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도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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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연구소,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예문서원, 2002

이규보(李奎報, 1168~1241)[편집 | 원본 편집]

  • 이규보는 고려 중기 무인집권기 인물임. 이 시기 중앙에서는 무인권력자들 사이에 권력쟁탈전이 일어나고 지방에서는 농민항쟁이 일어났음
  • 당시 지식인들의 고뇌는 이상과 현실이 어긋나고 자아와 세계가 분열되는 위기 상황에서 비롯됨
  •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현실을 도피하여 자연 세계에 머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현실에 참여하여 인간 질서를 적극적으로 개선하지도 못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 것임. 왜냐하면 이상적 자연 세계를 동경해서 현실적 인간 세계를 도피하자니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바탕을 잃게 되고, 그렇다고 현실 세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상을 펼치자니 무신정권의 부당한 현실이 탐탁하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임
  • 바로 이런 모순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하여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자아와 세계의 균열을 치료하려는 것이 당대 지식인들의 중심 과제였음. 현실적 인간 질서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이상적 자연 질서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은 무엇이며, 사회적 인간 관계의 그물망을 피하지 않고서도 자연적 조화 관계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임
  • 고려 중기 사상가들은 이런 양극단의 틈새를 메움으로써 이상과 현실,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하나의 구조 체계로 통섭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음. 당시까지 정치이데올로기의 기저를 이루고 있던 유가적 사유 방식은 대체로 계층적 위계 질서를 정당화하려는 분별적 사유에 기초함. 하지만 이런 유가적 사유 방식을 가지고서는 당시 지식인들의 현실적 고민을 해소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자연 질서와 인간 질서에 대한 새로운 관계 설정이 요구되었음
  • 그래서 지식인들은 노장학의 자연 질서에 바탕을 두고 거기에 유학의 인간 질서를 하나로 합치시키고자 시도했음
  • 이러한 고려 중기 사상가들을 대표하는 인물은 죽림고회와 이규보임
  • 특히 고려 말엽에는 몽골의 침입과 같은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고 성리학적 사유 방식이 도웁되면서 고려 후기의 지식인들은 노장적 사고 방식에 대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시각을 드러냄. 하나는 우주만물의 평등성을 강조하는 노장적 사유 방식이 도리어 인간사회의 위계 질서를 무너지게 하는 근본적 동인이 되었다고 보는 부정적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혼란한 현실 사회의 차별적 세계에서 비롯되는 질곡과 억압을 벗어 던지고 개인의 초탈을 도모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노장적 사유 방식에 담겨 있다고 보는 긍정적 시각임
  • 이규보의 사상을 전체적인 측면에서 통괄해 보면 유, 불, 도 삼교회통적인 성격이 강함. 그러나 그 삼교회통의 중심에는 도가 사상이 자리잡고 있음
  • 그는 도가 사상의 본질적 특성이 존재론적 통찰에 있다고 보고 이를 근거로 하여 도가 사상을 인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 측면에까지 확대하여 적용함


사물의 참 모습 바라보기[편집 | 원본 편집]

  • 이규보는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적' 사유방식을 받아들여 '도'의 통일성의 관점에서 우주만물의 차별성을 부정함으로써 자아와 세계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서려 함
  • 사물의 겉모습에서 보면 달팽이 뿔과 쇠뿔, 메추라기와 대붕 등은 분명히 차이가 있음. 그러나 사물의 본모습에서 보면 달팽이 뿔과 쇠뿔, 메추라기와 대붕 등은 귀천이나 대소의 구별은 없음. 왜냐하면 우주만물의 통일성을 뜻하는 '도'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변화한다는 측면에서 모든 사물은 같은 본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임.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물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여 항상 자타[자신과 타자]의 이분법을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임. 그래서 언제나 외물에 대해 갈등과 대립을 빚음
 어떤 손이 나에게 말하기를,
“어제 저녁에 어떤 불량한 사람이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 죽이는 것을 보았는데, 그 광경이 너무 비참하여 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네.”
하기에, 내가 대응하기를,
“어제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한 화로를 끼고 이[虱]를 잡아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네. 그래서 맹세코 다시는 이를 잡지 않을 것이네.”
 하였더니, 손은 실망한 태도로 말하기를,
“이는 미물이 아닌가? 내가 큰 물건이 죽는 것을 보고 비참한 생각이 들기에 말한 것인데, 그대가 이런 것으로 대응하니 이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하기에, 나는 말하기를,
“무릇 혈기가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ㆍ말ㆍ돼지ㆍ양ㆍ곤충ㆍ개미에 이르기까지 삶을 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마음은 동일한 것이네. 어찌 큰 것만 죽음을 싫어하고 작은 것은 그렇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개와 이의 죽음은 동일한 것이네. 그래서 그것을 들어 적절한 대응으로 삼은 것이지, 어찌 놀리는 말이겠는가 ? 그대가 나의 말을 믿지 못하거든 그대의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게나. 엄지손가락만 아프고 그 나머지는 아프지 않겠는가? 한 몸에 있는 것은 큰 것과 작은 것, 사지와 관절을 막론하고 다같이 피와 살이 있기 때문에 그 아픔을 느끼는 것은 동일한 것일세. 더구나 각기 숨과 기운을 받았거늘, 어찌 저것은 죽음을 싫어하고 이것은 죽음을 좋아할 리 있겠는가? 그대는 물러가서 눈을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게나. 그리하여 달팽이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큰 붕새처럼 동일하게 보게나. 그런 뒤에야 내가 그대와 더불어 도(道)를 말하겠네.”
 하였다.
-<<동국이상국집>> 권21, <슬견설(虱犬說)>


 거사(居士)에게 거울 하나가 있는데, 먼지가 끼어서 마치 구름에 가려진 달빛처럼 희미하였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마치 얼굴을 단장하는 사람처럼 하였더니, 어떤 손[客]이 보고 묻기를,
“거울이란 얼굴을 비치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군자가 그것을 대하여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인데, 지금 그대의 거울은 마치 안개 낀 것처럼 희미하니, 이미 얼굴을 비칠 수가 없고 또 맑은 것을 취할 수도 없네. 그런데 그대는 오히려 얼굴을 비추어 보고 있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였다. 거사는 말하기를,

“거울이 밝으면 잘생긴 사람은 기뻐하지만 못생긴 사람은 꺼려하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수효가 적고, 못생긴 사람은 수효가 많네. 만일 못생긴 사람이 한 번 들여다보게 된다면 반드시 깨뜨리고야 말 것이네. 그러니 먼지가 끼어서 희미한 것만 못하네. 먼지가 흐리게 한 것은 그 겉만을 흐리게 할지언정 그 맑은 것은 없애지 못하니, 만일 잘생긴 사람을 만난 뒤에 닦여져도 시기가 역시 늦지 않네. 아, 옛날 거울을 대한 사람은 그 맑은 것을 취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대하는 것은 그 희미한 것을 취하기 위함인데, 그대는 무엇을 괴이하게 여기는가?”
 하였더니, 손은 대답이 없었다.
-<<동국이상국집>> 권21, <경설(鏡說)>

사물의 궁극적 존재 근거[편집 | 원본 편집]

☞ 번역문 출처: 동양고전종합DB

 조물주에게 묻다[문조물(問造物)]: 나는 파리ㆍ모기 따위를 싫어하여 이 문제를 낸다.
 내가 조물주에게 물었다. “대개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사람을 내고 나서 오곡(五穀)을 내었으므로 사람이 그것을 먹고, 그런 다음에 뽕나무와 삼[麻]을 내었으므로 사람이 그것으로 옷을 입으니, 이로써 보면, 하늘은 사람을 사랑하여 그를 살리고자 하는 것같다. 그런데 왜 한편으로는 독(毒)을 가진 물건들을 내었는가. 큰 것은 곰ㆍ범ㆍ늑대ㆍ승냥이 같은 놈, 작은 것은 모기ㆍ등에ㆍ벼룩ㆍ가[虱] 같은 따위가 사람을 이토록 심하게 해치니, 미루어보면 하늘은 사람이 미워서 그를 죽이고자 하는 것 같다. 그 미워하고 사랑함이 이렇듯 일정하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하였다.
 조물주가 말하기를,
“그대가 묻는 바 사람과 물건이 나는 것은 모두 아득한 징조[冥兆]에 정하여져 자연스럽게 발(發)하는 것이니, 하늘도 알지 못하고 조물주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대개 사람이 태어남은 제 스스로 날 뿐이요, 하늘이 낸 것이 아니며, 오곡(五穀)과 뽕나무ㆍ삼이 나는 것도 제 스스로 난 것이요, 하늘이 낸 것이 아니다. 하물며 무슨 이(利)로움과 독(毒)함을 분별하여, 그 사이에 조처(措處)함이 있겠는가. 오직 도(道)가 있는 자는 이익(利)이 오면 받아들여 구차히 기뻐하지 않고, 독(毒)이 오면 당하여 구차히 꺼리지 않아, 물건을 대하되 빈 듯이 하므로, 물건이 또한 그를 해치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다.
 나는 또 묻기를,
“원기(元氣)가 처음 갈려서, 위는 하늘이 되고 아래는 땅이 되며, 사람은 그 가운데 있어 이를 ‘삼재(三才)’라 이른다. ‘삼재’는 한 가지 이치이니, 하늘 위에도 역시 이러한 독물(毒物: 독을 품은 물건)들이 있는가.” 하였다.
 조물주의 말,
“도(道) 있는 자는 물건이 해치지 못한다고 내가 금방 말하지 않았는가. 하늘이 도(道) 있는 자만 못하여서 그러한 것들을 가지겠는가.” 하였다.
 내 말이,
“정말 그렇다면, 도(道)를 얻으면 과연 삼천(三天)의 옥경(玉京: 옥황상제가 사는 곳)에 이를 수 있을까.” 하였다.
 조물주가 말하기를,
“그렇다.” 한다.
 내가,
“내 의심은 이제 환히 풀렸다. 다만 모를 것은, 그대의 말에 ‘하늘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한다.’ 하니, 하늘은 의식적으로 함이 아니니[무위(無爲)] 스스로 알지 못함이 마땅하거니와, 조물주인 네가 왜 모를 수 있는가.” 하니,
 조물주는,
“내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대개 물건이 제 스스로 나고 제 스스로 변화(化)할 뿐, 내가 무엇을 만들겠는가. 내가 무엇을 아는가. 나를 조물주라 한 것을 나도 모르겠다.” 하였다.
-<<동국이상국집>> 권11, <문조물>
  • 이규보는 온갖 사물의 궁극적 존재 근거를 사물 그 자체의 자기원인성과 자발성에서 찾았음
  • 이 세계를 전체의 통일성 속에서 개체의 독자성을 확보하면서 유기적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 생명체로 보는 것임. 따라서 이규보에게 있어 모든 사물은 그 무엇에도 기댐 없이 도의 통일적 관계 속에서 독자적 자율성을 확보하면서 그 자체의 원리와 법칙에 따라 유기적 질서를 이루고 있음
  • 우주만물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라는 '만물일류(萬物一類)'의 관점에서 쥐, 이, 파리 등의 생물뿐만 아니라 벼루, 돌 등의 무생물까지도 우주의 거대한 관계적 조화에 독자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봄
  • 이규보는 우주만물을 자신의 의지와 목적대로 만들어내는 창조주는 없지만 온갖 사물을 생성, 변화시키는 궁극적 존재로서의 '조물'은 있음. 그 조물이 바로 '도'임. 도는 그 어떤 고정된 실체로서 시공의 위치를 따로 가진 것이 아니고 또 자타를 둘로 가르는 이분법적 구별이 따로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융합할 수 있는 우주만물의 궁극적 존재 근거임


 병중에 혼자 앉아 심사가 울적하던 차에 장단구(長短句) 한 수를 얻었으나 보낼 곳이 마땅치 않기에 이 시랑에게 주다
다리가 약해져서 다니지도 못하고 / 각연행미득(脚軟行未得) 오랫동안 심사만 울적해 왔으며 / 구적심중울(久積心中鬱) 게다가 눈조차 어두웠으니 / 신지목우혼(申之目又昏) 이제는 쓸모있는 노물일세 / 이의저노물(已矣遮老物) 오늘 아침에는 별안간 생각나기를 / 금조별기념(今朝瞥起念) 몸에 두 날개가 돋아 천지 사방을 훌훌 날아 다니면서 / 의욕신생양핵횡출육합분일(擬欲身生兩翮橫出六合飛奮逸) 아래로는 강과 바다를 뛰어넘고 / 하즉초강해(下則超江海) 위로는 해와 달을 만졌으면 했는데 / 상언마일월(上焉摩日月) 어쩐지 이것 또한 좁게만 여겨져 / 차역일하협(此亦一何狹) 남도 북도 아니고 여기도 저기도 없는 것이 곧 도의 참다운 경지라 느꼈네 / 불남불북무피무차시내도지실(不南不北無彼無此是迺道之實) 그대는 일찍이 나의 마음 잘 알 것인데 / 자증지아심(子曾知我心) 어째서 이런 좌절 겪게 되는지 모르겠네 / 호위반득차최굴(胡爲反得此嶊屈)


오늘의 토론 주제(2022.11.15): 21세기 이규보[편집 | 원본 편집]

딕싯 카드를 모티브로 하여(3장 중 최소 2장 활용) 21세기판 이규보식 노장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야기 마지막에는 어떤 사상이 담긴 이야기인지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