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안녕하십니까? 18학번 황덕룡입니다. 발표를 시작하기 전에 강릉시청이 좋은 문화를 하나 가지고 있어서 소개를 해드리고 싶어요. 강릉시청은 다른 시와 달리 토착설화나 민담들을 모아두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설화들이 유실해가는 시점에서 이런 기록을 다른 곳에서도 많이 해주었으면 바랍니다. 그리고, 대본 ppt 글 모두 위키에 업로드 해놓았습니다.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 qr코드 찍고 들어가시면 되요.
이제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목차는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우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예술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제가 7년 동안 소설을 쓰면서 한 생각은, 예술의 본질은 대화고 의사소통이라는 것입니다. 언어라는 형식으로 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상대방에게 전하고 서로 뒤바뀌는 과정인것이죠. 소설은 언어예술입니다. 언어를 이용해 언어를 초월하려는 모순적인 무언가인 것입니다. 전 그러한 점이 좋아서 아무래도 7년이나 이걸 하고있는 것같습니다. 돈도 별로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어쨋든 예술과 철학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특히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실천적인 철학이라면 더 그렇고, 실천중시철학 중 대표적인 것이 유교, 불교 그런 것들이죠.
다음으로 제가 쓴 글의 플롯을 간단히 요약해보았는데요. 일단 소설의 주인공은 수희라는 친구인데요. 소설은 "내 사춘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되는데요. 수희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사춘기 시기에 큰 충격과 상처를 받은 인물입니다. 자신이 입양아인 걸 알았기 때문인데, 이것도 일반적인 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철학과라면 윤리적인 토론을 할 때 종종 나오는 이야기가 있죠? 불이 난 집 속에서 자신의 자식과 자신의 자식과 그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될 아이가 있을 때 후자를 구한다면 그것은 결코 도덕적인 일이라고 할 수 없다고요. 수희의 양아버지는 주택에 집이 난 상황에서 살아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는 자신의 딸이 아니라, 당장 살아있고 구할 수 있는 수희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그녀의 부모님을 대신 키우기 시작하죠. 이걸 부모님에게 듣게 된 수희는 가족, 가족의 사랑에 대해 회의를 품게됩니다. 그 충격에 방황하며 성실함과는 멀어지게 되죠. 그러는 와중에 무슨 일이든 초연하게 대하는 허진아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승단계에서는 수희가 허진아가 자신처럼 부모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비록 좀 다르긴 하죠. 아버지가 알콜중독자에 공부하고 있는 딸을 불러내서 술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요. 때리기도 하거든요. 수희가 허진아의 아버지가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안 것도,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찾아왔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자신에게 성가신 일을 시킬 때도, 한여름의 더위에도 초연하게 행동하는데요. 어떻게 그렇게 초연할 수 있냐는 수희의 질문에 그녀는 "세상에 집착할 것이란 아무것도 없어."라고 대답합니다. 수희는 진아의 그러한 모습에 동경을 품게 되고 접근하게 됩니다.
전단계는 진아와 수희가 점점 친밀해지고 부모와의 갈등이 심화되는 걸 묘사합니다. 최소한 수희는 진아가 이전에는 없던 소중한 관계라고 인식합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파국에 치닫습니다. 졸업식 직전 성인이 된 진아가 자신이 이제 떠날 것이니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수희는 화가 나 따졌고 진아에게 정말 그럴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 상황에서 진아는 수희에게 집착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다시 합니다. 물론 불교에선 이렇게 까지 말하진 않습니다. 불교의 실천적 메시지를 단순하게 요약하면,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고 할거 하라는 거거든요. 진아는 자신의 상황을 버티기 위해 고통들을 놓아주었던 것이 아니라 허무함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라는 걸 수희는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이 무언가를 붙잡는다는 것이 뭔지, 자신이 누군가를 붙잡아야하는지 약간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바로 가족이었죠. 비록 피가 연결되어있진 않지만, 그들이 자신을 구했고 키워주고 사랑을 표현해준건 맞으니까요.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며 사춘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한 수희는 이 일로 자신의 사춘기가 끝났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그럼 이 글이 왜 유교적 주제의식을 가졌는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일단 소설의 주인공은 수희라는 친구고, 다른 주연인물인 허진아가 있습니다. 동시에 허진아는 반동인물이기도 한데요. 주인공인 수희가 진아와의 갈등을 통해 성장되는 계기가 마련되기 때문이죠. 수희는 최후엔 유교적 가치관을 수용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부모님과 몇 년간의 갈등이 있었고 실제 혈연관계도 아니지만 자신이 사랑할 대상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죠. 이런 깨달음의 계기는 허무주의로서의 불교를 수용한 인물인 진아에 대한 동경이 깨지면서 이뤄지는데요.
일단 불교를 허무주의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사실 불교에서의 실천적 메시지는 아주 과격하게 요약하면 "쓸데없는 고민하지말고 당장 해야할 걸 해라."라는 거거든요. 즉, 허진아는 불교를 제대로 이해한 인물도 아니고, 집착하는 것이 없는 인물도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자신이 받는 압박감을 감추고 해소하기 위해 허무함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허무함의 본질을 수희는 깨닫게 되죠. 이러한 수희의 성장과정을 플롯의 4단계를 통해 봐보면, 이러한 과정입니다. 기 "관계에 대한 회의.", 승 "허무에 대한 동경", 전 "동경의 심화", 결 "허무와 관계에 대한 깨달음 그로 인한 성장". 플롯은 이미 설명을 드렸으니 자세한 얘기는 생략할게요.
작품 내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고요. 아무래도 묘사가 좀 밋밋하기도 해서 실제 강릉을 작품 내의 배경으로 등장시켜도 좋을 것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배경묘사에 참조하기 위해 직접 사진을 이렇게 좀 찍었습니다. 케이크는 사실 필요없는데, 취재나왔으니 먹어도 된다고 합리화를 하면서 사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매년 출품하는 문학대회가 하나 있는데요. 10월에서 11월초, 중순에 기간이 종료되는데, 올해는 이미 지나버렸습니다. 그래서 내년에 이번에 쓴 글을 퇴고를 더 해서 출품하는 걸 목표로 해보겠습니다. 제가 작품과 대본을 위키에도 업로드해놓았는데요. 혹시 몰라서 올려놓긴 했는데, 제가 쓴 글은 발표가 끝나면 사정상 삭제를 하겠습니다.
제 발표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