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인간본성론: 중용과 주역(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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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은 『역경』단계에서부터 인간 삶의 모델이 되는 자연의 구체적인 운행 원리에 대해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면 『역전』단계에 이르면 인간 본성, 인간 본성의 근거가 되는 천(天)에 관한 논의가 어떻게 철학적으로 전개되어갈까?


『주역』 속 성(性)에 관한 언급들[편집 | 원본 편집]

 一陰一陽之謂道(일음일양지위도)니 繼之者善也(계지자선야)요 成之者性也(성지자성야)라 
 한 번은 음하고 한번은 양하는 것을 도(道)라고 하니 이것(도)을 이어받는 것이 선(善)이고 이를 이룬 것이 성(性)이다.
 (『주역』「계사상전」)


=> 주역에서 탐구해 가고 있는 인간, 인간 본성의 문제는 자연운행의 원리와 연관되고, 이러한 본성을 알아야 하는 이유를 자연운행의 원리를 인간 삶에 계승해서 보다 나은 삶(도덕적으로)을 살아야 한다는 성찰을 담은 것이 아닐까?

  窮理盡性(궁리진성)하여 以至於命(이지어명)하니라
  이치를 궁구(窮究)하고 성(性)을 다하여 명(命)에 이른다.
 (『주역』「설괘전」)

=> 만사만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연구하고[궁구(窮究)] 이를 통해 인간, '나' 안에 깃들어 있는 본성을 알아 발휘하고, 그리고 그 결과 나에게 주어진 생명, 소명, 천명을 다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인간 본성의 방법과 목표라고 본 것일까?


 大明終始(대명종시)하여 六位時成(육위시성)하면 時乘六龍(시승육룡)하여 以御天(이어천)하나니라 乾道變化(건도변화)에 各正性命(각정성명)이니라
 끝과 시작을 크게 밝히면 여섯 자리가 때에 맞추어 이루어지니, 때에 맞추어 여섯 마리의 용을 타고 천도를 행한다. 건도가 변화하여 각각 성명(性命)을 바르게 한다.
 (『주역』건괘「문언전」)

=> 성명(性命)을 후에 주희는 본성을 주는 하늘의 측면에서 보면 명(命)이라고 하고, 본성을 받는 사람의 측면에서 보면 성(性)이라고 하면서 같은 말이지만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했음. 건도(乾道)는 자연의 운행법칙인 천도(天道)를 대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음. 자연의 운행을 통해 만사만물이 각각의 특성에 맞게 본성을 부여받았으나 모두가 본성을 부여받는다는 측면에서는 보편적인 원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음


『역전』의 신(神) 개념을 통해 인간 본성의 근거가 되는 자연원리의 신묘함, 이를 알아차리는 인간 존재의 신묘함[편집 | 원본 편집]

 선진(先秦) 유학에서 전개되고 있는 인간 본성에 관한 논의는 인간에 대한 객관적 성찰에 머무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가능성, 그 가능성의 발휘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가능성이 어디까지 발휘될 수 있을까? 이를 특히 신(神) 개념에서 살펴보자.(참고로 신 개념을 통해 『역경』에서 『역전』으로의 철학적 사유의 발전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 번역문 참조: 정병석 역주, 『주역』, 을유문화사, 2021

 夫大人者(부대인자)는 與天地合其德(여천지합기덕)하며 與日月合其明(여일월합기명)하며 與四時合其序(여사시합기서)하며 與鬼神合其吉凶(여귀신합기길흉)하여 先天而天弗違(선천이천불위)하며 後天而奉天時(후천이봉천시)하나니 天且弗違(천차불위)온 而況於人乎(이황어인호)며 況於鬼神乎(황어귀신호)여 
 무릇 대인(大人)이란 천지와 그 덕이 합치되며, 일월과 그 밝음이 합치되며, 사시(四時)와 그 질서가 합치되며, 귀신(鬼神)과 그 길흉이 합치되어, 하늘보다 먼저 해도 하늘이 어기지 않으며 하늘보다 뒤에 해도 천시(天時)를 받드니, 하늘도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며, 귀신에게 있어서랴. 
 (『주역』건괘「문언전」)


 生生之謂易(생생지위역)이요 成象之謂乾(성상지위건)이요 效法之謂坤(효법지위곤)이요 極數知來之謂占(극수지래지위점)이요 通變之謂事(통변지위사)요 陰陽不測之謂神(음양불측지위신)이라
 낳고 낳는 것을 역(易)이라고 하고 (형체가 없는 원형적인) 상(象)을 이룬 것을 건(乾)이라고 하고 (구체적인 조화의) 형상을 본받은 것을 곤(坤)이라고 하고, 수(數)를 극진히 헤아려 미래의 올 일을 아는 것을 점이라고 하고, 사물의 변화에 통달하는 것을(통달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일이라고 하고, 음양의 변화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고 한다.
 (『주역』「계사상전」)


 易(역)은 无思也(무사야)하며 无爲也(무위야)하여 寂然不動(적연부동)이라가 感而遂通天下之故(감이수통천하지고)하나니 非天下之至神(비천하지지신)이면 其孰能與於此(기숙능여어차)리오
 역(易)은 생각하는 일이 없고 작위하는 일이 없어서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감응하여 마침내 천하(天下)의 모든 일에 통달하지, 천하에서 지극히 신묘한 이가 아니라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 
 (『주역』「계사상전」)


 夫易(부역)은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성인지소이극심이연기야)니 唯深也故(유심야고)로 能通天下之志(능통천하지지)하며 唯幾也故(유기야고)로 能成天下之務(능성천하지무)하며 唯神也故(유신야고)로 不疾而速(부질이속)하며 不行而至(불행이지)하나니 -「계사상전」
 역이란 성인(聖人)이 심오함을 궁구하고 기미(조짐)를 연구하기 위한 책이다. 깊기에 천하 사람들의 뜻에 통할 수 있고 기미를 알기에 천하의 일을 성취시킬 수 있고 신묘하기에 빨리 하려고 하지 않아도 빠르게 되며 행하려고 하지 않는데도 이르게 된다. 
 (『주역』「계사상전」)


 子曰(자왈) 書不盡言(서부진언)하며 言不盡意(언부진의)하니 然則聖人之意(연칙성인지의)를 其不可見乎(기불가견호)아 子曰(자왈) 聖人(성인)이 立象(입상)하여 以盡意(이진의)하며 設卦(설괘)하여 以盡情僞(이진정위)하며 繫辭焉(계사언)하여 以盡其言(이진기언)하며 變而通之(변이통지)하여 以盡利(이진리)하며 鼓之舞之(고지무지)하여 以盡神(이진신)하니라 
 공자가 말했다. “글로는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하니,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뜻을 볼 수 없단 말인가. 성인(聖人)이 상(象)을 세워 뜻을 다하며, 괘(卦)를 베풀어 참과 거짓을 다하며, 말을 달아 그 말을 다하며, 변통(變通: 변하과 통함)해서 이로움을 다하며, 고무(鼓舞: 북을 두드리고 춤추게 하여)하여 신묘(神妙)함을 다하였다. 
 (『주역』「계사상전」)


 神農氏沒(신농씨몰)이어늘 黃帝堯舜氏作(황제요순씨작)하여 通其變(통기변)하여 使民不倦(사민불권)하며 神而化之(신이화지)하여 使民宜之(사민의지)하니 易(역)이 窮則變(궁즉변)하고 變則通(변즉통)하고 通則久(통즉구)라 -「계사하전」
신농씨(神農氏)가 죽고, 황제(黃帝)와 요(堯)·순(舜)이 나와서 사물의 변화에 통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게으르지 않도록 하며 신묘하게 변화시켜 백성으로 하여금 마땅한 바를 얻어 만족하도록 만드니, 역(易)은 궁(窮: 극한 상황에 이르면)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는 길이 생기고 통하면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주역』「계사하전」)

=> 정병석은 백성들을 게으르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에 대해 여기에서의 게으름이란 삶의 역동성을 상실하고 창의성을 상실하고 경직되어 버린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음


 尺蠖之屈(척확지굴)은 以求信也(이구신야)요 龍蛇之蟄(용사지칩)은 以存身也(이존신야)요 精義入神(정의입신)은 以致用也(이치용야)요 利用安身(이용안신)은 以崇德也(이숭덕야)니 ... 窮神知化 德之盛也라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폄기 위한 것이요, 용과 뱀이 동면해서 움츠리는 것은 자기 몸을 보존하기 위함이고, (배우는 이들이) 도의(道義)를 정밀히 연구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은 쓰임을 다 이루기 위한 것이고, 쓰는 것을 이롭게 하고 몸을 편안히 함은 덕을 높이기 위해서이니, ... 신(神)을 궁구(窮究)하여 조화를 아는 것이 덕(德)의 성대함이다. 
 (『주역』「계사하전」)


 知幾其神乎(지기기신호)인저 君子上交不諂(군자상교불첨)하며 下交不瀆(하교부독)하나니 其知幾乎(기지기호)인저 -「계사하전」
 기미를 아는 것이 그처럼 신묘하구나. 군자는 윗사람과 교류함에 아첨하지 않고 아랫사람과 교류함에 모독하지 않으니 기미를 아는 것이다. 
 (『주역』「계사하전」)


오늘의 토론 주제(2023.04.13)[편집 | 원본 편집]

 『역전』 속 신(神)은 오늘날 어떤 용어로 풀이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오늘의 토론 내용(2023.04.13)[편집 | 원본 편집]

  • 사람이 완전히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을 포함: 우주

○ 우주: 오늘 날의 우주는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음. 그리고 개인의 내면이나 미시세계 역시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음. 우주는 인간의 밖에도 있지만 인간이 하나의 우주라고도 함. 우주는 대체로 이해할 수 없고 신기한 것인 동시에 만물을 움직이는 원리를 포함하고 있음. 따라서 신은 곧 우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음. 고대에는 신이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자연, 인간의 사고방식, 사물의 발달과 변화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잘 알려진 단어는 우주임

  • 이성과 비슷한 뜻

○ 자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신묘하기 때문에 정'신'

=> 질문: 이성이라고 하면 신의 불가사의함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 답: 자연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동물과 구분되는 능력이 신묘함->정신. 따라서 정신의 신묘한 능력을 신이라고 부른다고 생각함

  • 불가사의한 일, 신묘한 일을 나타내는 신

○ 이해할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신이란 단어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함

  • 운명적인 것

○ 자연적으로 발생하는데 피할 수 없는 것을 의미

  • 거역할 수 없이 어떤 힘에 이끌려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
  • 직감으로 느낄 수 있지만 정확한 이유를 댈 수는 없음 --> 촉
  • 설명 어려운 직관. 즉, 성스러움
  • 인간 본성적 바깥 자연물 알고자 하는 것에서 나온 신비
  • 자연 만물의 이치. 그것에서 신성함을 본 것 같음
  • 자연의 변화의 신묘함

○ 과학적인 근거의 규명으로 인해 신비성은 떨어졌지만 그것을 인간의 힘으로 피할 수는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