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리치 천주실의

An_SW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 서학(西學) 수용 과 전개

☞ 김경혜, 「19세기 후반 중국 지식인의 세계인식과 서학수용」, 『중국근현대사연구』 제16집, 2002, 44쪽

○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 땅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하면서 천문, 수학, 지리 및 철학과 관련 있는 서양의 서적들을 번역하여 중국인들에게 소개했고 이때부터 중국인들은 자연과학과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학술문화를 ‘서학’이라고 통칭하기 시작했음
○ 명말에 최초로 중국에 들어온 서양인은 포르투갈 사람으로 1515년 광동으로부터 육로로 입경하여 무종(武宗)을 알현한 이래 이들은 약 1세기 반 동안 동중국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중국과의 무역을 독점했음. 이후 포르투갈은 명나라와 조약(1554년)을 맺으며 기존에 명나라 조정이 포르투갈인들을 단순한 해적으로 취급했던 데 대해 명나라에 세금을 바치는 대신 자유로운 교역을 할 것을 약속함
○ 이에 편승하여 기독교를 전래시킨 것이 예수회 선교사들임


  • 예수회

☞ 김병태, 「명말청초 ’전례논쟁‘의 선교사적 이해」, 『한국기독교와 역사』 Vol.28, 2008, 169쪽

○ 예수회의 창시자인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cio de Loyola, 1491~1556)는 스페인 북부 귀족 출신으로서 궁정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기사 풍의 사람이었고 세속적 교육과 인격 훈련을 중시하는 인문주의자였음
○ 예수회는 그가 파리대학을 다닐 때 만났던 일곱 친구들과 함께 세운 것이며, 문예부흥기의 개인주의와 전체적 목적을 위한 절대 복종 및 의지의 희생이 결합되면서 천주교 개혁운동으로 탄생한 것임
○ 이들 예수회의 선교는 ‘이냐시오 영성(Ignatian Spirituality)으로 알려진 이냐시오의 영성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곳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으로서, “선교지의 토착문화는 살아서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선교의 접촉점”이었음. 그와 같은 배경을 지닌 예수회의 선교적 특징은 인도, 중국 등의 해외 선교 방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음


  • 마테오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

☞ 송영배,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와 중국인들의 반응>, <문화역사지리> 제24권 제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12쪽

마테오리치.jpg

☞ 그림출처: 위키백과

○ 예수회 소속 이태리인 선교사, 중국 최초의 천주교회 창립자
○ 중국식 이름은 ‘이마두(利瑪竇)’임
○ 로마 교황령에 속한 중부 이탈리아의 마체라에서 출생
=> 마체라 위치
○ 16세에 아버지의 권유로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로 갔으나 법학 공부를 중도 포기하고 예수회수련원 산트 안드레아(Sant’Andrea)에 들어갔음(1571년)
○ 일년 뒤 로마대학에 입학하여 당시 유명한 수학자 클라비우스로부터 수재로 인정받았음. 그러나 그는 예수회의 동양 전교 사업에 마음을 정함
○ 당시 인도로의 정기항로는 일 년에 단 한 번 오직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갔음(1577년)
○ 다음해 봄 출항할 때까지 리스본의 코임브라대학에서 수학했고 1578년 봄에 리스본을 출항하여 당시 천주교 동방전교의 중심지인 인도의 고아에 도착했음(1578년). 그곳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코친에서 사제서품을 받았음(1580년). 드디어 1582년 마카오로 출항했음
=> 인도 고아 위치 ○ 당시 중국 명나라는 자신들을 여전히 '천하의 중심의 나라', 즉 '중국(中國)'으로 당연하게 확신했고 중국문화 중심주의적 세계관 속에 완고하게 젖어 있었음. 중국문명망니 '화(꽃 화(華))', 즉 문화의 꽃이고 이 문명의 교화를 받기를 거부하거나 그것과 이질적인 먼 변방의 문명은 '이(오랑캐 이(夷))', 즉 야만의 상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음. 그래서 중국을 지도하는 문화적 엘리트인 유림(儒林)들이나 관료들은 화승총을 들고 해안을 노략질하는 포르투갈사람이나 왜구들 모두를 야만인으로 취급했음

이런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을 어떻게 전도할 수 있을까?


  • 이 지도 하나가 일으킨 변화

Gon2.jpg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 위키백과

○ 리치는 우선 자기가 16세기 유럽에서 배운 서양의 서양학문의 우수성을 세계지도 제작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선포하고자 했음
○ 이에 그는 중국 전래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을 부정하고 대신 <곤여만국전토>를 통해 원형의 하늘(우주) 아래서, 그 중심에 있는 원형의 지구 위에 모든 인류가 살고 있다는 점을 말했음
○ 그는 지구가 평평한 것이 아니라 구형이기 때문에 중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중심이 될 수 없음을 명백히 설명했음

그렇다면 중국 것을 모두 부정했을까?


  • 마테오 리치의 선교 방식

○ 마테오 리치는 자기에게 연금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중국의 문인 구태소(瞿太素)를 최초의 천주교교화인으로 만들기에 성공했음. 리치는 그에게 천주교의 교리 외에 서양의 수학, 기하학, 역학 등을 가르쳤으며, 동시에 그로부터 유교경전인 사서오경을 배우면서 그것을 라틴어로 번역하고 주해하기 시작했음
○ 특히 구태소의 제안에 따라 당시 중국사회의 지도층인 유림(儒林)들과의 자유로운 접촉과 교류를 위 하여, 불교식의 승복을 벗고 중국에 온지 12년 뒤인 1594년부터는 로마본부의 허락을 얻어 유림의 복장을 하고‘리 마또우’(利瑪竇, 리치 마테오의 漢音譯)라는 이름 외에 별도로 문인들의 관습에 따라서, 호(號)를 서태(西泰)라 짓고 서방에서 온 학자(西士)의 신분으로 중국 문인들과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음
○ 리치는 이들 중국문인들에게 정밀한 지도, 지구의, 천체의(天體儀)를 제작해 보이는 일 외에 그의 한문지식이 발전되어 감에 따라 한문으로 저술함으로써 그의 전교활동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런 학문과 저술 활동을 통하여 리치는 많은 중국 문인들을 친구로 만들 수 있었음
○ 그리고 유교경전이나 효 관념에 근거하여 중국 전래의 <천(天)> 또는 <상제(上帝)> 관념과 연관하여 천주교의 하느님을 <천주(天主)>라고 설명했음
○ 그는‘천주교’의 교리란 중국의 전통적인 유교적 세계관과 윤리관에 적대적 모순적인 것이 아니 라 오히려 그런 유교적인 관념을 더욱 완전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 보유론(補儒論)을 강하게 표명했음


  • 마테오 리치(1552~1610)의 <<천주실의>>

Mateo.jpg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 더보기

=>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중국인들에게 '천주의 진실한 의미'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었음
=> 이 책은 중국 선비의 질문에 대하여 서양 선비가 대답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음


천주(天主)

☞ 이대근, <예수회의 보유론적 천주 사상 연구: <<천주실의>>를 중심으로>, <<복음과 문화>> 22, 2017

- <<천주실의>>에서는 라틴어인 데우스(Deus), 즉 그리스도교의 창조주와 주재자를 지칭하는 중국말을 '천주'라고 번역했음
- 천주, 즉 '천의 주인'이라는 용어는 중국인들이 경외하는 '천(天: 하늘 또는 우주 전체)'에 대해 그 '주(主: 주인, 지배자)'를 설정함으로써 그리스도교 교리의 최고 인격신의 존재를 중국인들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임
- 천주는 '천지만물의 대주재'라는 뜻임
- <<천주실의>>에서는 천주(Deus)가 허(虛), 무(無)가 아닌 실(實: 실재함), 유(有: 있음)임을 논증함.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론에 근거한 실재(有)로서의 신(神) 개념을 인격신 개념과 연결시켜 수용한 리치는 비인격적이고 무신론적인 공(空), 무(無), 리(理)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었음. 실재적 존재론의 입장에서 파악한 불교의 공론(空論), 도교의 무론(無論), 신유학의 리론(理論) 등은 그리스도교의 유신론적 신관에 상치되는 그릇된 가르침으로 간주되었음


○ 유교경전 속 죽음에 대한 언급

- 공자의 언급

 자로: “귀신 섬기는 것에 대해 묻겠습니다”
 공자: “아직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자로: “감히 죽음을 묻겠습니다.”
 공자: “아직 삶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죽음에 대해서 알 수 있겠는가?”
-『논어』 「선진」

- <<예기>> 속 언급

 “혼기(魂氣)는 하늘로 돌아가고 형백(形魄)은 땅으로 돌아간다.”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

- <<춘추좌전>> 속 언급

 “정현(鄭玄)의 『예기(禮記)』 「제의(祭義)」 주(注)에서 ‘기는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면서 들락날락하는 것이고, 귀와 눈의 총명함이 백(魄)이다.’라고 했으니 이것은 백(魄)은 형체에 붙어 있고 혼(魂)은 기에 붙어 있음을 말한 것이다. … 「교특생」에 ‘혼기는 하늘로 돌아가고 형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라고 했다. 혼은 본래 기에 붙어 있고 기는 반드시 올라가 떠다니기 때문에 ‘혼기는 하늘로 돌아간다’고 했고 백은 본래 형체로 돌아가고 형체는 흙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형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소공(昭公) 7년」 공영달(孔穎達) 소(疏)
이러한 유교의 죽음에 대한 언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