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인간본성론: 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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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충(王充, 27년 ~ ?)이라는 인물[편집 | 원본 편집]

☞ 임옥균, 『왕충』,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 박동인, 「한대 참위설의 형성과 그 사회·정치적 함의」, 『유교사상문화연구』제74집, 한국유교학회, 2018

  • 시대의 주류에 저항한 철학자, 왕충

○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통일의 시대를 이룬 한나라의 이데올로그들은 황제의 권위를 한껏 올릴 필요를 느꼈고, 이를 위해서는 유학의 이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유학에 참위설을 끌어들여 그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음
○ 참위설의 '참(讖)'이란 해, 달, 별(일월성신)의 변화에 따라 길흉이나 재이(災異: 재앙, 이변) 등을 예언하는 것이고, '위(緯)'는 경(經)에 가탁해서 미래의 일을 설명한 것임
=> 진시황의 분서 등으로 인해 진나라 때 유실된 경전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당시 사회·정치적 상황에 맞게 경전이 재해석되었음(음양오행설, 상서재이설, 천인상관설 천문점 등이 포함)
○ 한나라 때에는 이 참위설이 참으로 일세를 풍미했다고 할 수 있음. 참위설은 예언을 주로 하고 있는데 견강부회하여 이미 일어난 일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참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그 주종을 이루었음
○ 예: 원시(元始) 5년(서기 5년) 12월에 평제(平帝)가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인 영(嬰)을 세웠음. 『한서』「왕망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음
"이 달에 ... 우물을 파다가 흰 돌을 얻었는데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졌다. 그 위에 붉은 글씨가 드러났는데 '안한공 왕망이 황제가 될 것이다'라고 씌어 있었다."
☞ 정치적 의도가 뚜렷하게 보이는 조작이라고 할 수 있음. 이 이후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수없이 많이 일어났고 결국 왕망은 스스로 제위에 올라 한나라를 종식히키고 신(新)나라(8~23)를 세웠음
=> 그만큼 당시 사람들이 참언을 믿었고 또 그 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획득하고자 할 경우 그것이 가능했음
○ 왕충은 이 참위설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비판을 가했음
○ 특히 왕충과 가까운 시대였던(27~97) 후한 말기 황건적의 난(184)이 일어나는데 이 당시 미신적인 민간신앙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음. 예컨대 부적을 살라서 물에 타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하는 등의 주술을 통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태평도를 백성들이 믿을 정도로 그 당시 일반 백성들도 미신적인 부분들을 믿었던 것으로 보임


○ 지금 왕충의 저작인 『논형』을 보면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를 힘들여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왕충 당시에는 이와 같은 미신이 횡행하고 있었고 그것이 정치적 도구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반대가 심지어는 목숨을 건 일이 될 수도 있었음
○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부터 글을 배우고 여덟 살 때부터 서당에 다니면서 유교경전 공부를 시작했음
○ 17, 18세 때 고향인 절강성 상우현(上虞縣)을 떠나 수도인 낙양으로 유학을 갔음
○ 20세 무렵 이후 스승을 떠나 스스로 전문적인 연구를 시작했음. 한 가지를 파고드는 연구보다는 여러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음.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던 왕충은 책을 사기 보다는 책방을 돌아다니며 책을 읽었고 읽는 대로 암기했음
○ 친구들과 토론할 때 왕충은 항상 새로운 관점을 내놓았고 친구들은 처음에는 황당해 하다가도 왕충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였음. 글도 잘 썼던 것으로 알려져 있음
○ 30세 무렵에 왕충은 낙양을 떠나 외지에서 관직을 역임한 것으로 보임. 평생 높은 관직에는 오르지 못했음
○ 왕충은 자신의 일생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음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고 ... 가난하고 어려워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 50세가 넘어서 영천군(潁川郡)에서 관직을 맡았는데 사치와 양조를 금하자는 건의를 그 고을을 다스리는 태수에게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그동안 쓴 글들을 정리하여 『논형』을 편찬했음
○ 70세 전후에 왕충은 집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음


왕충의 『논형』 속 인간본성에 관한 이야기 들여다보기[편집 | 원본 편집]

☞ 번역문 출처(1): 왕충 지음, 성기옥 옮김, 『논형』, 동아일보사, 2016
☞ 번역문 출처(2): 왕충 지음, 이주행 옮김, 『논형』, 소나무, 2016
☞ 원문 출처: https://ctext.org/

 우리는 왜 유학을 공부하나? 유학자가 되기 위해서?
  • 왕충은 당시의 주류 사상이었던 유학, 특히 공자, 맹자에게까지 직접적으로 비판함. 그들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 잘못된 점에 대한 비판, 이를 통한 극복은 왕충에게 중요한 과제였음


 1. 성인의 말은 원래 이해하기 어려워서 도리를 곧바로 철저하게 깨닫기 어렵다. 그런데 곧바로 철저하게 깨달을 수 없다면 마땅히 질문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마땅히 질문해서 그 뜻을 깨달아야 한다. ... 학문을 추구하는 방법은 재능의 유무에 있지 않다. 과감히 스승에게 반문해서 핵심 도리에 관한 시비를 확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인이 살아 있을 때 서로 마주보고 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 진실로 깨달을 수 없는 의문이 있다면 공자의 말을 추궁하고 비판할지라도 그 도리를 흠집내지 않는다.
聖人之言,不能盡解;說道陳義,不能輒形。不能輒形,宜問以發之;不能盡解,宜難以極之。... 凡學問之法,不為無才,難於距師,核道實義,證定是非也。問難之道,非必對聖人及生時也。... 誠有傳聖業之知,伐孔子之說,何逆於理?
(『논형』「문공(問孔)」)


 2. 천지의 기가 합쳐져 만물이 저절로 탄생하는 일은 부부의 기가 합쳐져 자식이 생기는 일과 같다. ... 하늘은 치우침 없이 모든 만물에 기를 뿌린다. 이로써 자라난 곡식으로 기아를 다스리고, 비단과 삼으로 추위를 막는다. 사람들은 곡식을 먹고, 비단과 삼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하늘이 오곡과 비단과 삼을 일부러 자라게 해서 사람의 의식을 해결하도록 하지 않는 이상, 하늘로부터 일어난 재앙과 이변일지라도 사람을 꾸짖거나 훈계할 뜻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만물은 저절로 자라나고, 사람은 그러한 만물을 옷과 음식으로 삼는다. 마찬가지로 천지의 기는 저절로 발생하지만 이것이 재앙으로 변하면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天地合氣,萬物自生,猶夫婦合氣,子自生矣。... 天者、普施氣萬物之中,穀愈飢而絲麻救寒,故人食穀、衣絲麻也。夫天之不故生五穀絲麻以衣食人,由其有災變不欲以譴告人也。物自生,而人衣食之;氣自變,而人畏懼之。
(『논형』「자연(自然)」)

=> 한나라 때 형이상학은 의지를 가진 하늘을 그 근저에 깔고 있음. 이 하늘은 인간사에 대해 길흉, 재앙 등을 내려준다고 보았음. 그러나 왕충은 이것을 부정하고, 하늘과 땅, 천지는 기(氣)를 구성 요소로 한 자연물이라고 생각했음. 하늘은 목적 의지를 갖지 않은 물리적 존재로 본 것임(히하라 도시쿠니 지음, 김동민 옮김, 『국가와 백성 사이의 한(漢): 한제국, 덕치와 형벌의 이중주』, 글항아리, 2013, 81쪽)


 3. 자연의 조화는 원래 어렴풋해서 알기 어렵다. 외부에서는 유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위하다. ... 도가는 자연의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물을 인용해 자신들의 언행을 증명하지 못한 까닭에 자연에 대한 학설을 사람들이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만물이 무위에 의해 만들어질지라도, 반드시 유위의 보조가 필요하다. 봄에 쟁기로 논밭을 갈고 파종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사람은 천지간에서 태어난다. 천지가 무위하다면 사람이 받은 천성 또한 당연히 무위해야 한다. 그런데 유위한 활동을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自然之化,固疑難知,外若有為,內實自然。... 道家論自然,不知引物事以驗其言行,故自然之說未見信也。... 然雖自然,亦須有為輔助。耒耜耕耘、因春播種者,人為之也。... 問曰:「人生於天地,天地無為,人稟天性者,亦當無為,而有為,何也?」
(『논형』「자연(自然)」)


 4. 도덕이 훌륭하고 순후한 사람은 천지의 기를 많이 받고 있으므로, 하늘의 법칙에 따라 무위자연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다. 받은 기가 적은 사람은 도덕규범을 따르지 않고, 천지의 무위와 닮지 않았기 때문에 불초(不肖)하다고 말한다. '불초'는 닮지 않았다는 뜻이다. 천지의 무위를 닮지 않았으며 성현의 도덕규범을 따르지 않고 다른 생각을 품기 때문에 유위하다고 말할 수 있다. ... 사람은 받은 기가 동일하지 않으므로 모두 성현이 될 수는 없다.
曰:至德純渥之人,稟天氣多,故能則天,自然無為。稟氣薄少,不遵道德,不似天地,故曰不肖。不肖者、不似也。不似天地,不類聖賢,故有為也。天地為鑪,造化為工,稟氣不一,安能皆賢?
(『논형』「자연(自然)」)


 5. 사람의 본성을 선한 사람이 있고 악한 사람이 있고가 정해져 있다. 본성이 선한 사람은 본래 자연스럽게 선하다. 악한 사람도 교육과 권고, 인도와 노력을 통해서 선하게 할 수 있다. 군주와 부모는 신하와 자식의 성품을 자세히 살펴서 선하면 격려하고 이끌어주고 악을 가까이하지 않게 해야 한다. 악에 가깝다면 도와주고 예방조치를 취해서 점차 선해지도록 해야 한다. 선이 점점 악에 물들거나 악이 선으로 바뀌면 천성에서 나온 행동같이 된다.
論人之性,定有善有惡。其善者,固自善矣;其惡者,故可教告率勉,使之為善。凡人君父,審觀臣子之性,善則養育勸率,無令近惡;近惡則輔保禁防,令漸於善。善漸於惡,惡化於善,成為性行。
(『논형』「솔성(率性)」)


 6. 맹자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모두 선한 본성을 품부받았지만 성장하는 중에 외물과 접축하면서부터 방종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일삼아 불선함이 매일매일 자라난다고 여겼다. 만약 맹자 말대로라면 어릴 때 착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예전에 미자(微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왕(紂王) 당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미자는 주왕이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본성이 착하지 않다는 점을 간파했다.
孟子作《性善》之篇,以為「人性皆善,及其不善,物亂之也。」謂人生於天地,皆稟善性,長大與物交接者,放縱悖亂,不善日以生矣。若孟子之言,人幼小之時,無有不善也。微子曰:「我舊云孩子,王子不出。」紂為孩子之時,微子睹其不善之性
(『논형』「본성(本性)」)


 7. 맹자가 사람을 살펴볼 때 눈동자를 보고 판단했다. 마음이 깨끗하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이 탁하면 눈동자도 흐릿하다고 여겼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받은 기가 차이가 나서 눈동자가 맑은 사람도 있고 흐린 사람도 있다.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했다고 해서 어릴 때 맑았던 눈동자가 흐릿하게 변하지는 않는다. 본성은 원래부터 그러하며 선악 여부는 받은 자질과 관련 있다... 처음 (태내에서) 천연의 기를 받아 형성된 선악의 본성은 받았을 때 단순한 자질에 불과하다. .. 보통(중인(中人)) 사람은 선악 여부에 관계없이 반드시 교육을 통해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且孟子相人以眸子焉,心清而眸子瞭,心濁而眸子眊。人生目輒眊瞭,眊瞭稟之於天,不同氣也,非幼小之時瞭,長大與人接乃更眊也。性本自然,善惡有質,孟子之言情性,未為實也。... 初稟天然之姿,受純壹之質 ... 謂中人也,不善不惡,須教成者也。
(『논형』「본성(本性)」)


 8. 순자는 맹자의 성선론을 반박하여 「성악(性惡)」편을 지었다. ... 순자의 주장대로라면 사람은 어릴 때 착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후직은 어린 시절부터 곡식 심는 일을 놀이로 삼았고, 공자는 제기를 능숙하게 다루었다. 돌의 원래 성질은 굳다. 난이 향기로운 이유는 선천적으로 좋은 기를 받은 데다 훌륭하게 자라서다.
孫卿有反孟子,作《性惡》之篇 ... 若孫卿之言,人幼小無有善也。稷為兒,以種樹為戲;孔子能行,以俎豆為弄。石生而堅,蘭生而香。稟善氣,長大就成
(『논형』「본성(本性)」)


=> 동중서로 대표되는 천인감응론에 대해 천도는 자연일 뿐이라는 점을 비판했지만 한편으로는 '인'으로부터 '천'으로의 영향은 부정하면서도 여전히 '천'으로부터 '인'으로의 영향은 인정하고 있음. 왕충이 이전이나 당시의 사상과 사상가들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합리적인 비판을 가하면서도 인간을 하늘에 종속시키기 때문에 여전히 한대 사상의 일반적인 경향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음
=> 궁극적으로 왕충의 관심은 현상적인 인간의 본성이 어떠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선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있음. 왕충은 통치자가 백성을 다스릴 때 그들의 본성이 어떠하냐는 것은 관건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음. 왜냐하면 어떻게 교화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임
(임옥균, 『왕충』,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117쪽)


  • 참고: 동양에서의 인성의 의미
 신영복,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인간'은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은 인간관계입니다 일반적으로 동양 사상의 특징으로서 인간주의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인문적 가치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인성人性의 고양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고 있는 사회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성은 개인이 자기의 개체 속에 쌓아놓은 어떤 능력, 즉 배타적으로 자신을 높여 나가는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成) 것이지요. ... 덕성德性이 곧 인성입니다. ... 그래서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 인仁은 기본적으로 인人+인人 즉 이인二人의 의미입니다. 즉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을 인간人間, 즉 인人과 인人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혹시 여러분 중에 간間에다 초점을 두는 ‘사이존재’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존재에 중심을 두는 개념입니다. 동양적 구성 원리로서의 관계론에서는 ‘관계가 존재’입니다. ...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상정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인성이란 개별 인간의 내부에 쌓아가는 어떤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의 의미라는 것이 동양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성이란 개념은 어떤 개체나 존재의 속성으로 환원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인이 더불어 만들어내는 장場의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처럼 동양 사상은 가치를 인간의 외부에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종교적이고, 개인의 내부에 두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이 아닙니다.
-출처: 신영복 아카이브


오늘의 토론 주제(2023.04.27)[편집 | 원본 편집]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맥락에서 인성을 이야기하고 있나? 그 의미와 함께 비판점을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