하며 화를 일으키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 왕충의 인간 본성에 관한 궁극적 관심
☞ 임옥균, <<왕충>>,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69쪽
- 왕충의 관심은 현상적인 인간의 본성이 어떠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선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있음
- 왜냐하면 아주 악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선하게 될 수 있다는 데 중점을 두고 그것을 강조하기 때문임
- 왕충의 주요 관심사는 악한 사람을 어떻게 교화시키느냐는 데 있었음
- 왕충은 통치자가 백성을 다스릴 때 그들의 본성이 어떠하냐는 것은 관건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음. 왜냐하면 어떻게 교화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임
☞ 동양에서는 왜 이렇게 인간 본성에 주목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옛날 얘기에만 해당될까? 여전히 우리는 인성을 중요시하지 않는가?!
☞ 그림출처: "전공보다는 인성이 우선"
☞ 근데 인성이 뭘까?
- 인간: 사람 인(人)+사이 간(間). 인간관계
신영복,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인간'은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은 인간관계입니다 일반적으로 동양 사상의 특징으로서 인간주의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인문적 가치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인성人性의 고양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고 있는 사회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성은 개인이 자기의 개체 속에 쌓아놓은 어떤 능력, 즉 배타적으로 자신을 높여 나가는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成) 것이지요. ... 덕성德性이 곧 인성입니다. ... 그래서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 인仁은 기본적으로 인人+인人 즉 이인二人의 의미입니다. 즉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을 인간人間, 즉 인人과 인人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혹시 여러분 중에 간間에다 초점을 두는 ‘사이존재’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존재에 중심을 두는 개념입니다. 동양적 구성 원리로서의 관계론에서는 ‘관계가 존재’입니다. ...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상정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인성이란 개별 인간의 내부에 쌓아가는 어떤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의 의미라는 것이 동양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성이란 개념은 어떤 개체나 존재의 속성으로 환원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인이 더불어 만들어내는 장場의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처럼 동양 사상은 가치를 인간의 외부에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종교적이고, 개인의 내부에 두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이 아닙니다.
-출처: 신영복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