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유학: 진정한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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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사회에서 이익의 문제는 중요한 갈림길의 요소로 작용하곤 합니다. 무엇을 이익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지기 마련이고, 선택이 달라지기 마련이죠. 이익과 이익이 충돌하는 순간 어떤 것에 우선 순위를 두고 어떤 이익을 택하시나요? 만일 이걸 진짜 이익, 진정한 이익이라고 부른다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인생의 진짜 이익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돈? 관계? 가족? 사랑? 마음의 평화?...
이걸 인구문제, 지역문제로 가져온다면? 만일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내가 원하는 진짜 이익을 찾을 수 있다면? 결혼, 출산, 지역봉사활동 등이 내 삶에 진짜 이익이 된다면? 왜 하지 않겠는가? 누가 과연 희생을 하기 위해 결혼, 출산, 지역봉사활동을 할까? 하지만 때로 우리는 희안하게 나만의 이익을 위한 활동 혹은 선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내 삶에 의미가 있는 무언가를 그 속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 내 삶에 진짜 이익이 뭘까를 찾고 내가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경험을 해나가는 것은 한편으론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어디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인지를 발견하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함. 때론 사회가 원하는, 조직이 원하는 이익을 위해 일할 때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진짜 뭘 원하는 사람인지를 안다면 내 인생 한 켠에서는 내가 추구하는 진짜 이익을 찾아가고 누림으로써,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건강하게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


일차원적 이익, 항산(恒産)[편집 | 원본 편집]

  • 오늘날 도시문제, 지역문제 등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또 이 문제들을 해결해가는 정책적, 사회적인 방향성들을 생각해 보면 그 안에 늘 돈, 일자리 등의 이익의 문제가 개입하곤 함. 인간이기에 우리는 당연히 기본적 생활 안정을 위한 돈, 일자리 등을 추구해 가야 함.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
 일정한 생업(生業)[恒産]이 없으면서도 떳떳한 마음[恒心]을 간직하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일반 백성의 경우에는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떳떳한 마음도 따라서 없어집니다. 만일 떳떳한 마음이 없어지게 되면 제멋대로 나쁜 짓을 일삼고 사사로운 마음만 가득하고 무절제한 짓[放辟邪侈]을 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백성이 죄에 빠지기를 기다린 뒤에 좇아가서 그들을 벌준다면 이는 백성을 그물질하는[罔民] 것입니다. 어찌 인인(仁人)이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질하는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無恒産而有恒心者(무항산이유항심자)는 惟士爲能(유사위능)이어니와 若民則無恒産(약민즉무항산)이면 因無恒心(인무항심)이니 苟無恒心(구무항심)이면 放僻邪侈(방벽사치)를 無不爲已(무불위이)니 及陷於罪然後(급함어죄연후)[에] 從而刑之(종이형지)면 是(시) 罔民也(망민야)니 焉有仁人(언유인이)이 在位(재위)하야 罔民(망민)을 而可爲也(이가위야)리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 上)」)

=> 맹자의 항산(恒産: 항상된 생산, 생업)은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차원적 이익의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함

하지만 항상(恒産)만 있으면 다 되는가? 아니다. 항산 다음에 오는 건? 항심(恒心), 항상된 마음. 항산이 해결되었더라도 마음이 불안하면, 마음이 요동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음. 여러분이라면 다음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물론, 항심을 어떻게 풀 것인가도 문제가 됨. 여러분이 생각하는 항상된 마음, 떳떳한 마음, 한결같은 마음이란? 물론 맹자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말한 게 크지만 당위적으로 '해야 하는' 도덕적 마음이라고만 볼 수는 없음.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어져서 나쁜 짓, 나쁜 마음을 거리낌없이 하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맥락을 살펴보면 항산이 해결되었을 때 우리가 갖게 되는 남을 배려하는 여유, 사사로운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음. 그러니까 인간이란 존재는 항산만으로는 충분치 않음. 항심이 뒤따라야 함

 2023년 2분기 출산율 0.7…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라는 정해진 미래를 향해 걷고 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까지 겹치며 지방 인구수는 더더욱 줄어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의 대안 중 하나로 로컬에 집중하고 있다. 지방은 외부로부터 인구를 받아들여 지역 소멸을 막고 수도권에서는 인구 밀집을 줄여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다.
 정부의 지원도 많아졌겠다, 지방에서 노후를 꿈꾸는 사람들, 수도권에서는 얻기 어려운 기회를 지방에서 찾는 사람들 등 최근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늘었다. 쉽게는 어느 정도 발전한 소도시로 가기도 하고, 큰마음 먹고서 귀농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풀벌레 소리만 듣고 평화로울 것만 같은 귀농살이지만 도시인에게는 예상과 다른 일이 펼쳐지기도 한다. 사람을 피해 조용한 곳으로 내려갔지만, 떡국 잔치, 체육대회 등 매달 열리는 마을 행사 참가 권유를 받기도 한다. 간혹 지역 주민들의 텃세가 이어지다 큰 갈등으로 불거지는 경우도 있다.<출처 : The PR 더피알(https://www.the-pr.co.kr)>
지난해 8월 경북 봉화마을에서 70대 귀농인 김모 씨가 공무원 2명에게 엽총을 쏴 숨지게 한 참담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이 있기 4년 전에 귀농했던 김 씨는 이웃 주민과의 갈등과 민원처리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엽총 사건은 타지 사람과 지역 원주민과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을 슬기롭게 해소하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대표적인 사례로 받아들여 진다. 귀농인에 대한 지역주민의 텃세도 비일비재하고, 드러나지 않고 곪아가는 지역민과의 갈등도 귀농귀촌 인구 못지않다는 것이다.<출처: 연합뉴스(https://www.yna.co.kr/view/AKR20190418088500054)>


여러분이 유학동양학을 전공한 관계 전문가로서 이런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무상 파견된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일에 임하시겠습니까?

=> 정부 지원 정책을 따라, 이익을 따라 지역에 갔지만 오히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현지인들과의 관계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들이 종종 등장하고 있음. 그리고 이런 갈등이 서로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함. 일차원적인 이익의 문제를 넘어, 항심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함. 다시 말해 일차원적 이익을 넘어서는, 보다 넓은 관점의 이익에 대한 관점이 필요함


장기적 안목의 이익[편집 | 원본 편집]

  • 우리 삶의 진짜 이익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보아야 함
 안위(安危: 편안함과 위태로움)와 利害(이해: 이익과 해로움)의 일반적인 정황은 이렇다. 정의를 우선시하고 사적인 이익을 뒤로 하는 자는 영예스럽고, 사적인 이익을 우선시하고 정의를 뒤로 하는 자는 치욕스럽다. 영예스러운 자는 항상 형통하고 치욕스러운 자는 항상 궁지에 몰리니, 형통한 자는 항상 남을 제어하고 궁지에 몰린 자는 항상 남에게 제어를 당한다.
 安危利害之常體(안위리해지상체)라 先義而後利者榮(선의이후리자영)하고 先利而後義者辱(선리이후의자욕)이라 榮者常通(영자상통)하고 辱者常窮(욕자상궁)하니 通者常制人(통자상제인)하고 窮者常制於人(궁자상제어인)이라 (『순자』 「영욕(榮辱)」)

=> 사적인 이익이 당장은 이익이 될 것 같지만 선을 넘어선, 정의를 넘어선 이익 추구는 치욕으로 다가옴. 진짜 이익의 문제는 장기적 안목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


  • 거시적 차원의 이익은 의(義)를 이익으로 여기는 것: 이의위리(以義爲利)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기를, “수레를 끄는 네 필의 말을 기르는 대부(大夫)의 집안에서는 닭과 돼지를 살피지 않고, 여름에 얼음을 쓰는 경대부(卿大夫) 이상의 집안에서는 소와 양을 기르지 않으며, 식읍(食邑)을 소유한 백승(百乘)의 집안에서는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신하를 기르지 않으니,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신하를 두기보다는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는 것이 더 낫다.” 하였으니, 이를 일러 “나라는 이(利)를 이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의(義)를 이로움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鷄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 此謂國不以利爲利, 以義爲利也."


  • 그러한 거시적 차원의 이익을 추구하면 저절로 돌아오는 이익: 하늘로부터 도움[자천우지(自天祐之)]
 주역에서 말하기를 “하늘로부터 돕는지라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 하였다. 공자가 말했다. “우(佑)란 돕는다는 것이니, 하늘이 도와주는 것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의 경우요, 사람들이 (진정으로) 도와주려는 사람은 진실함을 실천하는 사람이니, 진실함을 실천하고 하늘의 뜻에 따를 것을 생각하며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어진 사람을 숭상하므로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돕는지라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易曰(역왈) 自天祐之(자천우지)어늘 吉无不利(길무불리)라하니 子曰(자왈) 祐者(우자)는 助也(조야)니 天之所助者(천지소조자)는 順也(순야)요 人之所助者(인지소조자)는 信也(신야)라 履信思乎順(이신사호사)하고 又以尙賢也(우이상현야)라 是以(시이)로 自天祐之(자천우지)하여 吉无不利也(길무불리야)니라 (『주역』 「계사전」)

=> 운명론적, 숙명론적으로 예상치 못한 하늘이 돕는 게 아니라, 관계와 사회를 생각하고 추구해 나간 이익이 오히려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얘기


  • 이상적인 이익의 모습
 아름다운 이로움으로 천하를 이롭게 함[以美利利天下(이미리리천하)] (『주역』 건괘 「문언전」)
만일 장기적인 안목의 이익을 갈등 문제에 적용시킨다면 어떻게 접근법이 달라질까? 아마도 개개인의 사적인 이익의 문제도 세심하게 살펴야겠지만 이를 넘어 사적인 이익을 잘 지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남, 사회, 지역에 대한 이해에 보다 마음을 쓰지 않을까? 내가 속한 공동체, 사회, 지역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이것이 결국은 나라는 사람의 성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지 않을까?

☞ [갈등 해결 접근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 https://www.nongmin.com/article/20200714324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