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인간본성론: 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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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朱熹, 1130~1200)라는 인물[편집 | 원본 편집]

☞ 미유라 쿠니오 지음, 김영식, 이승연 옮김 『인간 주자』, 창작과 비평사, 1996
☞ 진래 지음, 안재호 옮김 『송명성리학』, 예문서원, 2011

  • 중국 푸젠(복건) 유시(우계(尤溪))현에서 태어났음. 그의 아버지가 복건성에서 벼슬하면서부터 이곳에 살았음
  • 14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심. 아버지 주송의 인덕으로 덕분에 아버지 지인의 도움으로 집을 마련하여 살게 됨
  •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절친한 벗 세 사람(호적계, 유백수, 유병산)에게 배웠으며, 이 때 학문은 과거 공부와 같은 명예와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됨
  • 16, 17세 때부터 독서에 집중함.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닥치는대로 읽어나가기만 했다고 함
  • 19세에 과거 시험에 합격함. 330명 중 278번째 성적으로 그다지 우수한 성적은 아니었음. 하지만 당시 18세는 3명, 19세 합격자는 주희를 포함해 5명 정도로 어린 나이의 합격자였음
  • 주희는 자신을 위한 학문인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추구했지만 사대부로서 영예와 책무였던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됐음
  • 20세가 지나서는 과거공부에서 해방되어 독서의 범위를 넓혀 다양하게 책을 읽어나감
  • 24세 나이에 관직에 나감. 첫 부임지는 지금 샤먼(하문, 厦門)에 위치한 통안(동안, 同安) 지역임. 당시 직책은 세금 출납부를 점검하고 장부를 담당하는 주부의 직책으로 매우 철저하게 일을 수행했음
  • 젊은 시절 주희는 불교와 도가에 심취했음. 여러 학문에 대해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음
  • 하지만 첫 부임지에 있을 때(24세) 이동(李侗)('이연평(李延平)'이라고 도 함)을 만나게 되고 첫 부임지에서 귀향하는 길(29세)에 다시 만나 31세 겨울 세번째로 만났을 때에는 수개월간 스승 곁에 머물며 가르침을 받게 됨. 이동의 생애는 주희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으나 세상에 알려지기 원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그 경력이나 행적은 불분명한 부분이 많음
  • 이동을 만난 이후 도학의 발전을 위한 길을 걷게 됨
  • 주희는 행정 책임자의 일을 맡아 많은 업적을 쌓았는데 그 행정일을 잘 처리했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모아 가르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음. 당시 가장 명망 있는 학자로 존경받게 됨
  • 특히 불교와 도교에 비해 사상적인 약점이 있었던 송대 성리학의 우주론, 인간론을 보완하는 작업을 하게 됨
  • 주희의 주요 업적 중에 하나는 ‘사서‘ 체계를 확립한 것인데,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합하여 사서로 편집했고 이후 사서가 오경(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보다도 더 중요한 경전 체계가 되었음
  • 주자의 문인의 수는 약 8, 9명 정도에 달하며 주자를 한번이라도 접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을 포함하면 거의 2, 3천 명에 달할 것으로

보임

  • 주자는 제자들과 함께 자주 학문적 토론을 벌였음. 제자들이 묻고 주자가 이에 대해 대답하는 형식의 문답이 무수히 되풀이되면서 주자의 학설은 보다 명확해졌음. 그의 이러한 문답의 기록은 『주자어류』 140권 분량의 저작에 남겨져 있음
  • 주자는 남송시기 고종, 효종, 광종, 영종 4명의 왕을 섬겼음. 광종은 일찍부터 주자의 명성을 들었고 곁에 두고 싶어 했음
  • 1194년 황제의 측근 브레인으로 삼는다는 사령이 내려졌고 두 번에 걸쳐 사퇴했지만 그 명을 받아들이게 됨. 황제에게 강의를 진행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며 자기의 이상을 황제에게 진언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라 생각했을 것임
  • 하지만 주자의 기탄없는 직언이 한탁주의 노여움을 사고 45일 만에 중앙정부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됨
  • 송나라에서는 왕안석(1021~1086)의 신법을 지지하는 신법당과 이를 반대하는 구법당 간의 갈등이 이어져오고 있었음. 왕안석의 신법은 국가재정의 안정, 빈농과 상공업자 구제를 통해 이들 중산계층을 육성하겠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지만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못하면서 백성들이 피해를 입게 됨(예를 들어 저리로 대출해주는 정책이 있었는데 정작 현실에서는 대출 신청절차를 받을 때마다 관리들에게 더 많은 뇌물을 주어야했고, 또 의무적으로 지켜야하는 대출 하한선을 정해서 대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백성들에게까지 억제로 대출을 강요하는 상황 등이 벌어졌음). 이러한 신법의 폐혜를 비판했던 구법당 가운데에는 도학자들이 있었고 신법당은 구법당을 철저히 탄압했음. 그 여파가 주희에게까지 미쳤음
  • 송나라는 북송시기(960~1127)와 남송시기(1127~1276)로 나뉘어짐. 1127년 이후 송나라가 여진족이 이끄는 금나라에 밀려 북쪽 영토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남쪽으로 쫓겨 내려가 수도를 개봉에서 임안(지금의 항저우)으로 옮기게 됨
  • 주희는 바로 이 남송시기에 태어난 인물임. 북송시기 신법, 구법당의 치열한 당쟁은 남송시기에 이르러 형태를 바꾸어 금에 대한 정책을 둘러싸고 다시 재연됨. 화의파와 주전파의 싸움이 그것임. 화의파를 주장하는 관료들은 대부분 왕안석의 신법당 흐름을 계승했고 대의명분에 의거하여 항전을 주장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학자였음. 즉 화의파=신법당, 주전파=구법당의 구도로 바뀜
  • 특히 황실과 외척관계를 맺고 있던 한탁주(1152~1207)는 신법당에 가까운 인물로 도학을 거짓된 학문이라는 뜻의 ‘위학(僞學)’이라고 일컬었음. 그리고 그 여파가 주희에까지 미치게 됨. 주희에 대한 탄핵이 진행되었고 그 탄핵문에는 그가 불효자이고 제자들에게 높은 수업료를 요구했다는 등 그가 부도덕하고 청렴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담게 되고 주희는 결국 파면당하게 됨
  • 그 이후에도 권력자들의 도학파에 대한 공격은 끊이지 않았음. 주희(1130~1200)가 죽을 때까지 도학은 거짓된 학문으로 금지당했으며, 그것이 풀린 것은 1202년에 들어서서였음
  • 학문적, 정치적 탄압을 받으며 주희의 제자들이 그의 곁을 떠나갔고 변절하여 주희에게 배웠다는 것조차 숨기고 속이기까지 했음. 주희는 말년에 자신의 불행보다 제자들과 함께 쌓아올린 자신의 학문이 단절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음
  • 그리고 질병과도 사투를 벌였음. 다리의 질환은 40대 후반부터 시작되었고 심할 때에는 땅을 밟지 못할 정도였음. 누워지내지 않으면 안되는 정도도 되었음(아마도 류머티즘의 일종)
  • 눈병이 있었는데 60대에 이르러 왼쪽 눈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음. 특히 자신의 학문이 금지당하면서 더 악화되었음. 그럼에도 저술 작업은 끊이지 않았음
  • 1200년 3월 죽음을 맞이하게 됨. 모두 힘을 모아 열심히 공부하고 발을 굳게 땅에 붙여야만 진보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제자들에게 남김
  • 그는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했고 나중에도 거의 벼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음. 진사 급제 후 50년 동안 외지에 나가 벼슬한 것도 아홉 번에 불과했고 조정에 있었던 기간도 겨우 40여일 뿐이었음
  • 각지에서 찾아와 배우려는 학생들은 스스로 먹을 양식을 가지고 왔음. 식탁에는 늘 고기 음식이 없었고 거친 현미밥만 있었음. 평생동안 저술과 강학 활동이 그의 삶의 기쁨이었음
  • 주희는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고 사회의 기강을 확립하며 충신과 어진이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하며 풍속을 변화시키고 사회의 불량한 기풍을 바로잡도록 요구했음
  • 그는 이러한 일들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음
 무엇이 이렇게 파란만장한 주희의 삶을 온전히 겪어내게 할 수 있었을까요? 정신차릴 수 없는 풍파 속에서도 자신이 정신차리고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철학을 여러분은 가지고 있나요?

=> 주희는 이치(理)가 사물보다 앞선다는 이(理)를 중시하는 사상을 제시함. ‘이'는 사물의 규율과 도덕원칙으로서 ‘이’를 절대화하는 사유를 제시했음

성리학의 공통된 문제의식들[편집 | 원본 편집]

☞ 진래 지음, 안재호 옮김 『송명성리학』, 예문서원, 2011, 41쪽

  • 선진(先秦: 진나라 이전) 시기에 시작된 유가사상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주론적·본체론적 논증을 제공했음
  • 유가의 성인을 이상적 인간상으로 생각하고, 성인의 정신 경지 실현을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음
  • 유가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도덕의 근본 원리로 여기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유가의 도덕 원리가 내재적 기초를 지니고 있음을 논증하며, 하늘이 부여해준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욕심)’을 제거하는 일을 도덕 실천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음
  • 인간 정신의 전면적인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각종 공부법, 즉 구체적인 수양 방법을 제시하고 실천했음. 이러한 공부법의 내용들은 주로 사서(四書: 논어, 맹자, 대학, 중용)와 초기 도학의 토론 가운데에서 제시되었으며, 특히 심성 공부에 집중되었음

=> 어떻게 하면 공자와 같은 사람, 안연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그 이론과 공부법에 몰두했음


주희의 철학[편집 | 원본 편집]

☞ 진래 지음, 안재호 옮김 『송명성리학』, 예문서원, 2011

주희의 이기론[편집 | 원본 편집]

  • 주희는 경험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형이하의) 것을 기라고 파악하고, 기의 작용 및 운동의 법칙과 그것의 원인이 되는 사물의 질서를 리로 파악함. 이때의 리는 경험적으로 지각할 수 없지만 그 실재를 상정할 수 있는 (형이상의) 존재임
  • 기는 현실 속 사물을 이루는 물질적 요소며, 사물의 운동은 모두 기의 작용임. 그리고 기의 세계의 근본적 법칙, 질서가 리임. 총체적으로 말한다면 리는 우주, 만물의 근거며 우주로 하여금 본래의 모습을 부여해주고 있는 원리고, 개별적으로 말하자면 개개의 사물을 각각의 사물답게 만들어주고 있는 원리임
  • 주희는 자연계의 양상을 리와 기로 설명하고 동시에 인간의 마음도 리와 기로 분석해냈음. 즉 마음을 ‘리인 성’과 ‘기인 정’으로 나누고, 구체적인 마음의 발동인 정을 기로 여긴 다음, 그 정의 법칙을 성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철저하게 자연계와 인간의 마음의 일관성을 주장하여 존재론과 가치론의 일체화를 추구하였음. 즉 리를 향한 탐구는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는 문제(인식론, 존재론)임과 동시에 인간이 그렇게 해야 할 바(가치론, 윤리론)가 됨


리일분수(理一分殊)[편집 | 원본 편집]

  • 개인은 우주 안에서 일정한 관계를 맺으며, 다른 사람이라 사물에 대해 일정한 의무를 지님. 그러나 관계와 지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개인적인 의무에도 차이가 있게 됨
  • 하지만 도덕 원칙은 일치함. 도덕의 기본 원칙은 서로 다른 도덕 규범으로 표현되며 구체적인 규범 속에도 보편 원리가 관통함
 1. 본래는 단지 하나의 태극이지만 만물이 각각 내려 받은 것이 있고, 또 스스로 각각 하나의 태극을 온전히 갖추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달은 하늘에서는 단지 하나일 뿐이지만, 강과 호수에 흩어져 있을 때는 곳곳에서 볼 수 있으니 달이 이미 나뉘어졌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本只是一太極, 而萬物各有稟受, 又自各全具一太極爾. 如月在天, 只一而已; 及散在江湖, 則隨處而見, 不可謂月已分也.
(『주자어류(朱子語類)』 「리성명(理性命)」)
 2. 세상 일이 비록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으나 실재는 다만 하나의 이치일 뿐이니 ‘리일분수(理一分殊)’를 말하는 것이다. 감동하여 통하는 곳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처음과 끝이 서로 호응한다. 어떤 것은 이것에서 출발해서 밖에서 감응하며, 어떤 것은 밖에서 나와서 나에게서 감응하는데 모두 하나의 이치이다.
世間事雖千頭萬緖, 其實只一箇道理, “理一分殊”之謂也. 到感通處, 自然首尾相應. 或自此發出而感於外, 或自外來而感於我, 皆一理也
(『주자어류(朱子語類)』 「역대3(歷代三)」)
 혹여 이런 말이 차이에 대한 무시와 억압이 될 수 있는 건 아닌가? 주희는 이런 점도 생각했을 것 같다.
 3. 어떤 이: “이치는 하나인데 나뉘면 달라진다”에 대해 묻습니다.
 주희의 답변: 성인은 이치가 하나라고 말한 적이 없고, 대부분 나뉘면 달라진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것은 나뉘어 달라진 것 가운데 낱낱의 사물과 항목들에서 그 당연함을 이해한 다음에야 비로소 이치의 근본이 하나로 꿰뚫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온갖 차이나는 것들에 각각 하나의 이치가 있음을 알지 못하면서 헛되이 이치가 하나라고 말하기만 한다면 하나의 이치가 어느 곳에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성인께서 천 마디 만 마디의 말로 사람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이 죽는 날까지 종사하는 것은 다만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성인은 이치가 하나라고 말한 적이 없고, 대부분 나뉘면 달라진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것은 나뉘어 달라진 것 가운데 낱낱의 사물과 항목들에서 그 당연함을 이해한 다음에야 비로소 이치의 근본이 하나로 꿰뚫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온갖 차이나는 것들에 각각 하나의 이치가 있음을 아지 못하면서 헛되이 이치가 하나라고 말하기만 한다면 하나의 이치가 어느 곳에 있는지를 알 수 없다.
或問 “理一分殊”. 曰: “聖人未嘗言理一, 多只言分殊. 蓋能於分殊中事事物物, 頭頭項項, 理會得其當然, 然後方知理本一貫. 不知萬殊各有一理, 而徒言理一, 不知理一在何處. ... 聖人千言萬語敎人, 學者終身從事, 只是理會這箇. 要得事事物物, 頭頭件件, 各知其所當然, 而得其所當然, 只此便是理一矣.
(『주자어류(朱子語類)』 「이인편하(里仁篇下)」)

=> 이처럼 마음이 이치와 하나되게 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임

 4. 학문을 오래하면 마음과 이치가 하나가 되어 두루 널리 응하여 자세히 일일이 당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또 배움에는 여러 가지의 일이 있다고 말하지만, 맹자는 단지 “학문의 방법은 잃은 마음을 찾는 것뿐이다.”고 하였다. 대개 배우는 일에는 비록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학문하는 도는 단지 잃은 마음을 찾는 것에 달려 있을 뿐이다. 마음이 만약 부재하다면, 더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惟學之久, 則心與理一, 而周流泛應, 無不曲當矣. 且說為學有多少事, 孟子只說󰡔學問之道, 求其放心而已矣󰡕. 盖為學之事雖多有頭項, 而為學之道, 則只在求放心而已. 心若不在, 更有甚事!
(『주자어류(朱子語類)』 「논어2(論語二)」)


 이건 인간 이해의 문제에도 적용된다.


주희의 인간본성에 대한 이해[편집 | 원본 편집]

  • 주희에 의하면 모든 사물에는 리가 들어 있으며 당연히 사람에게도 리가 들어있음. 주희는 정이의 “성은 곧 리다[性則理]”라는 주장을 이어받았으므로 사람의 성이 곧 리가 됨.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의 성은 리기 때문에 성은 선할 수밖에 없음. 그렇다면 어째서 악이 생겨나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주희는 성 개념을 두 가지로 나누었음

① 본연지성(천명지성) : 천지의 리를 품수하여 생긴 성. 달리 말하면 하늘이 준 성. 맹자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한 그 성
② 기질지성 : 인간은 리와 함께 기 또한 품수한다. 이 때 받은 기에 깃들어 있는 성

=> 인간의 성은 언제나 선하지만(본연지성), 육체적 요소인 기의 작용에 의해 욕망이 발동되어 현실에서는 악으로 흘러갈 수 있게 됨
=> 이러한 천지지성, 기질지성에 대한 구분은 장재(張載, 1020~1077)에게서 언급되었지만, 정이, 주희 등이 이를 수용하여 심층적으로 연구하게 됨

  • 그러므로 본연의 성을 드러내기만 하면 누구든지 성인이 될 수 있음. 인간의 마음이 발동하지 않으면 천리의 본체인 리는 성으로 갖추어져 있음. 마음이 발동한다는 것은 정(情)이 움직인다는 것으로 정의 움직임은 기의 작용이며 정이 움직이면 성을 가려짐. 그렇지만 정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님. 정이 움직여 과도하거나 모자라는 상태가 나쁜 것일 뿐


 5. 성은 다만 리(理)이다. 그러나 그 천지의 기질이 없으면 이 리도 둘 곳이 없다. 다만 기 가운데 맑고 밝은 것을 얻으면 덮이거나 막히지 않으며, 이 리가 순조롭게 발하여 나온다. 덮이거나 막히는 것이 적은 것은 발하여 나온 천리가 이기게 되고, 덮이거나 막히는 것이 많은 것은 사욕이 이기게 된다. ... 다만 기질에 의해 흐리고 탁해지게 되면 막히게 된다. ... 성을 말할 때는 모름지기 기질을 겸하여 말하여야 갖추어진다.
性只是理. 然無那天氣地質, 則此理沒安頓處. 但得氣之淸明則不蔽錮, 此理順發出來. 蔽錮少者, 發出來天理勝; 蔽錮多者, 則私欲勝 ... 只被氣質有昏濁 ... 故說性, 須兼氣質說方備
(『주자어류(朱子語類)』 「인물의 성과 기질의 성(人物之性氣質之性)」)


 6. 하늘이 명한 것은 다만 마찬가지일 뿐이다. 기질이 같지 않기 때문에 마침내 차이가 있게 된 것이다. 맹자는 분명히 사람의 몸에서 하늘이 명한 것을 집어내어 사람들에게 말하여주었으니 본원이 모두 선하다는 것을 보여주려한 것이다.
天之所以命, 只是一般; 緣氣質不同, 遂有差殊. 孟子分明是於人身上挑出天之所命者說與人, 要見得本原皆善.
(『주자어류(朱子語類)』 「성리1(性理一)」)


 7. 어떤 이: 사람과 사물의 성은 근원이 하나인데 어떻게 다릅니까?
 주희: 사람의 성은 밝고 어두운 것으로 논하는데 사물의 성은 다만 치우치고 막혔다. 어두운 것은 밝게 할 수 있지만 이미 치우쳐서 막힌 것은 통하게 할 수가 없다. 장재가 말하기를 모든 사물은 이 성이 없는 것이 없는데 통함과 막힘, 열리고 막힘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사물의 구별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이르기를 막힌 것은 견고하여 열수가 없고, 두터운 것은 열 수는 있으나 열기가 어려우며, 얇은 것은 열기가 쉽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어떤 이: 사람이 습관적으로 선하지 않게 되어 빠짐이 이미 깊어졌으면 끝내 회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주희: 형세가 중한 사람은 되돌릴 수가 없지만 또한 인식의 정도의 깊이와 힘을 씀의 많고 적음에 있을 따름이다.
或問: “人物之性一源, 何以有異?” 曰: “人之性論明暗, 物之性只是偏塞. 暗者可使之明, 已偏塞者不可使之通也. 橫渠言, 凡物莫不有是性, 由通蔽開塞, 所以有人物之別. 而卒謂塞者牢不可開, 厚者可以開而開之也難, 薄者開之也易是也.” 又問: “人之習爲不善, 其溺已深者, 終不可復反矣.” 曰: “勢極重者不可反, 亦在乎識之淺深與其用力之多寡耳.” (『주자어류(朱子語類)』 「인물의 성과 기질의 성(人物之性氣質之性)」)


 8. 기는 서로 가까우니 이를테면 춥고 더운 것을 알고 주리고 배부름을 인식하며 삶을 좋아하고 미움을 싫어하며 이로운 데로 향하고 해로운 것을 피하는 것은 사람과 사물이 모두 마찬가지이다. 리는 같지 않으니 이를테면 벌과 개미의 임금과 신하는 다만 그들의 의의 방면에만 조금 알 뿐이고, 호랑이와 이리의 아비와 자식은 다만 인의 방면에만 조금 일 뿐으로 기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루어가지 못한다. 마치 거울이 다른 곳은 모두 어두운데 중간만은 조금 빛이 있는 것과 흡사하다. 대부분 사물은 한번 치우친 쪽으로 치중하게 되면 나머지는 가리어지게 된다. 이를테면 자애로운 사람은 결단과 절제가 적고, 결단력과 절제 있는 사람은 잔인함이 많다. 대체로 인이 많으면 의를 가리게 되고, 의가 많으면 그 인을 가리게 된다.
氣相近, 如知寒煖, 識饑飽, 好生惡死, 趨利避害, 人與物都一般. 理不同, 如蜂蟻之君臣, 只是他義上有一點子明; 虎狼之父子, 只是他仁上有一點子明; 其他更推不去. 恰似鏡子, 其他處都暗了, 中間只有一兩點子光. 大凡物事稟得一邊重, 便占了其他底. 如慈愛底人少斷制, 斷制之人多殘忍. 蓋仁多, 便遮了義; 義多, 便遮了那仁. (『주자어류(朱子語類)』 「인물의 성과 기질의 성(人物之性氣質之性)」)


 9. 사람에 있어서는 가리고 막혀도 통할 만한 이가 있으며, 금수의 경우에도 이 성은 다만 그 형체에 얽매여 심하게 가리고 막힌 채 살아 통할 만한 곳이 없다.
然在人則蔽塞有可通之理; 至於禽獸, 亦是此性, 只被他形體所拘, 生得蔽隔之甚, 無可通處. (『주자어류(朱子語類)』 「인물의 성과 기질의 성(人物之性氣質之性)」)


오늘의 토론 주제(2023.05.09)[편집 | 원본 편집]

 주희의 인간 본성에 관한 이해는 사람들간의 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해 가져보는 희망에 어떤 관점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요? 그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토론 내용(2023.05.09)[편집 | 원본 편집]

  • 시대적 이데올로기의 방황을 겪지 않을 수 있음. 춘추시대와 같은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음. 다만, 기의 차이라는 명분으로 당장의 손해를 감수해야한다는 단점이 있음
  • 모두가 같은 리를 가져서, 현재의 상황을 기를 바탕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음
  • 리가 다 같으면, 노력하는 대신 기질에 집중해서 기질을 탓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음
  • 리가 고유하게 존재하고, 기가 바뀌어서 사람의 성격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과 수련을 통해 리를 다시 되찾으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
  • 인간이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원동력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음
  • 주희는 이치가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의 차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함 : 다양성까지 모두 포괄하여 생각함
  • 주희의 기질에 대한 견해는 현실에 있는 악을 설명해내기 위해서 동원된 개념이라고 생각함.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들, 상황들에 의해서 악해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기 때문에 사람들 간 품성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설명해낼 수 있다는 의의가 있음. 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기질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에 대한 희망을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함
  • 기질 때문에 발생한다고 기질에 원인을 돌리면 인간 자체가 본성이 악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기질은 불변하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기질을 잘 갈고 닦으면 결국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음
  • 교화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모든 인간의 선한 가능성을 열어둠(후천적으로 변화 가능성)
  • 사람을 다 선하긴한데 살아오면서 기질이 잘못 발현되면 선한부분에서 더 멀어지는 정도가 가속이 되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 바로잡는 과정이 있으면 사람은 선하게 변화될 수 있음
  • 순자 사상에서 조금 더 현실적인 느낌이 있음
  • 맹자의 주장도 납득이 가지만 허무맹랑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것을 사람들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혹은 관점을 달리하면 순자의 관점을 섞어서 발전된 이론을 제시함
  • 한계는 이상적인 경향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 있음
  • 결국 본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려하는 것임
  • 인간의 본성은 선한데, 기질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음. 기질은 육체적 요소의 작용에 의해 나타나, 육체를 더 수양하면 나아질 수 있는 희망. 또한 근본부터 잘못된 사람은 없고, 누구나 노력을 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
  • 인간은 경쟁하는 성향이 있다고 하는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이러한 성향이 개인이나 집단의 갈등과 충돌을 유발 할 수 있음. 그러나 다른 점으로는 이런 경쟁하고 도전적인 성향으로 인해 개인과 집단의 발전과 성장의 역할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