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인간본성론: 공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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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말한 '성(性)'[편집 | 원본 편집]

 1. 子貢曰(자공왈) 夫子之文章(부자지문장)은 可得而聞也(가득이문야)어니와 夫子之言性與天道(부자지언성여천도)는 不可得而聞也(불가득이문야)니라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의 문장은 배우는 자들이 모두 함께 들을 수 있지만, 선생님께서 성(性)과 천도(天道)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아무나 들을 수 없다."
  -『논어』「공야장(公冶長)」
 2. 子曰(자왈) 性相近也(성상근야)나 習相遠也(습상원야)니라
   공자가 말했다. "사람의 성(性, 성품)은 서로 가깝지만, 습관에 따라 서로 멀어진다." 
  -『논어』「양화(陽貨)」   


공자가 말한 선(善)과 악(惡)[편집 | 원본 편집]

공자가 말한 선(善)[편집 | 원본 편집]

☞ 『논어』에 보이는 선(善)은 1) 착하다, 선하다 2) 잘 3) 좋다 등의 뜻이 있음. 그 중 1) 착하다, 선하다의 도덕적 의미로 쓰인 것만을 추리면 아래와 같음

 3. 季康子問(계강자문) 使民敬忠以勸(사민경충이권)인댄 如之何(여지하)닛고 子曰(자왈) 臨之以莊(임지이장)이면 則敬(즉경)하고 孝慈(효자)면 則忠(즉충)하고 擧善而敎不能(거선이교불능)이면 則勸(즉권)이니라
  계강자가 물었다. "백성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충성하며 서로 권면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공자가 말했다. “백성을 엄숙하게 대하면 (백성들이)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백성을 사랑하면 (백성들이) 충성하고, 선한 사람(선인, 善人)을 들어 쓰고 능하지 못한 자를 가르치면 (백성들이 서로) 권면할 것입니다.”
  -『논어』「위정(爲政)」
 4. 子謂韶(자위소)하사대 盡美矣(진미의)요 又盡善也(우진선야)라 하시고
  공자가 소악(韶樂: 순임금의 음악)을 평하시되 "(성조가) 지극히 아름답고, (내용) 또한 지극히 착하다.라고 하시고
  -『논어』「팔일(八佾)」

☞ 공자가 이 음악을 들은 후 식음을 전폐하며 음악을 공부했다고 알려진 소악(韶樂)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음악

 5. 子曰(자왈) 三人行(삼인행)이면 必有我師焉(필유아사언)하니 擇其善者而從之(택기선자이종지)하고 其不善者而改之(기불선자이개지)니라
   공자가 말했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중에 선(善)한 사람을 골라 따르고 그중에 불선(不善)한 사람을 보고서 나의 불선을 고쳐야 한다.”
  -『논어』「술이(述而)」
 6. 子曰(자왈) 聖人(성인)을 吾不得而見之矣(오부득이견지의)어든 得見君子者(득견군자자)면 斯可矣(사가의)니라. 子曰(자왈) 善人(선인)을 吾不得而見之矣(오부득이견지의)어든 得見有恒者(득견유항자)면 斯可矣(사가의)니라 亡而爲有(무이위유)하며 虛而爲盈(서이위영)하며 約而爲泰(약이위태)면 難乎有恒矣(난호유항의)니라
  공자가 말했다.“성인(聖人)을 내가 만나볼 수 없다면, 군자(君子)라도 만나보면 좋겠다."
  공자가 말했다. "선인(善人)을 내가 만나볼 수 없다면, 항덕(恒德: 변함없는 덕)을 지닌 자라도 만나보면 좋겠다. 없으면서 있는 체하고, 비었으면서 가득한 체하며, 가난하면서 사치를 부린다면 항덕(恒德)을 지니기 어려울 것이다.
  -『논어』「술이(述而)」


 7. 曾子有疾(증자유질)이어시늘 孟敬子問之(맹경자문지)한대 曾子言曰(증자언왈) 鳥之將死(조지장사)에 其鳴也哀(기명야애)하고 人之將死(인지장사)에 其言也善(기언야선)이니라 君子所貴乎道者三(군자소귀호도자삼)이니 動容貌(동용모)면 斯遠暴慢矣(사원포만의)며 正顔色(정안색)이면 斯近信矣(사근신의)며 出辭氣(출사기)면 斯遠鄙倍矣(사원비배의)니라
  증자가 병을 앓자, 맹경자가 병문안했다. 증자가 말했다. “새가 죽으려 할 때는 그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 말이 착하답니다. 군자가 소중히 여겨야 할 도(道)가 세 가지이니, 용모를 엄숙하게 움직이면 남들이 나를 사납고 오만하게 대함을 멀리(면함)할 수 있고, 안색을 바르게 가지면 남들이 나를 진실함으로 대할 것이고, 말을 할 때에 공손하고 유순하며 온화하고 기쁘게(화열(和悅)) 하면 사납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논어』「태백(泰伯)」
 8. 子曰(자왈) 篤信好學(독신호학)하며 守死善道(수사선도)니라 危邦不入(위방불입)하며 亂邦不居(난방불거)하며 天下有道則見(천하유도즉현)하고 無道則隱(도무즉은)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독실히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죽음으로 선한 도(선도(善道))를 지켜야 한다. 위태로운 나라에 들어가지 않으며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 않으며, 천하(天下)에 도(道)가 있으면 벼슬길에 나아가고, 도(道)가 없으면 은둔해야 한다."
  -『논어』「태백(泰伯)」
 9. 季康子問政於孔子曰(계강자문정어공자왈) 如殺無道(여살무도)하야 以就有道(이취유도)인댄 何如(하여)하니잇고
   孔子對曰(공자대왈) 子爲政(자위정)에 焉用殺(언용살)이리오 子欲善(자욕선)이면 而民善矣(이민선의)리라 君子之德(군자지덕)은 風(풍)이요 小人之德(소인지덕)은 草(초)니 草上之風(초상지풍)이면 必偃(필언)이니라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가령 무도(無道)한 자를 죽여서 도가 있는(유도(有道))한 (세상이) 되게 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대는 정치를 하면서 어찌 살륙을 쓰려 합니까? 그대가 선(善)을 하고자 하면 백성들이 선(善)해질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니, 풀에 바람이 더해지면 풀은 반드시 쓰러집니다.”
  -『논어』「안연(顏淵)」
 10. 子貢問友(자공문우)한대 子曰(자왈) 忠告而善道之(충고이선도지)호되 不可則止(불가즉지)하야 毋自辱焉(무자욕언)이니라
  자공이 벗을 사귀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충심(忠心)으로 권고(勸告)하고 선도(善道)로 인도하되, 듣지 않거든 그만두어 스스로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논어』「안연(顏淵)」
 11. 子曰(자왈) 善人爲邦百年(선인위방백년)이면 亦可以勝殘去殺矣(역가이승잔거살의)라 하니 誠哉(성재)라 是言也(시언야)여
  공자가 말했다. “‘선인(善人)이 (계속해) 백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 또한 잔악하고 포악한 자를 이겨 사형을 없앨 수 있다.’라고 하니, 진실이로다. 이 말이여!”
  -『논어』「자로(子路)」
 12. (공자와 노나라 정공(定公)과의 대화 중 공자의 말) 如其善而莫之違也(여기선이막지위야)인댄 不亦善乎(불역선호)잇가 如不善而莫之違也(여불선이막지위야)인댄 不幾乎一言而喪邦乎(불기호일언이상방호)잇가
  가령 임금이 한 말이 선(善)하여 어기는 자가 없다면 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만, 가령 임금이 한 말이 선(善)하지 않은데도 어기는 자가 없다면 이 한마디 말이 나라를 망치는 데 가깝지 않겠습니까?”
  -『논어』「자로(子路)」
 13. 子貢問曰(자공문왈) 鄕人皆好之(향인개호지)인댄 何如(하여)하니잇고 子曰(자왈) 未可也(미가야)니라 
    鄕人皆惡之(향인개오지)인댄 何如(하여)하니잇고 子曰(자왈) 未可也(미가야)니 不如鄕人之善者(불여향인지선자)는 好之(호지)하고 其不善者(기불선자)는 惡之(오지)니라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그를 선인(善人)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선인(善人)이라고 할 수 없다.”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미워한다면 어떻습니까?(그를 선인(善人)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선인(善人)이라 할 수 없으니, 마을 사람 중에 선(善)한 자가 좋아하고 불선(不善)한 자가 미워하는 사람만 못하다.”
  -『논어』「자로(子路)」
 14. 子曰(자왈) 善人(선인)이 敎民七年(교민칠년)이면 亦可以卽戎矣(역가이즉융의)리라
  공자가 말했다. “선인(善人)이 백성을 7년 동안 가르치면 (그 백성들) 또한 전쟁에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논어』「자로(子路)」
 15. 子曰(자왈) 知及之(지급지)오도 仁不能守之(인불능수지)면 雖得之(수득지)라도 必失之(필실지)니라
    知及之(지급지)하며 仁能守之(인능수지)오도 不莊以莅之(불장이리지)면 則民不敬(즉민불경)이니라
    知及之(지급지)하며 仁能守之(인능수지)하며 莊以莅之(장이리지)오도 動之不以禮(동지불이례)면 未善也(미선야)니라
  공자가 말했다. “지혜가 그 직위에 미칠 수 있어도 인(仁)이 그 직위를 지킬 수 없으면 비록 직위를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 지혜가 직위에 미칠 수 있고 인(仁)이 직위를 지킬 수 있어도 장엄함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백성이 공경하지 않는다. 지혜가 직위에 미칠 수 있고, 인(仁)이 직위를 지킬 수 있고, 장엄함으로 백성을 다스릴 수 있어도 백성을 예(禮(정해진 제도))로써 동원하지 않으면 선하지 못하다.”
  -『논어』「위령공(衛靈公)」
 16. 孔子曰(공자왈) 益者三樂(익자삼요)이요 損者三樂(손자삼요)이니 樂節禮樂(요절예악)하며 樂道人之善(요도인지선)하며 樂多賢友(요다현우)면 益矣(익의)요 樂驕樂(요교락)하며 樂佚遊(요일유)하며 樂宴樂(요연락)이면 損矣(손의)니라
  공자가 말했다.“유익한 좋아함이 세 가지이고, 손해되는 좋아함이 세 가지이니, 예악(禮樂)을 따르기 좋아하며, 사람의 선(善)함을 말하기 좋아하며, 어진 벗이 많음을 좋아하면 유익하고, 교만함과 방종함을 좋아하며, 편안히 노는 것을 좋아하며, 향락에 빠짐을 좋아하면 손해가 된다."
  -『논어』「계씨(季氏)」
 17. 孔子曰(공자왈) 見善如不及(견선여불급)하고 見不善如探湯(견불선여탐탕)을 吾見其人矣(오견기인의)며 吾聞其語矣(오문기어의)로라 隱居以求其志(근거이구기지)하며 行義以達其道(행의이달기도)를 吾聞其語矣(오문기어의)나 未見其人也(미견기인야)로라
  공자가 말했다. “선(善)을 보면 미치지 못할 듯이 (힘써) 하고, 불선(不善)을 보면 끓는 물에 손이 닿은 듯이 (급히 피)하는 것을, 나는 그런 사람도 보았고, 나는 그런 말도 들었다. 숨어 살면서 자기의 뜻을 추구하고, 의(義)를 행하여 자기의 도(道)를 실행하는 것을, 나는 그런 말을 들었으나, 그런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논어』「계씨(季氏)」


공자가 말한 불선(不善)[편집 | 원본 편집]

 18. 子曰(자왈) 德之不修(덕지불수)와 學之不講(학지불강)과 聞義不能徙(문의불능사)와 不善不能改(불선불능개)가 是吾憂也(시오우야)니라
 공자가 말했다. “덕(德)이 닦이지 않고, 학문이 익혀지지 않고, 의로운 일을 듣고 능히 옮기지 못하고, 불선(不善)을 능히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나의 근심이다.”
  -『논어』「술이(述而)」


공자가 말한 악(惡)[편집 | 원본 편집]

☞ 『논어』에 보이는 악(惡)은 1) 악하다 2) 미워하다 3) 어찌 등의 뜻이 있음. 그 중 1) 악하다의 도덕적 의미, 가치와 관련된 의미로 쓰인 것만을 추리면 아래와 같음

 19. 子曰(자왈) 苟志於仁矣(구지어인의)면 無惡也(무악야)리라
  공자가 말했다.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두면 악행(惡行)이 없을 것이다.”
  -『논어』「이인(里仁)」
 20. 子曰(자왈) 士志於道(사지어도)오도 而恥惡衣惡食者(이치악의악식자)는 未足與議也(미족여의야)니라
  공자가 말했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었으면서도 나쁜 과 나쁜 음식을 수치로 여기는 자는 더불어 도를 의논하기에 부족하다.”
  -『논어』「이인(里仁)」
 21. 子曰(자왈) 伯夷叔齊(백이숙제)는 不念舊惡(불념구악)이라 怨是用希(원시용희)니라
  공자가 말했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남의 지난날의) 악행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원망하는 사람이 적었다.”
  -『논어』「공야장(公冶長)」
 22. (공자의 음식 먹는 습관에 관해) 色惡不食(색악불식)하시며 臭惡不食(취악불식)하시며 失飪不食(실임불식)하시며
  색깔이 나쁘면 자시지 않았고, 냄새가 나쁘면 자시지 않았으며, 알맞게 익지 않았으면 자시지 않으셨으며,
  -『논어』「향당(鄉黨)」
 23. 子曰(자왈) 君子成人之美(군자성인지미)하고 不成人之惡(불성인지악)하나니라 小人反是(소인반시)니라
  “군자는 남의 선행은 이루도록 돕고, 남의 악행은 이루도록 돕지 않는다.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
  -『논어』「안연(顏淵)」
 24. (제자 번지(樊遲)가 덕을 높이고 간특함(慝: 숨길 닉(匿)+마음 심(心): 악이 마음에 숨어 있음)을 닦고 의혹을 분별함을 물은 데 대한 공자의 답변) 先事後得(선사후득)이 非崇德與(비숭덕여)아 攻其惡(공기악)이요 無攻人之惡(무공인지악)이 非脩慝與(비수특여)아 一朝之忿(일조지분)으로 忘其身(망기신)하야 以及其親(이급기친)이 非惑與(비혹여)아
  일을 먼저하고 소득을 뒤에 함이 덕(德)을 높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의 악(惡)함을 다스리고 남의 악(惡)함을 다스리지 않음이 간특함을 닦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루 아침의 분노로 자신을 잊어서 화가 부모에게까지 미치게 함이 의혹 함이 아니겠는가?” 
  -『논어』「안연(顏淵)」
 25. 子貢曰(자공왈) 君子亦有惡乎(군자역유오호)잇가 子曰(자왈) 有惡(유오)하니 惡稱人之惡者(오칭인지악자)하며 惡居下流而訕上者(오거하류이산상자)하며 惡勇而無禮者(오용이무례자)하며 惡果敢而窒者(오과감이질자)니라
  자공이 말했다. “군자도 미워함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미워함이 있다. 남의 악(惡, 결점)을 말하는 자를 미워하며,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는 자를 미워하며, 용감하고 예(禮)가 없는 자를 미워하며, 과감하고 (남의 선행(善行)을) 막는 자를 미워한다.”
  -『논어』「양화(陽貨)」
 26. (공자가 제자 자장에게 다섯 가지 아름다운 일을 행하고 네 가지 악을 물리치면 정치에 종사할 수 있다고 하면서 네 가지 악에 대해 말했음) 何謂四惡(하위사악)이닛고 子曰(자왈) 不敎而殺(불교이살)을 謂之虐(위지학)이요 不戒視成(불계시성)을 謂之暴(위지포)요 慢令致期(만령치기)를 謂之賊(위지적)이요 猶之與人也(유지여인야)로되 出納之吝(출납지린)을 謂之有司(위지유사)니라
  자장(子張)이 “무엇을 사악(四惡)이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미리) 가르치지 않고 (죄를 범했다고) 죽이는 것을 학(虐, 혹독함)이라 하고, 미리 경계하지 않고 성과를 바라는 것을 포(暴, 포악함)라 하고, 명령을 태만히 하고 기한은 각박하게 정하는 것을 적(賊, 해침)이라 하고,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지출함에 인색한 것을 유사(有司)라 한다.” 
  -『논어』「요왈(堯曰)」


오늘의 토론 주제(2023.03.14)[편집 | 원본 편집]

공자가 말한 선과 악은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되고 있나요? 본성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나요?

오늘의 토론 내용(2023.03.14)[편집 | 원본 편집]

  • 1조: 본성 정해짐 vs 정해지지 않음

○ 공자는 인간 본성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다고 보았다는 주장
- 11. 선인(善人)이 (계속해) 백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 또한 잔악하고 포악한 자를 이겨에서 '이긴다'는 표현은 교화를 통해 악인을 선인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님
그렇다면 어떤 사람은 선하게 태어나고, 또 어떤 사람은 악하게 태어난다는 것인가?

행해지는 선/악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 - 공자는 선과 악을 말할 때 행해지는 선과 악에 집중했음
- 진흙처럼 환경과 같은 요인에 따라 인간의 본성은 달라질 수 있다고 본 것 같음

○ 여기서 드는 의문들
우리는 끊임없이 선해야 한다. 선한 정책을 펼친다고 해서 악인들이 교화가 될까?
악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악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 심지어 악인은 스스로 악하다는 인식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악인이 변화 자체가 가능한 건가?
=> 공자의 인간본성론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선을 만드는 데에 초점을 두는게 아니고, 악인이 있더라도 덕치로 다스림에 있는 게 아닐까?
=> 그렇다면 개개의 악인을 모두 선인으로 만드는 노력보다 악인이 있더라도 덕치로 다스리는 게 필요한 이유는 뭘까?
=> 인간은 나쁜 환경 때문에 악인이 되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소인배적인 습성을 배워 악인으로 살게 된다는 반박을 해보면 선인을 통해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한 것 아닐까?


  • 2조: 불선, 악의 문제

○ 불선과 악의 차이: 불선은 게으르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좋지 않음-불선), 악은 나쁜 결과(악-나쁨)
○ 선과 악은 본성이 아니라 행동
○ 이런 측면에서 악은 행동적인 측면임 ex) 분노, 비방, 죽임, 인색함, 과거에 연연함
=> 이렇게 보는 이유: 논어에서 악은 '고쳐야 한다, 막아야 한다'는 동사와 함께 왔으므로 성격이나 행동에 가까움
=> 그러고 보면 그 사람 마음에 품은 선악은 보이지 않네. 결국 선한지 악한지는 행동으로 드러나는 거 아닌가?
=> ex) 화를 내서 부모님께 해가 미침, 기한을 각박하게 해서 아랫사람들을 힘들게 함
=> 이렇게 보면 본성이라는 건 내재적인 건데 선/악과 연결시킬 수 없는 거 아닌가?
=> 그런데 이 악은 어디에서 왔을까?


  • 3조: 선호도로서의 선악

○ 인간의 성품은 비슷하며 후천적인 것으로 달라짐
=> 그런데 여기에서 비슷하다는 게 뭘까? 우리에게 주어진 선천적으로 비슷한 것: 선호도
○ 먹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과 같이 인간의 선호도는 비슷한 측면이 있음
=> 그렇다면 도덕적인 선호도에서도 비슷한 게 있지 않을까?
=> 근데 비슷한 게 있는데 왜 달라지지?
○ 결국 행하는 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공자는 악보다는 선을 더 중시했음. 선에 관한 내용은 많이 있지만, 악에 대한 것은 선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되어 있음 => 그러네. 공자는 왜 선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했을까?


  • 4조: 악이 문제다

○ 악에 관해 말하자면, 25번 26번 보면, 25번은 남을 비방하는 사람, 26번 같은 경우 어느정도 배운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남에게 떠맡기는 것을 악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음
○ 25번을 참고하여, 선의 발현을 막는 행위를 악이라고 규정한 것 같음
=> 그렇다면 왜 악에 이끌릴까? 왜 어떤 순간에는 악이 이길까?
=> 그런데 악이라는 게 악인들만 저지르는 것일까? 우리 내면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게 아닐까?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 것이 악이 아닌가 생각함
=> 그렇다면 악은 극복될 수 있나?
=> 주변에 선한 사람을 두고 불선한 사람을 멀리함으로서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 같음. 따라서 선천적인 본성의 영향보다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의 맥락을 고려한 것 같음
=> 그런데 왜 악을 극복해야 하나? 선이 좋은건가?
=> 선은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어 한가지에만 좋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방면으로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


  • 5조: 공자가 말한 선의 유형 정리

정치적 측면: 선한 특성을 가진 사람을 등용하는 조건으로서의 선
음악/예술의 측면: 음악에서의 선은 그것을 듣는 사람의 생각에 도덕적인 영향을 미침
배움/수양의 측면: 선한 사람을 보고 본받아야할 덕목을 찾고, 악은 악한 사람의 행동을 보고 자신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도록 조심
=> 선을 배운다는 게 뭘까? 본성적으로 타고난 선과는 어떤 차이인가?
=> 사람은 물론 태어날 때 선하게 태어나지만, 교육과 깨달음을 통해 선을 배우고 자신의 내면을 발전시켜 가며 더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tool임
=> 공자는 구체적으로 인(仁)을 제시했음(우리가 배워야 하는 선의 내용? 맞나?) => 그래서 악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음. 공자가 주장한 가장 대표적인 개념인 ‘인’을 따르지 않는 것은 악이라고 생각함


  • 토론 결과 나타나는 문제의식들 정리
  1. 공자의 인간본성론의 의도와 목적이 뭘까?
  2. 악인들 개개인의 교화 가능성 시각 vs 좋은 정치적/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각 중에 공자는 어느 쪽일까?
  3. 결국 선악을 이야기할 때 늘 문제가 되는 건 악임(근데 악과 불선의 차이는?)
  4. 그런데 논어에서 공자는 정작 악보다 선에 대해 더 많이 얘기했음. 왜?
  5.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우리 일상속에서 마주하는 우리 내면 속 선/악의 문제가 아닐까? 악은 어쩌면 그렇게 거창한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악은 내가 맡은 본분을 다하지 않는 것, 게으름 등이 아닐까? 이렇게 되면 악의 문제가 정작 나의 문제가 되는 게 아닐까?
  6. 그렇다면 악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나? 악의 극복의 문제
  7. 악을 왜 극복해야 하나? 선이 좋은 건가? 왜 선이 좋나?
  8. 타고난 선과 배우는 선의 차이? 관계? 선을 배운다는 게 어떻게 배운다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