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에세이 묵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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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배층의 대변자[편집 | 원본 편집]

 ☞질문: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정의가 없다고 여겨질 때, 약자가 핍박받고 있다고 여겨져 세상에 분노할 때 '나'는 어떻게 대응하나요?


☞ 이렇게 대응했던 사람도 있었다.
○ 자신의 온 삶을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살아간 사람
○ 자기 가족과 다른 가족이 구별되어서는 안되고, 자기 나라 사람과 다른 나라 사람이 구별되어서도 안되고 모든 사람을 두루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믿고 그대로 실천했던 사람
○ 강자가 등용하기에 충분한 뛰어난 전략과 저술을 가졌음에도, 그걸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자가 강자에 의해 억압받지 않도록 자신의 능력을 약자를 위해 사용한 사람, 그들에게 어떠한 댓가도 바라지 않고, 혹여 그들이 자신을 이용할지라도 약자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

 ☞질문: 이런 삶이 과연 가능할까요? 대체 어떻게 가능할까요?


  • 묵자라는 사람에 대해

○ 성은 묵(墨)이고 이름은 적(翟)임
○ 묵자는 공자, 맹자, 순자, 노자, 장자와 유사한 시대에 태어났지만 태어난 나라도, 태어나고 죽은 해도 불분명함
○ 공자보다 조금 뒤, 맹자보다 조금 앞이라고 짐작할 뿐임
○ 묵자의 성이 묵씨가 아니라, 묵형이라는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묵씨라고 불렸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음
○ 피부가 검었기 때문에 묵씨라고 불렸다고 하기도 하며 피부가 검다는 것은 그가 노동을 하는 계층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함
=> 묵자는 피지배층 계층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피지배 계층을 옹호하는 사상을 가졌음
○ 맹자가 "세상이 양주와 묵적의 주장으로 가득 찼다"라고 한 것으로 보면 당시 묵자의 영향력이 컸을 것으로 보임


  • 묵자와 유학과의 관계

- 묵적 지음, 윤무학 옮김, <<묵자>>, 도서출판 길, 2015
○ 묵자는 공자보다 약간 늦게 활동했는데 유학 교육을 받았다고 전해짐. 하지만 유학의 예악이 지나치게 번거롭고 재물을 낭비한다고 판단하고 포기했다고 함. 특히 유학에서 장례에 너무 많은 시간과 재물을 쓰는 데 대해 비판적이었음. 묵가의 입장에서 보면 당시의 이른바 예악은 기득권층이 민중의 재화를 착취하고 낭비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임

 <<묵자>> <공맹>
 공맹자가 말했다.
 "삼년상은 우리 자식들에게 부모 사랑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묵자가 말했다.
 "어린아이의 지력은 단지 부모를 사랑할 뿐입니다. 부모가 없으면 울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곧 아주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유학자의 지력이 어린아이보다 나은 점이 있겠습니까?"

○ 묵자가 직접 공자에게 배웠는지 단언하기 힘들지만 유가의 이념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공자에 대해서는 칭송하기도 했음


  • 묵자 철학의 의의

○ 묵가는 별도의 법과 규율을 지닌 노동자, 농민, 수공업자가 주축이면서 한편으로는 무기의 제조와 아울러 방어전에 능했음
○ 묵자 또한 노동자 출신이었지만 독서를 통해 위대한 사상가, 정치가, 군사가, 교육자, 과학자로서 평생 끊임없는 실천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실현하고자 했음


강철 같은 조직[편집 | 원본 편집]

  • 묵가의 집단생활과 결속력

○ 묵자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고 살았음

 "묵자를 따르는 무리가 180명인데 그들은 우두머리의 명령이 떨어지면 불 속에 들어가는 일이건 칼날을 밟고 서는 일이건 절대 주저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회남자>>

○ 엄격하게 통제된 생활
- 비좁은 방에서 살았고 기둥에 조각을 하거나 벽을 화려하게 꾸며서는 안되었음. 음식은 흙으로 빚은 그릇에 담긴 옥수수밥, 조밥, 국뿐이었음. 여름에는 베옷, 겨울에는 사슴 가죽만 입었음. 노래나 오락도 철저히 금지되었음
- 금욕적인 규율을 철저히 지켜야 했고 오로지 남을 위해 일해야 했음. 규율을 어겼을 때는 조직에서 엄한 벌을 받았음

 ☞질문: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떻게 그렇게 단단한 결속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 묵가 결속력의 비결
- 합의된 원칙에 따른 조직 운영: 하층민들로 이루어졌던 묵가들은 내부의 법과 규칙에 대한 합의에 근거하여 집단을 움직였음. 리더에 대한 선발도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졌음
-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능력자를 리더로 임명: 조직을 내부에서 합의한 원칙에 맞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을 뽑아 거자로 임명하고 거자는 다시 자신을 도울 현명한 아랫사람을 임명했음. 그리고 자신의 자리는 자신의 아들에게 세습시키지 않고 능력 있는 인사에게 물려주었음
- 기여도에 따른 정확한 상과 벌: 묵가 집단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 사람에게 거자는 상을 주고 집단의 질서를 위협하거나 공유될 이익을 해친 자에게 거자는 벌을 주었음
☞ 임건순,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2015


  • 약속과 원칙을 중시한 묵가

묵수(墨守): 철저하게 끝까지 지킨다는 뜻. 묵가가 견고하게 성을 잘 지킨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묵적지수(墨翟之守)'에서 나온말. 여기에서 묵적은 묵가의 이름

 거자 맹승은 형나라의 양성군과 아주 가까이 지냈다. 양성군은 맹승에게 성을 지켜 달라고 부탁하고 왕의 장례에 참석하러 갔다가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망명해 버렸다. 그러자 형나라에서는 양성군의 땅을 몰수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맹승은 양성군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묵가 집단에게 성을 사수할 것을 명령했다.
 한 제자가 반론을 제기했다.
 "우리가 여기서 모두 죽는 것은 양성군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그러다간 묵가 집단이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묵가의 지휘권은 송나라에 있는 전양자가 계승할 것이니 묵가가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양성군과의 약속을 어긴다면 앞으로 그 누구도 묵가 집단과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맹승은 이렇게 말하고 끝까지 싸울 것을 명령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는 자기 잘못을 깨닫고 자결했고 맹승과 그 부하들도 모두 전사했다. 전양자에게 거자 자리를 넘견 준다는 맹승의 서신을 전하러 간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신을 전하고 나서 전양자에게 말했다.
 "저희는 이제 다시 돌아가 싸우다 죽겠습니다."
 전양자가 그들을 말렸다.
 "이제는 내가 거자이니 내 말을 들으시오."
 그러나 두 사람은 극구 돌아가서 자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모인 행동은 후대 묵가 사람들에게 거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씨춘추>> <상덕>

☞ 묵가 집단에게 의미 있는 전쟁: 오직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지키는 방어 전쟁
☞ 묵가 집단에게 군인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이 아닌 자신들의 철학을 실현해 가는 실천이었음


○ 유가와 묵가의 정직과 원칙에 대한 관점의 차이

1. 묵가 집단과 관련된 일화

 진나라의 복돈이 거자를 맡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이 살인죄를 저질렀다. 복돈은 나이도 많은 데다가 대를 이을 사람이라곤 그 아들 하나뿐이었다.
 진나라 혜왕이 복돈에게 말했다.
 "당신은 늙었고 또 외아들이니 죄를 감해 주겠소."
 "묵가의 법에 따르면 남을 죽인 자는 죽어야 하고, 남을 해친 자는 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온 세상의 대의입니다. 나는 묵가 사람이니 묵가의 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복돈은 이렇게 대답하고 자기 아들을 처형했다. -<<여씨춘추>> <거사>

2. 공자와 관련된 일화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 정직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스스로 고발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우리 고을의 정직한 사람은 이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겨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주니 정직함은 그 가운데 있습니다."
 -<<논어>> <자로>
 ☞질문: 어떤 정직이 진정한 정직이라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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