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과 디지털인문 융합: 한국문헌 속 공사(公私)
미조구치 유조, 『중국의 공과 사』[편집 | 원본 편집]
☞ 미조구치 유조 지음, 정태섭·김용천 옮김, 『중국의 공과 사』, 신서원, 2004
☞ 미조구치 유조 지음, 김석근 옮김, 『중국사상문화사전』, 책과함께, 2011
- 중국 공사 개념의 특징
○ 원의적으로 배반의 관계에 있음 (공 <-> 사)
○ 그 배반의 관계에는 선과 악, 정(正)과 부정(不正)의 윤리성이 있음
○ 그 윤리성은 집단의 안과 밖을 불문하고, 다시 말해 시간, 공간, 위치를 관통하면서 균일하게 타당한 원리적인 보편성을 가짐
- 공과 사의 어원
○ 공은 신분 칭호의 하나, 군주를 비롯한 통치자 그 자신 혹은 통치자와 관련된 사물 의미
○ 사는 곡물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 자신의 것(사유 또는 사용), 신변의 것, 혈연의 관계에 있는 것을 의미
- 전국시대 공과 사
○ 순자는 조직적으로 공사론을 전개해 나감
- 공은 통치자나 통치자와 관련된 사물이라는 의미에서 확대되어 윤리화, 정치화된 공공(公共), 공평, 공정이라는 추상적 의미를 띠게 됨. 더 나아가 군주만이 아니라 신하 등이 지켜야 할 보편과 관련된 덕목의 하나가 되었음
- 사는 통치자까지 포함해서 사람들의 개별적인 감정, 욕망 또는 일부 사람의 이해와 국가 내부의 공권력 행사를 저해하는 세력을 의미하는 말로 변하고 거기서 공은 선이며 긍정되어야 할 것, 사는 악이며 부정되어야 할 것이라는 대립 형태를 띠게 됨
○ 법가에 이르게 되면 공과 사를 이율배반적으로 예리하게 대립시켜 공을 긍정하고 사를 부정함. 공의가 행해지면 국가는 다스려지고 사의가 행해지면 국가는 어지러워짐
○ 도가는 공사를 한층 추상화시킴. 공공, 공평, 공정이라는 의미의 공을 토대로 삼아 그것을 천지자연과 인간 사회에 관통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 존재의 도(道)나 천지의 속성이라고 하고, 그와 같은 보편적인 도를 포착할 수 없는 인간의 개별적인 감정, 욕망, 지식 등을 사로 비판했음
- 공의 우위
○ 한대부터 수, 당시대의 공사론은 선진시기의 모든 공사를 토대로 하고 있고 그 위에 군신 간의 충과 부자간의 효의 관계도 얽혀서 복잡한 양상을 드러냄. 공과 사는 사회생활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영역으로 기능하는 장이라는 점이 인정됨. 예컨대 국(國)이나 관(官)에서의 군신 관계의 공(公)과 더불어 가(家)에서의 부자 관계의 사(私)도 존재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져 있었음
○ 하지만 공의 압도적 우위 하에서 사의 용인이었으며 양자가 경합할 경우 언제나 공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보았음
- 송대 천리와 인욕 개념과 연계된 공과 사
○ 송대가 되면 천리, 인욕 관념과 연결되어 '천리의 공', '인욕의 사'가 짝을 이루는 개념이 됨
○ 본래 중국에서는 우주만물의 저절로 그러한 모습은 원래 그 자체로서 본래적인 올바른 모습이라고 이해하는 자연(自然) = 정(正)의 관념이 전통적이었음
○ 천리의 자연은 인간의 자연적 감정, 욕망을 천리의 이름 아래 긍정적으로 포용하는 측면을 갖게 됨. 주희는 "먹고 마시는 것은 하늘의 이치[천리(天理)], 맛난 음식을 요구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욕(人欲)]"이라고 했음. 자연적 욕망은 천리로서 혹은 공[公: 사람마다 가진 보편적인]의 욕으로 이해
- 명말 청초, 사의 긍정
○ 명말 청초가 되면 욕망이 단순히 개체의 본능 욕구에 머물지 않고 그때까지 부정적으로 간주되어 온 사(私), 특히 사적 소유욕에까지 미치게 됨. 이탁오(李卓吾, 1527~1602), 황종희(黃宗羲, 1610~1695) 등은 사적 소유욕을 긍정함. 그렇다고 무제약적으로 긍정한 것이 아니라 "인욕의 적정한 것이 곧 천리"라고 보았음
- 이어짐(연결)의 공
○ 송대에 공론, 공의는 누구라도 긍정할 수 있는 공정한 논의라는 의미이며, 그 경우의 공은 오로지 조정 내의 논의의 내용을 가리키고 있었음. 하지만 명말 청초가 되면 지방의 신하들로부터 나온 논의를 가리키게 되고, 개별 의견을 포함하거나 혹은 그에 근거한 다수 또는 집단 의견이라는 의미도 갖는 정도로까지 바뀜. 공과 사가 이율배반적이고 대립적이었던 데에서 나아가 공에 사를 포함해 각 사를 연결시킨 이어짐으로서의 공의 의미를 갖게 됨
한국고전종합DB에서 찾아본 공과 사[편집 | 원본 편집]
- 고려시대 공과 사(이규보): 이정인선생님
○ 타인을 돕는 것이더라도 내가 타인에 대한 개인적 호감, 동정심 등 감정에 따라 돕는다면 이는 사적인 감정에 따른 것임. 이를 인정하기도 하면서도, 공도에 벗어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 또한 발견됨
○ 타인을 돕는 것도 사에 해당
○ 기본적으로 공평함에 대한 고려가 상당함
○ 사은(私恩)의 용례가 상당히 나타남. 이 사의 의미는 혼자, 개인적이라는 의미
- 조선 초 공과 사: 량가명선생님
○ 농업 토지, 사법 판결을 중심으로 한 기록이 많아, 공과 사는 이익과 사회 사법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음
○ 신분과 관련된 공사(공사(公私)의 천례(賤隷))
○ 공사(公私)의 잔치
- 조선 후기(효종~경종, 1600년대) 공과 사: 박제균선생님
○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 정재륜(효종의 부마)이 효종~경종대 궁궐을 드나들며 작성한 기록물
1.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진 유래와 폐해 (효종)
->감정의 중절을 지키지 못함
참람한 예식이 후대에 뻗침
2. 공무수행을 철저히 지켰을 때의 공효 (기록물 보존)
-> 선대의 제도를 명확히 알 수 있음
3. 공적 지위가 상승함에 따른 몸가짐(안탄대, 선조의 외할아버지)
-> 공적 지위가 올라갈수록 더욱 몸가짐을 조심함 (신분에 변화에 개의치 않음)
공적 지위를 지니고 있지 않았을 때부터 언행을 삼감
- 조선 후기 『육곡유고(六谷遺稿)』(서필원(徐必遠, 1613~1671)) 속 공과 사: 주종욱선생님
○ '공’의 관점은 주로 저자가 그의 공무 책임에 대한 인식과 이를 수행하는 데 나타남. '사’의 관점은 주로 그가 부모님의 무덤을 수리하려는 강렬한 열망에서 나타남. 여기서 '사’는 그의 개인 사안, 그의 가족 책임을 가리킴. 이는 그가 개인 사안을 중요시하고, 가족을 위해 자신의 공무 시간을 희생하려는 의지를 보여줌
○ 공과 사의 교차와 균형을 찾아감. 공무와 개인의 건강 사이에서 갈등. 전반적으로 보면, 이 관리는 공무와 개인의 건강 사이의 충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높은 책임감과 자기 희생의 정신을 보여주었음. 그의 사임 요청은 그의 국가에 대한 충성과 개인의 건강에 대한 관심을 충분히 보여줌. 그의 선택은 그가 공공 이익과 개인 이익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한 것을 반영
○ 마치지 못한 공무에 대해 죄책감과 불안감 또한 보임. 그가 공무에 대해 높은 중요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함
- 조선 후기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 속 공과 사: 김연희선생님
○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별
○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통합한 ‘모든 것’이라는 뜻
○ 公 개념: 계급, 公理(공적인 이치), 公道, 公議, 公會, 公平, 公法, 公罪, 公共, 公事(공적인 일), 公用, 公賦, 公役, 公職, 公員, 公料, 公債, 公貨, 公物, 屬公, 公案, 公費, 公稅, 公務, 公金, 公家, 公廳, 公庫, 公車, 公館, 公廨, 公墓, 公室, 公堂, 公門, 公文, 公移, 公賓, 公食禮, 公服, 公簿, 公祭
○ 公穀<->私穀
○ 公田<->私田
○ 公倉<->私庫
○ 公場<->私場
○ 公錢<->私賤
○ 私 개념: 私恩(부정), 私取(부정), 私和(송사를 화해하는 것), 私慾(부정), 私有(부정), 私情(부정), 私人, 私用, 私室, 私書, 私請, 私事, 私物, 私鹽(소금이 전매품이었을 때, 허가 없이 파는 소금), 私債, 私婢/私奴, 私印, 私船, 私田, 私錄, 私混(사곡(私穀)을 공곡(公穀)에 뒤섞는다는 뜻), 私穀, 私財, 私錢(사전), 私祠(사사), 私利私慾, 私設, 私帖(사첩, 위조문서), 私習(혼자서 연습하는 것), 私斂, 私信, 私黨
- 조선 후기 이후 『일성록』 속 공과 사: 임영란선생님
○ 『일성록』을 중심으로 公私를 검색하는 중에 公服, 公文書, 公事등이 발견되었고, 그 중 公服과 관련된 단어를 찾아보았음
○ 公服의 반의어는 무엇일까하며 私服을 검색해 보았는데 3개가 있었음
○ 이와 관련해서 공복(公服), 사복(私服), 군복(軍服), 천담군복(淺淡軍服), 법복(法服), 법복(法服) 순길복(純吉服), 담복(禫服), 피복(皮服), 편복(便服), 순소복(純素服), 소복(素服),연복(練服), 상복(上服), 조복(朝服), 면복(冕服), 역복(易服), 길복(吉服), 변복(變服), 개복(改服), 관복용(冠服), 천담복(淺淡服), 시복(時服), 정복(正服), 미복(微服), 상복(常服), 명복(命服), 건복(巾服), 평융복(平戎服), 최복(衰服), 시사복(視事服), 청금복(靑衿服), 유생복(儒生服) 등 많은 복식용어가 있었음을 확인했음
- 호오(好惡)와 연관된 공과 사: 이병호선생님
○ 사정(私情)과 호오(好惡)와의 연관성
○ 好惡의 사용은 양가적인 모습이 드러남. 만민의 공감, 天則 등과 함께한, 다시 말해 公적인, 好惡은 긍정적이며, 마땅히 따라야 할 그것으로 표현됨. 그러나, 私情, 人情에 의거한 好惡은 교정되어야 할 그것이며, 치우침 등의 원인으로써 제시됨
○ 개별 인간의 호오는 의심스러운 그 무엇으로 평가되지만, 개인들의 집합체의 견해, 일종의 public opinion과 호오를 같이 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듯함
- 감정과 관련된 공과 사
○ ctext를 활용한 공(公)과 사(私) 분석 - 『춘추좌전』 활용 (『춘추』내에서 公은 관직으로 많이 사용되므로 私를 중점으로 분석)
- 私憾: 私人間的怨恨(한어대사전), 恨也 - 유감으로 여기다(교학 대한한사전) = 개인끼리 사사로운 이해관계로 원한을 품은 마음
- 문제제기: 私憾의 憾은 '한하다'라는 뜻으로 하나의 감정 형태이다. 사적 감정 중에서 유독 憾이라는 단어에 추가적으로 私를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 한국고전종합db를 활용한 私憾 분석/br>
- 『목은집』 : 私憾 <-> 公議
- 조선왕조실록, 정조 18년: 공분(公憤) <-> 사감(私憾)
- 문제제기: 공분(公憤)은 공적 감정인 것인가?
여기서 생각해 보게 되는 몇 가지 질문들[편집 | 원본 편집]
☞ 보편적으로 쓰이는 공과 사의 용례와 구분되는 시대별, 문헌별, 학자별 공과 사 개념의 특징이 있는가? ☞ 공과 사가 대립적으로만 쓰이는가? 만날 수 있는가? 대립될 때의 공과 사 개념과 이 둘이 만날 때의 공과 사 개념의 분기점에 놓여 있는 것은 무엇인가? ☞ 공과 사는 왜 충돌하는가? 공과 사는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등
=> 전통철학에서의 공사 관념은 현대 문제에 대해서 다른 질문을 던져보게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개인의 호오, 감정, 사적 영역을 인정하면서도 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경우, 공을 위해 사를 버려야 하는 경우, 상황에 맞게 시의적절하게 공을 표현하는 경우 등..
=> 하지만 전통철학에서 말한 공과 사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우리시대에 공과 사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전통철학의 개념이 우리시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찾아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 신문아카이브[편집 | 원본 편집]
- 1990년대 이후 뉴스 기사: https://www.bigkinds.or.kr/ 빅카인즈
- 1900년대 이후 뉴스 기사: https://newslibrary.naver.com/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 1883~1960년대까지 뉴스 기사: https://nl.go.kr/newspaper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
- 한국학관련 신문 등 데이터베이스: https://kdp.aks.ac.kr/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
- [참고] 최근 SNS 분석: https://some.co.kr/ 썸 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